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81
강철의 열제 181화
베라 한 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자신이 힘없는 왕이라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당장에 제국의 사신들의 목을 쳐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누그러트리던 베라 한 왕의 눈이 가우리의 사신단을 향했다.
담담한 모습?
아니었다. 당당한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불만과 부정을 내뱉는 자들에게 눈짓 한번 안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서있는 가우리 인들. 그 순간 베라 한 왕은 간절한 소망이 일었다. 지금 자신이 이 힘없는 꼭두각시의 자리가 아닌 저들의 자리에 있었으면 한다는 소망.
‘나도 저들처럼 당당하고 싶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저들이 당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은백발의 사내의 망토끝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망토에 새기어져있는 것 같았다.왠지 끌리는 느낌…….
“연휘가람 경의 망토에 있는 문양을 볼 수 있겠소?”
“아니 지금 무슨 말씀을…….”
의도 하지 않았지만 베라 한 왕의 한마디로 인하여 떠들던 이들이 완전 바보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휘가람이 고개를 약간 숙이고 몽류화를 향해 눈짓을 보내자 그가 뒤를 돌아 베라 한 왕에게 망토를 보였다.
“…….”
베라 한 왕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붉은 망토에 수놓아진 검은 새.
세 개의 발을 가지고 있는 검은 새. 이들은 분명 고대인과 연관이 있었다. 어쩌면 전설이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이안 국왕전하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겝니까! 우리 제국들은 저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국왕께서도 어서 저들에 대해 결정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신성 제국의 하인즈만 백작이 다그치듯 외치자 다른 제국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저들을 잡아들여 그 뒤를 파내야 한다는 공통적인 생각이 그들 사이에 맴돌고 있었다. 이들의 독촉에 베라 한 왕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하지만 입 밖으로 터트리기에는 자신의 힘이 약했고 나라의 힘이 약했고, 자신의 편이 없었다.
“하이안 국왕 전하, 저들에게 몇 마디 하겠사옵니다.”
힘 있는 음성.
베라 한 왕은 휘가람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기대되는 음성이었다. 베라 한 왕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휘가람이 허리를 약간 숙여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제국의 사신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대들은 뭔가.”
“뭐, 뭣!”
“허어!”
휘가람의 태도에서는 공손함이 사라져있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자연스러운 하대에 분노보다는 어이없는 표정이 제국 귀족들의 얼굴에 그려졌다. 그런 그들에게 그리 크지도 않은 음성이 계속 흘러갔다.
“감히 그대들이 뭐기에 우리 가우리를 인정을 하니 안하니 하는 헛소리를 하는가.”
“무례하다!”
하인즈만 백작이 휘가람을 향해 외쳤으나 그는 아랑곳 하지않고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띠며 말을 이어나갔다.
“무례는 그대들이 아닌가. 아무리 우리가 타국과 교류를 하지 않고 레간쟈 산맥에서만 살아왔지만, 타국의 사신 나부랭이가 일국의 왕 앞에서 안하무인으로 날뛴다면 머리통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 한다.”
“뭐, 뭣이라!”
휘가람의 말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국가관계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제국의 귀족들은 휘가람의 발언에 오히려 눈을 부라리며 언성들을 높여갔다. 그때 휘가람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다시 전달 되어갔다.
“게다가 우리는 하이안 왕국과 이 기회에 교분을 맺으라는 열제 폐하의 지엄하신 명에 따라 이곳에 온 것이지 제국 따위들의 인정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이런…….”
“닥쳐라! 네놈들 예의가 상대가 말을 하는 도중에 잘라먹는 것이란 말이냐.”
나지막한 목소리와는 반대로 강도가 높아지는 발언에 연방제국의 귀족이 분노하여 말문을 열려하였지만 휘가람에게서 쏘아진 위압감에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통쾌했다.
베라 한 왕의 일생에 이처럼 통쾌한 날이 어디 있었겠는가?
휘가람이 베라 한 왕에게 시선을 돌려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하이안 국왕 전하 앞에서 점잖지 못한 언행을 한 점 송구하옵니다.”
“괜찮소.”
베라 한 왕의 입가에는 미소마저 감돌았다. 휘가람이 고개를 숙여 사과한 후 사신들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일국의 사신들이라는 자들의 행태를 보아하니 힘을 가지되 포용이라는 것을 배우지 못한 무도한 무리로군. 우리가 너희 땅에 나라를 세우기라도 한 것 인가?”
더 이상 휘가람의 말에 아무도 끼어들지 않았다. 아니 않았다 하기보다도 지금 그들의 온 몸을 옥죄어 오는 휘가람의 기도가 감히 그런 생각을 못하게 하고 있었다.
“무릇 국가를 인정케 하는 것은 땅과 백성과 힘이다. 우리는 땅과 백성과 힘이 있다. 이를 시험하려 한다면 우리 가우리는 그 어떠한 도발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다. 이것은 가우리의 의지이며 가우리를 수호하는 장수인 나의 의지이자, 선대로부터 내려온 열제 폐하의 의지이다.”
“헉!”
“이런!”
순간 모두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는 제국이 전쟁을 걸어와도 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것도 당사자들이 있는 가운데 내뱉은 것이어서 그 놀람이 더 컸다. 그 어떤 나라가 이러한 발언을 할 수 있겠는가? 그 힘의 작고 큼을 제외하더라도 이것은 충격이었다. 미소를 띠고 있던 베라 한 왕마저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한 순간의 정적이 찾아 왔다.
그때 대전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무……무슨 일인가!”
하이안 왕국의 귀족이 서둘러 물었다. 그러자 입구에 있던 궁내부장이 창백한 얼굴로 달려와 입을 열었다.
“지금 가우리의 사신단의 호위들과 삼대 제국 사신단 호위 기사들 간에 충돌이…….”
궁내부장의 보고가 이어짐에 따라 제국의 사신들은 서로를 보고 눈을 찡그렸다가 모른 척 앞을 보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베라 한 왕이 그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보고는 주먹을 힘껏 쥐었다.
‘아무리 제국이라지만…….’
안 보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국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일을 벌여 서로 간에 명분을 만들어 레간쟈 산맥을 차지하려 하였던 것임이 분명했다. 물론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세 제국이 같은 생각을 하였음이 분명 했다. 그런데 베라 한 왕의 머릿속에 의아함이 돌았다.
‘설마 먹이를 다투는 개처럼 덤벼들었을 리는 없는데 어찌하여…….’
아무리 세 제국이 같은 생각을 하였다 하더라도, 세 제국 중 하나가 소요사태를 만들었다면 나머지 두 제국이 끼어들 명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분명 보고에는 세 제국과 가우리라는 단어가 있었다.
* * *
계웅삼은 왕성 앞에 대기하면서 자신들을 띠껍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맞이하고 있었다.
“상열의 놈들 눈알을 어따 부라리냐.”
미소와는 달리 그의 말투는 정 반대로 험악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었다.
“허우대만 뻘쭘한 놈들이 뭔 소리인지도 모르고 좋다 하네.”
웅삼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흘려 보이며 가우리 말로 주절거리는 모습에 눈길을 보내던 하이안 왕국 수비병들이 마주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계속 몇 마디 하자 그들에게서 반응이 흘러 나왔다.
“놈들이 우리를 보고 헤죽거리는 게 촌놈은 촌놈인가 봅니다.”
“뭐 우리가 멋져 보일 수도 있겠지. 신경 쓰지 말고, 경계나 열심히 서.”
왕성의 경계를 맡은 병사들과 기사들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웅삼에게 웃어 보이곤 자신의 할 일에 몰두했다. 물론 웅삼을 따라온 검수들과 묵갑귀마대 부장들 몇몇은 만일을 대비한 통역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었기에 웃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대 잠시 한쪽에서 소란스러움이 일었다.
“뭐지?”
웅삼이 눈을 돌려 멀뚱히 소란스러움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나타난 것은 웅삼도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저 개똥같은 자식들이…….’
약 칠년 전 자신과 수하들을 마족으로 치부하며 덤벼들던 신성제국 기사들의 갑주를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않은가?
은근히 열이 받아오는 웅삼이었다. 물론 당시 같이 움직였던 수하 몇몇들의 표정역시 저절로 험악하게 변하였다.
“네놈들이 가우리라는 산적 패 무리의 수하들이냐.”
오만한 말투.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오는 그들을 보면서도 웅삼과 사신단 호위로 온 병력들은 부동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흥 미개한 놈들이라 대륙어도 모르는가 보군,”
빈정거리는 그 모습은 말을 몰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때 다른 방향에서 또 한 무리의 병력이 몰려왔다. 그 무리들의 모습을 본 신성제국 기사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오합지졸 놈들이군.”
연방제국의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신성제국 기사의 말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연방제국과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연방제국 기사들이 도착하기가 무섭게 나타나는 인원들.
“허 뱃놈들까지…….”
가벼운 무장을 하고 다가오는 해상제국의 기사들이 다가옴으로써 삼대 제국의 사신단 호위 병력들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되었다. 이렇게 기이한 기운이 감돌자 왕성을 수비하는 하이안 왕국의 병사들은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 볼 뿐이었다.
약 사백여명의 인원들이 대치를 이룬 상황.
수비병의 보고를 받은 하이안 왕성 수비대장이 달려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모인거지?”
수비대장 케일 남작은 당혹감이 서린 얼굴로 중얼 거렸다. 지금까지 제국의 사신들이 하이안 왕국으로 올 때마다, 사신들의 호위 병력은 서로 마주치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관례이자 묵시였다. 하지만 이곳에 모은 삼대 제국의 호위 병력들은 가우리의 호위 병력을 사이에 두고 먹이를 다투는 듯한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연방제국에서는 무슨 일입니까.”
자신들이 먼저 차지했다는 듯, 신성제국 사신단 호위장 마벨 자작이 연방제국의 사신단을 향해 말을 던지자 연방제국 사신단 호위장인 폴링 자작이 응수했다.
“으음 듣기로 가우리란 자들이 무장을 하고 있다 들어 무장이라도 해체시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왔소이다. 아직 저들은 인정을 받은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저런 살상무기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오.”
“우리는 중앙해의 해적들과 저들이 내통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첩보가 들어와 확인하러 들렸소이다.”
연방제국 폴링 자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상제국의 이시에 자작이 이유를 밝혔다. 물론 해상제국의 이유는 그저 핑계일 뿐이다. 물론 진실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그걸 믿지 않았다. 해적은 바다에 출몰하는데 이들은 레간쟈 산맥에서 오지 않았던가?
“해적들이 활동하는 곳과 레간쟈 산맥이 무슨 연관이 있다고 그러시오.”
연방제국의 폴링 자작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시에 자작이 응수했다.
“당신들은 이들의 무장을 해제 하시오. 우린 이들의 몸만 필요할 뿐이외다.”
서로 가우리군을 맡겠다고 다투는 그들의 모습에 신성제국의 마벨 자작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모르겠소! 마족일 위험이 있단 말이오. 하여 우리 신성제국에서 이들의 신변을 맡겠소!”
마벨 자작의 외침에 폴링 자작과 이시에 자작이 똑같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아니 될 말이오!”
“그럴 수 없소!”
“지랄하고 자빠졌네.”
“아니 무슨!”
세 번째로 튀어나온 욕설에 신성제국의 마벨 자작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러나 두 제국의 자작들도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들이 욕설의 주인공을 찾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욕설.
“내참 아주 끼리 끼리 노는 구만. 이건 뭐 당사자가 있는데 지들끼리 꼴같잖은 이유를 대고 주뎅이로 싸우고 지랄이야 지랄이……. 차라리 칼 들고 세 놈 들이 싸워 한 놈이 이기면 우리가 상대를 해주지. 왜? 꼽냐? 욕 처먹으니 열 받냐? 열 받냐고! 우린 더 열 받아, 알아? 이 오크 발톱의 때만도 못한 자식들아!”
실실 웃으며 쏟아놓은 계웅삼의 욕설에 어리벙한 표정을 짓던 세 제국의 호위 병력들의 얼굴에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웅삼을 노려보는 눈에는 살기가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것을 그냥 보아 넘길 웅삼이 아니었다.
“눈 안깔아? 어서 깔아 이 자식들아. 눈알의 색소를 쪽 빨아 버리기 전에.”
“킥킥킥.”
“큭큭.”
웅삼의 엽기발랄 한 욕설에 가우리 호위 병력들에게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무도한 놈들!”
신성제국 마벨 자작의 분노를 필두로 폴링 자작과 이시에 자작의 분노가 뒤따랐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소드가 빛을 발하며 뽑혀 나왔다.
“여기는 하이안의 왕성입니다! 모두 무기를 집어 넣으십시오!”
험악한 상황을 막기 위해 나선 수비대장 케일 남작이 뛰어나와 외쳤다. 하지만 마벨 자작이 잡아먹을 듯 한 눈초리로 노려보며 외쳤다.
“닥쳐 문지기 나부랭이가 어딜 끼어들어!”
“아무리 제국의 귀족이라 해도 그런 모욕은 결례요!”
마벨 자작의 폭언에 케일 남작은 이를 악물고 되받아 쳤다. 어찌 되었든지 자신의 임무는 왕성의 수비다. 그러나 마벨 자작에게는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네놈부터 죽고 싶으냐!”
섬뜩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케일 남작이 물러서지 않으려 하자 마벨 자작은 소드를 그에게 겨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었으니…….
“장난 치냐? 덤비려면 빨리 덤빌 것이지 엄한 놈 건드려서 뭐하려고? 그런다고 나 안 봐준다.”
“이익! 모두 저 사악한 무리들을 제압하라!”
웅삼의 이죽거림이 마벨 자작의 결단을 빠르게 내릴 수 있게 도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명령들이 떨어져 내리며 연방제국과 해상제국의 병력들이 가우리라는 공동의 적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온다! 전부 조져!”
스렁.
웅삼의 명령과 함께 장도가 뽑혀져 나오자 검수들과 묵갑귀마대의 정예 병력들이 동시에 외쳤다.
“충!”
강렬한 외침과 함께 삼면으로 몰려오는 삼백여명의 병력을 향해 가우리의 이십여 검수와 삼십여 묵갑귀마대가 몸을 날렸다. 그 선두에는 웅삼이 즐거운 미소를 던지며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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