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83
강철의 열제 183화
베라 한 하이안 국왕은 멀어져가는 가우리의 사신단을 보며 복잡한 심경을 보이고 있었다. 마법영상으로 보았던 가우리의 그 압도적인 무력과 함께 복잡해질 수 있었던 사건이 의외로 신성제국이 고개를 숙이며 발을 빼고 마무리 되어버린 사건.
불안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당당함을 보였던 사신단을 보며 대륙의 굳어진 힘의 체계를 무너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이 한쪽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그런 베라 한 왕의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로셀린 왕국에서 사신들이 왔습니다.”
“로셀린?”
로셀린이라면 통일 로셀린을 말하는 것이다. 평소 교류가 많지 않았던 북로셀린 왕가였기에 베라 한 왕은 불길함을 느꼈고 그 불길함은 현실로 다가왔다,
로셀린 왕국의 가우리에 대한 선전 포고.
기다렸다는 듯이 신성제국이 인정하고 나섰다. 그들이 내민 자료에는 분명 남 로셀린의 잔당들이 레간쟈 산맥으로 향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신성제국이 발을 뺀 것에는 애초에 이 일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 분명했다.
물론 레간쟈 방향이라는 증거 자료였지만, 지금으로서는 레간쟈 산맥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나라는 가우리 뿐이었다. 신성제국이 가우리라는 나라에 대해 부정하지 않은 것에는 이러한 복합적인 의도가 숨어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선전 포고?”
“로셀린에서 선전 포고를 했다 합니다.”
가우리로 돌아온 연휘가람은 고진천에게 통일 로셀린의 선전 포고를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베라 한 왕에게는 의미모를 환대를 받았었지만, 그것이 하이안 왕국에서 해주는 최선이었다. 그러나 애당초 바라지도 않았던 가우리 사신단이었기 때문에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제국의 압력에 못 이겨, 사신단을 무력으로 잡으려 할 경우를 대비하여 리셀이 수도 인근에 텔레포트 진을 준비해 놓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이것은 베라 한 왕의 밀서입니다.”
“밀서를?”
고진천이 연휘가람에게 밀서를 건네받고 펼쳤다.
“…….”
잠시의 침묵.
진천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한쪽에 있던 계웅삼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열제 폐하, 안 좋은 이야기라도 있습니까?”
웅삼의 질문에 진천은 말없이 밀서를 건네었다. 진천이 넘겨주는 밀서를 받은 웅삼이 궁금함에 밀서를 펼쳐보았다.
“아…….”
그때서야 웅삼은 진천이 침묵한 이유를 알았던 것이다. 웅삼의 탄성에 진천이 미간을 더욱 찌푸리며 한마디 던졌다.
“알았으면 읽어라.”
밀서는 대륙어로 쓰여 있었던 것이다.
웅삼이 진천의 눈을 피해 밀서를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가우리 국왕 고진천에게…….]예의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저자세인 듯한 문장. 의례적인 인사로 밀서를 시작했다. 밀서라지만 내용상에는 그다지 비밀이라 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우리와 하이안 두 국가 간에 교역이나 동맹 등의 관계가 없는 상황 아니던가?
하지만 밀서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읽어 나가는 웅삼의 목소리가 심각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현 대륙의 정세를 자세히 기술한 것이었다. 물론 가우리 역시 상단을 조직해서 대륙의 정보를 모아오고는 있지만, 고급 정보는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베라 한 왕이 적어놓은 정보는 상당히 유용한 것이었다.
대륙의 절대자 삼대 제국.
그 중의 최강은 신성제국이라 할 수 있었다. 황제에게 절대적인 권력이 집중되어있는 신성제국의 힘은 다른 제국들을 훨씬 상회하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연방제국과 해상제국이 힘을 합친다면 신성제국으로서도 어렵다.
그렇게 삼대제국의 막강한 힘의 대치가 이루어지는 상황.
천여 년 전만해도 대륙에는 50개가 넘는 왕국들이 있었지만 하나둘 대륙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합병이 되었다. 그 전쟁의 회오리에서 버텨낸 도린 공국과 테미안 공국, 헤센 공국, 쎈 공국, 뮤 공국들은 흔히 오대공국이라 불리며 해상제국과 연방제국의 완충지역을 맡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오대 공국은 해상제국과 연방제국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취하며 양쪽의 힘을 이용해 유지 해왔다.
전사의 나라 말린 왕국.
처음 신성제국의 힘에 맞서기 위해 연방에 가입 했었으나, 전쟁이 끝나자 스스로 탈퇴한 왕국이었다. 남 로셀린 왕국과 함께 자존심이 강한 왕국이었다. 물론 탈퇴 시에 연방제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연방제국으로서도 불쾌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백여 년에 거친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들에게 더 이상 연방제국은 무력을 동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연방제국의 강력한 경제제재로 인하여 국가 간의 무역은 꿈도 꾸지 못하였고 자급자족만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이안 왕국…….
[……배덕의 계절에 일부 고대인들은 대륙인들의 유혹에 넘어가 동족을 배신하기에 이르렀소. 고대인이 떠나간 이후 그들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그것도 잠시였소. 결국 지금의 삼대제국의 합공을 받아 왕가는 무너지고 식민지로 전락했다가, 다시 또 다른 제국의 식민지가 되는 등 360년간을 시달려왔소. 결국 제국들의 휴전을 위해 우리 하이안 왕국을 중립지역으로 놓았지만, 나라라기보다는 각 제국의 힘이 팽팽하게 마주치는 전장과도 같다는 것이오. 이런 상황에서 귀국의 존재는 제국들에게는 신선한 먹이일 지도 모르오. 부디 조심하시오. 이번 통일 로셀린 왕국의 선전 포고는 신성제국의 야심이 잘 드러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오. 부디 국가의 운명을 지켜 나갈 수 있기를 빌겠소.]“여기까지입니다.”
“음.”
웅삼이 밀서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나서 고개를 들자 진천이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그러나 웅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진천에게 굳은 얼굴을 한 웅삼이 밀서의 마지막 부분을 내밀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런 것이…….”
“뭔가.”
웅삼이 내민 부분에는 대륙어를 몰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형태는 조금 달랐지만 분명한 삼족오였다.
“신조 트라칸의 가호가 있기를…….”
중얼 거리는 웅삼의 말은 더 이상 진천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운명에 이끌려 대륙에 처음 왔을 때부터 조금씩 알려져 오던 고대인의 전설과 드래곤의 등장. 그 드래곤이 사라지며 외친 말들…….
진천은 밀서를 접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중얼거렸다.
“운명이든, 필연이든.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것.”
진천은 최고의 진리를 알고 있었다. 지금은 눈앞의 선전포고에 신경을 쓸 때였다.
통일 로셀린의 가우리에 대한 선전 포고.
가우리 수뇌부는 굳이 이일을 백성들에게 숨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백성들이 쉬이 알 수 있도록 공공연히 알리고 있었다.
“젠장 노인장은 안 된다니까요!”
예비 병력을 소집하는 징집관이 신경질을 내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앞에 있는 노인은 되레 화를 버럭 내며 물러서지 않아다.
“왜 안 돼! 내가 이래봬도 소싯적에 맨손으로 오크를 때려잡은 사람이야!”
“아 정말 맨손으로 오크를 잡던 오거를 잡던 안 된다니까요!”
물러서지 않는 징집관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병사로 지원한다는 노인은 암만 보아도 육십은 넘어 보였다. 그럼에도 바락 바락 병사로 지원하는 모습에 징집관은 고마우면서도 원칙을 고수 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헛, 하일론 장군님!”
소란스러움이 신경 쓰였는지 징집에 대한 총 책임자인 하일론이 다가와 묻자 징집관이 노인과 그를 번갈아 보며 난감해 하고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각 도시마다 설치된 징집소에는 노인은 둘째 치더라도 이제 갓 열 살이나 넘음직한 아이들까지 몰려들어 이러한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보시오 노인장.”
가우리 백성 중 하일론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화전민 출신이면서도 최고속 승진을 한 유명인이자, 드래곤에게 달려들었던 유일한 대륙인. 그리고 고아들의 아버지 등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있어 모르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아이쿠 하일론 장군님.”
이제는 자연스럽게 위엄이 붙은 그의 말에 금방까지만 해도 바락바락 병사가 되겠다고 소리 지르던 노인은 고개를 조아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내 노인장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
부드러운 하일론의 말에 노인장은 고개를 들어 처연하게 바라보았다. 가우리는 그들에게 이어 마지막 삶의 쉼터나 마찬 가지였다. 비록 힘이 들지언정 자유가 존재하는 나라였다. 아이들은 그것을 크게 느끼지 못하겠지만, 많은 세월을 살아온 노인들은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유독 노인들이 징집소에 몰려들었던 것이다. 또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도 들었으리라.
하일론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노인장마저 이리로 달려오면 농사는 누가 짓소?”
“장군님…….”
안타까운 목소리가 노인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하일론이 살짝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아니면 우리 가우리의 힘을 의심하는 것이오!”
“아이쿠 아닙니다요.”
하일론의 질책 섞인 물음에 노인은 고개를 연신 조아리며 부정을 하였다. 그러자 하일론의 목소리가 다시 부드러워진다.
“지금 징집소를 운영해서 병사를 모으는 인원은 이번 전쟁에 직접 투입하는 인원이 아니라오.”
하일론의 설명에 노인뿐 아니라 징집소에 몰려있던 사람들마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하일론의 차분한 음성이 계속 이어졌다.
“아마도 모두 훈련 뒤에 다시 생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오. 지금까지야 위험이 없어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대비할 때란 말이오. 한마디로 지금 병력을 모집하는 것은 대비를 위한 것이지 당장 우리가 힘이 모자라 이러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우리 열제 폐하가 누구신가! 바로 드래곤과도 맞서서 이 땅을 지켜낸 분이 아니시던가!”
하일론의 차분했던 목소리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커다랗게 변했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묘한 감정을 만들어 주었다.
절대적인 믿음.
가우리 백성들에게는 고진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일론이 아새끼래 말이 늘었어야.”
“길티.”
한쪽에서 소란을 듣고 다가오다가 멈추어선 을지부루와 우루가 하일론의 말을 숨어서듣고는 기분 좋은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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