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86
강철의 열제 186화
제57장 지옥을 향하는 자
가우리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온 로셀린 병력들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비록 포로의 몸으로 생기가 있다는 것이 더 웃긴 일 일지도 모르지만, 이들의 눈에는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공포가 담겨있었다.
“빨리 움직여!”
퍼억!
“어헉!”
비척거리는 포로의 엉덩이를 세차게 걷어차자 그 힘에 밀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욕설이 쏟아지고 몽둥이세례가 쏟아지는 가운데, 포로들은 본능적으로 덜 맞기 위해 몸부림들을 쳤다. 그러나 가우리 병사들이 이들에게 대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서였다. 포로들의 행군 속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구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포로들은 가우리 군의 한마디 한마디에 온 몸을 떨어야만 했다.
“음무오오오오!”
“어라 이놈 배고픈가 보네?”
미노타우르스의 구슬픈(?) 외침에, 고삐를 잡고 끌고 가던 병사에게서 나온 한마디.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포로들은 온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입가에 침이 뚝뚝 떨어지는 미노타우르스의 시선이 포로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거 먹는 거 아니라니까 이 자식아!”
화난 병사가 포로를 손가락질 하며 외치자 말뜻을 알아들을 리 없는 포로가 입에 거품을 물고 자빠져버렸다. 가우리 병사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 있었던 탓이다.
알세인 왕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비참하게 끌려오는 로셀린 병사들. 그 포로들이 불쌍해서 알세인의 안색이 굳어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건 아니야.”
알세인 왕의 굳은 입술이 벌려지며 나온 단어의 뜻은 강한 부정.
그의 눈길은 포로가 아닌 뒤에 따르고 있는 몬스터 떼들에게 가있었다. 그 몬스터가 울음소리를 흘릴 때마다 움찔거리는 포로들……. 인간이라는 존엄성이 바닥에 떨어진 모습에 알세인은 가우리 인들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거의 다 잡았군.”
“열제 폐하…….”
뒤쪽에서 울려온 딱딱한 말투의 주인공.
알세인은 몸을 돌려 천천히 예를 갖추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알세인의 표정을 모를 고진천이 아니었다.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군.”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미가 담긴 진천의 말에 알세인의 미간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 마신 뒤 진천을 똑똑히 바라보며 말문을 열어갔다.
“아무리 적이라 하지만 인간입니다.”
“그런데.”
알세인의 음성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지금까지 고진천을 닮고 싶어 하던 그가 아닌 것이다. 진천이 태연하게 반문하자 알세인은 자꾸만 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슬쩍 적시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찌 마물들을 이용 하여 죽은 시신을 욕보이고 또 인간을 해치는데 사용합니까. 이것은 인간으로써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알세인의 불만은 그것이었다. 이것은 몬스터들을 가축삼아 사육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러한 알세인의 질책에도 진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알세인은 내심 그가 그럴 듯 한 변명이라도 하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침묵을 지키는 진천은 그럴 기미가 전혀 없었다.
“인간을 벌 하는데 있어 마물을 이용하다니, 저는 이것을 전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제 행동이 무례하다 하시겠지만, 전 이것을 납득 할 수 없기에 이렇게 솔직히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진천은 눈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알세인을 바라보며 조금의 표정 변화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났다.
밖을 바라보던 고진천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방법이 손쉽고 좋으니까.”
“열제 폐하!”
담담한 진천의 답변에 알세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복잡한 모습을 담고 있는 그의 눈에는 한없는 실망감이 넘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진천의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이었다.
“꿈을 꾸고 있군.”
진천의 말을 못 알아들을 알세인이 아니었다. 너무 이상적이라는 말. 하지만 이 일은 이상과 실리를 따지기에는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지옥에나 떨어질 행동이란 말입니다.”
알세인이 지지 않고 맞섰다.
“훗.”
진천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짙어졌다. 무엇이 그를 웃음 짓게 하는 가……. 진천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전란을 앞두고서도 쉴 사이도 없이 쌓아 올리는 거대한 무덤이 닿아 있었다.
“저기 보이는가.”
알세인은 알 수 없었다. 지금 진천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천의 시선 끝에 걸려있는 처음 보는 형상의 무덤은 알고 있었다.
“보입니다.”
“그래.”
바로 진천이 누울 무덤인 것이다. 가우리의 열제들은 제위에 오르면 자신이 누울 무덤을 만들기 시작한다. 살아 있음에도 죽은 뒤에 묻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알세인은 이러한 생소함에 이해를 못 하였지만 가우리 자체가 대륙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냥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열제라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이 누울 공간 치고는 너무 크고…… 거대하지.”
“…….”
알세인은 조용히 그의 말을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알세인을 한번 바라본 진천은 옆에 놓여있는 화려한 장식품을 들어 올렸다.
“저기에 내가 묻힐 때 이런 화려한 물건들도 함께 들어간다. 왜 그럴까.”
“모르겠습니다.”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진천은 그런 알세인을 바라보다 입가에 맺혀있던 웃음을 지웠다. 그 순간 진천에게서 쏘아지는 위압감에 알세인은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죽어 갈 곳은 지옥이다.”
“그게 무슨…….”
싸늘하다 못해 냉기마저 흐르는 음성에 알세인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럼에도 진천에게서 쏟아지는 기세와 냉막한 기운은 거두어 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해지고 있었다.
“네놈은 죽어 화려한 천상을 원하느냐!”
진천의 일갈에 알세인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쏟아지는 질책들…….
“그런 썩은 생각으로 왕이고자 자처했다는 말이냐!”
“크윽!”
“왕좌의 화려함속에 가려진 진실을 아느냔 말이다!”
털썩.
알세인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덜컹!
“알세인 전하! 무슨 일 이십…….”
뛰어 들어오던 헬리오스 바이칼 후작과 알세인의 호위기사들은 방안을 가득 채우는 엄청난 기운에 내뱉던 말을 삼켜야만 했다. 아니 그 기운은 둘째 치더라도 고진천이라는 사내가 있기에 함부로 할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진천은 뛰어 들어온 이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이 주저 앉아있는 알세인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외쳐나갔다.
“나 열제의 한 마디에 무수한 목숨이 사라진다. 네놈의 판단으로 인해 백성이 굴복하고, 백성이 싸우기도 한단 말이다! 지존의 자리의 화려함속에는 그 무수한 피가 있는 자리라는 것을 진정 모르느냐!”
“으으윽!”
알세인 왕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이빨은 위아래가 만나 쉬지 않고 딱딱거리며 부딪히고 있었다.
“기억하라! 지존의 화려함은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이의 살아생전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호사라는 것을! 전쟁에 나아가 무기를 들어 적을 죽이는 병사의 업화를 대신 등에 짊어지는 그 대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냉막함에 이어 들이닥치는 뜨거운 열기가 알세인의 뇌리를 강타했다. 모든 이의 입술이 굳게 닫혀있었다. 그 침묵 속에 진천의 나지막한 음성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만인의 지존인 열제라는 자는 그렇게 지옥을 향해 달려드는 한 마리의 부나방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열제 폐하…….”
진천의 시선이 다시 창밖으로 향하고 알세인의 입술이 떨리며 천천히 열렸다. 흐려졌던 진천의 음성이 또렷하게 알세인의 귀로 박혀들었다.
“나는 이보다 더 한 일도 할 수 있다. 어차피 지옥에 갈 나. 못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이미 지존이 아니다.”
“크흑.”
알세인은 왠지 모르게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존이고 싶은가?”
“그렇습니다!”
진천의 물음에 알세인의 울음 섞인 절규가 튀어나갔다.
“그럼 나와 지옥에 가자.”
“크흐흐흑.”
진천이 미소를 지었다.
슬픈 듯, 강인한 듯, 즐거운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그리고 애초에 시작은 저들이 자초한 것일 뿐이다.”
“우욱, 욱욱욱!”
울음을 멈추려 해도 멈추질 않았다. 알세인은 처음으로 진천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토록 그가 강해 보였던 이유와, 그 슬픔을…….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는 알세인의 귓가로 진천의 목소리가 한가하게 흘러왔다.
“저 큰 무덤과 그 안에 들여 놀 재화는 바로 뇌물이야. 내가 죽어 좀 덜 뜨거운 불에 던져달라고 하는 뇌물.”
자신이 묻힐 무덤을 바라보는 진천의 입가에는 생사를 초월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알세인 왕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겨 나오는 고진천의 뒤로 근위 무장들이 말없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 역시 진천의 속내를 엿 보았었기에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천의 등을 보며 따르는 그들의 눈에는 굳은 의지가 서려있었다.
‘이 넓은 등을 가진 사람의 길 끝에 지옥이 있더라도 따를 것이다.’
마치 그렇게 말하듯 다짐하고 다짐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때 한쪽에서 연휘가람이 웃음을 띠운 채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진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뭔가.”
“다 들리더군요.”
“끄응.”
휘가람의 답변에 진천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계속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가람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뒤를 따르며 말을 건네었다.
“열제 폐하의 무덤이 너무 작아 보입니다.”
“…….”
휘가람의 말에 진천은 미간에 골을 파며 걸음을 계속 옮겨 나갔다. 지금도 충분히 커다란 능이었지만, 진천이 저질러온 일들과 앞으로 저지를 일들에 비하면 작을 것이라 농을 건네는 것이다.
“아주 유황불에 목욕을 하라고 굿을 하지.”
진천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휘가람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열제 폐하께서 지옥에 가라 한다고 가실 분입니까?”
“크큭.”
진천이 인상을 쓴 채로 웃음을 흘렸다. 휘가람이 아는 진천이라면 아마도 지옥의 염왕과도 싸우겠다고 덤빌 사람이었다.
“염왕과 칼질을 나누더라도 어차피 내가 갈 곳은 지옥 아닌가?”
“하하하하!”
진천의 장난 섞인 말을 들은 휘가람의 대소가 울렸다.
웃음이 그친 후 휘가람이 진천을 향해 차분한 음성으로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남 로셀린 병력 오천에 이전 남로군 출신, 그리고 원군 이만이 준비 되어있습니다.”
진천은 휘가람의 음성을 들으며 뒤도 안본 채로 말을 받았다.
“우리 쪽 방비는 문제없겠지.”
“수성에는 우리 가우리를 따를 무리들이 없습니다.”
“좋아.”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는 진천의 등을 바라보던 휘가람은 잠시 알세인 왕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것을 생각하셨던 것입니까?’
휘가람은 다시 진천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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