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187
강철의 열제 187화
오백여명으로 이루어진 부대의 규모에 비해 숲을 지나는 그들의 걸음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일부러 그런 듯, 가죽 갑옷 위에 꽂은 풀들과 푸른 풀물은 그들이 이곳을 은밀하게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숲과 섞여 보이기 위한 위장 사이로 보이는 문장은 통일 로셀린 왕가를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제길 이거 불안해서 원.”
선두를 나아가는 병사의 입에서 투덜거림이 튀어나왔다. 이들이 가는 곳은 대로 옆에 나있는 숲이었다. 누가 듣는다면 어이없다 할 것이다. 정찰이 목적인 자들이 숲을 우회하는 것도 아니고, 대로변을 따라 위장하고 이동한다는 것은 한 편의 경극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가는 길은 바로 하이안 왕국 탐사대가 가우리 군대의 인도를 받아 이동했던 길이었다. 몬스터들에게 시달리던 그들을 구해주었던, 가우리 군대가 인도한 길목이 통일 로셀린 군의 침공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불안해도 숲으로 더 들어 갈 수 없잖은가.”
선두에서 걷던 사내가 조금 전에 투덜거린 자에게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꾸를 했다.
“제기랄. 이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대형 몬스터들이 뛰쳐나오니…….”
“어쩔 수 없지. 마법사들의 말을 들어보니 가우리 군대가 이 길을 이용하는 이유가 각 대형 몬스터들의 영역 경계라서 하잖아.”
“어차피 우리가 맡은 역할은 정찰이니…….”
몇몇 병사들의 투덜거림은 숲속으로 조용히 흩어져 나갔다.
사실 이들은 레간쟈 산맥에 숨겨져 있던 대로 주변의 숲으로 우회하여 정찰을 시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쉽게 구경하지도 못하는 대형 몬스터들의 천국이었다. 그저 오크나 고블린, 코볼트들이 아니었다. 최소가 트롤 보통이 미노타우르스와 육상 몬스터의 제왕 오거였다. 거기에 간간이 양념으로 트윈헤드 오거까지 나타나 칠백 여명의 정찰대를 오백으로 줄여 논 것이다.
결국 마법사들이 나서 이유를 분석한 결과 바로 각 몬스터들의 힘의 영역의 경계가 바로 이 대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게 되자 가우리 군대가 안전하게 이동하던 이유도 찾아 낼 수 있었고, 결국 그들은 처음의 작전을 바꾸어 대로에 최대한 접근해서 정찰을 하는 것으로 가닥을 바꾼 것이다.
아무리 가우리를 가볍게 보고 시작한 전쟁이지만, 일반 병사들에게 전쟁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에 떠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풀썩.
“무슨 소리지?”
조심스럽게 걸음을 걸어가는 그들의 귓가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방향은 선두조가 있는 방향.
불길한 예감이 병사의 뇌리를 스쳤고,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어, 언제?”
병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어이없다는 말을 흘렸다. 앞쪽에 나는 소리에 잠시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기척도 느끼지 못한 상태로 자신의 심장에 단검이 박혀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도 이 병사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써걱!
“끄륵.”
그러한 반응과 의문조차 꺼낼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듯 또 다른 섬광이 목젖을 가르고 지나치자, 병사의 목에서 붉은 핏물이 뿜어져 나오며 천천히 허물어져 내렸다. 그 병사의 눈동자에 마지막으로 각인된 모습은 팔 달린 수풀이었다.
‘준비하라!’
수풀에서 삐져나온 팔이 허공으로 들렸다.
그 팔이 아래로 내려지는 순간 숲이 움직였다.
* * *
“뭐라!”
로셀린 군 총 사령관 맨도널 후작의 뾰족한 음성이 지휘막사를 흔들었다. 그의 질책 섞인 음성이 쏘아지는 곳에는 거지꼴이 다된 기사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칠백 중에 십여 명만이 살아 돌아온 것을 나보고 믿으란 소리냐!”
“크흑.”
기사는 힘없이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가 살아 온 것도 자력으로 살아 온 것이 아니었다. 숲이 움직인 순간 은신하며 전진하던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갔고, 병력을 이끌던 수뇌부는 최초의 교전이 이루어질 때 모조리 저격을 당했다. 머리가 없어진 군대의 최후는 뻔 했다.
“이런 병신들!”
맨도널 후작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휘막사 한쪽에 앉아서 보고 있는 삼대제국 관전 무관들의 입에서는 혀를 차는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들의 시선이 더욱 따갑게 느껴질수록 맨도널 후작의 분노는 달아올랐다.
“맨도널 후작. 일단 그들이 가져온 서신부터 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소만.”
“크음. 알겠소.”
신성제국의 관전 무관인 마벨 자작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맨도널 후작은 불편한 심기를 누그러뜨리며 눈앞에 거지꼴로 있는 기사의 손에 쥐여진 서찰을 바라보았다.
“저 여기 순서대로 펴 보라 하십니다.”
기사가 세 개의 봉투를 차례로 건네며 말을 하자 맨도널 후작이 눈가를 찌푸리며 첫 봉투를 열어 보았다.
“…….”
맨도널 후작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첫 번째 서신을 펼친 채 바라보던 그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을 짓고 있자, 이상하게 생각한 관전 무관들이 자리에서 일어서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맨도널 후작에게서 가우리의 서신을 받아든 순간 그들도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도저히.”
해상제국 관전 무관인 이시에 자작이 허탈한 음성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글이로군요.”
“끄응.”
“젠장 미개족속들!”
그 서신은 순수하게 가우리의 글로만 기록 되어져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글을 알아볼 수 있는 자들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두 서신도 보나 마나 아니오!”
신성제국의 마벨 자작이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말을 하자, 맨도널 후작이 말없이 두 번째 서신을 펼쳐 보았다. 어찌 되었던지 보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크윽!“
두 번째 서신을 펼친 맨 도널 후작의 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얼굴까지 달아오른 모습에 연방제국의 폴링 자작이 서신을 넘겨 받아서 눈으로 가져갔다.
[미개한 놈들.전쟁을 하겠다고 하는 놈들이 상대국의 언어조차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 하는가? 혹시나 싶어 첫 서신과 같은 내용을 이렇게 그대들의 언어로 기록하여 전달하니 똑똑히 보도록 하라.
첫째, 이 서신을 받는 즉시 여기까지 들고 온 무장을 모조리 해제하고 가우리의 영토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 한다. 단 식량과 물은 예외로 가져 갈 수 있도록 허가 하노라.
둘째, 본국에 돌아간다면, 그대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사죄의 뜻으로 사신을 보내도록 하라. 그리하면 제국 가우리의 제후국으로써 존중 해 줄 의향이 있노라.
셋째, 이번 소요로 인한 배상으로 대륙의 통화 금화 오 만개를 사신단이 본 국으로 올 때 지참토록 하라.
십일의 시간을 허용하니, 아량에 감사하며 물러날 것을 다시 한 번 명 하노라. – 가우리 제 29대 열제 고진천 -]
“…….”
두 번째 서신을 차례로 돌려본 이들에게는 더 없는 침묵이 감돌았다. 다만 공통적인 모습은 벌게진 얼굴과 심하게 떨리는 손이었다.
분노가 휩쓸고 지나간 지휘막사.
“감히 어찌 제국이라 칭하는 가 이 무도한 놈들!”
마치 눈앞에 있다면 갈가리 찢어죽일 듯한 살기를 뿜어내는 관전 무관들과 놀림감이 되었다는 치욕과 이 어이없는 서신에 분노를 느끼는 맨도널 후작이었다.
“풀 한 포기 남기지 않으리오!”
맨도널 후작의 살기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던 가운데 마지막 세 번째 서신이 눈에 들어왔다.
찌직.
거칠게 봉투를 찢어낸 맨도널 후작은 마지막 서신을 펼쳤다.
[이로써 그대들의 선택은 정해졌다.앞으로 제국 가우리는 통일 로셀린의 존재를 인정치 않으며, 침략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그대들의 피로써 받아 낼 것이다.
인세의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하노라.]
이미 그들의 선택을 예상하고 있었음이 분명 하였다. 아니 기사에 의해 전달되어진 고진천의 서신은 애초에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었고, 오히려 그들의 선전 포고를 비웃기라도 하는 내용만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누가 제국들 앞에서 스스로 제국을 칭하는가?
그 누가 이렇게 오만할 수가 있는 가…….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는 가운데 인세의 지옥이 다시금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고진천의 서신이 전달되어지고 오일이 지났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맨도널 후작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참모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질책 섞인 눈빛에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맨도널 후작이 이들을 향해 화를 내는 이유는 정찰대들의 복귀였다.
원래 짜인 일정이라면 삼일 전부터 하나 둘씩 복귀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삼일 째 저녁이 되도록 어느 부대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주 공격로로 정찰을 갔던 칠백여 병사 중 되돌아 온자는 십여 명. 맨도널 후작은 전쟁을 시작도 하기 전에 꼬이기 시작 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맨도널 후작 각하!”
갑자기 밖에서 떠들썩 한 소리와 함께 전령의 숨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던 정찰대들이 돌아 온 것 인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맨도널 후작은 빠른 걸음으로 지휘 막사를 나섰다.
“야영지 경계병들이 정찰대로 출동했던 병사중 하나를 발견 했습니다!”
“하나?”
사람의 불길함은 현실로 종종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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