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18
강철의 열제 218화
“쇳물을 가져와라!”
“돌을 쌓아!”
수성을 준비하는 병사들의 움직임은 필사적이었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기름은 커다란 솥에서 끓어오르고 있었고, 긴장된 모습으로 목창을 깎아 만드는 병사들의 모습에는 비장함이 서려있었다.
아무리 자신들의 국가를 욕하고 수뇌부를 욕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나라가 아닌가?
자신들의 수도인 파르테안을 사수하기 위한 병사들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적막이 감도는 대전.
북 로셀린의 국왕 카델은 착잡한 표정으로 대전 한 가운데에 놓인 상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노.
붉게 물든 카델 왕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 하고 있었다.
수도에 거주하던 귀족들 중 삼분지 일인 일곱이라는 숫자가 머리통만 달랑 남긴 채 소금에 절여져 네모난 상자에 담겨져 있었다.
“크흐흑!”
분노가 지나침인가?
카델 왕의 입에서는 흐느낌과도 같은 울음이 흘러나왔다. 그를 보는 귀족들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결사항전을 부르짖던 놈들의 최후였단 말이냐!”
카델 왕의 분노를 담은 음성이 적막감이 맴도는 대전 안을 울렸다.
일곱 개의 상자에 담긴 귀족들의 수급은 아침나절에 가우리 군의 진영에서 배달되어진 것이었다.
하나같이 통일전쟁을 주장하던 자였고, 신성제국과 끈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었다.
신성제국의 힘을 끌어오는데 최선을 다했던 자들이고, 나름대로 부유함을 누리던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왕이 결사항전을 준비하는 가운데 도망을 치다가 가우리군에 의하여 전부 사로잡혀 죽음을 당하여 되돌아 온 것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딛고 일어난 카델 왕이 일곱 개의 상자로 다가갔다.
“전하…….”
비록 왕의 정책에는 많은 반대를 하였던 팔시언 공작이었지만 그렇다고 충성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충심 때문에 그토록 왕을 견제해 오던 것이 그였다.
일곱 개의 상자를 향해 분노로 떨리는 다리를 옮기는 카델 왕을 향해 안타까운 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그의 안타까운 음성도 핏기가 빠져나가 기괴하기까지 보이는 머리통들을 향해 가는 카델 왕의 발길을 멈추게 하지 못하였다.
“크윽.”
떨리는 손으로 가장 앞에 놓인 훌리오 후작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머리통을 천천히 들어 올린 카델 왕이 훌리오 후작의 허연 얼굴을 자신의 눈 위까지 올렸다.
공포.
비굴.
수급이 잘린 훌리오 후작의 얼굴에서 읽어 낼 수 있는 표정이었다.
“으아아아!”
카델 왕이 훌리오 후작의 머리통을 미친 자의 입에서나 나올 괴성 터트리며 바닥에 힘껏 집어던졌다.
퍼어억!
단단한 대리석으로 닦인 바닥위에 부딪힌 머리통은 허연 뇌수를 사방으로 뿌리며 데굴데굴 굴러갔다.
후욱 후욱!
화기를 다스리는가?
카델 왕의 입가에서 거친 호흡이 들락날락하였다.
숨을 다스리고 허리를 핀 카델 왕의 얼굴에는 독기가 서렸다.
“보았는가?”
느닷없는 질문 몇몇 귀족이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보이자 카델 왕이 다른 상자로 가서 또 하나의 수급을 들어 올리곤 귀족들의 면전에 들이대었다.
“허억!”
문관 출신 귀족에게는 눈앞의 수급이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혀를 길게 빼어 문 수급이 스쳐지나갔다.
귀족들의 눈앞으로 일일이 수급을 들이대어 보여준 카델 왕이 다시 바닥에 힘껏 집어 던지며 외쳤다.
“이 꼴이 보이느냐 물었다!”
퍼어억!
또 하나의 수급이 부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단단한 두개골조차 바델 왕의 분노를 막지 못하는 듯했다.
“하나같이 죽는 순간에 그려는 꼴이라고는 비굴함과 애원이 섞인 모습들이었다!”
귀족들의 시석이 남은 상자에 담긴 귀족들의 머리를 향했다.
“비굴, 공포, 애원!”
카델 왕의 외침이 대전을 계속해서 진동해 나갔다.
“이것이 우리 통일 로셀린 왕국의 귀족이 죽음 앞에서 보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카델 왕의 말대로 일곱 개의 수급 중 어느 하나도 의연함이나 당당함까지는 몰라도 체념이라는 모습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죽는 그 순간까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매달렸을 것이다.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달아나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 잡혀 죽임을 당하면서 이런 꼴로 돌아오다니!”
귀족들은 카델 왕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수급들을 보며 분노를 느껴가고 있었다.
“저것들을 모조리 개의 먹이로 주고, 저들의 인척들이 남아있다면 개 새끼 하나 놓치지 말고 죽여서 사지를 잘라내어 성벽에 걸도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팔시언 공작의 카델 왕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왕좌로 돌아간 카델 왕이 귀족들을 천천히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버티면 된다!”
카델 왕의 음성에 귀족들이 고개를 들었다.
“이미 북쪽의 영주들이 병력들이 이끌고 내려오고 있다. 그들이 도착하기까지 십일! 단 십일만 버티면 된다!”
귀족들의 입가가 굳게 다물렸다.
“지금까지의 패전은 잊어라 우리는 지난 백여 년간 남 로셀린과의 전쟁에서 다져진 국가니라! 하물며 한번 망했다 일어선 남쪽의 쓰레기들과 같겠는가!”
“아니옵니다!”
젊은 귀족이 호기롭게 나서며 카델 왕의 목소리에 호응해 나갔다. 그러자 카델 왕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그렇다면 저 근본도 모르는 가우리라는 잔악한 미개인들과 같겠는가!”
“같을 수 없사옵니다!”
또 다른 귀족이 나서며 외쳤다.
카델 왕은 자신의 왕좌 옆에 놓인 소드를 높이 빼어들며 귀족들을 향해 결사 항전을 부르짖었다.
“이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이 순간만큼은 젊은 나날 통일의 열망에 말을 달리던 젊은 국왕 카델 이었다.
* * *
“음.”
“카델 왕이 상당히 노했나 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성벽을 비춘 마법 영상을 바라보는 고진천과 알세인이 성벽위에 내걸린 수급과 신체의 일부분들을 보며 말을 나누고 있었다.
“카델 왕이라…….”
진천이 입 꼬리가 올라갔다.
수급을 보낸 것은 그들의 혼란을 가중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이곳을 살아서 빠져 나갈 수 없다는 뜻을 담은 선물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진천은 이번만큼은 실수를 인정해야만 했다.
“실수군. 수급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무슨 말 이십니까?”
흔쾌히 찬성까지 했던 알세인은 진천의 중얼거림에 궁금함을 담은 음성을 꺼내었다.
“공포는 인간을 다루기 쉽기도 하지만…….”
성벽위에 분주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북 로셀린 병사들을 보는 진천이 말끝을 흐렸다가 천천히 이어나갔다.
“그것이 심하면 발악을 하게 만들지.”
“으음.”
알세인은 진천의 말에 약간 생각에 빠졌다가 심각한 표정을 지어갔다.
“도망갈 길이 없으니 더욱 처절하게 저항을 하겠군요.”
“그렇지.”
진천의 대답에 알세인 왕은 걱정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거센 저항은 아군의 피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반가워 할 지휘관은 없을 것이다.
“이미 엎지른 물이니 앞으로의 대응을 좀 달리 해야겠군.”
알세인의 걱정 섞인 표정과는 달리 진천의 표정은 무심하기 까지 했다.
“신경 쓰지 말도록.”
“네?”
알세인이 고개를 들며 되묻자 진천이 막사를 빠져나가며 한마디 남겼다.
“훌륭한 지휘관이라면 이런 실수도 없어야 하겠지만, 이미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잔 생각을 남기지 말아야 하지. 그 상황마저 유리하게 만들 궁리를 하면 되는 거다.”
“음.”
막사를 빠져나가고 남은 알세인은 진천의 말을 곱씹으며 소화하려노력 했다.
하루가 더 지났다.
양측은 이미 서로에 대한 공세가 준비 되었는지 칼 같은 긴장감을 표출하며 대치하고 있었다.
가우리 남 로셀린 연합군 칠만 삼천.
북 로셀린 수성병력 삼만 오천.
공성을 하기에 압도적인 숫자는 아니었다.
다만 수성 측의 병력의 상당수가 징집 병임을 감안한다면 달리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남 로셀린의 사절이 파르테안 성으로 향했다.
잠시 후 남 로셀린의 사절들의 머리가 성에서 투석기로 쏘아 보내져왔다.
이에 분노한 남 로셀린 귀족들과 알세인 왕을 향해 고진천은 투구를 머리에 뒤집어쓰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말이 필요 없는 상황. 쓸데없는 짓을 한 거야.”
독기가 잔뜩 오른 적에게 사절이라니?
이미 대륙법이 존재하지 않는 두 나라의 상황에서 사절을 보내던 모습은 진천의 생각에 쓰잘데기 없는 행위일 뿐이었다.
“사절이 필요한 적이 있고 필요가 없는 적이 있는 법이야.”
진천이 남긴 한마디는 남 로셀린 귀족들에게 북 로셀린은 더 이상의 자비가 필요 없는 적임을 확신시켜줄 뿐이었다.
공격을 앞둔 연합군 지휘막사에서는 고진천이 상석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알세인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에 약 오십 여명의 주요 장수들이 들어서자 꽉 찬 느낌을 주고 있었다. 주변 방어와 더불어 정찰과 정보 수집을 맡은 매의 군단 고윈 대사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미 알려진 바로 북부 영지에서 적의 구원병은 약 팔일 거리까지 다가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음.”
“이는 우리 연합군이 파르테안 성을 함락하는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팔 일 이내에 우리는 저들을 무너뜨려야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구원 병력이 도착 한다면 승패를 떠나 전투가 장기전으로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귀족들은 고윈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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