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33
강철의 열제 233화
제74장 꽃피는 봄이 오면
하이안 왕국의 소식은 빠르게 번져 나갔다.
당연했다.
삼대 제국의 암묵적인 완충지대였던 곳이면서도 공동적인 수탈의 대상이기도 하였고, 그 의미가 퇴색 되었다 하지만, 그 옛날 고대인의 마지막 흔적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설의 귀환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떠돌며 악조 또는 괴조등으로 불리다가 자리를 감추었던 트리칸(삼족오)을 다시 상징으로 삼는 등 그저 단순한 변화라고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거기에 북 로셀린의 수도를 전격 점령을 할 정도로 강대한 군사력이 증명된 가우리를 중심으로 뭉치려는 움직임이 확연히 파악되자, 상대 제국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재빠르게 대응을 위해 군사를 소집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기 해나갔다.
페리스만 공작과 마오 자작의 보고를 들은 신성제국의 샤우 환 밀리오르 황제의 얼굴엔 알 수 없는 희열이 감돌고 있었다.
전쟁의 향기를 맡았기 때문인가?
항상 정체된 대륙에 불만이 많았던 밀리오르 황제였기에 오히려 이번 결과에 기뻐 날 뛰고도 싶었을 것이다.
“한이라…….”
그러나 전혀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트라칸, 한이라 불리던 고대 종족, 느닷없이 나타난 가우리…….
“이들이 말하는 삼족오와 트라칸은 분명 같은 존재……. 그리고 아무리 생각 해 봐도 레간쟈 산맥에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왕국이 존속 될 수 있다는 것은 넌센스지. 슈엥 공작 나머지 조사한 내용 읊어 보게.”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핏빛처럼 붉은 포도주잔을 들고 입술에 가져다 대면서도 밀리오르 황제의 눈은 슈엥 공작의 입술을 향해 있었다. 그가 내뱉는 말 하나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날카로운 눈빛을 번들거리면서…….
“또 조사단에 의하면 분명 레간쟈 산맥의 화전민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넘기던 노예상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노예상인들의 말에 의하면 언젠가부터 레간쟈 산맥에 들어가는 용병단마다 단 한명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때가 약 지금으로부터 십사오년 전 부터였다고 합니다. 이후 드래곤의 출현이 일어나고 부터는 완전히 발길을 끊었습니다. 이는 드워프들의 뒤를 추적하던 사냥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흐음. 역시.”
“거기에 가우리라는 왕국의 존속기간을 의심 할만한 또 다른 이유는 이번 전투에서 나타난 그들의 습성입니다. 재물도 탐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가장 많이 수탈해 간 것은 바로 일반 포로와 농노입니다.”
“흐음. 그 경우야 일반적이지 않는가?”
“그게 좀 많습니다.”
“호오, 얼마나 되기에 그러지?”
“그들의 병력수가 오만이 안 되는데 끌고 간 숫자는 약 사만여명에 달한답니다.”
“허, 병력 수나 노예 수나 마찬가지로군.”
“그렇습니다. 전례에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가우리라는 나라는 일단 인구가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게나 인구가 모자란 나라가 여태까지 근 천여년 가까이 유지해 왔다는 것 자체도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확정을 지을 수 없는 사실은 그들의 복색 등의 문화는 대륙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뭐?”
“대륙어 와는 어순은 비슷할지 몰라도 그 외모든 부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다행이 몇 마디 주어 들었지만 뜻을 확실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가? 그들의 언어가 무엇인지 궁금하군.”
“남 로셀린 병사들에게 접근해서 배워온 단어들을 나열하면, 초까턴 놈, 뽀게쁠여, 대그빡, 아구리 타물라우. 등의 억샌 발음 등이 주입니다. 이 부분은 좀 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주목 할 것은 우리 대륙에는 하나의 뿌리가 있는 언어가 지역별로 약간 차이를 달리하는 것과는 다르게 완전 다른 형태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슈엥 공작의 보고에 밀리오르 황제의 눈살이 천천히 찌푸려졌다.
“정확하게 정리해 보지, 슈엥 공작.”
“정확한 것은 죄송합니다. 어쨌든 이들이 레간쟈 산맥에 터를 잡은 지는 오십년도 안 되었을 것이라는 보고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하늘에서라도 떨어졌다는 것인가? 아니면 호수에 번쩍 하고 나타났다는 말인가.”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 대륙에 없던 형태의 무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신 없어하는 슈엥 공작의 대답에 밀리오르 황제는 결국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됐어. 해상제국과 연방제국 동태를 살피는데 주력하고, 페리스만 공작이라 했나?”
“예.”
“잘 먹이고 키우도록. 쓸 때가 있어 보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허리를 숙이며 뒤로 물러서는 슈엥 공작의 귓가로 따분한 듯하면서도 섬뜩한 밀리오르 황제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이 지긋 지긋한 균형이 무너질 때도 됐지. 이 대륙을 이 붉은 포도주처럼 물들일 수 있는……, 크하하핫!”
* * *
고진천이 이끄는 가우리 병력이 국경을 통과한지 십오일이 지났다. 원정을 떠날 때와는 달리 돌아오는 길은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가운 후작이 고진천을 맞이하러 왔을 때 진천은 자연스럽게 그의 안내를 받았다.
“휘. 성도는 어떻지?”
진천이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고 은근히 질문을 던졌다. 사실 진천이 본 성도는 완전 폐허가 된 남 로셀린 수도와 완전 폐허로 만들어버린 북 로셀린 수도가 전부이지 않은가?
왠지 온전한 것들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진천이었다.
“나름대로 수수하면서 실용적인 면을 잘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만 성벽 부분 등에서 공성전에 취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일단 해자라는 것을 파 놓기는 했지만, 성문 공략에 큰 어려움이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흐음. 지금까지 우리가 싸워온 성과 같은 종류를 말하는 것인가?”
진천의 반문에 휘가람은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원하는 답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그렇습니다. 사실 해자 부분은 소나 돼지에 흙 실은 수레를 메달아 꼬리에 불만 붙여 보내면 알아서 뛰어들어 메우는 건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렇겠군.”
“필요하다면 몇 가지 장치를 이용해서 다른 방향으로 성을 함락시킬 수 있는 몇몇 취약점이 보이기도 합니다.” 둘의 하이안 왕성공략(?)대한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점차 구체화 되어 가자 그들을 안내하던 가운 후작의 얼굴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서 묘하게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본 진천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말한 것을 보강한다면 그만큼 성의 방어력이 올라갈 것 아닌가.”
“아, 예.”
진천의 말에 가운 후작은 얼굴을 관리하듯이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길은 이어졌다.
* * *
가우리의 병력 중 본진에 해당하는 병력은 본국으로 복귀를 계속 하였고, 고진천을 위시한 천여 명의 병력만이 하이안 왕국의 수도로 들어섰다.
미리 동원된 인원들인지 수많은 성도의 백성들이 밖으로 나와 고진천을 비롯한 가우리 무장들을 향해 환호를 하고 있었다. 진천도 그 환대에 나쁘지 않았는지 한쪽 손을 들어 자연스럽게 응대하고 있었다. 모르는 누가 본다면 고진천이 하이안 왕국의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베라 한 전하께서 열제 폐하를 맞이하러 직접 나오고 계십니다.”
“호오.”
진천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일국의 왕이 궁에서 직접 나와 맞이한다는 의미는 자신 스스로를 숙이는 의미였다. 하지만 자신과의 관계는 아직 그렇게 정립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어서 가지.”
진천이 강쇠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이안 왕국으로서는 가우리는 반드시 잡아야 할 상대였다. 어차피 잡아야 할 상대이기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베라 한이 나서는 것일 것이다. 또한 아직 진정되지 않은 국내의 여론을 잡기 위해선 로셀린 전쟁에서 커다란 위용을 보여 주었던 가우리와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 줄 필요성이 있었다.
“뭐, 내 말에 책임을 져야지. 날 믿고 저지른 친구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천의 옆에서 그를 호종하며 가던 가운 후작이 궁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대답은 없었다. 그저 연휘가람 만이 그 의미를 알고 웃음을 머금을 뿐 이었다.
빠아아앙!
기다란 뿔 고동소리가 울리며 길 양옆으로 늘어선 기사단들의 소드가 길게 뽑히며 검의 길을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고진천일행이 들어서기 시작하자,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왔다.
“가우리의 열제 폐하께서 당도 하셨습니다!”
“와아아!”
시민들의 함성이 더욱 커져갔다.
게다가 한쪽에서 마중 나오는 것은 자신들의 왕 아니던가?
귀족들을 잠재운 이후 베라 한 왕이 그들의 재물을 대대적으로 풀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 백성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기대감을 가지게 한 것이다.
아무리 떠들어도 당장에 먹고 살게 해주는 군주가 최고의 군주 아니던가?
거기에 제국에 대한 백성들의 불안감을 제거할 요인으로는 가우리를 잡았다. 그렇기 때문에 베라 한 왕의 지시대로 사람들을 풀어 로셀린 전쟁에 대하여 백성들 사이에 소문을 널리 퍼트리게 하였다. 거기에 덧붙여 가우리와 하이안 왕국과 로셀린 왕국이 손을 잡을지 모른다는 소문을 터트린 것이다.
때로는 과장되기까지 한 소문도 덜었지만 인간의 심리에서는 오히려 그렇게 믿음으로써 마음 한쪽의 불안감을 지우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천이 성도에 도착할 때 백성들의 열렬한 환호는 당연한 것이었다. 환호라기보다는 일종의 바램 일 것이다.
“강쇠야 서라.”
“끼힝!”
진천의 말에 강쇠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멈추었다. 아직 베라 한 왕을 만나려면 백여 미르는 남았는데 먼저 말을 내렸다. 진천이 말에서 내리는 것을 본 베라 한 왕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하여 재빨리 말에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진천이 말에서 내려 큰 걸음으로 걸어가자 그 뒤를 가운 후작과 을지 부루와 우루, 그 뒤를 계웅삼과 반항아 삼인방이 뒤따랐다.
진천이 걸어가자 베라 한 왕도 마주 걸음을 옮겨왔다. 베라 한 왕은 진천을 향해 걸음을 걸으면서도 두근거림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서 공식적으로 백성들에게 우애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한 자신의 의도였기는 하지만 갑자기 말에서 내려 걸음을 옮겨 오는 진천의 행동에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말끔하게 정리된 갑주가 저렇게나 잘 어울리는 사내가 어디에 또 있을까?
‘내가 너의 하늘이 되어주마.’
그날의 그 한마디가 자신의 결심을 앞당기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하늘이 되기에 충분하다 못하여 과분한 결과를 몸소 보여주었다.
멸망한 국가를 되살리는 것도 부족하여 침략자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라는 자신의 말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
두 사람이 마주섰다.
“흐음. 이제 좀 왕의 모습을 갖추었군.”
“제게는 하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천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리면서 베라 한을 평가하자 그는 담담하게 되받았다.
“훗.”
진천이 짧게 웃음을 흘린 후 갑자기 베라 한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두르며 대소했다.
“으하하하!”
“와아아!”
“와아!”
“하이안 왕국 만세! 가우리 만세!”
느닷없는 진천의 행동이었지만 이 친밀한 행동 하나로 백성들의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사실 베라 한이 이렇게 나옴으로써 상국의 예를 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지만 진천이 이렇게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함께 걸음을 옮김으로써 그 의미가 재미있게 변했다.
친구로서의 의미.
베라 한 왕은 진천을 친구로서 맞이한 것이다. 물론 진천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지만 적어도 위신을 세워 줌과 동시에 다른 제국들의 오만한 모습과는 다르다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베라 한 왕의 상기된 얼굴을 슬쩍 바라본 진천은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한마디 내 뱉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했다고 맞먹지는 말도록.”
진천의 말에 베라 한은 정색을 하면서 되받아쳤다.
“어찌 하늘과 맞짱을 뜨겠습니까.”
“크큭.”
“후후후.”
두 나라를 이끄는 남자들은 그렇게 기다란 행렬을 이끌며 왕궁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겨 나갔다.
아울러 화기애애한 연회가 벌어졌다.
“인사 하시오. 가우리의 열제 폐하이시오.”
베라 한 왕의 손을 가볍게 잡고 다가온 그녀는 바로 리안 수였다.
“열제 폐하께 예를 올리옵니다.”
왕비인 리안 수가 고운 자태를 보이며 진천에게 예를 올리자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고진천이라 하오.”
“영광이옵니다.”
진천이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는 베라 한과 리안 수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 아쉬움을 얼굴에 그리고 있을 때 옆에 을지부루가 다가와 농을 걸었다.
“고조 그림이 됩네다.”
“음.”
부루의 너스레를 들었는지 베라 한 왕이 크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거 부루장군께서 금칠을 하시는 구려.”
“이거이 맛난 잔칫상 때문에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야요. 베라 한 전하와 리안 수 왕비께서 일케 앉아 계시는 거의 천상의 선남선녀가 따로 없습네다!”
“호호, 부루 장군님 그렇게 봐주시니 영광입니다.”
리안 수가 입을 가리며 웃음을 머금고 부루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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