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35
강철의 열제 235화
다음날 열제전에는 오랜만에 모인 대소신료들이 저마다 말을 나누며 진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유난히 을지부루와 을비우루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디! 우리 사라가 ‘서방님 미어요~.’ 이러면서 안겨오는데, 조만간 셋째를 봐야가서!”
“야야, 아새끼 아가리 찢어지갔다.”
우루가 옆에서 핀잔을 주자 부루가 이죽이며 받아쳐갔다.
“총각은 조용하라우!”
“총각이라니! 누가 총각이란 말이네!”
“엥!”
“아니 그럼!”
부루의 말에 우루가 당당히 받아치자 대무덕을 비롯 계웅삼과 다른 신료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고윈 역시도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놀란 눈길을 받으며 우루는 실없이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전날의 기억이 우루의 뇌리로 스쳐지나갔다.
“돌아 왔습네다.”
열제궁 옆 숲에 거주하는 하이디아의 집 앞에 당도한 을지우루는 커다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얼마나 빨리 달려왔는지 엄청난 체력을 과시하던 그가 숨을 헐떡일 정도였다. 그의 부름에 문이 조용히 열리며 하이디아가 나섰다.
“건강 하셔서 다행이에요.”
눈부신 미소를 보여주는 그녀는 우루에게는 사랑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이기까지 했다.
“그간 잘 있었디요?”
환하게 마주 웃는 우루에게 하이디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고는 바람을 불러 흐르는 땀을 식혀 주었다.
“우루님을 항상 기다렸답니다.”
쿵!
우루의 심장에 집채만 한 바위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내레 하이디아님을 항상 보고 싶었시요.”
“후훗.”
말을 살짝 더듬는 우루에게 하이디아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 하였다. 항상 변함없는 그녀의 미소에 우루가 용기를 얻었는지 숨을 가다듬더니 똑똑히 말을 이어나갔다.
“내레 밥 먹고 싶습네다.”
“네?”
뜬금없는 밥 타령에 하이디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그녀의 반응에 우루가 당황하며 말을 다시 이었다.
“아침마다 밥 먹고 싶습네다!”
“아침마다 식사를 거르셨어요?”
“…….”
하이디아의 답변에 우루의 속에서 치솟았던 용기가 천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역전의 용사 우루가 아니던가?
“하이디아님이 해주는 아침밥을 내레 먹고 싶다는 말입네다. 아시갔습네까? 아침에 눈뜨면 젤로 먼저 보고 싶다는 말입네다.”
“그게 무슨…….”
하이디아가 이런 은유적 표현을 일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루의 분위기까지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항상 변함이 없어보이던 그녀의 표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우루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내래 15년 이야요. 오로지 하이디아님만을 쳐다봤시요. 이거이 내 이기심인줄은 압네다. 하이디아님은 하이엘프라는 종족이라 해서리 천년을 가까이 산다는 것도 압네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내레 보기만 하지 않을 껍네다. 혼인해 주시라요.”
“우루님…….”
항상 강인하기만 하던 우루가 간절한 마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하이디아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급기야 우루는 무릎을 꿇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자신의 의지를 다시 내뱉었다.
“오로지 전쟁터만 살아온 사람입네다. 칼이 난무하고 피를 뒤집어 써오며 살았습네다. 이거이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겁네다. 당장 전쟁이 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이야요. 그렇디만 이 우루에게도 사랑은 있습네다. 이 맘을 받아 주시라요.”
말을 마친 우루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그동안 리셀로부터 엘프, 그것도 하이엘프라는 종족에 대해 들어왔었기에 항상 가슴앓이를 해왔던 그였다.
하이엘프는 자연이다.
하이엘프는 관조하는 존재이다.
하이엘프의 사랑은 자연이다.
하이엘프의 기나긴 인생에 인간의 생은 티끌이다.
하이엘프는 엘프와는 달리 인간을 좋아는 할 수 있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귀에 딱지가 내려앉도록 들었지만, 우루는 포기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외친 것이다.
“이 우루. 오직 님만을 연모합네다.”
우루의 다짐을 증명하듯 항상 강하기만 하던 그의 한쪽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스윽.
하이디아가 천천히 앉으며 그의 볼을 타고내린 물줄기를 닦아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저 하이엘프 일족의 하이디아 바이퓌미르는…….”
천천히 미소를 지어가는 하이디아의 목소리가 잠시 끊어졌다 이어졌다.
“을지우루님과 아침을 함께 눈을 뜨며 식사를 나누고…….”
우루의 얼굴이 환하게 변해갔다.
“우루님의 생 뿐 아니라 저의 생이 끝나는 그 날까지 님만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
인생에 있어 가장 원했던 순간이 오면 이렇게 되는가?
우루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이디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에게 하이디아가 한마디 붙였다.
“십오 년 전 저를 구해 주셨을 때부터 그대는 나의 님 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루는 그녀를 안아들고 세상이 떠나가도록 함성을 질렀다.
“끼야아아아아아!”
그리고는 그렇게 숲을 질주했다. 그의 심장이 터질 때까지…….
을지우루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열제전에 있던 신료들은 모두 이 놀라운 사실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우루가 하이디아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그게 이렇게 실현이 되리라고까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기럼 어제 숲 속에서 괴성을 질러데던 아새끼레 너이네?”
“말뽄세가 그거이 뭐네!”
부루가 툭 한마디 던짐으로 해서 현실로 돌아온 우루가 버럭 화를 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다가와 축하의 인사를 건넴으로써 우루의 입은 다시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축하합니다!”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이거 잔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모두들의 인사에 우루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멋쩍어 하고 있을때 인사를 하고 돌아서던 계웅삼이 한쪽에 있던 몽류화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야, 류화야 그런데 하이디아님이 십오 년 전부터 나의님이라 하셨다면, 아싸리 그때 고백했었어도 됐다는 얘기 아니냐?”
“그러네요?”
“축하합…….”
“하하…….”
“…….”
웅삼과 류화의 대화소리가 그리 작은 것이 아니었던 탓인지 이어지던 축하의 물결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우루의 웃음을 흘리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웅삼과 삼인방의 두런거리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뒤따르던 부여기율이 자기 딴에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꺼냈다.
“아니 그럼 우루장군님은 십오 년간 멋모르고 끙끙 앓아 가면서 독수공방 한 거네요?”
“그러게.”
“킁, 이거 축하할게 아니라…….”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던 삼두표가 말을 꺼내며 조용해진 뒤를 돌아보면서 천천히 말을 줄였다.
쏘아지는 엄청난 살기.
“완전 허공에 활질이네.”
그러나 살기보다 더 빠르게 쏘아져 나간 웅삼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따끔따끔한 살기가 열제전을 장악하자, 비로소 웅삼과 류화, 그리고 기율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귓가로 두표의 넋빠진듯한 음성이 흘러들어갔다.
“킁. 걸렸슈.”
“…….”
“인자 죽은 목숨이우. 킁.”
“…….
두표의 마지막 한마디가 그들의 가슴에 내리 꽂혔다.
“아새끼들 다 디진기야!”
“참으라우! 참으라우!”
“활 뺐어!”
열제전이 전쟁터로 변했다.
“열제 폐하 납시오!”
시종장의 목소리가 열제전에 울리자 한바탕 일었던 소란이 금세 잠잠해졌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고진천 앞에서 드잡이 질을 할 수 없지 않은가?
“만천의 지존이신 열제 폐하를 뵙습니다!”
“뭐 이리 시끄럽나.”
진천의 뒤로 대무덕과 연휘가람 그리고 리셀이 뒤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진천은 열제전에 일어났던 소란소리를 다 들었는지 한마디 툭 던지며 들어선 것이다.
“그게…….”
“말하도록.”
을지우루가 쭈뼛대다가 진천의 재촉에 전날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쏟아 내었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는 헤실대는 얼굴로 돌아왔었지만 말이다.
“그 말을 하려고 십 오년을 뜸 들였나.”
“…….”
진천의 한마디에 우루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한쪽에 조용히 앉았다. 물론 계웅삼과 일당들을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쨌든 축하한다. 축하하는 의미로 넉넉한 선물을 내리도록 하지.”
“열제 폐하의 은혜가 하늘에 닿습네다.”
진천의 축하한다는 말과 선물을 내린다는 말에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이 또다시 헤실 거리며 말을 받았다.
“음. 오늘 정말 날이 좋지 않은가?”
진천의 말에 대소신료들은 약간 어리둥절해 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약간 구름이 끼어 그리 좋은 날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을지부루가 진천의 안면을 살피더니 경악에 찬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진천의 얼굴을 살피다가 서서히 굳은 얼굴로 말문을 닫았다.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모습은 그들로써도 처음 보다 못해 당황스러운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입가가 귀어 걸려있는 모습이었다.
“무, 무슨 좋은 일이라도 계시온지요.”
고윈 대사자가 말까지 더듬으며 묻자 진천이 손사래를 치면서 큰 웃음을 터트렸다.
“파하하핫! 일은 무슨 일! 그나저나 고윈 대사자 오늘따라 훤 하구만!”
“…….”
무릎까지 내려치며 웃음을 터트리는 진천의 모습을 본 대신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하나였다.
‘분명 무언가가 있다.’
을지부루와 우루는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기 까지 하였다. 다만 대무덕만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아침에 을지가 쪼르르 달려와 양 볼에 홍조를 띠고 무언가를 귀띔을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웅삼은 이내 이전의 사실을 잊어버리고 용감하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지?’
‘글쎄, 잘 모르지요.’
‘킁. 설마 열후님과…….’
옆에 앉은 기율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받았다. 그리고 뒤따라 두표가 머리를 긁적이며 을지 이야기를 꺼내자 류화가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그럴 리가.’
그들의 대화소리가 작다 하지만 진천이 못 들을 리가 없었다. 그들의 대화에 머쓱해진 진천은 을지 이야기까지가 나오자 볼이 약간이나마 발그레 변했다.
질문을 던져놓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고윈이 진천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들의 대화에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리며 끼어들었다.
‘허허, 말이 돼야지. 생각해 보게. 아무리 열후께서 성장을 하셨다 하더라도 그렇지……. 아니지 어차피 빨리 후세를 보셔야 하겠지만, 설마 돌아오자마자 열제 폐하께서 그러셨겠나? 남들이 들으면 웃겠네, 이 사람아.’
“…….”
발그레 홍조를 띠웠던 얼굴은 사라진지 오래고 미간에 깊게 파인 두 줄기 골만이 남았다. 그들의 대화를 옅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하던 부루가 진천의 얼굴을 보더니 딱딱하게 굳었다.
“고윈, 너마저…….”
진천의 묵직하고도 나지막한 음성이 열제전으로 흘러나왔다.
“오늘 조회는 쉬겠다.”
들어올 때와는 달리 잔뜩 굳은 얼굴로 열제전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진천이었고, 자신들의 대화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 채버린 웅삼과 일당들이었다. 여기에 고윈까지 추가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설마가 사람 잡았네.”
그들의 모습을 본 무덕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고, 휘가람이 고윈을 슬쩍 돌아보며 측은한 음성으로 한마디 던졌다.
“고윈 대사자. 저 친구들과 어울릴 때부터 이런 사단이 날 줄 알았다네.”
“…….”
고윈.
그의 가우리에서의 삶 중에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렇게 다섯 명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던 아침은 훈훈한 봄바람을 맞이하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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