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4
강철의 열제 24화
알빈 남작을 화전민 장정들을 수용해 놓은 곳에 집어넣고 온 웅삼이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아 빌어먹을, 놈 목소리도 크네.”
“집어넣었네?”
“예.”
을지 부루가 즐거운 듯이 주절대자 계웅삼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뭐 일단 화전민들에게 귀족나리니까 건들지 말라고 엄포는 놓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건드리기나 할까요?”
“쩝. 아니면 말구.”
“후움.”
알빈 남작은 지금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네 녀석들의 주군이 될 나에게 이게 무슨 짓이더냐! 어서 열어라! 무슨 착오가 있을 것이다!”
“…….”
화전민 장정들의 원망 섞인 눈빛이 알빈 남작의 뒤통수로 날아들었지만 그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알빈 남작에게 입하나 벙끗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잉.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소리 지르기를 포기한 알빈 남작이 안을 둘러보았다. 비교적 깨끗한 곳이었지만 화전민들의 몰골이 엉망이었던 탓에 알빈 남작의 이마는 이내 찌푸려져 버렸다.
“천한 것들.”
한쪽에 자리를 잡으며 거드름을 피우는 알빈 남작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분명 알빈 남작에 의해 가족과 이웃이 죽임을 당하였지만, 어느 누구하나 주먹을 쥐거나 욕을 하는 이가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원망 섞인 눈초리 뿐이었다.
“물 좀.”
“여기 있네.”
한쪽의 사내가 물을 찾자 음식을 받았던 사내가 남은 물병을 넘겨주었다. 받은 물로 목을 축이려는 찰나에 알빈 남작의 거드름 섞인 음성이 흘러들었다.
“물 좀 가져오너라!”
“…….”
알빈 남작의 말에 목을 축이려던 남자는 원한이 섞인 눈으로 노려보았다. 알빈 남작이 그것 하나 모를 위인은 아니다. 결국, 벌게진 얼굴로 욕을 퍼부으며 다가갔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
퍼억!
“어이쿠!”
알빈 남작의 발길질이 원한 섞인 눈초리를 꺾어 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 내부의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자괴감은 신분의 커다란 벽에 도전할 의지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본능적으로 초식동물들이 육식 동물에게 대항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이익!”
“참게 호크!”
그러나 호크의 가슴 속에서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 그러한 본능이 자리 잡지 않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허드슨 호크.
평민이면서도 성이 존재했다. 그의 가문은 몰락한 소국의 귀족 집안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화전민 촌으로 떠밀려왔지만 이들처럼 본능까지 길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죽이겠어.”
“참게나. 아까 병사가 한 말 못 들었나! 알빈 남작을 건드리면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지 않았는가!”
웅삼이 이들에게 한 경고가 더욱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호크의 눈에는 불길이 일었다. 신음을 흘리며 발길질에 초주검이 되어가는 청년과 토벌군에 의해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나가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졌던 것이다.
그의 목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분노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분하지도 않습니까!”
“뭐냐 네놈!”
호크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 알빈 남작의 신경질적인 음성이 다시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호크는 위축된 모습도 없이 오히려 살기를 띠우며 다가가기 시작했다.
“네놈이 감히 남작인 나에게 눈을 부라…… 아악!”
콰당탕!
“돼지새끼.”
“히익! 경비병!”
알빈 남작의 위세는 호크의 주먹질 한 번과 거친 욕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나동그라진 알빈 남작은 문 앞으로 달려가 경비병을 찾았다. 하지만 원하는 경비병의 손길은 오지 않고 있었다.
“죽어서 사죄해라, 이 돼지야.”
“헉!”
주먹을 말아 쥐고 걸어가는 호크의 음성에는 단호함과 스산함이 섞여 있었다.
“응? 시끄러운데?”
“냅둬.”
끄에에엑!
“한잔하자고.”
간간이 비명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병사들은 그것을 마치 음악이라도 되는 듯 킬킬거리며 잔을 주고받았다.
끄아아아아~!
간간히 들려오는 알빈 남작의 비명 소리는 승리의 잔치 속에 묻혀갔다.
전날 잔치가 떠들썩했지만, 아침이 되자 그러한 모습은 온대간대 없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이미 정리된 모습과 출전을 준비하는 병사들로 아침부터 분주 했다.
끼이익.
“호크, 나 왔네. 아침식사…….”
거친 나무문을 열고 들어간 베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알빈 남작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 이런!”
베론은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뭉개진 알빈 남작에게 달려가 숨을 확인했지만 이미 세상과 인연을 끊은 지 오래였다. 싸늘한 알빈 남작의 시체를 놓고 베론은 떨리는 음성을 내뱉었다.
“대체 누가!”
“날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호크의 음성에 베론은 할 말을 잊어버렸다. 이들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던 호크가 오히려 사고를 쳐 버리다니……. 이 일의 파장이 결코 적을 것 같지 않았다.
“알빈이가 죽어?”
“네, 장군.”
아침부터 지휘부 건물에 달려온 병사의 보고에 을지부루가 명령을 내렸다.
“알아서. 고조 전부 끌어 내라우.”
“네.”
병사가 달려나가자 연휘가람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하루 만에 고깃덩어리가 될 줄은 몰랐는데요?”
“흐음.”
“어쩌죠? 좀 더 뽑을 정보도 많았는데.”
“나가보지.”
짧은 대답을 뱉은 고진천의 발길이 밖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끌려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한 공기를 읽고 조용히 쥐죽은 듯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알빈 남작의 시체가 거적때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셧 다와엔!(조용해라 모두!)”
계웅삼의 음성이 커다랗게 울리자 약간의 웅성거림조차 사라지고 모두 단상 쪽을 바라보았다. 항상 그렇듯 진천이 리셀의 반지를 빼어들고 시동어를 외쳤다. 잠깐의 빛이 스쳐가자 진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끌어내라.”
진천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에게 묶인 채 호크가 끌려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불안함을 더더욱 표출시킬 수밖에 없었다.
“왜 죽였나?”
“…….”
퍼억!
“크억.”
진천의 질문에 침묵을 지킨 호크에게는 병사의 발길질이 날아갔다. 그렇게 몇 번의 발길질이 들어간 후 진천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왜 죽였나?”
“크윽……. 그럼 원수를 보고 가만있으란 말입니까!”
입안에 고인 피가 터져 나오며 절규하는 호크의 모습을 보고, 진천이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복수는.”
“…….”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
싸늘한 음성에 호크는 온몸이 조여드는 느낌을 받았다. 잠시 멈추었던 진천의 음성이 이어 나왔다.
“너는 인간인가?”
“무슨!”
“버러지는 복수를 운운하지 못한다. 너 말고 누가 알빈 남작에게 손을 대었는가.”
“무슨 소리입니까! 나 혼자 한 일입니다!”
진천은 턱 끝으로 호크를 가리켰다. 그러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어디론가 끌고 갔다. 끌려가는 호크에게 진천이 비웃듯 말해 주었다.
“귀족 하나의 목숨에 버러지 열 마리다. 자, 나머지 아홉 마리만 자진해서 죽어주면 나머진 노예로 써주지.”
“나만 죽이시오! 나만!”
“부루.”
“네.”
끌려가며 소리를 지르는 호크의 절규에도 진천의 비웃음은 지워지지 않았고, 부루는 예의 대부를 어깨에 둘러맨 채로 호크가 끌려간 곳으로 향했다.
천천히 장정들을 바라보던 진천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끄아아아!
“자, 나머지 아홉 마리 나와라.”
찢어질 듯한 비명이 대지를 흔들었고, 진천은 다른 피를 원하는 말을 내뱉었다.
“없나?”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를 뚫고 확인을 하는 듯한 진천의 음성이 울렸다.
“너희 중 아홉만 더 희생하면 모두의 목숨은 장담한다.”
“…….”
서로 눈치를 보던 남자들 가운데에 장년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전날 밤 호크를 말렸던 남자였다. 담담한 듯한 걸음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나 하나로 이들을 살려줄 수는 없습니까?”
“앞으로 여덟.”
간곡한 듯한 장년인의 음성에 되돌아온 것은 줄어든 숫자였다. 한 명의 병사가 걸어 나와 장년인을 이끌기 시작했다. 반항 없이 끌려가는 장년인을 향해 그의 식구들로 보이는 여자와 청년이 소리를 질렀다.
“여보!”
“아버지~!”
“내 가족을 살려 주시오. 믿겠소!”
장년인의 음성이 울려 퍼지고 뛰어드는 가족을 말리는 병사들의 모습이 들려왔다. 그 가운데 진천의 재촉이 다시 떨어졌다.
“여덟 마리 더 나와라.”
모든 이들이 눈치를 보며 떨고 있을 때, 장년인의 아들은 진천을 붉게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처참한 음성.
끄아아악!
“아버지이!”
“여보오!”
평생을 같이 살아온 그들의 아비와 남편의 목소리를 어찌 모를까. 분노한 청년이 무리에서 뛰어나와 진천에게 욕설을 퍼 부으며 달려 나갔다.
“개자식!”
퍼억!
“헤리!”
하지만 그는 병사의 발길질에 의해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한쪽에 나동그라졌다. 어미의 안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비웃는 듯한 진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일곱.”
뒤쪽으로 실신한 채 끌려간 헤리는 누군가가 자신을 던지듯 엎어 놓는 충격에 눈을 떴다.
“헉!”
나무 둥치에 엎어진 채 있던 헤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부루의 대부였다.
“잡으라우.”
“가쎈!(개새끼!)”
“주디 다물라우. 못 알아 들으니끼니.”
엎어진 채로 병사들이 몸을 붙잡자 더 이상의 욕도 원망도 나올 수 없었다. 검은 천이 눈을 가리자 공포가 엄습해 왔다. 그리고 이승과의 끈을 강제로 끊어버리는 충격이 찾아들었다.
“끄어어어!”
풀썩.
헤리의 절규가 세 번째 희생을 알리며 터져 나왔다. 절규가 끊어지고 마지막 경련을 하듯 몸을 부르르 떨던 헤리의 몸이 나무둥치로 힘없이 내려앉았다.
“치우라우.”
“네, 장군.”
부루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헤리의 몸통을 나무둥치에서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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