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52
강철의 열제 252화
‘이런…….’
소리의 근원지로 잠시 눈을 돌렸던 휘가람은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처음 들었던 잔은 어느새 던져 버리고 술독째로 부루와 함께 술 시합을 벌이는 진천과, 그 옆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장수들의 모습…….
휘가람은 술잔을 입에 가져가며 사절단을 향해 눈길을 살짝 돌렸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사절단들은 서로 여러 가지 표정을 지으며 속삭이고 있었다.
다만 슈엥 공작만이 진천의 행동에 과하지 않게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휘가람은 그의 모습에서 관찰하는 자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신 주량이옵니다.”
“오호!”
슈엥 공작의 말에 진천이 술기운이 약간 오른 얼굴로 다른 단지를 들고 내려섰다.
“어디 슈엥 공작의 주량은 얼마나 되는지 볼까?”
“예?”
술 단지째 들고 다가서는 진천의 행동에 슈엥 공작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황제의 술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잔이었다. 보통은 단지째로 주지 않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술은 잔에 먹는 것.
“여, 영광이옵니다.”
입으로는 영광을 외쳤지만 그의 눈빛에선 영광보다 걱정이 그려졌다. 잔도 아니고 병도 아닌 어른 머리만 한 단지를 받아든 슈엥 공작. 그는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호위 기사들을 애처롭게 바라 본 후 천천히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 * *
화창하다고 할 만한 아침 해가 빛나는 오전, 신성제국의 사신단이 묵는 곳에서는 듣는 이로 하여금 괴로움을 느끼게 할 정도의 괴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욱!”
“아무리 그래도 그걸 다 드시면…….”
“우웨에에엑!”
이제는 누런 신물만이 떨어져 내릴 뿐 더 이상 나올 것도 없건만, 슈엥 공작은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는, 허리를 숙이고 게워내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은 바로 스카라 자작이었다.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커헉! 괘, 괜찮…… 우욱!”
“후우.”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다 이내 허리를 급히 숙이는 슈엥 공작이었다.
이렇게 아침을 기괴한 소음으로 수를 놓았던 슈엥 공작의 처절한 행동이 잦아들은 것은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눈 밑이 퀭한 상태로 침상에 누운 슈엥 공작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젓가락이라는 도구로 식사를 하는 모습은 꾸밈이 없이 자연스러웠다. 이전부터 활용해 오던 방법이라는 의미, 게다가 술맛도 전혀 알 수가 없는 종류들이었다.’
음식을 먹는 방법과 고유의 술 역시 문화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만큼, 하루아침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젓가락과 전날에 마신 술들은 모두가 대륙의 것과는 궤를 달리 하는 것들이었다.
기사들은 술맛을 보며 그 깊이에 놀랐었다. 오랜 기간을 통해 주조법이 발달해 왔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쟁의 진행을 보면, 가우리에는 우리가 모르는 약점이 존재한다. 인구…… 그리고 무엇일까?’
슈엥 공작은 눈가를 찌푸리면서도 의문을 지우지 못한 채 생각 속에서 빠져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후우. 어차피 오늘까지는 공식적인 일정이 없으니, 푹 쉬어 두어야겠군.”
슈엥 공작은 지금까지 지켜본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탐색의 눈길을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전날의 폭음으로 뻗어 버린 누구와는 달리, 고진천은 열제궁과 붙어 있는 호숫가 주변 풀밭에 드러누워 연휘가람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결국 이번 신성제국 사신단의 목적은 우리의 허와 실을 조금 더 확실히 파악하겠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전에 왔다가 쫓겨간 팔로 사제의 경우는 그야말로 주변 이목을 속이기 위한 미끼일 것이고 말입니다.”
“흐음. 뭐, 이번에 온 놈을 보니 눈을 쉴 새 없이 굴리더군.”
진천이 따분한 표정마저 지으며 말을 받자 휘가람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괘씸하군.”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언제든 칠 수 있는 만만한 상대일 테니까요. 오히려 슈엥 공작이라는 자를 보내온 걸로 봐선 과한 경계로 보입니다.”
“…….”
휘가람의 말에 진천의 미간에 살짝 골이 파였지만, 이내 몸을 옆으로 돌려 누었다.
“뭘까.”
“글쎄요.”
나지막한 물음에 이은 답변이었다.
팔로 2세를 보내어 이목을 속이고, 다시 최측근인 슈엥을 비밀리에 보내는 신성제국의 행동은 분명 의문점이 많았다. 기분은 나쁘지만 휘가람의 말대로 분명 신성제국의 입장에서 가우리는 태양 앞의 화톳불과 같으니 말이다.
“짜증나는군.”
“후훗.”
애초에 정쟁과 모략 같은 것은 진천에게 맞지 않았다. 그것을 가장 잘 아는 휘가람이었기에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찌 되었든 전쟁은 날 것이니 차차 준비하면 되고. 뭐, 적당히 숨길 것은 숨겨야지.”
“그렇지요.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걸리는 것?”
휘가람이 걱정스러운 음성을 뱉자, 진천이 상체를 살짝 일으키며 눈을 살짝 치켜떴다. 휘가람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신성제국의 목적이 대륙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일단 다른 두 제국 때문에 그동안 견제를 당해 왔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 균형을 깨 보고자 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 변수일지도 모르는 가우리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한 것이다?”
“명쾌하십니다.”
“……난 부루와 다르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훗.”
휘가람의 눈웃음에 진천은 미간을 찡그렸다.
“크음. 오늘도 연회다.”
“네?”
“어디 오늘도 잘 받아먹는지 봐야겠군.”
“…….”
분노의 화살은 엉뚱한 곳을 향하였다.
* * *
“으으음.”
“슈엥 공작님께서 왜 저러시지?”
갑자기 악몽이라도 꾼 듯이 온몸을 뒤트는 슈엥 공작을 본 기사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발 술은 잔에다가 주십시오!”
“…….”
침대에서 허우적거리던 슈엥 공작의 입에서 나온 비명 섞인 목소리. 기사들은 슈엥 공작이 꾸는 악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식은땀까지 흘리는 그를 보던 기사가 피식 웃으면서 동료에게 농담을 던졌다.
“내 사신단 연회에서 술을 그렇게 주었다는 소리 못 들어봤는데 말이지.”
“뭐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겠지.”
“허억!”
두 기사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몸을 뒤척이던 슈엥 공작이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났다.
“괜찮으십니까, 공작님?”
“헉헉헉, 오늘도 술을 독째로 먹는 꿈을 꾸었어!”
슈엥 공작은 난생 처음으로 예지몽을 꾸었다.
* * *
도착한 지 3일이 지났지만 정식으로 사신단과 관련된 업무는 시작도 못해 본 상황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평소 슈엥 공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스카라 자작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에 대한 연민이 가득 담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괘, 괜찮소.”
……전혀 안 괜찮아 보였다.
두 눈이 퀭한 것이 마치 시체와 같았고 걸음걸이는 살짝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하여 뭐라 하기도 뭣한 것이 가우리의 사람들은 더 마시면 더 마셨지, 덜 마시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특별히 고진천이 술에 원수라도 진 듯이 퍼마시며 단지를 넘겨주었을 뿐이다.
“그래도 많이 느셨습니다.”
“…….”
스카라 자작이 너스레를 떨며 한마디 던졌지만, 전혀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3일 동안 늘어 봐야 얼마나 늘겠냐고 할지는 모르지만, 첫날 한독에서 뻗었던 그가 3일째 되던 날은 두 독까지 마셨던 것이니 일취월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은 연회 계획이 없다고 한 것이 정확하오?”
불안한 눈빛을 보내는 슈엥 공작의 말에 스카라 자작은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걱정 마십시오. 그런 연락 없었습니다.”
스카라 자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슈엥 공작은 안도의 숨을 쉬며 열제전을 향해 나아갔다.
* * *
땀이 번질번질한 얼굴을 을지가 건네준 천으로 닦아 내던 고진천이 슈엥 공작의 사신단 일행을 반겼다.
수련이라도 하고 온 듯 웃통을 그대로 드러낸 채였다.
“왔나.”
“예.”
머리를 조아리는 슈엥 공작의 뒤에 서 있던 스카라 자작과 기사들은 땀에 흠뻑 젖은 진천의 몸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자신들보다도 더 큰 체구는 둘째치더라도 온몸을 휘감은 상처들은 분명 도검에 의한 상처들이었다.
거기에 그 상처들은 하나같이 오랜 시간 동안 쌓여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옷 입으시옵소서.”
“음.”
유니아스와 을지가 옷을 들어 그의 몸에 걸쳐 주고 옷섶을 여며 주자 그제야 진천은 열좌에 엉덩이를 걸쳤다.
“저번 팔로인지 뭔지 하는 자의 사과만이 목적은 아닐 거고.”
외교적인 떠 보기 등이 없는 진천의 직설적인 질문이었지만, 슈엥 공작은 그동안 적응이 되어서인지 침착하게 입을 열어 갔다.
“다시 한 번 일전에 왔던 사신단의 실수에 대하여 사과를 드립니다. 우리 신성제국의 황제이신 샤우 환 밀리오르께서는 가우리의 개국을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하셨사옵니다.”
“고맙군.”
말은 고맙다 하였지만 진천의 행동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스카라 자작 등은 그의 행동에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슈엥 공작의 언질 때문인지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
“다른 제국들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우리 신성제국은 가우리의 존재를 인정하며 앞으로 함께 대륙의 평화를 위해 함께 하였다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였사옵니다.”
“그러려면?”
“…….”
지나칠 정도로 차분한 진천의 행동에 슈엥 공작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허지만 지금까지 신성제국의 영향을 받아 오던 북로셀린을 침공한 일은 유감을 표하셨사옵니다.”
“큭, 그럼 가만있었어야 하는가?”
진천의 한쪽 입 끝이 살짝 올라가며 비꼬는 음성이 새어 나오자, 슈엥 공작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옵니다. 애초에 북로셀린에서 먼저 우리 제국에 알리고 중재를 통하였어야 했는데, 무리하게 선공을 가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이나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다 하셨사옵니다. 어찌 되었든 이 일로 양국이 얼굴을 붉힐 이유는 없사옵니다.”
“음.”
진천은 차분히 이어지는 슈엥 공작의 말에 흥미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가우리의 산성들을 시찰하던 대무덕은 신성제국의 사신이 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마음에 복귀를 하였다. 다행히 3일간은 연회를 열어 주어 크게 신성제국과의 마찰을 만들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신성제국의 사신인 슈엥 공작을 보게 되었다.
‘흐음.’
무장이지만 열제의 측근을 지키던 그로서는 슈엥 공작에 대하여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꾼이다.’
적어도 이 자리에 올 만한 꾼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슈엥 공작의 호위 기사들도 적잖은 위치에 있는 자들로 보이는데, 그들이 진천의 행동이나 말투에 미약하게 몸을 들썩이는 것에 반해, 슈엥 공작은 차분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열제 폐하께서 역정을 내지 마시고 잘하셔야 할 터인데.’
무덕은 약간 걱정되는 듯 진천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눈앞에 마주 선 연휘가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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