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53
강철의 열제 253화
눈이 마주치자 빙긋 미소 짓는 휘가람의 얼굴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게 만들 법도 했지만, 모든 것이 걱정인 무덕에게는 태평스러운 미소로만 보였다.
국가 연합이 필요하긴 했지만 시기적으로 빠른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로셀린 전쟁 때 끌어온 포로들을 가우리 백성으로 교화시키는 작업도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던 상황이고, 과도하게 군사 중심으로 치우친 현 국가 경제도 제대로 균형을 잡아 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비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시 찾은 신성제국 사신의 행동거지가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수많은 10만에 가깝다고 추정되는 대병력이 어디론가 출항하지 않았는가?
가우리가 아무리 승승장구를 해 왔다지만, 내부가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되도록 전쟁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행히 로셀린 전쟁에 대해서는 트집을 잡지 않는군.’
처음의 불안은 이전에 방문했던 팔로 2세의 사신단에 대한 일로 트집을 잡을 것을 걱정했던 무덕이었지만, 그 부분을 자신들이 사과하고 나오는 것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거기에 로셀린 전쟁에 대해서도 아무런 트집을 잡지 않는 모양이니 무덕의 걱정은 한결 덜어졌다.
‘어차피 로셀린 북부지역을 자신들이 병탄했으니 이번 전쟁에 대해서 더 이상 물고 늘어지는 것도 무리겠지.’
무덕의 얼굴이 펴졌다.
“하오나 신성 제국 입장에서는 북로셀린 왕가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일그러졌다.
무덕의 일그러진 표정을 신경 쓸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만큼 이야기가 엉뚱했기 때문이었다. 북로셀린 왕가의 인물들은 모두 죽여 없앴지 않은가?
“북로셀린 왕을 찾았는가 보지?”
진천이 태연히 묻자, 슈엥 공작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타깝게도 북로셀린의 카델 전하는 전란의 후유증으로 승하하셨으나, 다행히 1왕자께서 우리 신성제국에 의탁해 계십니다.”
“…….”
“우리 신성제국은 북로셀린과 맹방 아니었습니까. 하여 로셀린 지역의 수복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귀국에서도 양해를 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대전의 침묵 속에서도 슈엥 공작은 할 말을 다 하였다.
분명 1왕자라 하였다.
이미 죽은 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하는 신성제국.
“크큭.”
진천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휘가람 역시 약간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지었다.
어이가 없어서일까?
“어찌 되었든 신성제국 입장에서는 북로셀린 왕가의 복원을 위해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사실 이전에 북부지역 정벌도 같은 맥락에서 실시되었던 것입니다. 북부지역들의 귀족들이 왕가를 배반했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벌을 한 것이군.”
진천이 슈엥 공작의 설명에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휘가람이 재차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왜 그 사실을 미리 공표하지 않았습니까? 그 일로 슬레지안 해상제국과 아메리 연방제국이 상당히 시끄러웠지 않습니까. 그 일을 공표하고 북로셀린 왕자의 신병만 공개했으면 될 터인데요. 그게 조금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휘가람의 질문은 당연했다.
만약 신성제국 측에서 애초에 그러한 사실을 공개하고 일을 벌였으면 반발은 있었어도 조용히 처리가 가능했을 것이었다.
“어차피 연방제국과 해상제국과는 어차피 대립할 수밖에 없는 관계들입니다. 설령 설명을 한다 했어도 그들이 시비를 걸어올 것은 자명합니다. 그리고…….”
잠시 말끝을 흐렸던 슈엥 공작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신성제국이 다른 제국들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사옵니다.”
“호오.”
진천의 입에서 약간의 감탄사가 흘렀다. 그동안 술독에 힘없이 쓰러지던 나약한 문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노련한 사신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군요.”
휘가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슈엥 공작의 말을 대신 받아 주었다. 어차피 슈엥 공작의 말은 구실이었다.
북로셀린의 왕족들을 모조리 쳐 죽이고도 살아서 도망갔다고 말했던 것이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가우리와 로셀린의 구실이었다면, 이미 죽어 나자빠진 1왕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하는 슈엥 공작의 발언 역시 가우리를 적절히 회유하기 위한 구실인 것이다.
양대 제국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가우리에 이 사실을 밝히는 이유는 은근히 손을 내미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로셀린을 재물로 삼으며 말이다.
“우리가 로셀린 왕가와 맹방인 것은 아는가.”
진천이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묻자, 슈엥 공작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알기에 이렇게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이옵니다.”
무덕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진천의 성정을 생각할 때 뻔히 보이는 수작을 그냥 곱게 봐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으니, 일단 식사나 하고 숙소로 돌아가도록.”
“감사하옵니다.”
무덕은 의외라는 눈으로 진천을 바라보았다. 성격이 폭급한 정도는 아니지만 잔머리 쓰는 인간들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진천이 지금 상황에서 식사까지 하다니.
‘이제야 열제 폐하께서 정치를 알아 가시는 것인가!’
무덕은 세삼 진천을 보며 감격에 젖어들었다.
식사가 나오자 진천은 수저를 들다가 무엇을 찾는지 식탁 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시종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술이 빠졌군. 반주는 해야지.”
“…….”
슈엥 공작의 몸이 굳었다.
“독째로 가져오도록, 슈엥 공작은 화통한 사람이니 말이야.”
“알겠사옵니다.”
시종장의 대답을 들은 무덕과 휘가람은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어찌 되었든 곱게 보낼 진천이 아니었다. 그리고 슈엥 공작은 하얗게 재가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날 술로 암살하려는 게야…….’
세상을 체념한 자의 표정이 바로 이럴 것이다.
* * *
고진천의 침소에는 평소와는 달리 여러 인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무덕을 위시하여 리셀과 연휘가람, 그리고 을지 형제가 진천을 중심으로 앉아 있었다.
시비 대신 을지와 유니아스가 직접 차를 내왔다.
“아까는 잘하셨습니다.”
무덕이 슈엥 공작에게 술만 먹이고 끝낸 것이 다행스럽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말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진천이 갑자기 환두대도를 꺼내어 손질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음.”
무덕의 말에도 진천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환두대도를 손질하는 것 이외에 분노를 표출하지는 않았다.
“결국 신성제국은 애초부터 우리 가우리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휘가람이 침묵을 지키는 진천을 향해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대전에서의 내용을 뒤늦게 들은 부루가 두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고조 슈엥 공작이 하는 말은 그게 아니디 않았습네까?”
부루가 의문을 표하자 우루 역시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길티요. 어쨌든 신성제국 아새끼들이래 연방제국이나 해상제국보단 우위로 친 것 아니겠습네까?”
“…….”
부류와 우루에게서 연달아 나온 질문에 환두대도를 손질하던 진천의 손길이 멈추었다.
진천의 행동이 멈춤과 동시에 느껴지는 눈길에, 반문을 던졌던 을지 형제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침묵을 유지했다. 알아서 기는 것이다.
“크흠. 일견 그렇게 보이지만, 역시 그들의 목표는 로셀린과 하이안을 비롯, 가우리와 말린 왕국까지지 않겠습니까.”
무덕이 의견을 내놓자 을지 형제에게 고정되었던 진천의 시선이 돌려졌다.
스르릉.
말없이 환두대도를 도집에 갈무리한 진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괘씸하지만 헤네시아 신성제국 놈들은 일단 우리가 거추장스럽다는 것이겠지. 만에 하나 일을 벌일 때 다른 두 제국과 손이라도 잡을까 봐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손을 잡는 척하는 거겠지. 이번에 슈엥이라는 늙은 너구리를 보낸 것도 그렇고…….”
“니런 썅!”
진천의 설명에 그제야 이해를 한 부루가 두 눈에 불을 키고 벌떡 일어났다. 부루의 늦은 분노에 진천은 착잡한 눈길을 보내며 분노를 일거에 해소시켰다.
“……그냥 앉지?”
“알갔습네다.”
진천의 명령에 일어섰던 것만큼 빠르게 자리에 앉은 부루였다. 휘가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로셀린 다음은 하이안과 말린이겠지.”
“그렇습니다. 연방제국이나 해상 놈들도 시기만 보는 눈치이니까 말입니다.”
겨우 이룬 동맹이 다시 깨어지는 수순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이야 눈치만을 보기 때문에 연방과 해상이 조용하지만, 가우리를 중심으로 한 연맹의 한 축이 허물어지면 동시에 달려들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재미있군. 지금 이 상황…… 비슷하지 않은가.”
“무엇 말입니까?”
리셀은 진천의 말에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두리번거리는 그의 눈에 평소 차분하던 무덕까지 표정을 굳히는 것이 들어왔다.
“당!”
“썅 간나 새끼들!”
무덕이 안광을 빛내며 일갈하듯 터트린 한 글자에 우루가 분노를 표출했다.
“당 놈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한 짓이 우리에게서 동맹들을 떨어트리는 일이었지. 뭐, 이번엔 주변이 아니라 우리에게 직접 압력이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야.”
이계로 넘어오기 전 가우리가 무너진 이유 중 하나였다. 당은 가우리와의 전쟁에 연패한 후 서두르지 않고 길게 준비했다. 동맹들을 가우리로부터 떨어트려 고립시킨 것이다. 백제가 무너진 것도 같은 맥락.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무덕의 표정이 전에 없이 굳어졌다. 전대 열제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근위장 시절의 한이 되살아나서인가?
“맞아.”
무덕을 향한 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느릿하게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싸워야지.”
진천의 말에 유니아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을지 역시 크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고조, 맡겨만 주시라요. 내래 간나 아새끼들의 심장을 씹어 발기갔시오.”
부루가 형형한 안광을 빛냈다. 그의 말에 진천이 자신의 듬직한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그래야지. 어차피 이 전쟁은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예정된 전쟁이었다.”
“시기가 문제였지만 말입니다.”
휘가람이 되받자 진천이 한쪽 입 끝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덕, 휘.”
“예.”
“명을 받듭니다.”
동시에 터져 나온 복창.
“시간을 벌도록. 그리고 부루와 우루는 모든 병력을 동원할 준비를 한다. 사신단이 나가는 순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충!”
“리셀은 무덕을 도와 전쟁 물자를 최대한 준비하라.”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드는 그들은 이미 임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진천은 서둘러 방을 빠져나가는 그들을 보다 해가 떨어져 가는 하늘에 시선을 두었다.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제82장 피할 수 없는 전쟁, 질 수 없는 전쟁, 해야만 하는 전쟁
7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슈엥 공작과 사신단은 처음 왔던 길을 되돌아 귀국길에 올랐다. 그들이 가져가는 답변은 ‘생각해 보겠다.’라는, 진의를 파악하기 곤란한 대답이었다.
“애초에 이 길은 올 길이 아니었습니다.”
스카라 자작이 슈엥 공작에게 다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불만에 찬 모습이었다.
슈엥 공작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자, 스카라 자작은 재차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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