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82
강철의 열제 282화
“그럼 지금 바로 각 병사 개인이 소지한 물주머니들도 수거하여 관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 허허, 약아빠진 이교도들이로고.”
너털웃음을 흘리는 퍼블릭 후작이었지만, 눈에는 로셀린을 향한 적의와 살기가 가득했다.
* * *
땡볕 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신성제국 병사들의 걸음걸이에는 지친 기색이 확연했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눈에 띠게 느려지거나 하진 않았다. 그 이유는 말 위에서 독려하는 기사들의 달콤한 외침 때문이었다.
“이제 조금만 가면 시원한 강이 기다리고 있다! 로셀린 놈들이 아무리 발악을 하더라도 강까지는 어쩌지 못할 터!”
여기저기서 외치는 기사들의 음성이 병사들의 타는 듯한 갈증을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두두두 두두두.
“강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정찰을 나갔던 기마대가 되돌아오면서 외친 음성은 병사들의 발걸음에 더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어디?”
“정말이래?”
말소리를 재차 확인하려는 병사들의 웅성임으로 대열은 소란스러워졌다. 몇몇 기사들이 그런 소란을 재우려 했지만, 상급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잠시간의 방종을 묵인하였다.
지금은 사기가 중요한 시기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넓고 긴 강줄기가 눈 안에 들어오자, 병사들의 마음속은 이미 강물에서 물을 뒤집어쓰고 환호를 터트리고 있었다.
“강 옆에 진영을 설치한다!”
지휘부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의 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사방에서 기마들이 강의 상류와 하류 쪽에서 되돌아왔다. 안전을 살피기 위한 척후였다.
“강 하류는 이상 없습니다.”
“강 건너에서도 적의 동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강 위를 날아 내려온 마법병단 소속 마법사들도 때맞추어 안전하다는 보고를 했다.
그러자 퍼블릭 후작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휘관들을 이끌고 병영을 지나치며 마치 병사들이 들으라는 듯이 크게 웃으며 말을 꺼내었다.
“허허헛, 그럼 숙영지 조성이 끝나는 대로 돌아가며 병사들이 강에서 몸을 씻을 수 있도록 하시게들.”
“후작님의 용단에 병사들을 대신하여 감사의 예를 올리옵니다.”
“만세!”
“신성제국 만세!”
마치 잘 짜인 한판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병사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리 더위와 갈증에 지친 병사들이라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물에 잠시나마 몸을 담글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딘가?
퍼블릭 후작의 칭송을 유도하는 귀족들이 아니어도 병사들의 입에서는 절로 만세가 쏟아져 나왔다.
숙영지를 건설하는 한편 보급부대에서는 비워진 물통에 물을 채우고 있었고, 식사를 담당하는 병사들은 물을 뜨러간 것인지 담그러 간 것인지 모를 정도로 시원함을 만끽했다.
이 순간만큼은 전쟁과 동떨어진 모습들을 보였다.
* * *
숙영지 상류 쪽 강물 위로 수십 개의 대롱이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에 수풀이 우거진 곳에 다다른 대롱은 조심스럽게 뭍으로 움직여갔다.
“후우.”
뭍으로 몸을 드러낸 것은 대롱을 입에 물고 있는 로셀린 병사였다. 허리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수풀 속으로 이동한 병사는 조용히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두드렸다.
그러자 수풀이 살짝 들썩이며 움직였다. 이내 나타난 것은 십여 명의 병사들이었다.
수풀에 몸을 숨겼던 그들뿐만 아니라, 길게 늘어진 나무 등걸부터 해서 물풀들 사이 등, 몸을 숨길만한 곳에서 나타난 병사들은 양쪽 강가에 이백여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됐나?”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대롱을 입에서 빼낸 병사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지금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현재 적들은 물을 채우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고, 일정 규모의 병력들은 물에 몸을 담그기 까지 하는 것을 보면 지금이 최적기입니다.”
“들었지? 지금 빨리 시작한다. 준비한 것들을 모두 흘려보낸다.”
보고를 해온 병사와는 다른 복장의 병사들, 바로 하이안 왕국군이다.
그들은 현지 지형을 잘 아는 로셀린 병사들을 길잡이로 해서 시너 강의 상류 쪽에 매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성제국의 척후가 이들을 발견 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15만의 병력에 대해 불과 2백여 명의 병사로 뭘 하겠는가?
이러한 규모 자체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들의 장비역시 간단한 단검 류가 전부인 것으로 보아 매복공격이 목적은 아닌 것이다.
백여 명의 병력이 동시에 숨겨놨던 자루를 들고 물에 뭔가를 풀어대기 시작했다. 반대쪽 강에서도 백여 명의 병력이 똑같은 자루에서 뭔가를 물에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몇몇 병사들은 나무 위를 타고 올라가 신성제국 군의 척후가 오는지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 * *
“흐음.”
식사를 마친 퍼블릭 후작은 평소 즐기던 차를 입에 가져가면서도 무언가 불편한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꾸루룩.
“크으음.”
뱃속에서 퍼블릭 후작의 불편함을 대변하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탁.
다시 한 번 뱃속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퍼블릭 후작은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약간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낮의 뜨거운 열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밤인데도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공기는 후끈함을 담고 있었다.
“크흠.”
퍼블릭 후작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소드마스터라는 지고지순한 경지의 퍼블릭 후작. 초인의 반열에 든 자들의 공통점은 뛰어난 오감이다.
그런 뛰어난 오감을 자랑하는 퍼블릭 후작의 코를 자극하는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고 있었다.
“허어, 분명 이 향기는…….”
퍼블릭 후작의 얼굴이 한 번에 팍하고 구겨졌다.
바람에 실려 오는 구수한 향기……, 한마디로 똥냄새였다.
15만의 병력이 하루에 먹는 양도 어마어마한 것인데, 싸대는 양이야 적겠는가?
문제는 그것이 평소보다 과한 것이라는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예민한 후각뿐만 아니라 청각까지 간질이는 소리들이 문제였다.
뿌득, 뿌드득.
“…….”
어둠이 둘러싸인 수풀 속에서 황실 악단이 연주를 하는 듯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파열음들은 퍼블릭 후작에게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도 초인인 자신의 배를 아프게 만들 정도 아니던가?
“경비병, 당장 각 참모진들을…….”
턱.
퍼블릭 후작은 급히 자신의 막사 입구에 있는 경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 밖으로 명령을 꺼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허억!”
푸드드득.
“…….”
창백한 표정으로 진땀을 흘리던 경비병의 입에서 무언가 허탈함이 섞인 비명이 튀어나왔고, 이내 멀리서 들려오던 음향이 가까운 곳에서 울려 퍼졌다.
뿌드드득! 뿌득, 뽀지직!
“어흐흐흑.”
마치 세상이 다 끝난 듯한 표정을 짓는 경비병의 다리와 다리사이에서는 요란한 파열음이 울리고 있었고, 바짓가랑이에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툭 내려와 예의 구수한 향을 풍기었다.
경비병은 후작의 막사 경비인 탓에 죽을 똥 살 똥 최선을 다해 참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후작이 건드림으로써 괄약근에 모든 힘을 집중하던 경비병의 신경을 조금이나마 뒤흔들었던 것이다.
그 병사의 처절함에 퍼블릭 후작은 참담한 표정으로 눈을 감으며 어둠을 보면서 한탄을 내뱉었다.
“주신이시여. 어이하여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지만 시련은 이대로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했다.
푸드드드득.
“커허억. 사, 살았다!”
갈대수풀사이에 자리 잡은 신성제국 병사의 입에서 묘한 쾌감에 떠는 음성이 울렸다.
엉덩이를 까 내리고 앉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내용물들은 그에게 안도의 숨을 몰아쉴 수 있게 만들었다.
“제길, 음식이 상했었나?”
아린 배를 움켜쥐고 계속 쏟아내는 병사의 입에서 식사당번들을 욕하는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입이 아닌 밑 부분에서도 소음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빠지지직!
“비, 빌어먹을. 엉덩이가 소변을 보내 이젠. 이러다 똥꼬 다 헐겠네!”
푸념 아닌 푸념이 병사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주변에서 웃음을 참지 못한 누군가의 폭소가 터졌다.
“어떤 빌어먹을 자식 끄응…… 이야!”
누군 배가 아파서 열심히 힘주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비웃는다면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병사의 화는 뻗칠 대로 뻗쳤다. 버럭 소릴 지른 병사의 화에 웃음을 터트렸던 이도 조금은 미안했는지, 웃음소리를 추스르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하네.”
“젠장, 됐으니 그쪽에 잎사귀 같은 거 있으면 좀 줘봐.”
사과의 말에 한결 누그러진 병사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밑을 닦을 도구를 부탁 하였다.
“여기 있네.”
“고맙, 응? 야 이 새끼야, 칼 말고 잎사귀 달라…….”
반갑게 손을 내밀던 병사의 앞에 내밀어진 것은 차가운 검날이었다.
그리고 다시 화를 내던 병사는 목울대를 비집고 들어온 차가운 감촉에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져 내렸다.
“끄르르륵.”
풀썩.
목을 부여잡고 자신이 쏟아낸 내용물 위로 자빠진 병사의 주변으로 몸을 숙인 불청객들이 모여들었다.
“좋아, 최대한 휘저어 놓은 뒤에 빠져 나간다. 각자의 목표를 다시 한 번 숙지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들은 바로 하이안 왕국 별동대였다.
* * *
하이안 왕국의 기습 부대가 알려진 것은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배탈로 인해 경계병까지 바지를 까 내린 상황에서 하이안 왕국군은 거침없이 밀고 들어와 막사를 향해 불을 던졌고, 신성제국의 병사들은 타오르는 막사를 보며 거의 본능적으로 적의 침입을 알리기 시작했다.
“적이다!”
“악!”
경고를 외치던 병사들은 최우선적으로 제거되었다. 순식간에 곳곳에서 화광이 충천하자, 귀족들과 기사들이 핼쑥해진 얼굴을 하고 나와 병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적은 소수다! 모두 우왕좌왕 하지 말고 차분하게 상대하라!”
본능이란 무섭다.
죽음이 오가는 칼부림 속에서도 병사들은 아직도 아픈 배를 움켜잡기 급급했다.
당장 죽음이 닥쳐오는데도 바지에 대변을 보지 않으려는 듯 엉덩이를 움켜쥔 웃지 못 할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병신들아! 그냥 싸란 말이다! 똥이 무서워서 죽고 싶냐!”
웃지 못 할 촌극들이 벌어졌지만, 기사들의 호통보다 경험 많은 고참 병사들의 단순한 외침이 더 효과가 있었다.
개중에는 이미 바지에 변을 보고는 오히려 붉으락푸르락하나 얼굴로 습격자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며 밀어 붙이는 병사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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