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88
강철의 열제 288화
밤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병력이 이동하는 소리는 요란하기 그지없었고, 그 소동에 영문을 모르는 병사들은 막사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랍니까?”
쉐닌 자작 앞에서 콰이 자작의 부대가 괴멸하게 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한 덕택으로 질 좋은 숙소를 얻어 편하게 쉬고 있던 가리센이 고개를 내밀고 묻자, 한쪽을 지키고 있던 병사가 불퉁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던졌다.
“콰이 자작님이 살아계신다는 연락을 받고 쉐닌 자작님께서 직접 병력을 이끌고 나가셨다네.”
“직접 말입니까?”
“그렇다네.”
“거참, 직접 나갔으니 할 일은 줄었네.”
가리센의 중얼거림을 얼추 들었는지 대화를 받아주던 병사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뭐라고 했나, 자네?”
“됐다, 보초나 서라.”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병사의 물음에 되돌아온 것은 가리센의 퉁명스런 한마디였다.
안 그래도 자신은 이렇게 보초를 서는데, 패잔병 주제에 가리센은 넓은 막사에서 혼자 뒹굴 거리고 있는 모양이 꼴사나웠던 그였다.
열이 뻗칠 대로 뻗친 병사는 살기등등한 기세로 가리센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가리센이 히죽 웃으며 비꼬았다.
“에그머니, 화나셨네. 아이고 무서버라.”
그리곤 고개를 막사 안으로 쏙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이 자식, 죽도록 맞아봐라!”
“이 안으로 들어오면 영원히 쉬게 된다!”
막사 안에서 들려온 비아냥거림에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는지, 주변을 살핀 병사는 막사 문을 거칠게 젖히며 들어섰다.
퍽!
풀썩.
딱 한 번의 격타음과 무언가 자빠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병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에 띠고는 막사를 나섰다. 그러나 옷은 같았지만 옷을 입은 사람이 바뀌어 있었다.
“끌끌, 난 내가 한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거든. 영원히 잘 쉬게나.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막사에서 나타난 병사는 다름 아닌 가리센으로 변장했던 계웅삼이었다.
* * *
선두의 기마행렬과 후미의 보병행렬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기본도 잊은 듯 멀찌감치 말을 몰아가는 쉐닌 자작은 곧 있으면 만날 친우를 생각하며 부푼 기대에 차 있었다.
위독한 상황이라 했지만 숨만 어떻게 붙어 있다면 마법사들과 치료사들을 총동원하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천지 차이 아니던가?
“자작님, 후미의 행렬과 너무나 많이 떨어졌습니다!”
“음, 알았다.”
자신이 너무 서둘렀었다는 것을 느낀 쉐닌 자작은 참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뒤에서 죽어라 달려오던 병사들의 얼굴에 겨우 화색이 돌았다.
“만일을 대비해 척후를 보내겠습니다.”
“척후와 함께 치료사를 딸려 보내라. 위중한 상황이니 빨리 움직여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콰이 자작님은 괜찮으실 겁니다.”
“후훗, 암 그래야지.”
참모의 말에 힘이 나는 듯, 쉐닌 자작은 앞서 달려 나가는 척후와 치료사들을 태운 마차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중간까지 흩어졌던 대열을 정돈하고는 다시 이동을 하는 도중, 전방에서 마차와 기마들의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왔다. 그 뒤를 수십의 발걸음소리가 따라 들려왔다. 분명 무슨 사단이 난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이냐!”
쉐닌 자작이 다급하게 묻자 앞에서 되돌아오던 척후의 기마병 하나가 뒤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적의 추격병들입니다!”
“콰이 자작은 상세가 어떠한가!”
“치료를 시작하는 순간 치료사와 마법사가 활에 맞아 쓰러졌습니다만 콰이 자작님은 무사 하십니다. 다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십니다!”
콰이 자작을 치료 하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무사히 데려오는 것에는 성공했다는 소식에 쉐닌 자작은 그나마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적들에 대한 분노가 드높아졌다.
그의 허리에서 롱소드가 차가운 쇳소리를 울리며 뽑혀져 나왔다.
스르릉.
“전 부대 정렬하라!”
전의에 불타는 쉐닌 자작의 음성이 밤공기를 뒤흔들었다. 그러자 참모가 그의 옆으로 말을 몰아와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작님, 차라리 복귀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적 추격병의 군세가 적지 않습니다. 최소 5천에서 1만은 되어 보이는 것이, 어찌 보면 추격병이 아니라 우리 보급부대를 노리러 오는 병력일 수도 있습니다.”
“으음.”
참모의 짧은 설득에 잠시 고민을 하던 쉐닌 자작은 자신의 지우인 콰이 자작이 누워있는 마차로 시선을 살짝 던지고는 결심한 듯이 뽑았던 롱소드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자 참모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속으로 퇴각한다!”
“퇴각이다!”
병사들에게로 퇴각 명령이 떨어지자 뒤편으로 전달되어지는 목소리가 줄줄이 이어졌다.
“적들의 추격에 대비하여 대열을 철저히 갖추고 이동을 한다. 그리고 마법사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적이 어디까지 추격하고 있는지, 정확한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도록.”
“알겠습니다.”
“가자!”
폭포수처럼 명령을 쏟아낸 쉐닌 자작은 말을 돌려 후방을 향해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모는 뒤에 남아 대열을 정리하며 퇴각을 시작하였다.
무질서한 퇴각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퇴각을 하는 이유는 적들의 규모가 명확치 않고 또 비슷한 숫자라 할지라도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긴 행렬이 점차 속도를 높이며 온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 * *
1만의 병력이 빠져나갔기 때문인지 보급부대는 평소보다도 조용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오래지 않아 깨어지고 말았다.
“쉐닌 자작님 부대의 뒤를 따라 적이 추격해 오고 있다! 방어진을 형성하라!”
“갑자기 이게 뭔 일이야!”
“거기 빨리 움직여!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리 못 들었어!”
진영은 적의 출현에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여기저기 늘어져 있던 병사들을 각자의 위치로 배치시키고, 만일을 대비하여 아군의 후미를 견제해 줄 기마대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무기를 주시오!”
“빌어먹을! 복수할거야!”
급하게 움직이는 소란 속에서 또 다른 소음을 만들어 내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5천여 명의 패잔병들이었다. 도망쳐 온 자들이 무슨 무기가 있겠는가?
5천 중 자기 무기가 있는 자는 겨우 5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의 요구에 참모진 중 하나가 자신의 제량으로 보급품 중의 일부를 열어 무기를 지급하였다. 그리고 그가 판단하기에 가장 위험한 곳으로 그들을 배치하였다.
어차피 같은 신성제국군이라지만 자기 부대의 병사들보다는 정이 덜 가는 것 아니겠는가.
두두두 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말굽소리가 짙은 어둠을 뚫고 대지와 공명하며 커졌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무기를 거머쥔 병사들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 위로 솟구치는 불꽃.
파앙!
솟아올랐던 불꽃이 작은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꽃봉오리를 피어내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방어를 위해 긴장을 하고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거의 하나가 되어 불꽃의 움직임을 따랐다.
그때 한쪽에서 커다란 외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작이다아!”
그와 동시에 수비를 위해 뭉쳐있던 병사들 사이에서 피분수가 솟구쳐 올라 밤하늘의 불꽃과는 다른 기괴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잘 짜인 수비방진은 5천여 명의 배신자들로 인하여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끄어어, 배신이다!”
한 병사가 복부를 파고든 창날을 움켜잡으며 마지막으로 비명과 같은 외침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미 백여 명의 병사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궁수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놀란 귀족 하나가 궁수들을 찾았다. 하지만 그 다음의 명령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였다. 입은 뻐끔 거렸으나 이미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곤란하지.”
귀족의 말을 꿰차고 앉은 계웅삼은 궁수대를 향해 재차 외쳤다.
“전 궁수대는 전방에 화살을 쏴라! 아군이 아닌 적이다!”
신나게 외치자 수천 발의 화살들이 허공으로 쏘아져 올랐다.
“지, 진짜 쏘다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웅삼은 허탈한 음성으로 중얼 거렸다.
“미안하다. 알아서 살아 남거라.”
퍼퍼퍽!
“커헉!”
하늘을 뒤덮고 날아오는 화살비로 인해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기마들이 거꾸러지기 시작했다.
히힝거리는 말의 비명과 함께 그 밑에 깔리며 뼈와 살이 으깨어지는 기마병들의 비명이 어우러지며 순식간에 대열에 동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저게 무슨 일이냐!”
말을 달리던 쉐닌 자작은 아군진지에서 날아온 화살에 대열의 선두가 무너져 내리고, 갑자기 화광이 솟구치는 보급부대 진지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질문을 받아주던 그의 참모는 후방에 있는 상황이었다.
카캉!
“빌어먹을! 웅삼 대장이 우릴 다 죽이려고 작정했어! 이런 건 미리 약속이 돼있지 않은 거잖아!”
“제길, 구라쟁이를 믿은 우리가 바보지!”
“누, 누구냐!”
주변으로 다가오더니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며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나눈 불청객들을 향해 쉐닌 자작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목이 잠시 따끔하다 싶더니 눈앞이 가물거리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는 의문을 제대로 풀지도 못했다.
“이런, 넘어지면 안 되지. 상하면 웅삼 대장에게 우리만 죽어난다고.”
달리던 말에서 정신을 잃은 쉐닌 자작의 말에 옮겨 탄 가우리 검수 중 하나가 품에서 불꽃을 쏘아 올리자, 마차에서 갑자기 사방으로 철질려들이 뿌려져 나갔다.
말들이 뒹구는 동시에 후퇴행렬을 향해 로셀린 군이 짓쳐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신성제국군을 통제할 사람들은 모두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 * *
밥 한 끼를 먹을 시간.
그 짧은 시간동안 쉐닌 자작의 부대는 콰이 자작의 부대 이상으로 피해를 입고 괴멸되어버렸다.
3만의 병력 중 이번에는 절반 가까이가 죽거나 다쳐, 1만 정도의 피해를 입었던 콰이 자작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고 패배를 한 것이다. 그나마 콰이 자작은 칼이라도 휘둘렀지만 쉐닌 자작은 그것도 못해보고 사로잡혀 버렸다.
“빌어먹을, 짐승만도 못한 이교도 놈들아!”
쉐닌 자작은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콰이 자작을 미끼로 쓰기위해 거의 반죽음 상태로 만든 로셀린 측에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바이칼 공작도 결과와는 상관없이 너무한 처사인 것 같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동부의 무신이란 이름이 이런 비열한 짓거릴 해서 쌓은 명성이더냐! 우정을 미끼로 삼는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 카아악 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욕설과 저주는 바이칼 공작에게서 미안한 마음마저 싹 가시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기사로서 할 짓이 아닌 행동을 하였다는 죄책감에 그저 방치만 하고 있을 때였다.
다다다다닥!
누군가의 도움닫기 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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