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92
강철의 열제 292화
제96장 산화(散華)
퍼블릭 후작의 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전군이 언덕을 향해 줄지어 오르기 시작했다. 총공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미 죽은 수가 만 명이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퍼블릭 후작은 총공격을 명령한 것이다.
“이교도의 피를 정화하라!”
퍼블릭 후작의 소드가 허공을 가르자 병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퍼블릭 후작의 뜻은 확고하였다. 만약에 팔라카 요새의 수성능력이 조금만 떨어졌다면 이렇게 밀어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뛰어 났기 때문에 힘으로 밀어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적에게 정비할 시간을 준다면 그 이상의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했고, 얼마간의 피해를 입는 한이 있더라도 수도까지만 간다면 된다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늘어서있는 모습에 압도당한 팔라카 요새의 병사들은 발악적으로 활을 쏘아붙였다. 하지만 아무도 처음부터 전투에 끼어들었던 선두 마법사들의 실드를 뚫지 못하였다.
“오움 살라 움타아…….”
실드를 형성한 마법사들의 뒤에서 낮게 가라앉은 음색으로 주문을 외워가는 마법사들의 모습이 마치 저승사자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길고긴 영창이 멈추자 하늘로 얼음과 불로 만들어진 머리통만한 구들이 앞 다투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
선두의 마법사가 신호를 보내자 일제히 실드가 거두어졌다. 실드가 없어지고 화살들이 마법사들을 향해 쇄도하는 순간, 두 번째 열에서 마법사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슬로우!”
마법사들의 앞에 있는 모든 것이 느려졌다.
마치 화살들에게만 시간이 늦게 주어진 것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날아들었다. 그 뒤로 마지막 열에 있던 얼음과 불의 구를 만들었던 마법사들의 최종 마무리가 시작되었다.
“아이스 볼!”
“파이어 볼!”
얼음의 구들이 먼저 날아들었고, 그 뒤를 따라 불덩이들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는 순간 유유히 다시 펼쳐진 실드의 방패막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쏘아올린 결과를 오만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얼음과 불이 날아들자 팔라카 요새 성벽 위의 병사들은 패닉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재빠르게 자신들의 위치를 찾아 들었지만, 그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것이 보는 이마저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내야 한다!”
마법사들을 향해 트래니스 백작은 피를 토하는 음성으로 부탁을 했다. 그 순간, 날아드는 얼음의 구를 향해 대응 마법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프로택트 프롬 아이스!”
얼음의 기운을 특화해서 막아내는 마법이 먼저 발현되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또 다른 장벽을 만들어내었다.
“프로택트 프롬 파이어!”
푸르고 붉은 장벽이 세워지는 순간 세상의 이치를 어긋나게 만드는 거대한 힘의 충돌이 일어났다.
쿠콰콰콰콰쾅!
“으아악!”
“위, 위험해!”
고막을 찢어발기는 소리가 지나간 후, 눈을 뜬 트래니스 백작은 망연자실했다. 뿌연 수증기가 가득한 가운데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그나마 얼마 되지 않던 마법사들이 흔적도 없이 몰살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들이 몸을 던져가며 방어를 하였기에 일부만이 무너진 채로 끝이 날 수 있었을 것이리라.
“지휘를 부탁합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트래니스 백작은 놀라 소리를 쳤다.
“걸무랑 장군!”
걸무랑의 양 허리와 등, 그리고 허리 뒤쪽과 손에는 다섯 자루의 환두대도가 빼곡히 장비되어있었다.
트래니스 백작은 서둘러 그를 붙잡았다. 자신은 여기서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는 다르다. 이곳에서 죽을 사람이 아니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 트래니스 백작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걸무랑은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그의 손을 떼어 놓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 가우리에게 있어 수성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무랑은 무너진 성벽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마법에 의하여 철벽과도 같았던 팔라카 요새의 한쪽이 드디어 무너져 내렸다. 돌들이 서로 맞물리게 쌓여진 가우리의 성이라면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축성된 성은 마법의 힘을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무너졌다!”
“크하하!”
“들어가자!”
전쟁이라는 광기에 젖은 병사들이 무너진 성벽을 타고 넘어가기 시작했다.
“막아라!”
그러나 신성제국군이 들어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로셀린 병사들이 아니었다. 어차피 지면 죽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악착같이 막아서는 로셀린 병사들과 들어서는 신성제국 병사들.
그러나 막는 손보다도 들어가는 발이 더 많았다.
“크아악!”
신성제국군이 찔러댄 창들이 로셀린 병사의 복부를 비집고 들어왔다. 눈에 비추어진 신성제국 병사들의 모습.
억울했다.
무기를 휘둘러보았지만 힘도 들어가지 않았고, 무엇보다 두 개의 창이 또다시 몸에 박혀들었다.
“고블린 만도 모, 못한 새…… 새끼들.”
욕설이나마 한마디 해주고 싶어 있는 힘을 짜내었다. 그러자 발끈한 신성제국 병사가 숨통을 끊으려는 듯이 철퇴를 휘둘러온다.
서걱!
한줄기 빛이 로셀린 병사의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쿨럭, 누, 누가…….”
날아드는 철퇴를 잘라낸 도는 이어 로셀린 병사의 배에 박혀있는 창대들을 모조리 잘라내었다. 그리고 그 무기의 주인들마저 순식간에 도륙해냈다.
“가, 가우리.”
비늘들로 만들어진 갑주를 입은 사내들이 눈 안에 들어왔다.
스르르 무너져 내리며 힘겹게 말을 꺼내는 로셀린 병사를 잡은 걸무랑은 그를 바닥에 천천히 누이며 말했다.
“이젠 편히 쉬어라.”
“흐, 흐흐. 고맙…….”
무엇이 그리 좋은지 로셀린 병사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후웁.”
미소를 지으며 떠나간 로셀린 병사의 눈을 감겨준 걸무랑은 숨을 고르며 일어섰다.
그의 앞에는 함께 파견되어온 두 명의 동료들이 신성제국의 병사들을 도로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압도적인 가우리 무장들의 무위에 신성제국 병사들은 수숫대처럼 배이며 이리저리 쓰러져 나갔다.
결국 무너진 성벽 밖으로 도로 밀려나간 신성제국 병사들은 질린 눈으로 세 명의 가우리 무장들을 바라보았다.
“잠깐 사이에…….”
어이가 없는 듯 신성제국 병사 하나가 중얼 거렸다. 잠깐 사이에 세 명의 칼날 아래에 서른 명이 죽었다.
“대 가우리의 무장, 대형 걸무랑이다.”
“대 가우리의 무장, 발위사자 양덕이다.”
“대 가우리의 무장, 발위사자 이기다!”
단 세 명이었지만, 마치 철벽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압도적인 위압감에 신성제국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덤벼라. 전쟁이 무엇인지 알려주마.”
걸무랑의 입에서 스산함이 풍기는 음성이 흘러 나왔다.
“공격해!”
뒤쪽에서 기사의 호통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전투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수성도 시작 되었다.
성벽의 한쪽이 무너진 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투는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말을 몰아 올라온 뒤 전황을 살피던 퍼블릭 후작은 이상한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허어, 저게 지금 뭐하는 짓들인가?”
그가 바라본 곳은 바로 성벽이 무너진 부분이었다. 그런데 무너진 곳으로 몰려 들어가면 될 것을 병사들이 미련하게 그 주변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고 갈고리를 던져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병사들이 새까맣게 모여 있을 뿐 도통 들어갈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적의 저항이 거센 모양입니다.”
“허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많은 인원들이 저곳을 뚫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퍼블릭 후작의 타박에 대답을 하였던 귀족이 다시 나서며 군례를 올렸다.
“제가 수하 기사들을 데리고 가서 정리하겠습니다.”
“하하. 파우 남작, 그럼 실력을 보여 보게.”
“믿어주십시오. 가자!”
파우 남작은 퍼블릭 후작에게 다시 군례를 올리고는 자신이 이끌고 온 기사들 십여 명을 이끌고 무너진 성벽으로 달려 나갔다.
“…….”
퍼블릭 후작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해괴하도다.”
처음 기사들을 이끌고 나간 파우 남작이 소식이 없자, 루엥 남작이 또 자신의 기사들 이십 여명을 이끌고 달려 나갔다. 그럼에도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이다.
이젠 성벽도 정리가 거의 다 되어 로셀린 병사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신성제국의 깃발만 펄럭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성벽이 무너진 곳에서는 아직도 병사들의 아우성소리가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직접 가보겠다.”
이제 누굴 보내더라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직접 호위 기사들을 대동하고 문제의 현장으로 다가갔다.
“히익! 괴물이야!”
“…….”
퍼블릭 후작은 자신의 앞을 지나 도망치는 신성제국 병사들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괴물이기에 총사령관도 안중에 없단 말인가?
후작과 호위기사들은 병사들이 잔뜩 모인 곳을 헤치며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 * *
“으야아아!”
피칠을 한 신성기사들은 방패마저 집어 던지고는 롱소드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후웁!”
걸무랑의 신형이 살짝 아래로 꺼졌다 싶더니 그의 환두대도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써걱!
“끄아악!”
가장 앞에 있던 신성기사의 무기를 든 팔이 허공에 떴다. 그리고 걸무랑이 솟구쳐 오른 환두대도를 앞으로 한발 디디며 그어 내리자, 뒤따라 달려오던 신성기사의 왼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까지 붉은 줄이 그어졌다. 그리고 뿜어지는 핏줄기들.
“훅훅, 다음은 누구냐?”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걸무랑. 그 옆에는 양덕과 이기가 붉게 충혈된 눈을 하고 무기를 지팡이 삼아 서 있었다,
이기의 한쪽 팔은 어디 갔는지 안 보였고, 양덕의 등과 허벅지에는 서너 대의 화살이 매달려 있었다. 물론 걸무랑 역시 두어 대의 화살은 물론이고, 상체를 보호해 주던 찰갑이 걸레처럼 변해 뜯겨나간 지 오래였다.
스윽.
걸무랑과 일행들이 발걸음을 전진시키자 얼어붙어있던 신성제국 병사들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개중에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자빠지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때 행렬이 갈라지며 퍼블릭 후작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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