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93
강철의 열제 293화
“허어, 이런.”
퍼블릭 후작은 눈앞에 벌어진 일들에 놀라 체통도 잊어버리고 입을 벌렸다.
무너졌던 성벽은 신성제국 병사들의 시체로 도로 매워졌다 할 정도였고, 바닥에는 아까 보내었던 파우 남작과 루엥 남작을 비롯한 기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죽어 나자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뿐만 아니라 적어도 오십 여명에 가까운 기사들이 죽어 있는 것이었다.
일반 병사까지 합치면 못해도 삼백은 넘는 인원들이 죽어있는 것이다.
“설마, 저 세 명이 이렇게 만든 것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퍼블릭 후작의 앞에 또 다른 희생자가 달려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호위 기사였는데 죽은 기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것이다.
선두에 서서 피칠을 하고 있는 사내가 달려 나간 기사의 소드를 자신의 도로 올려 치더니, 이어서 발로 복부를 걷어찼다.
그리고는 새우등처럼 휘어진 기사의 뒷덜미를 향해 올려쳤던 도를 거꾸로 뒤집어 그대로 내려찍었다.
푸욱!
“크아악!”
단 세 합이었다.
“크리스 경!”
동료의 죽음을 목도한 기사가 뛰어 나가려는 것을 퍼블릭 후작이 제지하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에서 내려섰다.
“후작님, 설마…….”
터브스 백작은 후작의 행동을 보고 불안한 마음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내려선 퍼블릭 후작이 자신의 애검을 뽑아들고 선 것이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라…….”
천천히 걸어 나가며 중얼거리는 그의 음성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주변의 병사들이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마의 종자들이로고…….”
느릿하게 말을 내뱉는 후작의 행동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천천히 자신의 애검을 수직으로 들어 올린 퍼블릭 후작은 조용히 신성기사의 성구를 읊어나갔다.
“이 땅에서 마족을 몰아내시어 인간에게 광명의 삶을 주신 주신이시여…….”
그러면서 천천히 가우리 무장들의 주변을 돌기 시작하는 퍼블릭 후작.
“그 거룩함을 이어받은 위대한 신인의 후예로써 첫째로 마족척살의 책임과…….”
모두가 숨을 죽이는 가운데 긴장이 고조되어간다.
“둘째로 모든 악의 정화의 의무를 다하며 셋째로는 이 땅의 모든 존재들에게 주신의 뜻을 전하여 종국에…….”
그의 걸음이 멈추었다.
“주신의 곁으로 되돌아가 그 칼이 되어 영원불멸하리라.”
“으야아!”
멈추어선 그를 향한 공격은 이기와 양덕이 먼저였다. 좌우로 나뉘어 각자의 환두대도로 위와 아래를 함께 쓸어갔다.
“타합!”
퍼블릭 후작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대륙의 십인을 의미하는 찬란한 오러블레이드가 뽑혀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도달하는 이기와 양덕의 환두대도들을 여유롭게 튕겨냈다.
따당!
“허어, 이런!”
세인트 퍼블릭을 의미하는 백광의 오러블레이드.
그 절대의 상징이 두 명의 무기를 잘라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충격은 줄 수 있었는지 튕겨나간 이기와 양덕의 입가에서는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기! 양덕!”
“쿨럭, 걱정 마십시오!”
“크윽, 저 늙은이 꽤 거물인 것 같은데요.”
그들의 행동에 퍼블릭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나를 일컬어 세인트 퍼블릭이라 부른다네, 마족 친구들.”
퍼블릭의 말에 이기와 양덕이 다시 달려들며 외쳤다.
“위험!”
“그럼 네놈만 죽이면 이 전쟁 편해 지겠구나아!”
“어리석은 것들.”
걸무랑의 위험경고에도 불구하고 이기와 양덕은 있는 힘을 짜내어 다시 뛰어들었다. 그러나 퍼블릭의 무위는 강했다.
둘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왼쪽으로 달려드는 양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양덕의 환두대도가 끌어당겨지며 퍼블릭 후작을 노렸으나 내려친 것은 허공뿐이었다.
푸학!
“양덕!”
양덕의 허리가 양단되며 피분수가 튀었다.
이기는 양덕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환두대도를 들고 뛰어오르며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렸다. 그리고 퍼블릭은 크게 반원을 그리듯이 아래에서 내려오는 이기를 마주쳐갔다.
“이기, 피해!”
걸무랑의 외침도 이기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환두대도가 잘려 나감과 동시에 심장부분이 퍼블릭의 검격에 뜯겨져 날아갔다.
“비, 빌어먹…….”
말도 다 맺지 못하고 이기의 몸은 엎어졌다.
“이제 한 마리만 남은 것인가?”
퍼블릭 후작의 음성이 걸무랑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후우우.”
숨을 고르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가슴은 분노로 뜨겁게. 머리는 이성으로 차갑게.”
자신의 환두대도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걸무랑이 중얼거린 내용이었다.
“허허, 그거 좋은 말이로고.”
퍼블릭 후작은 걸무랑의 정면에 마주서며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다시 소개하지. 대 가우리 제국의 대형의 직책에 있고, 지금은 팔라카 요새의 수성 책임자로 파견 되어온 걸무랑이라 한다.”
“헤네시아 신성제국 신성기사단장이며 후작의 지위에 있는 세인트 퍼블릭이라네. 지금은 로셀린 원정군 총사령관이지.”
서로간의 인사가 끝난 상황.
걸무랑은 환두대도를 오른손에 쥐고 앞으로 내밀었고, 나머지 왼손은 옆으로 뻗었다.
“나 걸무랑, 이 전장에서 죽는다면 세 발 달린 까마귀로 다시 태어나 영원히 가우리에 남으리라.”
그 말을 끝으로 걸무랑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쾌속으로 다가오는 걸무랑의 환두대도를 향해 퍼블릭 후작의 애검이 떨어져 내렸다. 부딪히려는 순간 걸무랑의 반대편 손이 펴지며 후작의 검을 세로로 받아내는 것이었다.
“허엇!”
손바닥부터 해서 세로로 쪼개져 가는 걸무랑의 팔. 그러나 그의 반대쪽 손에 들린 환두대도는 퍼블릭 후작의 목을 노리고 한줄기 빛살이 되어 날아들었다.
퍼블릭 후작의 방심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끝이다, 퍼블릭 후작!”
걸무랑의 외침에 퍼블릭은 검의 궤도를 바꾸려 했지만, 걸무랑의 왼쪽 팔이 검집이라도 된 듯이 그의 검을 붙잡고 있었다.
써걱!
차앙!
피륙이 갈리는 소리와 이어 울려 퍼진 쇳소리.
허공으로 머리가 날아올랐다.
붉은 피를 하늘에 수놓으며 머리는 천천히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톡, 데구르르.
머리의 주인은 웃고 있었다.
“후작님, 괜찮으십니까!”
“후작님을 모셔라!”
둘의 승부에 끼어든 호위기사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퍼블릭을 부축하고 소란스럽게 사라졌다. 그들의 모습을 머리만 남은 걸무랑이 비웃어주고 있었다.
* * *
“헛! 식량창고에 불을 놓으려 한다!”
팔라카 요새 안을 뒤지고 다니던 신성제국 병사 하나가 식량창고에 도착하고는 놀라 동료들을 불렀다.
“네놈들에게 주기는 아깝지.”
트래니스 백작은 비릿하게 웃으며 불을 던졌다. 횃불에서 번진 불은 처음에는 천천히 옮겨 붙더니 급기야 커다랗게 번져갔다.
“저 미친놈!”
병사들의 뒤를 따라온 기사들은 트래니스 백작을 제압하고는 불을 끄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마침 마법사 하나가 급히 달려와 식량창고의 불을 끌 수 있어 손실은 최소로 그쳤다.
퍽!
“크윽!”
기사의 발길질에 트래니스 백작은 한쪽으로 나뒹굴었다.
“빌어먹을, 하마터면 귀한 식량 다 날아갈 뻔 했네. 잘 감시해. 팔라카 요새 책임자니까.”
“알겠습니다!”
콰앙!
병사는 기사의 말에 커다랗게 대답하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낄낄낄낄낄!”
감옥 안에서는 트래니스 백작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밖을 지키는 병사가 슬쩍 들여다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중얼 거렸다.
“미쳤군.”
한마디로 트래니스 백작의 행동을 일축해버린 병사는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히죽거렸다.
* * *
전투가 끝이 났지만 퍼블릭 후작은 여전히 누워 있었다.
‘비겁한 놈!’
머리를 울리는 걸무랑의 외침.
“허억!”
퍼블릭 후작은 튕기듯이 일어섰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그의 모습은 평소의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시옵니까?”
“허억. 그, 그자는!”
퍼블릭 후작의 질문이 누굴 뜻하는지 짐작한 호위 기사는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이미 죽었습니다.”
“그랬던가…….”
눈을 감는 퍼블릭 후작.
이날의 대결은 아마 평생을 두고 오명으로 남을 것이다.
“여기 성의 책임자인 트래니스 백작을 사로잡아 가두었습니다. 다행이 트래니스 백작이 식량창고에 불을 놓는 것을 초기에 진압하여 약간을 제외한 모든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은 제대로 먹을 수 있겠다고 병사들이 다들 좋아하고 있습니다.”
“나가있게.”
“알겠습니다.”
퍼블릭의 귓가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쉬고 싶은 하루였다.
* * *
그날 저녁은 로셀린 병사들의 피 위에서 파티가 벌어졌다.
신성제국 병사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트래니스 백작은 무엇이 좋은지 계속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쾅!
감옥 문이 거칠게 열리며 터브스 백작이 벌게진 얼굴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한쪽에서 실실 웃고 있는 트래비스 백작을 발로 걷어찼다.
“개자식!”
퍼억!
콰당탕.
“낄낄낄낄낄!”
구석에 처박혔어도 뭐가 좋은지 웃음을 터트리는 트래니스 백작.
“음식에 무슨 짓을 한 거냐!”
“푸하하핫! 네놈들에게 특제 조미료를 넣어 주었지!”
조금은 의심했어야 했었다.
자신의 손으로 식량을 태우다 걸렸기 때문에, 설마 식량에 독을 썼으리라고는 예상도 못했던 것이다. 일차로 음식을 받아간 병사들이 오래지 않아 몸을 떨다가 숨을 거둔 것이다.
“후후훗, 하나라도 더 데려가면 남은 이들이 막기가 조금이라도 더 쉽지 않겠나?”
구석에서 웃음을 터트리던 트래니스 백작은 무엇인가를 입에 털어 넣었다.
“헛!”
“큭, 쓰군.”
아무도 제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트래니스 백작은 혼자의 힘으로 승리에 도취된 신성제국 병사 이천 여명을 추가로 그들이 좋아하는 주신의 품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그도 걸무랑이 기다리는 곳으로 떠나갔다.
팔라카 요새전투 종전.
걸무랑, 이기, 양덕 전사. 트래니스 백작 전사.
로셀린 군 총 11,520명 중 전사 8,764명, 부상 1,752명, 포로 920명. 84명 탈출.
신성제국군.
총 14만 8,230명 중 사망 18,520명, 부상 22,022명.
첫날 전투에서 성을 점령하는 수훈을 보였지만, 그 이상으로 피해가 큰 전투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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