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94
강철의 열제 294화
제97장 세치 혀로 명예를 버리고, 세치 혀로 미래를 벌다
팔라카 요새의 비보는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전원 옥쇄 한다면 신성제국군의 전술이라든지 지휘관 성향 등에 대한 자료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일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탈출 하도록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있었다.
물론 마법사도 함께 팀을 이루어 영상자료도 모아온다. 이렇게 탈출한 이들이 모아온 자료는 신성제국과의 전쟁에 있어 커다란 도움이 된다.
분명 팔라카 요새전투는 훌륭히 수행했다.
하지만 너무 빨리 뚫려버린 것이 문제였다.
아니 그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빨리 뚫으려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팔라카 요새 수비병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충분한 준비를 마칠 때까지 시간을 끌어주지 못한 하이안 왕국과 말린 왕국에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 *
약간 핼쑥해진 모습이었지만, 특유의 여유가 묻어나오는 퍼블릭 후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퍼블릭 후작의 뇌리에는 가우리라는 나라가 계속 맴돌고 있었다.
“퍼블릭 후작님, 이제 하루만 더 가면 수도로 가기위한 최대의 관문인 파루스 성이 나타납니다.”
“성을 지키는 자는 누구인가?”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퍼블릭 후작의 모습을 터브스 백작은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특이하게도 파루스 성을 맡은 이는 가우리의 무장입니다. 거기에 이자는 좀 골치가 아픈 자입니다만…….”
“누군가?”
“철벽의 하일론이라 불리는 자입니다.”
터브스 백작의 말을 들은 퍼블릭 후작은 이렇다 할 말은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가우리라…….’
팔라카 요새에서 걸무랑과의 대결이후 점점 가우리라는 이름에 대하여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팔루카 요새를 점령한 다음에 보니 만들다만 수성 도구 등이 각지에 널려 있었다.
거기에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짚으로 된 덩어리들도 만들다 만 것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공격 시점을 늦추었거나, 첫 공격의 피해가 큰 것을 두려워하여 병력을 뺐었다면, 제국군의 피해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적어도 만만히 볼 상대들이 아닌 것이다. 거기에 이번 공략 대상인 파루스 성을 지키는 철벽의 하일론 이란 이름은 자신도 들어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특하다 웃어 넘겼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당시의 전투는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는 북로셀린이 아닌 신성제국이네.”
“그렇습니다.”
“그럼 나가보게.”
퍼블릭 후작은 참모들을 모두 내보내고,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번 전쟁은 여러모로 실이 많은 전쟁이었다. 참모들에게 한 말은 어쩌면 퍼블릭 후작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몰랐다.
* * *
“정찰대가 되돌아옵니다!”
정찰대가 온다는 소식에 하일론은 식사를 하다말고 뛰어나갔다. 성문이 열리고 정찰대가 들어섰다.
정찰대를 이끌고 나갔던 기사는 미리 나와 있는 하일론을 보고는 말에서 내려서서 군례를 올렸다.
“고생했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진군속도가 빠릅니다. 팔라카 요새가 너무 빨리 무너진 탓에 예상했던 것보다 3, 4일은 일찍 들이 닥칠 것 같습니다. 당장 내일이면 적들이 눈앞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 됩니다.”
하일론은 그 외에도 궁금한 것들을 계속 물었다. 그렇게 한참을 들들 볶아낸 후에서야 기사를 들여보냈다.
“후우.”
마법 수정구를 통해 전송되어진 팔라카 요새 전투의 영상과 분석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걱정이 많았다.
분명 팔라카 요새의 대응은 괜찮았다. 하지만 결국 마법 병단의 힘 하나로 무너져 내리지 않았는가!
그래도 하일론은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열제인 고진천이 직접 자신에게 믿고 맡긴다 하였다. 버티면 반드시 와서 구원한다고 약속을 하였다.
또 다른 점은 팔라카 요새는 준비를 충분히 못했던 상황에서 적을 맞이했지만, 하일론은 달랐다. 이미 파루스 성의 개보수를 비롯하여 모든 준비를 다 해놓았다고 자신했다.
성벽 위에 오른 하일론은 자신의 애병인 부를 어깨에 들쳐 메고 섰다. 스스로를 다짐시키는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 * *
다음날 너른 벌판을 채우며 들어서는 신성제국의 군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실제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인지 하일론은 마법사를 불러다 옆에 끼고는 적들의 배치 상황 등을 세세하게 캐물었다.
“역시 이번엔 공성병기까지 동원 하는군.”
멀리서 투석기 차량이 움직여 오고 있었다.
전 팔라카 요새에서야 언덕위에 쏘아 올려봤자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파루스 성은 약간 솟은 둔덕 정도밖에 안 되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그나마 뒤에 절벽을 끼고 있어 후방이 안전한 것이 다행이었다.
병력이 전개되고 있는 적진을 지켜보던 하일론은 피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십니까?”
하일론의 의미모를 웃음에 궁금해진 폴 남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니, 하도 많아서.”
“그게 웃길 일이랍니까?”
“대충 던지고 쏴도 맞을 거 같거든. 그래서 웃는 거네.”
“…….”
“프흐흐흐.”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판단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폴 남작이었다.
뿌우!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뿔 고동 소리가 신성제국 진영에서 울려 퍼져 나왔다. 성 밑에서 이것저것 지시하던 하일론은 급하게 망루로 달려 올라왔다.
“드디어 오는군.”
대열을 갖추고 질서 정연하게 다가오는 모습은 적이지만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팔라카 요새의 병사들이 느꼈을 기분을 생각하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척! 척! 척! 척!
일정한 리듬을 타고 걸음을 옮겨오는 신성제국군의 모습을 보는 병사들의 안색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하일론은 갑자기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아니, 어디 가십니까!”
하일론의 뜬금없는 행동에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아직도 그가 움직이면 폴 남작은 불안한 것이다. 그만큼 그는 하일론에게 의지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나타난 그의 한쪽 손에는 커다란 북과 북채가 들려있었다.
“그건 어디에 쓰시려고…….”
“마법사, 확성 마법!”
폴 남작이 궁금해 하는 것은 대답해 주지도 않은 채, 하일론은 그저 북을 세워서 고정하고 마법사가 마법 수식을 활성화 하는 것을 구경할 뿐이었다.
비교적 잘 보이는 부분에 설치된 탓에 성벽 위에 늘어선 병사들도 이내 궁금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하일론이 북채를 집어 들었다.
둥! 둥!
웅장한 소리가 울려나갔다. 그 소리는 전투 중에 쓰는 약속과는 다른 리듬을 타고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라, 이 소리는?”
몇몇 병사들이 북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무언가 알아챈 듯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와하하하!”
병사들이 하일론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다.
둥! 척! 둥! 척!
북소리는 바로 신성제국 병사들의 걸음에 맞추어 울리고 있었다. 마치 14만의 병력을 하일론 혼자 움직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함 해볼까나?”
둥둥둥둥!
하일론의 북소리가 약간 빨라지자, 잘 맞춰오던 신성제국 병사들의 대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 새, 하일론이 치던 북소리가 자신들이 내딛는 발걸음 소리와 맞았던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빠르게 북을 치니 북소리에 맞춰 병사들이 걸음을 빨리 내딛을 수밖에.
“푸하하핫!”
“저거 봐라!”
전투를 앞둔 병사들에게 있어 마음의 편안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을 가장 잘 아는 하일론이기에 대담하게도 10만이 넘는 적군을 상대로 장난을 쳐버린 것이다.
뿌우! 뿌우우!
뿔 고동 소리가 신성제국 진영에서 울리자 갑자기 진영이 멈추었다. 가지런하던 진영이 파도라도 탄 듯이 울퉁불퉁 변해 있었던 것이다.
기사들은 말을 타고 이리저리 병사들을 질책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루 종일 걸리겠다, 이 굼뱅이들아!”
이젠 일반 병사들까지도 신성제국 병사들을 향해 놀리는 말을 던지며 웃어재끼기 시작했다. 심리적인 안정을 찾은 것이다. 개중에는 엉덩이를 까 내리며 조롱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한 기의 기마가 신성제국의 진영에서 백기를 달고 달려 나왔다.
“항복 어쩌고 하는 거겠지?”
“그럴 겁니다.”
달려온 기마는 성 아래에 멈추더니 기사 하나가 두루마리를 펼치고는 외치기 시작했다.
“헤네시아 신성제국 샤우 환 밀리오르 황제 폐하의 권한을 위임받은 세인트 퍼블릭의 이름으로 그대들에게 마지막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니, 이대로 영광된 신성제국으로 투항을 하면 그대들에게 주신의 이름아래에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오, 그렇지 아니 한다면 죽음을 내릴 것이니라.”
기사가 두루마리를 다시 접고 이쪽의 답신을 기다리고 있을 때, 분노한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야유를 보냈다.
“모두 조용하라!”
하일론의 명령을 받은 기사들은 성벽을 돌아다니며 야유를 보내는 병사들을 진정시켰다. 소란이 진정되자 하일론이 나서 외쳤다.
“그 말이 진실인지 어찌 믿는가!”
의외의 대답이었다.
폴 남작 역시 하일론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를 믿기로 했다.
“여기 이 황제폐하와 세인트 퍼블릭 후작님의 직인이 찍힌 친서가 증명할 것이오! 투항하시오!”
잠시 후 하일론의 명령을 받은 기마가 성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물론 등에는 백기를 달았다.
신성제국 기사의 앞까지 말을 몰아간 기사는 정중히 그 두루마리를 받아서 다시 성 안으로 들어왔다.
이들이 하는 모습을 본 병사들의 동요가 조금씩 커졌다.
결사항전을 부르짖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적의 항복을 요구하는 문서를 가지고 들어오다니?
기사에게서 두루마리를 받아 들은 하일론은 그것을 펼쳐 보았다.
“이게 바로 황제의 직인이고, 요게 후작의 직인인가 보군.”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까?”
두루마리를 펼쳐 진위를 확인하는 하일론의 행동에 폴 남작은 조바심을 내며 그 의미를 물어왔다.
“기사들을 시켜 병사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하게.”
“이유를 알아야…….”
“시키는 대로 하게, 날 믿는다면.”
“……알겠습니다.”
하일론의 진지한 표정을 본 폴 남작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 두루마리 하나 가져오게.”
“알겠습니다.”
기사가 내실로 달려가 서신용 두루마리를 가져오자 하일론은 미리 준비된 서필로 멋들어지게 답변을 적었다.
“어이, 거기 자네, 이리 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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