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
강철의 열제 3화
쿠오오오! 콰르릉!
“돛을 내려라!”
“어이쿠!”
“너 뒤지고 싶어. 몸에 줄을 묶으란 말이야!”
콰콰콰쾅! 쏴아아아!
가우리의 멸망에 하늘도 슬퍼하는지 눈물을 퍼부어 대고 있었다.
우지직, 콰아앙!
“으아악! 살려줘!”
“밧줄을 잡아!”
돛대마저 부러져 나가자 돛대에 몸을 의지하던 선원들이 파도에 바다로 모조리 쓸려나갔다. 여기저기서 거친 파도소리를 뚫고 자연에 항거하는 수부들의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뱃머리를 우로 돌려라! 뭐하는 게야, 파도를 타지 못하면 죽는 거야!”
“이 지역엔 암초가 많습니다. 선단장님, 이 자리에서 배를 세우고 파도가 지날 때까지 버텨야 합니다!”
비보라가 시야를 완전히 가린 상태에서 선장은 암초군을 걱정했다. 파도를 넘다가 자칫 배가 암초에 전복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선단장의 결정은 단호했다.
“안돼!”
“하오나!”
“멍청한! 여기서 멈추면 어차피 몰살이다. 이 파도가 안 보이느냐! 암초는 걸릴지도 모르지만, 또한 반대로 안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멈춘다면 확실히 다 죽는단 말이다! 노군들에게 속도를 높이도록 하고 장군께 아뢰어 병졸들로 하여금 선창 하부의 물을 퍼낼 수 있도록 하라!”
“예!”
선장은 더 이상 선단장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고 목숨과도 같은 줄을 의지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러 움직였다. 선장을 보낸 후 호기 높았던 선단장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파도는 그렇다 쳐도, 이렇게 눈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는 처음이구나.’
마치 장막이 쳐진 듯 눈앞을 가리는 시야는 대단했다. 그때 견시수의 떨리는 목소리가 선단장의 상념을 깨고 들려왔다.
“서, 선장님!”
“뭐가 보이는가?”
“앞에 벽, 벽이!”
“뭐?”
쿠오오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선단장은 그 말에 담겨있는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견시수에게 다가간 선단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배, 배를 돌려라!”
“선단장님 위험합니다! 뒤집어집니다!”
“돌리지 않으면 다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선단장은 계속 외쳐댔다. 사방에서 무리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그것도 잠시 후 모두 멈추어 버렸다. 그들도 본 것이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 성벽처럼 솟아오른 바다의 장벽을 말이다.
위로는 그 끝을 알 수 없었고 좌우로도 빠져나갈 구멍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파도나 해일과도 달랐고 마치 말 그대로 끝없는 물의 벽과 같았다. 그리고 배는 맹렬히 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선단장!”
“누, 누구? 헉, 대사자님.”
선창으로 병졸의 힘을 빌리기 위해 내려갔던 선장이 고진천과 함께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선장은 앞에 펼쳐진 장면에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고, 진천도 자신의 눈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선단장에게 확고한 음성으로 명령을 내렸다.
“선단장, 어차피 길은 없다. 배를 돌리지 못한다면 뚫는 수밖에 없다.”
“하오나!”
급하게 반박하는 선단장의 말을 끊어내고 진천이 질문을 던졌다.
“저 벽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가!”
“바닷물로…….”
얼떨떨하게 대답하는 선장의 귀로 다시금 확고한 음성이 흘러들어 갔다.
“물이면 뚫고 나가면 된다.”
“하지만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 모릅니다!”
“그저 더 큰 파도라 생각하면 된다. 뚫지 못하겠는가! 대 가우리의 수군으로써 이것도 못하는가! 이것은 전쟁이야!”
“…….”
선단장의 눈에 비추어진 진천은 이미 전장에 있는 야수였다. 이윽고 선단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대답이 아닌 명령이었다.
“부선장, 명령을 하달한다.”
“네, 선단장님!”
꿀꺽.
빗소리와 파도소리보다 선장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선단장의 명령은 천둥보다 크게 들려왔다.
“명령은 전속 돌파다! 노군에게 전력으로 노를 저어라 명하고, 기수는 다른 배에게도 명해라! 정면으로 항진한다. 속도를 멈추면 죽는다!”
“옛!”
“수기를 들어라!”
순식간에 전파되어져 가는 명령을 확인한 선단장이 진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사자님, 이곳은 맡겨 주시고 내려가시옵소서.”
“음.”
대사자인 진천을 앞에 두고 입을 연 선단장의 몸에서도 전장에서나 맡을 수 있는 전쟁의 향취가 피어났다. 그리고 진천은 익숙한 그 향기에 미소를 그려주었다.
“모두 꽉 잡아라, 돌파한다!”
“으아아아아!”
“으야아아아!”
마치 적선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것처럼, 수부들의 목소리가 파도를 뚫고 울려 퍼졌다.
콰콰콰콰콰!
번쩍!
쿠르릉 콰아아!
바다의 벽을 뚫는 순간 하늘은 자연에 도전하는 인간들에게 노했는지 엄청난 소리를 내질렀고, 배들은 빛살처럼 자연의 벽을 관통하고 있었다.
제2장 이곳은 어디인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
바다의 벽을 뚫은 순간 선상에 있던 모두는 말이 없었다.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
“…….”
정적.
갑자기 세상이 바뀐 듯 고요가 찾아왔다. 그리고 얼굴을 세차게 때리던 빗줄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따가운 햇볕만이 얼굴을 두들기고 있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자신들이 자연에 대항한 그 결말이 두려웠음인가? 아니면 갑자기 찾아온 고요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인가…….
쏴아아아.
눈을 감고 있는 선장의 귓가로 잔잔한 물결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얼굴에 느껴지는 햇살은 거짓이 아니었다.
“……!”
“헉!”
“이럴…… 수가…….”
조심히 눈을 뜬 선단장과 수부들의 눈에는 더없이 파란 하늘과 잔잔한 물결,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왔다. 평소라면 햇살과 잔잔한 물결에 즐거움을 만끽할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마치 꿈처럼 느끼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 꿈인지, 아니면 방금 전의 폭풍이 꿈인지…….
“어라? 서, 선단장님!”
“어? 아, 뭔가?”
“그, 그게…….”
갑자기 찾아온 평화에 어리둥절하고 있던 선단장의 귓가로 견시수의 황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견시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손가락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푸른 숲이 보이는 육지가 있었다. 그때서야 선단장의 동공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아니! 아직 육지는 멀었을 텐데?”
“아니, 선단장님 그게 아니라…….”
“응, 응? 으헉!”
견시수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선장의 입에서는 점점 요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알아차린 선원들을 대변하는 듯한 괴상한 비명이 갑판 위에 울려 퍼졌다.
“이게 뭐야 대체!”
“뭬야? 니보라우, 태풍이 다 디졌네? 고조 갑자기 조용해지니 됴쿠만. 기런데 됴아해야디 소린 와 지르네!”
얼빠진 선장의 뒤꼭지에서 들려오는 을지부루의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선장은 말을 못하고 전방만을 허탈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자신의 말을 무시하듯 들은 체도 하지 않자 부루가 언짢은 표정을 하고는 옆으로 다가왔다.
“아새끼래 온몸이 간이네? 내말을 무시하는 기야?”
“저기…….”
그러나 선단장에게서는 변명 대신 손가락이 들어 올려졌다. 그 끝을 따라 부루도 시선을 맞추었다. 손가락 끝에는 넓게 펼쳐진 숲과 땅이 있었다.
“벌써 도착한 기야? 고조 땅을 봤으면 날래 배를 대야디, 오디서 넋 빠진 모습이네. 대가리에 화살 맞았네?”
“…….”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선단장은 부루의 거친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손가락을 천천히 좌측으로 이동시켰다.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따라 돌아가는 부루의 시선과 함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기래 기래, 경치 됴아.”
“…….”
오랜만에 본 땅이어서인지 부루는 연신 즐거워하며 선단장이 한마디 대꾸도 않으며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한 바퀴 돌렸다.
“고조 땅이 넓구만기래.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도 다 땅이구만.”
“…….”
그러나 부루는 자신의 말에 이상함을 느끼고는 말을 잊은 선단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니보라우. 바다가 언제 이리 좁아졌네?”
“…….”
부루의 입도 어느 사이에 벌어져 있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았을 때 보이는 것이 다 땅이라는 것은…….
“호수인가.”
“아! 장군님.”
“뭐이가 어드레!”
어느새 나온 고진천과 연휘가람은 사태를 어느 정도 파악한 것이었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이 바다가 아닌 호수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때서야 상황을 확실히 인지한 부루의 호통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장 너 지금 미쳤네! 고조 며칠 동안 호수 안에서 뱅뱅 돈기야? 이 아새끼래 모가지가 떨어져야 정신 차리갔네!”
“부루, 조용히 해봐.”
“휘 형님, 이 아새끼래 지금 한 짓 보면 모르갔습네까!”
휘가람의 제지에도 부루는 침을 튀겨가며 선장을 잡아먹을 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상황을 막은 것은 진천이었다.
“선장, 분명 우리가 출발한 것은 바다다. 그런데 여긴…….”
“호수아닙네까!”
“눈 병신이 아니면 몰라도 눈이 박혀 있다면 우리가 출발한 곳이 바다고 이곳은 호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길티요.”
눈병신이라는 소리에 조용히 입을 닫고 주변을 살피는 척하는 부루였다.
“장군, 어찌할까요?”
휘가람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배를 육지로 대도록. 분명한 것은, 여기는 한눈으로 둘러보아도 호수라는 것이고, 또 우리가 출발했던 곳은 바다였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있는 곳은 우리가 출발한 곳에서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 정도 크기의 호수는 우리가 출발한 지역에서는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어찌 되었든 일단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확실합니다.”
휘가람이 그 말에 동의하듯이 말을 덧붙이자 진천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것까지는 모르지만, 이곳은 도망칠 수 없는 곳이니 육지를 밟아야지.”
“네. 선단장, 대사자의 말씀대로 선단에 상륙을 명하시오.”
휘가람이 고개를 숙여 진천에게 예를 표하고 선단장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그러자 선단장이 군례를 취하며 명을 받들었다.
“예, 알겠습니다. 기수는 전 선단에 상륙명령을 전달하라!”
“상륙준비 하랍신다!”
길게 울려 퍼지는 복명복창을 시작으로 열 개의 선단은 조심스럽게 육지로 향했다. 무어라 할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한곳에 정체되어 있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부루.”
“예.”
“선실로 들어가 을지와 시녀들을 데리고 바깥공기를 쏘이도록 해라.”
“알갔습네다.”
부루가 급히 자리를 뜨자 진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곳이 대체 어디인가…….’
남모를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조심히 내려라!”
“천천히 말부터 내려!”
육지에 말들과 진지를 세우기 위한 물건들이 내려오고 숙수들은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했다. 폭풍으로 인해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었던 탓에 숙수들의 손길은 더할 나위 없이 빨랐다.
“부루, 우루. 이리와 봐라.”
“네.”
고진천이 그들을 부르자 두 덩치가 동시에 대답했다. 어느새 자기 도끼를 등에 멘 부루가 눈알을 굴리며 뛰어와 진천의 앞에 섰고, 우루 역시 땅을 밟아서인지 배에서 모든 것을 게워내던 모습에서 많이 회복된 것 같았다.
“둘은 병사를 이끌고 주변을 탐지하라. 그리고 휘.”
“네.”
“자네는 일하는 병사를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습격에 대비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군진을 형성하도록.”
“알겠습니다.”
재빨리 사람들이 흩어지자 진천은 천자인 을지를 보기 위해 한쪽에 세워진 막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십여 명의 시녀들과 유모 그리고 대무덕이 한쪽 막사에서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근위장.”
“예, 대사자.”
진천이 막사로 들어서며 무덕을 부르자 그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고개를 조아렸다. 그의 인사에 진천은 고개만을 까딱인 후 입을 열었다.
“근위장은 현 인원을 파악해 주시오.”
“알겠사옵니다.”
무덕은 진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밖으로 달려나갔다.
무덕이 나가고 진천만이 남아있자 남은 시녀들은 그의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전장만을 다니던 그의 위압감은 시녀들이 정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 하기에는 그들의 행동이 너무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진천이 모를 사람은 아니었다.
“히잉…… 으에에엥, 우에에에엥!”
그런 어색한 상황에서 우연인지 갑자기 울음까지 터트리는 을지였다.
“전하.”
“난 전하가 아니다.”
“아, 알겠사옵니다. 그럼 저 잠시 자리 좀…….”
난데없는 유모의 축객령에 진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뭐?”
“소피를 보신 것 같사옵니다.”
“갈아라. 무어가 문제냐.”
진천의 간단명료한 대답에 유모와 시녀들의 낯빛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내가 하마.”
“헉!”
이상함을 느낀 진천이 을지를 빼앗아 들고 아기 강보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갈아주기 위해 기저귀를 직접 풀어 내렸던 진천의 행동이 갑자기 멈추어졌다.
“…….”
“흐읍.”
진천의 얼굴은 분노로 인해 벌게졌고 짧은 비명을 내뱉은 유모와 시녀들의 얼굴은 다 산 사람들처럼 허옇게 변했다.
풀린 기저귀 안에 달려야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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