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0
강철의 열제 30화
“수레를 모두 끌어와! 마굿간의 말들을 모두 끌어다 마당으로 데려와라!”
“빨리 서둘러!”
덜커덩 덜커덩.
본 목적을 위해 병사들이 수레 등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저항을 포기한 병사들과 일부 용병들이 저택의 하인들과 함께 묶여 있었다.
“모두 움직여!”
“부장님, 포로는 어찌하실 것입니까?”
스르릉.
“모두 죽이거나 데려가야겠지. 여기에 놓고 갈 수는 없다.”
꿀꺽.
부장이 검을 슬쩍 빼며 포로들을 쳐다보자, 어디선가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부장의 살벌한 분위기는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조심해야겠다.’
포로들의 뇌리를 스치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 이상한 것들도 돈이 되나?”
“그, 글쎄요.”
부장이 가리키는 곳에는 이상한 실험기구부터 시작해서 낡은 서책과 요상한 상자들, 풀, 그리고 투명한 유리관들이 실려 나오고 있었다.
마치 무슨 실험실을 연상하는 듯 수많은 책과 플라스크와 표본들이 늘어서 있는 방에서 병사들은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는 리셀이 행여나 망가질까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저, 저것도 실어야 하네!”
“예.”
“스승님, 이게 뭡네까?”
을지우루의 말에도 리셀은 대꾸 한마디 안한 채 들고 나갈 물건을 챙기기에 바빴다. 처음 저택으로 들어올 때만 해도 심드렁했던 리셀이 갑자기 사람이 돌변하여 눈에 불을 켜고 우루의 말도 듣지 않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엇!”
미끌.
쨍그랑!
“크어어어억! 만드라고라 채취 원애애액~!”
한 병사가 짧은 비명을 흘리며 무엇을 떨어뜨려 깨트리자, 리셀의 눈이 충혈되면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먼드라고라고라?”
“으어어어!”
우루의 뒤쪽에서 툭 내뱉어진 음성의 주인은 고진천이었다. 내부를 돌아보다가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울려 퍼진 리셀의 괴성을 들었던 것이었다.
“리셀.”
“크흐흐흑.”
“…….”
리셀이 처음으로 진천의 말을 무시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리셀은 주저앉아서 계속 ‘내 만드라고라가.’ 하고 중얼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진천이 목덜미를 잡아들었다. 그럼에도 반항하듯이 버둥거리며 바닥에 깨어져있는 녹색 액체를 향해 눈물을 줄줄 뽑아내고 있었다.
“저, 비싼…….”
“리셀, 제대로 챙기고 있는 건가?”
“히히익!”
진천의 눈빛을 받으며 허공에 매달린 리셀의 정신이 그때서야 되돌아온 것이다. 진천의 질문에 떨리는 목소리로 답을 했다.
“네……. 이것, 비, 비싼 것입니다.”
“흐음, 이곳은 내가 알아서 챙길 터이니 나가 보도록.”
심드렁한 음성이 들려오자 리셀의 동공이 확장되면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헛!”
“흐으음, 그냥 태워 버릴까?”
“히익, 나갑니다요!”
진천의 손아귀에 잡힌 유리병이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지려 하자 리셀이 사색이 되어 달려나갔다.
이 방은 통신 마법을 시도하다 우루의 활에 죽임을 당한 마법사의 연구실이었던 것이다. 영주의 지원을 받았던 탓인지 여러 가지 비싼 실험물들이 가득했고, 마법 서적 또한 풍족하게 있었다. 그러니 거지 생활이나 마찬가지였던 리셀의 눈이 안 돌아가고 배기겠는가?
다시 이어진 리셀의 협조로 인해 작업의 진척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리고 값이 나갈만한 것들이 거의 나온듯하자 한 병사가 달려와 보고를 했다.
“흐으음.”
“장군, 귀중품 같은 건 다 끌어내었습니다.”
그러나 병사의 보고에 을지우루는 잠시 주위를 살펴보다가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저기 세워진 판갑, 모다 끌어 내라우.”
“저거 말입니까?”
“기래.”
병사가 얼떨떨하게 가리킨 방향에는 풀 플레이트 갑옷이 쭈욱 늘어서 있었다.
“저걸 어따 쓰실려구…….”
우루의 명에 병사가 눈을 굴렸다. 그러자 우루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녹여서 화살이라도 만들어야지 않갔네? 안기래도 지금 철이 모잘라야.”
“알겠습니다. 어이, 우루 장군님이 이 고철들 나르라신다!”
“이거 말고도 쇠라는 쇠는 다 끌어 내라우.”
“예.”
고색창연하고 멋들어지게 늘어져 있는 풀 플레이트 갑옷들이 순식간에 고철로 취급되는 순간이었다.
“우루, 서둘러라.”
“알갔습네다.”
“서두르랍신다!”
진천이 명령을 하고 밖으로 나가자 병사들의 손길이 더욱 빨라져 갔다.
마당에 늘어서 있는 수레들이 점점 다 차가자 병사 하나가 곤란한 듯 다가왔다.
“수레가 모자랄 것 같습니다. 곡식의 경우 반은 남았는데…….”
“말 등에다가도 실을 수 있는 만큼 실어라.”
병사가 지휘를 하던 부장의 명령에 대답을 하고 뛰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천이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부장을 손짓해서 불렀다.
“부장.”
“옙, 대사자님!”
“병력 40명을 이끌고 남는 곡물을 이곳 시민들에게 뿌리고 오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포로 중 하나를 끌고 가서 어디가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인지 물어본 후 그쪽에 중점적으로 뿌리도록.”
이어진 진천의 명령에 대답을 하려던 부장이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
“뭔가?”
말끝을 흐리는 부장의 태도에 진천이 무뚝뚝한 음성으로 이유를 물었다.
“말이 안 통합니다만…….”
“구라쟁이!”
“저…… 계 부장은 후문을 감시하는 중입니다.”
“음.”
웅삼이 자리에 없자 진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나마 웅삼이 없으니 여러 가지 불편함이 생기는 것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다 되었습니다.”
진천의 귓가로 리셀의 음성이 들려왔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사라져 버렸다.
“리셀!”
“예!”
진천이 리셀을 불러 부장에게 한 명령을 다시 내리자 리셀이 말에 올랐다. 그리고 진천의 손이 리셀의 눈앞에 내밀어 졌다.
“아탬.”
“……예.”
통역 반지를 빼준 리셀이 울상을 지으며 서툰 목소리로 부장을 독촉했다.
“부장, 날래 가자우.”
“예, 리셀님.”
“…….”
진천은 리셀의 사투리만은 적응이 안 되는 듯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러나 한 떼의 기마가 적선을 하러 떠나가고도 공간이 약간 부족했다. 하지만 이내 수레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약 30벌의 플레이트 아머를 본 진천이 병사를 불렀다.
“저것. 다 납작하게 찌그려 트리거나 부셔서 담도록. 빨리.”
“옛!”
진천의 명령에 개당 한 집안 생활비의 십수 년 치에 해당되던 풀 플레이트 아머들이 병사들의 손에 의해 고철로 완전 변신하고 있었다.
까강! 깡!
갑옷 찌그러지는 소리가 허공을 맴돌 때쯤, 한쪽 저택의 구석에서 무엇인가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까트특.
“휴!”
“응?”
전혀 열릴 만한 입구가 없는 곳에서, 저택 외벽이 뜯어지는 소리를 내며 흙으로 잔뜩 범벅이 된 망토를 걸친 사람이 기어 나왔다. 그리고 병사들의 이목은 자연스럽게 집중되었다.
“어라?”
“…….”
그 남자가 나온 곳에는 진천이 서서 지휘를 하고 있었고, 개구멍 같은 곳에서 나온 남자는 놀란 듯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진천이 아무런 대꾸도 없이 쳐다보자 어색한 미소를 짓던 남자가 재빨리 칼을 들고 겨누며 외쳤다.
“크하핫! 뇌전의 제라르가 바로 나다!”
“…….”
그의 외침에도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진천의 미간만이 심하게 찌푸려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진천은 리셀의 통역반지를 끼고 있었고 병사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기류를 느낀 제라르는 다시 한 번 화려하게 칼을 휘두르며 외쳤다.
쉬파앗!
“이 시대 최고의 트레져 헌터 제라르다! 누가 먼저 덤비겠는가!”
“…….”
“뭐야…….”
그의 도발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모두들 미친놈 바라보듯 측은한 눈길을 보내자 제라르는 사방으로 눈알을 굴리며 당황했고, 그 꼴을 보던 진천은 한숨을 푹 쉬면서 병사들을 향해 한마디를 뱉었다.
“잡아.”
“뭐?”
자신의 이름에도 전혀 미동을 안 하고 사로잡으라는 명령을 하는 사내를 보자 제라르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어떤 사람도, 심지어 용병들도 뇌전의 제라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해 주었었다.
이런 푸대접이 처음인 제라르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이런 빌어먹을 종자들…….”
파팍 팍. 슈파파팍.
“…….”
끼이이.
제라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위에 빼곡히 화살들이 날아와 박히고 어느새 두 번째 화살들이 그를 향해 시위에 매겨지자, 제라르는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항복이요.”
간단한 말에 진천이 제라르를 향해 턱짓을 했다.
“가져다 실어라.”
뇌전의 제라르.
대륙 최고의 트레져 헌터이자 십대검객인 그는 이날 땅을 잘못 판 대가로 진천에게 끌려가게 되었다.
까앙~!
온 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소리.
제라르는 천천히 묶이면서 주변을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복식과 생김새가 제라르의 호기심을 발동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와중 들려온 쇳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헉!”
까강!
“저런 미친 인간들!”
까아앙!
제라르의 짧은 욕설이 쇳소리의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그의 눈에 펼쳐진 장면은 서민 십 년 치에 해당하는 고급 풀 플레이트메일이 쇳덩어리로 변하는 모습이었다.
비록 자기 것이 아니라지만, 누가 만약 옆에서 비싼 도자기를 열심히 깨고 있다면 가만있겠는가? 제라르 역시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까아앙!
“야이, 정신 나간 종자들아! 그게 얼마짜린데 모조리 부시냐! 차라리 날 줘!”
까앙!
“……?”
제라르는 자신이 포로라는 것도 잊은 채 절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규성은 고진천의 귓가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거기 도굴꾼.”
“트레져 헌터요!”
“그래, 도굴꾼.”
“…….”
통역마법이 걸린 반지라고 완벽은 아니었다. 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의미를 전달해 주는 기능이 바로 통역 마법인 것이다. 그런데 진천이 아는 단어 중 트레져 헌터란 의미는 없었다. 어찌 보면 비슷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진천이 알고 있는 것은 남의 무덤이나 능을 털어가는 도굴꾼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이 세계에는 도굴꾼과는 달리 엄연한 직업으로 던젼을 탐사하는 전문직종인 트레져 헌터가 존재하고 있었고, 또 진천이 말하는 도굴꾼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제라르로서는 진천이 말하는 의미의 도굴꾼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제라르가 강조하는 트레져 헌터는 진천의 귀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까강!
“저 판갑 비싼가?”
“비싸냐니! 저거 하나면 서민가족이 십수 년은 먹고 산단 말이다! 게다가 저것은 장식기능도 있어 미려한 문양 하며 일반 플레이트 메일과는 비교를 할 수 없단 말이야. 잘만 받으면 으아아악! 그만 둬어!”
까앙!
“잘만 받으면?”
만약에 누가 본다면 저 플레이트 메일들이 제라르의 것들로 알 것이다. 하지만 제라르의 진심이 진천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진천이 한쪽 손을 들어 병사들을 제지했다.
“그만. 잠시 멈춰라.”
“장군, 걱정 마시라요. 병사들이 늦어 제가 직접 다했습네다.”
“…….”
진천의 미간에 다시금 두 줄기 골을 파이게 만드는 우루의 음성이었다.
병사들에게 시간이 없다면서 우루가 직접 일을 해치워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진천의 시선 앞에 있는 부피가 상당히 줄어든 양질의 철들을 병사들이 옮기고 있었다. 하나씩 날라지고 있는 모습을 본 제라르는 아직도 아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