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06
강철의 열제 306화
진천의 단호한 음성에 놀란 눈을 하던 이들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사실 아무리 한솥밥을 먹고 있다지만 방금 보였던 그들의 행동은 큰 무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진천이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릇 한 국가의 왕 되는 자라면 절대 허언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새겨듣겠습니다.”
알세인이 얼굴을 숙이며 대답하자, 다른 이들도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행동을 쭉 둘러본 진천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내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사신단과 협의 했던 대로 그들이 보낸 물자가 도착하면 신성제국에 대한 진공을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그래야겠지요.”
다시 한 번 사실 확인을 해 주는 진천의 발언에 모두들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런 그들의 귓가로 다시금 진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물자가 도착한다면 말이지, 크크큭.”
“……?”
“네?”
갑작스런 음성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그런 모습을 하건 말건 진천은 한쪽에 앉아있는 연휘가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휘.”
“예, 열제이시여.”
“제라르에게 영업 준비를 하라고 하도록.”
“예.”
두 군신의 대화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머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 * *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에~, 느ㅤㅇㅡㄺ어지며언 못 노나아니~.”
흔들리는 해먹 위에서 을지부루가 예전에 가르쳐주었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잠을 청하던 필리언 제라르의 귓가로 바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본국에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우렁차면서도 왠지 기대에 찬 장보고의 음성이었다. 제라르는 해먹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음을 던졌다.
“뭔데?”
“보물찾기는 잠시 접고 영업 준비하시랍니다. 이번에는 굉장히 큰 건이라고 하십니다.”
“큰 건?”
제라르가 되묻자 장보고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에 우리 무기를 모두 새것으로 몽땅 바꾸어 준다고 하십니다. 흐흐흐.”
“이 양반이 이번엔 누굴 등쳐먹으려고…….”
제라르의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조용히 흘러 나왔다.
* * *
“해적 말입니까!”
알세인의 놀란 음성이 공간을 흔들며 튀어나왔다.
“그럴 수가…….”
“자유기사 필리언 제라르 경이 해적이었다니.”
“뇌전의 제라르가 연방제국에서 대규모 사기극을 한 것도 역시…….”
충격의 도가니였다.
가우리가 대대적인 수군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의외였다.
물론 알세인과 바이칼 공작은 가우리에 있으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지금 고진천이 밝힌 정도의 세력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거의 중앙 바다를 지배하다시피 한 전력 아니던가?
해상제국처럼 국가적인 지원을 배제한다면 단일 세력으로는 최강에 가까운 전력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들 중 가우리 수군이라 불리는 존재는 극히 일부였지만, 거의 모든 해적은 제라르에 의해 통일이 된 상황.
그리고 중요한 점 하나가 바로 제라르의 존재였다.
항상 심심찮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존재 중 하나가 뇌전의 제라르였다. 자유기사로도 유명했던 그는 몇 년 전 연방제국의 함선을 통째로 몰고 사라져 버린 일화로도 유명했다.
그때 일각에선 그가 사라진 것에 대해 씨 드래곤의 공격에 전멸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부터 폭풍으로 인해 몰살을 당했을 것이라는 견해까지 나왔었지만, 그가 해적이 되었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분명히 공식적으로는 해적이지.”
고진천의 입가에 퍼져가는 기괴한 미소.
“그럼 물자가 도착한다면 이라는 단서가…….”
하이안 왕국의 가운 후작이 진천을 향해 질문을 끝맺지 못하고 던지자, 진천의 옆자리에 있는 연휘가람이 미소로 대답을 하였다.
하나씩 꼬리를 물고 나오는 일의 전말.
“그렇다면 그때 사신들과 물건 인도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나누어 받는 것은 신성제국의 눈길을 끌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라 하시면서 단번에 다 받기로 한 것이 이를 노린 것입니까?”
가운 후작에 이어 말린 왕국의 켄 공작이 경악성을 터트리자 이번엔 을지우루가 거든다.
“고롬, 인생은 한방이디요.”
“그렇지만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바이칼 공작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휘가람이 태연한 표정으로 답변했다.
“그저 해적이 털어간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린 정체를 알 수 없는 밀무역상으로부터 해적이 쓰던 물건을 인도 받을 뿐이고요. 그리고 이후 해적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가우리에 들어 바친다면 문제없겠지요. 이 사실이 새어 나가지만 않는다면.”
휘가람의 뻔뻔한 대답에 알세인이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것은 명백한 사기입니다.”
그 말이 거슬렸는지 다른 이들이 그를 주시했다. 그 가운데 진천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걸리면 반칙이지만, 걸리지 않으면 기술인 법이지.”
“끄응.”
너무도 태연한 대답에 알세인은 항복을 하고 말았다. 어찌 되었거나 실속은 실속대로 챙기는 유일한 방법 아니던가?
만약 이러한 복안이 없었다면, 어려운 전쟁을 이어가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우리의 인물들을 제외한 삼국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절대로 고진천과 척을 지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가운 후작이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자, 알세인을 비롯한 인물들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가르침을 받기위한 제자들의 반짝이는 눈빛처럼 말이다.
“사실 이번 계획의 시작은 열제 폐하의 고심에서 부터였습니다.”
휘가람의 입술이 열리며 전대미문의 물자 강탈 계획의 전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계획의 시작은 진천의 머리에서 나왔고, 세부 계획은 휘가람의 작품이었다.
물론 진천은 이런 고차원적인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그들의 물자가 오가는 것을 털어 볼 수 없나 하는 근원적인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제국에서 사신이 방문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그렇게 된다면 형식적으로나마 어떠한 형태든 생색을 낼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제국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물자지원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물자를 받아 최선을 다해 싸운다면 그것은 잘해야 본전이겠지요.”
“흐음.”
모두가 염려했던 부분이었기에 휘가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고개들을 끄덕여갔다.
“그때 열제께서 이르시길 ‘준다고 받아서 열심히 싸우는 꼴은 죽 쒀서 개주는 것보다도 못한 짓거리다’라고 하셨습니다.”
“캬, 명언입네다!”
을지우루의 추임세가 이야기의 흥미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날로 먹는다면 그것 또한 산적질이나 진배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한 말을 지키며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받기로 한 물자가 중간에 사라진다던지 하는 일이 생기면 좋겠지’라고 말입니다.”
“하, 하하.”
어색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한마디로 최대한 뽑아내는 것과 그것을 탈 없이 날로 먹는 것이 진천에게는 최우선 과제였다.
그때 휘가람의 지혜(?)가 빛을 발한 것이다.
전쟁의 형국 상 물자의 이동은 해로가 분명했다. 해상제국의 참전선언으로 인하여 신성제국의 해군들은 전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바다의 물자 이동이 더욱 유용해진다. 이러한 상황설명은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지게 만들었다.
“물론 해적(?)들이 날뛰긴 하지만, 중앙해를 관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걱정도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해적들은 중앙해에서만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알려주지만 않는다면 털릴 염려도 없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알려 주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누.군.가.가.’라는 말을 딱딱 끊으며 말을 할 때의 휘가람이 보인 미소는 언제나처럼 맑았지만, 보는 사람들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느낌을 느끼며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 사람. 열제 폐하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사람이다.’
그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천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전쟁은 명분 싸움이다. 명분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는 것이 국가 간의 전쟁이다.”
진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택한 이 방법이 어쩌면 치졸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 또한 치졸한 짓 아니던가.”
“그렇습니다.”
알세인이 진천의 말에 동화된 듯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엎어 치나 매치나 그거이 그거 디만 전쟁은 결국 이기는 자가 옳은 것이 전쟁이디요.”
우루가 알세인의 동조를 받아 그가 전쟁에서 쌓아온 확고한 신념을 밝혔다. 처음부터 지려고 전쟁을 하는 이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때 멀뚱히 앉아있던 계웅삼이 한마디 툭 던지며 끼어든다.
“뭐 어찌 되었건 ‘물자를 받으면’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
“…….”
웅삼의 천연덕스러운 발언은 아무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간만에 한마디 던진 웅삼은 이들의 눈초리에 괴로움을 느끼며 속으로 되뇌었다.
‘왜 나만…….’
웅삼은 억울했다.
* * *
“물건 상하지 않게 잘 포장 하란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요!”
병장기들을 조심스럽게 포장하는 사내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저마다 자유로운 복장 아래로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단련된 근육들은 그들이 결코 평범한 장사치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더구나 이들의 우락부락한 인상은 더더욱 상인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흐음, 왠지 이게 마지막 한탕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분주하게 움직이는 듬직한 해적들을 바라보는 제라르의 얼굴엔 일말의 아쉬움과 앞으로의 기대감이 함께 서려 있었다.
[마지막이라니?]제라르의 머릿속으로 울려온 음성의 주인공은 바로 영원한 파트너 머맨 페일이었다. 이제는 익숙해 진 듯이 제라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받았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해적질을 할 일이 없어 보인다는 게지.”
[그럼, 이곳에서도 떠나간다는 뜻인가?]“무슨 말을, 아직 네 누이들도 다 만나지 않았는데!”
제라르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버럭 지르자 페일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든여섯 번 차이는 동안 포기란 단어는 배우지 못했나보군.]“그런 단어는 몰라도 된단 말이지.”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건지…….]“시끄러!”
허연 김을 피어 올리는 제라르의 모습을 보고 페일은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가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댈 뿐이었다.
“대모달!”
멀리서 그를 부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단장인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슬쩍 바라본 제라르의 눈동자에는 머리가 희끗해져 가는 장보고의 모습이 들어왔다.
“여기 계셨습니까?”
“보고도 모르나?”
제라르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보고는 뒤쪽에 서 있는 페일을 슬쩍 바라보며 운을 띄웠다.
“여든일곱 번째도 채이신 건가?”
“이 망할 인간아 아직 여든여섯 번일 뿐이라고!”
“프흐흐.”
제라르의 절규 아닌 절규가 쏟아졌다.
“용건만 말해.”
제라르가 화를 식히며 다시 한 번 묻자, 장보고가 웃는 얼굴을 지우며 보고를 시작하였다.
“별건 아니고 본섬과 부속도서를 포함 각 지역 부대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장 영업 나갈 때 쓰기 위한 병장기 이외에 일전에 계속 만들어 놓았던 본국에 가져갈 소모성 병기들까지 모두 포장이 끝났다는 소식입니다.”
“음, 아참! 일전에 지시한 것은?”
한참 고개를 끄덕이던 제라르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한 가지 더 질문을 던졌다.
“유돈노의 개량 말씀이십니까?”
“그거랑 터틀 드래곤 개조.”
“흐음, 일단 거북선의 경우, 어느 정도 보완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유돈노의 소형화 및 관통력 강화는 아직 진행 중인지라…….”
“그놈의 거북선은…… 터틀 드래곤으로 바꾸자니까!”
“열제 폐하께서도 좋다고 하신 이름인댑쇼?”
“끙.”
만병통치약인 고진천이 거론되자 꼬리를 마는 제라르였다. 전쟁 전까지 한 달에 한 번 방문한 진천에 의하여 아직도 멀었다는 증명(대련을 빙자한 구타)을 받았던 제라르로서는 아직도 상대하기 골 아픈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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