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14
강철의 열제 314화
루키아 후작의 결단에 펠로만 백작은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고 빠르게 부관들을 소집해 나갔다.
* * *
개문산성의 성벽 위에는 병사들이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마치 일개미처럼 줄을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라 신성제국의 군대가 지척에 있다!”
항상 전쟁을 치룰 수 있도록 물자를 비축해 놓는다지만, 그것을 전투를 벌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생각 외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적병을 향해 던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성벽 위로 올리는 한편 적의 공세에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각종 수성용 병기들을 준비하는 것도 일이었다.
다행히 검무휼의 명령에 근방에 있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성 안으로 들어오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병사들과 함께 전투 물자를 날라 준비는 빠르게 되어가고 있었다.
검무휼도 직접 성을 돌아다니며 병사들과 백성들을 직접 독려하였다, 그런 그에게 마법사가 어두운 얼굴로 다가왔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후우.”
짧은 한마디였지만, 무휼의 입가에서는 긴 한숨이 늘어졌다.
온몸에 화살을 달고 돌아온 단 한명의 수색대원.
수색을 나간 팔십여 명의 부대원 중 유일하게 돌아온 병사였다. 그런데 그마저 끝내 숨을 거둔 것이다.
“그래도 얼굴은 평안했습니다.”
“…….”
미친 듯이 달려온 병사는 막대한 출혈로 눈앞이 안 보이는지 코앞에 무휼을 두고서 고래고래 불러대었다. 무휼의 음성을 들은 그 병사는 붉게 충혈 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마지막 힘을 짜내어 외쳤다.
‘신성제국군 약 5만에서 8만 사이. 특이점 마법병단이 한 개 대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들은 레간쟈 산맥을 뚫고 들어왔던 것으로 보임. 수색대, 자신을 제외한 인원은 전멸로 추측됨.’
예도 없었고, 형식도 없었다.
누군가가 쫓지도 않았는데, 그 긴말을 한 번의 숨도 쉬지 않고 내 뱉어 내었다. 그리고 쓰러진 후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으로 수색대는 충분히 자신들이 할 일을 한 것이다.
“날이 저물어간다! 모두 빨리 움직여라!”
마지막 수색대원의 죽음을 전해 듣고도 무휼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병사들을 독려하는 대에 있는 힘을 쏟았다. 그것만이 죽어간 그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거대한 요동소리.
온 산맥에 그 존재를 알리기 위함인가?
지금까지 조심스러웠던 신성제국군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그 선두에는 사색에 잠긴 얼굴의 벨로 폰 루키아 후작이 있었다.
“위험합니다, 후작님!”
루키아 후작의 뒤에 서서 그를 호위하던 기사가 검집에 손을 가져가며 외쳤다.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몸을 웅크리고 있던 호크의 입에는 어디서 나왔을지 모르는 칼날이 붉은 피를 머금고 물려 있었다.
모두가 놀란 그 찰나의 순간에 입에 칼날을 물고, 루키아 후작에게 달려드는 호크를 아무도 만류하지 못하였다.
써걱!
최후의 힘을 짜낸 호크의 공격은 섬전과도 같은 칼날에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아!”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모습으로, 루키아 후작은 언제 뽑았을지 모를 소드를 다시 한 번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 있었다.
툭 대구르르. 털썩.
칼을 물고 있던 호크의 머리가 피를 뿌리며 긴 호선을 허공에 그리다가 땅바닥에 뒹굴었고,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죄송합니다.”
루키아 후작이 직접 손을 쓰게 만든 것이 죄스러운 듯이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냉혈의 검호.
그것이 바로 대륙의 십인 중 하나인 벨로 폰 루키아 후작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말에 어울리는 것을 보여주듯이 칼날에 맺힌 피는 이미 차갑게 굳어져 있었다.
“지독한.”
호크의 몸통을 조사하던 기사가 치를 떨었다. 궁금함을 느낀 기사들이 다가가 살피자 그들의 반응도 다를 바 없었다. 날카로운 칼날을 복부에 박아 넣어 숨긴 채 끌려왔던 것이다.
당연히 혈인이 되다시피 한 호크의 모습에 그들은 복부의 살을 찢어 그 안에 칼날을 숨겼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후작님을 노린 것 같습니다.”
펠로만 백작의 말에 루키아 후작은 나뒹굴고 있는 호크의 머리통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결국 기사들까지 동원해 정보를 캐 보려던 그의 의도는 무산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후작의 눈동자가 경련이라도 일은 듯이 흔들렸다.
칼을 물고 있던 호크의 입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나의 열제이시여……, 다음 생에도…….”
작지만 또렷이 울려온 목소리.
몇 마디였지만, 몸통을 잃어버린 머리통에서 말이 흘러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지은 최후의 미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미 잘려져 나간 머리가 말을…….”
주변 기사들의 당혹은 그것이 환청이나 환각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얼음처럼 차갑던 루키아 후작이라도 눈동자에 동요의 빛이 이는 것을 막지 못했다.
“후작님?”
“으음, 뭔가?”
펠로만 백작의 목소리가 상념을 뚫고 들려왔다. 전날의 기억이 펠로만 백작의 목소리에 의하여 밀려나간 것이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채 펠로만 백작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약간 걱정의 빛이 감도는 것을 보아 자신을 여러 번 불렀었던 것이 분명했다.
“날이 저물어 갑니다. 병사들도 지쳤고, 더 이상 어두워지기 전에 야영을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렇겠군. 펠로만 백작이 알아서 하도록 하게.”
“예.”
펠로만 백작의 얼굴 표정을 보니 그 역시 전날의 괴현상이 마음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거대한 대열이 멈추고 병사들이 임시 막사를 건설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에도 루키아 후작은 호크의 입가에 걸렸던 미소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검의 극의를 깨닫기 위해 수많은 강자들과 생사를 겨루었고, 여기 저기 일어나는 작은 전쟁도 마다하지 않고 나섰던 그였다.
한마디로 수많은 죽음을 보아왔던 그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죽은 자들의 눈빛.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상념.
원통함. 안타까움. 생에 대한 집착. 분노. 원망. 절규. 저주. 때론 죽음을 맞았지만 속 시원한 결투를 즐거워하는 강자들의 웃음마저 보았던 그였다.
하지만 호크의 모습은 달랐다.
잘려진 머리가 말을 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물론 흑마법사를 죽이며 간혹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마법의 기운을 못 알아차릴 그가 아니다.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상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그의 마지막 그 평온한 미소였다.
“무엇을 믿는 것인가?”
신성제국의 거대한 군세를 보았음이 분명함에도, 두렵지 않다는 뜻이었는가? 죽는 순간 지은 평온한 미소는 루키아 후작의 마음속에 의혹으로 남았다.
* * *
시종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왔다. 논의를 하던 고진천과 알세인 왕을 비롯한 4국동맹의 수뇌들은 자연히 말을 멈추고 걸음의 주인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자리에 저렇게 뛰어올 이유는 몇 없었다.
“신 몽류화가 열제 폐하께 예를 올리옵니다.”
들어서자마자, 몽류화가 짧은 군례를 올리고는 고개를 들어 진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레간쟈 산맥에의 괴집단은 신성제국의 군세로 확인이 됐으며, 그 수는 약 오만에서 팔만 사이라 합니다. 보병부대가 보급부대를 겸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도 있어 순수 전투 병력도 그 선에서 크게 가감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함께 날아왔습니다.”
“거리는?”
진천의 짧은 질문에 류화의 얼굴이 눈에 뜨이게 굳어졌다.
“개문산성에서 약 삼 일 정도 걸리는 숲 가장자리에서 이동하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대규모 인원인 것으로 미루어 적들이 개문산성에 도착하기에는 조금 더 시일이 걸릴 것 같습니다.”
“사, 삼 일!”
“오만에서 팔만이라니…….”
수뇌들의 동요에도 류화는 보고를 이어나갔다.
팔십 명의 수색대가 단 한 명만 되돌아 왔으나, 수색결과를 보고하고 중태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수색대가 발각되어 몰이를 당하는 와중에 신성제국의 부대에 마법병단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보고는 신성제국의 정예 군단이 확실하다는 것을 뒷받침 해주었다.
사실 정예가 아니라면, 어찌 레간쟈 산맥을 넘을 생각을 했었겠는가?
“미쳤군. 레간쟈 산맥을 횡단하다니.”
놀람에서인지 아니면 뒤통수를 맞게 된 사실에 허탈해져서인지 알세인 왕의 입에서는 거친 욕이 튀어나왔다.
“수색대가 되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을 감안한다면 대군이라 하더라도 삼사 일은 걸리겠군요.”
보고를 토대로 계산을 마친 바이칼 공작이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그러자 류화가 침중한 음성으로 답변을 했다.
“되돌아온 수색대 병사는 삼 일 거리를 단 하루 만에 주파했습니다. 물론…….”
“허.”
평지도 산을 달려 하루 만에 돌아왔다는 말에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이어지는 류화의 음성은 비장했다.
“……그 병사는 지금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회생은 불가능할 겁니다.”
“…….”
류화가 말을 맺자 흘러나왔던 감탄은 이내 침묵으로 변했다.
“적장이 바보가 아니라면 수색대 병사들이 평상시에 움직이던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 차렸을 것이다.”
침묵을 뚫고 진천의 음성이 무겁게 깔려나왔다.
“그렇다면 대군이라 하더라도 삼 일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신성제국의 군단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한 레간쟈 산맥 횡단을 결정한 것에는 짧은 시간 내에 가우리를 점령하겠다는 의도가 있으니 그럴 것입니다.”
연휘가람이 진천의 말에 동조를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알세인을 비롯한 동맹의 수뇌들은 모두 절망에 빠져들었다. 동맹 중 최강의 전력을 차지하는 가우리군이 빠진다면 더 이상 전쟁에서 희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라도 제국연합에게 잘 보여 국가를 부지하는 것 정도가 최상의 선택일 것이다.
“지금까지 흘린 피는 덧없는 것 이었는가…….”
알세인에게서 희망을 잃은 음성이 낮게 깔려나왔다.
“결국 이것으로 신성제국의 의도와 제국연합이 이 전쟁에 끼어든 결정적인 이유가 밝혀진 듯싶습니다.”
국가의 운명이 흔들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휘가람의 음성은 흔들림 없이 차분하였다. 그러한 차분함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고 있었다. 모두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휘가람의 말이 계속되었다.
“신성제국과 해상제국이 모종의 거래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이미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아마도 그 거래의 대상은 하이안 왕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겠지요.”
가운 후작도 일이 돌아가는 상황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한 듯 휘가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성제국의 대함대가 해상제국의 영역을 지나는 것을 허용했을 겁니다. 물론 해상제국은 로셀린 해안가 쪽으로 상륙하리라 판단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는 것은…….”
바이칼 공작이 경악한 얼굴로 말을 이어가지 못하자, 휘가람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예상하신 것이 맞습니다. 신성제국은 우리의 동맹 중심축인 가우리를 신속하게 공략함으로써 하이안과 로셀린 그리고 말린 왕국까지 병합할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말린 왕국은 여의치 않으면 연방제국이 차지하도록 눈감아 줄 생각이었을 겁니다.”
“빌어먹을.”
휘가람의 말에 모두가 분노를 내뱉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더 이상 제국들은 눈치를 안보고 이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를 병합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전쟁을 일으킬 것이 뻔했다. 그 전쟁에 제일 먼저 동원되는 것은 바로 병합된 국가의 병사들과 백성들일 것이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신성제국의 군단이 우리에게 괴멸당하는 것을 본 해상제국은 생각이 바뀌었을 겁니다. 물론 연방제국도 바보는 아니니 시기를 노리고 있었겠지요. 그때 마침 대군은 몰살당하고 또 하나의 대군은 멀리 배를 타고 나갔으니 그 힘의 공백이 그들에게는 기회가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달라지는 것이 있겠습니까?”
알세인은 지금 이 상황을 분석한 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이었다.
“하긴 그렇군요.”
알세인의 말에 휘가람은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긍정의 뜻을 내비추었다. 결국 알아차렸다 해서 변하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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