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20
강철의 열제 320화
너무도 큰 오차였다. 하지만 그 거대한 산맥에 숨겨진 병력의 수를 더 이상 정확하게 파악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이때 유화가 끼어들었다.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병력을 둘로 나누어 속도를 낼 정도라면 분명 전력을 보내었을 겁니다. 후발대가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려 했다면 삼만이 넘는 병력을 보내진 않았을 겁니다.”
“길티. 적은 기껏해야 일, 이만이야.”
오천이 안 되는 병력을 끄는 상황에서 일, 이만이 적은 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들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위기에 빠진 가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 해낸 것이 중요했다.
“까짓, 삼, 사만이면 어떻습니까. 적 후발대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유화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부루가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니보라우! 제국의 망나니 아 새끼들 똥침 함 놓으러 가는 기야! 알간!”
“우와아아!”
부루의 외침과 함께 다시 수천 수백의 결사대들은 멈추었던 진군을 시작했다.
* * *
콰콰쾅!
“아악!”
개문산성의 성곽이 터져나가며 병사들의 몸이 천 갈레 만 갈레로 찢겨나갔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듯이 흘러나오는 비명들도 마법에 의해 터져나가는 폭음에 가려졌다.
“비 빌어먹을.”
“괘, 괜찮으십니까!”
마법사를 향해 편전을 날리려던 순간 터져 나온 빛에 시력을 잃은 유문설은 옆에서 더듬거리며 걱정의 말을 건네는 부사수 윌리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자신의 허리춤을 더듬거렸다. 보이지는 않아도 귀로 들리는 비명소리의 주인이 모두 가우리 병사들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잔말 말고 다시 통아에 살을 재라!”
“누,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윌리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답하자 문설이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 질렀다.
“이, 병신 같은 놈아! 화살을 눈깔로 장전하냐!”
“하, 하지만 장전을 한다 해도…….”
부사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문설은 허리춤에서 꺼낸 애기살을 통아에 재고 능숙하게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목소리를 낮추며 답했다.
“눈이 안보이면 감으로 하란 말이다. 마법사 주변으로 몰리는 힘을 느껴라.”
문설의 말에 윌리가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통아에 애기살을 재고 시위를 당겼다. 숲에서의 전투를 대비해 그러한 훈련을 한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시야가 가리어지지 않은 상황에서였다.
시위가 당겨지는 기척이 들리자 문설이 더욱 낮아진 음성으로 말을 걸었다.
“죽어 나자빠지는 동료들의 비명을 들어봐라. 이 지랄 같은 전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저 하늘에 떠있는 빌어먹을 마법사들을 잡는 거야.”
“……예.”
문설의 말에 윌리가 호흡을 고르며 대답했다. 굉음과 함께 처절한 비명이 더욱 선명히 들려왔다. 윌리의 꽉 다문 입가에 피가 배어나왔다.
“느껴라. 저기 하늘에서 오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적의 심장을…….”
“…….”
더 이상 윌리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문설이 입가에 쓴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하나둘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몇 호흡을 더 기다렸을까?
시위를 당기고 눈을 감은 채 멈추어있던 문설에게서 나직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가라.”
퉁!
문설의 활에서 통아가 튕기고 애기살이 날아오름과 동시에 윌리에게서도 편전이 쏘아졌다.
“맞았다.”
문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옆에서 윌리가 다가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지, 진짭니까!”
“크크큭!”
보이지는 않지만 알 수 있었다.
희열에 찬 그들의 머리 위로 태양보다도 더 뜨거운 불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주문을 외우던 마법사는 불신의 눈빛을 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왼쪽 가슴을 보았다. 가슴에 삐져나와있는 화살 깃이 눈 안에 들어왔다.
“어찌!”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다시 들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실드의 막이 사라져있었다.
“말도 안…….”
마법사는 지금의 상황을 부정하려 하였지만 멈추어진 심장은 더 이상 그의 생각을 내뱉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주문 중간에 흩어진 마력은 그의 몸을 잡아먹었다.
“커억!”
“마법전단은 모두 조심하라!”
마나의 역류로 푸른 불꽃에 휩싸여 추락하는 마법사의 옆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며 더 이상 자신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마법사들이 서로 경고를 하며 외쳤다.
“커억! 저, 저쪽이다!”
또다시 희생자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들을 노린 자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망루 중간에 몸을 숨기고 활시위를 당기는 자들.
그들에게 동료를 잃은 마법사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이런!”
루키아 후작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마법사들의 죽음이었다. 전부 마법을 시전 하는 도중에 죽음을 맞은 듯 푸른 불꽃에 휩싸여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대체 무엇이!”
순식간에 다섯 명의 마법사가 죽고 나서야 마법사들의 마법이 망루 등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이미 피해는 컸다.
“이만하면 되었다. 마법사들을 물리고 병력을 진군시키도록.”
“알겠습니다.”
루키아 후작의 명령에 펠로만 백작이 명령을 전달했다. 그리고 이내 뿔고동 소리가 짧게 그리고 다시 길게 두 번 울려 퍼졌다.
“달려!”
“와아아!”
거대한 함성이 울리며 방패로 막으며 전진하던 병사들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의 위력 덕인지 그런 그들에게로 쏘아지는 가우리군의 화살들은 턱없이도 적었다.
시력이 되돌아온 검무휼의 눈에 제일 처음 들어온 것은 함성을 지르며 개문산성을 향해 달려오는 신성제국 병사들이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목에 핏대가 터져나가도록 외쳤다. 하지만 이미 성곽에 존재하던 병사들의 태반이 꺼멓게 타거나 얼어붙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궁수들이 시력이 되돌아왔는지, 화살들을 쉬지 않고 쏘며 저항하였다.
“적들이 기어 올라온다! 창수들을 성벽으로 올리고 뜨거운 기름을 어서 올려라!”
“예!”
이미 성벽 위에 준비를 해 놓았던 수성용 물자들은 대부분 못쓰게 변해 버렸다. 그나마 미쳐 준비가 모자라, 많은 수의 물자를 못 올린 것이 오히려 다행일 정도였다.
“돌을 던져라!”
명령이 떨어지자 창을 성곽에 잠시 기대어 놓은 병사들이 일제히 돌을 집어던졌다. 그만큼 신성제국군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주먹 만 한 돌들로 타격을 주면 얼마나 주겠냐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높은 곳에서 던져진 돌멩이는 화살 못지않은 위력을 보였다.
“계속 던져라!”
장수들의 외침이 없어도 병사들은 쉴 새 없이 바닥에 쌓인 돌멩이들을 던져대었다.
까맣게 쏟아져 내리는 돌비에 노출된 신성제국 병사들에게 피해가 나기 시작했다. 재수 없게 안면을 맞은 이는 코와 입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뭉개지며 고꾸라졌고, 뛰는 도중에 투구를 떨어트렸던 병사의 머리통은 잘 익은 수박 터지듯이 터져나갔다.
“모두 조심해!”
신성제국 병사들 사이에서 경고성들이 터져 나왔다.
“죽어! 이 오크만도 못한 자식들아!”
서로가 외치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가 되었다.
“갈고리를 던져라!”
온갖 욕설과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곳저곳 부서진 개문산성을 향해 수천 개의 갈고리들이 날아올랐다.
갈고리는 성벽만을 향하지 않았다. 몇몇은 돌을 던지며 저항하던 가우리 병사의 등을 찍으며 끌어 내렸고, 몇몇은 미쳐 성벽 위에 다다르지 못하고 다시 떨어져 내리며 같은 신성제국군의 머리를 박살냈다.
“아아악!”
“내 눈!”
뜨거운 기름이 쏟아져 내렸다. 그 위로 불이 붙은 짚단들이 던져지고 불에 휩싸인 신성제국 병사들의 비명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개문산성의 성벽에는 개미떼처럼 신성제국 병사들로 뒤덮였다.
“사다리를 대라!”
수백 개의 사다리가 걸쳐졌다.
“사다리를 걷어내라!”
걸쳐진 사다리를 향해 긴 장대를 걸은 가우리 병사들이 밀어붙이자 사다리를 걸친 신성제국 병사들이 벌떼처럼 들러붙는다.
“절대로 밀리지 마라!”
이미 사다리 위에는 수십의 병사들이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위와 아래에서 서로 밀고 당겼다. 수십 개의 사다리들은 병사들의 비명을 매단 채로 신성제국 진형으로 무너져 내렸다.
“창수들은 모두 창을 잡고 대열을 갖추어라!”
무휼의 외침에 돌을 던지던 병사들이 기대어 놓았던 창을 집어 들고 진형을 짜며 늘어섰다.
“컥!”
진형을 짜던 창수의 가슴팍에 화살이 날아와 박히며 성 밖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열을 흩트리지 않는 가우리 병사들을 향해 무휼이 이를 악 물고 외쳤다.
“단 한 놈도 성 안으로 들이지 말라!”
“으야아아!”
무휼의 명령에 병사들은 필사적인 외침으로 답했다.
성벽 위는 넘으려는 자들과 막으려는 자들의 처절한 혈투가 시작되었다.
성벽을 타고 올라와 고개를 내밀자마자 입을 뚫고 들어온 창날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 신성제국 병사, 빗나간 창의 힘에 도리어 성 밖으로 떨어져 내리는 가우리의 병사…….
필사의 의지로 막아가는 가우리 병사들이었지만, 성벽위에는 벌써 상당수의 적군들이 올라선 상황이었다.
“처음 마법 공격으로 인해 대열이 많이 흐트러져있습니다.”
문설이 자신의 무기를 고쳐 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직접 가야겠다.”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린 성벽을 향해 무휼의 자신의 무기를 들고 달리며 다짐하듯이 계속 중얼 거렸다.
“문설 가자!”
“충!”
그의 부관인 문설과 수십의 병사들이 환두대도를 들고 따라 달렸다.
다른 병사들에 비해 눈에 띄는 모습 탓인가?
성벽 위에 올라선 신성제국 병사들의 눈에 탐욕의 불길이 일었다.
“가우리의 지휘관이다!”
“어디를 기어오르나!”
무휼의 뒤를 따르던 문설이 앞서 나가며 눈앞에 달려드는 병사들을 베어 넘겼다.
“전부 죽여주마!”
그들을 향해 무휼의 외침과 함께 환두대도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제108장 육신을 살라……
붉은 노을빛 때문인가?
성벽 위에 칠해진 병사들의 피가 더더욱 붉게 보였다. 하늘에 높이 걸렸던 태양이 지평선에 걸쳤음에도 개문산성에는 아직도 함성과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더 투입합니까?”
그다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벨로 폰 루키아 후작에게 치에라 펠로만 백작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퇴각시키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루키아 후작의 말에 펠로만 백작은 안도한 모습을 보이며 부관들에게 퇴각 명령을 전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성제국의 병사들은 체력의 문제를 확실히 드러내며, 성벽 위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초반 성벽에 올랐던 병사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고, 밀고 밀리는 소모전만을 이어갔던 것이다.
뿌우우우!
길고 길었던 하루의 마지막을 알리는 뿔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자,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들던 신성제국의 병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러서기 시작했다. 가우리군도 그런 그들에게 무모한 공세를 가하지 않고 그저 견제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하루로는 무리였군.”
퇴각하는 병사들을 바라보던 루키아 후작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마법사들의 공세에 이어 병사들이 성벽으로 기어오를 때만해도 단 하루 만에 무너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던 것이다.
“내일이면 가능할 것입니다.”
“음, 그럴 것 같군. 허나 저 성 말이지.”
펠로만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루키아 후작이 손으로 개문산성을 가리키며 의외라는 듯이 말을 꺼내었다.
“마법에 의해 공격을 받은 것 치고는 너무 피해가 적더군. 이미 저 성의 형태에 대해서는 듣고 알고 있었지만, 정말 공성하기엔 최악의 형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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