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21
강철의 열제 321화
루키아 후작의 지적에 펠로만 백작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건 그렇습니다. 북 로셀린과의 전쟁에서 계략을 써서 이겼다고 하지만, 저 성을 보아하니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저력이 있어 보입니다.”
“음, 성문이 드러나지 않게 성벽을 엇갈려 쌓은 것과 또 성벽 중간 중간에 튀어나온 저 벽들 덕에 기어오르던 병사들이 삼면에서 공격을 받아 피해가 컸어.”
“예.”
루키아 후작의 지적에 펠로만 백작이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마법병단의 피해는 파악이 되었는가?”
“총 여섯 명의 인원이 사망하였습니다.”
“으음.”
루키아 후작의 미간이 좁혀졌다. 다른 병력이야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마법사들은 달랐다. 소수의 자질이 있는 인원만이 마법사가 될 수 있고, 또 오랜 시간을 가르쳐야 쓸만한 전력이 되는 마법사 한 명의 피해는 병사 천 명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 마법 전력 역시 괴멸된 것으로 보입니다. 내일부터는 더욱 수월할 것 같습니다.”
“음, 어쨌든 이만 돌아간다.”
펠로만 백작의 말에 루키아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의 뒤로 기사들과 펠로만 백작이 줄을 지어 따라갔다. 길었던 하루가 끝이 난 것이다.
“피해는 어떤가?”
피해를 물어보는 검무휼의 입에서 지친 음색이 흘러나왔다.
“궁수대의 피해가 약 칠백에 달하고, 나머지 창수 등의 일반 병력손실도 천에 달합니다. 거기에 마법사들은…….”
“전멸…… 인가?”
무휼의 입이 힘겹게 떨어지며 확인하듯이 묻자 보고를 하던 문설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적의 썬 번이라 불리는 마법 이후에 일제히 쏟아진 마법들을 막다가 모두 그만…….”
“그들의 희생이 있어 막아 낼 수 있었지.”
무휼의 입에서 씁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떠돌이 마법사 출신들이었지만 그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각자 여러 이유가 있어 가우리에 자리를 잡았지만, 리셀 시아론이라는 대마법사의 존재를 알고 난 뒤에 마법사들은 웃음을 입에 달고 다녔다. 배움의 기회가 적던 그들에게 리셀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이 눈에 보이는 전투에서도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수십 개가 쏟아지던 적들의 마법을 단 네 명의 마법사들이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막은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있어 궁수들의 전멸을 막고, 성곽이 그나마 온전히 버티게 된 것이다.
“편전 사수들은 어찌 되었는가?”
“삼십여 명의 인원들 중, 다섯 명만이 남았습니다.”
“그랬군.”
마법사들의 희생으로 초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면, 편전 사수들의 희생으로 추가로 이어질 수 있었던 마법 공격을 막아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력의 절반이상이 날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로군…….”
물론 아직 개문산성에는 육천의 병력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중 이천여 명은 인근 마을의 젊은이와 노인들로 구성된 급조된 병력이었다. 거기에 이제는 적의 마법을 조금이나마 막아 줄 수 있는 마법전력과, 적 마법사들을 효과적으로 견제를 해 주는 편전사수들을 잃은 것이다.
결국 전체적인 전력을 따지자면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법이라는 게 생각 이상으로 전쟁에 변수를 주는군.”
“예…….”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무휼의 음성에 마주앉아있던 문설이 힘없이 대답하였다. 처음부터 마법사라는 개념이 없던 그들이었다.
물론 연휘가람이라는 존재가 있었지만, 그것은 정말 극도로 희귀한 경우다. 전쟁 자체에 주술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것도 없었고, 일반인들은 주술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마법사가 존재했고, 그들의 존재에 따라 전쟁의 양상이 변하였다. 물론 이전 북 로셀린의 대군이 왔을 때도 마법사는 있었지만, 이날 보여준 것과 같은 강력함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적들의 공세에 의해 홉 고블린들이 있던 곳이 붕괴된 것입니다. 이제 직접적인 통신은 불가능 하옵니다.”
“알았네. 이제 나가서 병사들을 돌보게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무휼의 말에 문설이 군례를 올리곤 성루에서 내려갔다.
“이제 하루를 버틴 것인가.”
노을이 지고 푸르른 밤이 오는 밤을 바라보던 무휼이 착잡한 음성을 내뱉고 있었다.
“마법전단장을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루키아 후작의 명령에 전령이 막사 밖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지친 얼굴을 하고 있는 중년의 마법사가 들어오며 두 손을 포개고 예를 올렸다.
“부르셨습니까.”
공손히 내뱉는 음성에도 피곤이 잔뜩 묻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진군해 오는 도중 계속되는 가우리군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장시간 플라이 마법과 함께 탐색마법을 펼치며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공방전에서 쏟아 부은 마력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적 마법전력의 저항이 상당했나보더군.”
루키아 후작의 위로에 마법전단장인 살리만 타인 백작이 굳은 얼굴로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
루키아 후작이 궁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화살이었지만 화살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았다.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쓰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법에 당한 것이 아닙니다.”
타인 백작의 말에 루키아 후작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타인 백작의 말은 이 짧은 화살에 여러 마법사들이 죽어 나갔다는 말이었다.
“그 작은 화살에 당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것도 실드를 뚫었다고 합니다.”
“이해할 수 없군.”
“저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타인 백작의 대답에 루키아 후작은 잠시 이 작은 화살에 대한 활용도를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마법 전력 중 일부를 가동시킬 수 있겠나?”
“대기 인원이 몇 있기는 합니다만…….”
“마법전단으로 야습을 감행한다.”
“야습 말입니까?”
마법을 이용한 야습과 같은 경우는 종종 있었다. 적의 보급품을 빠른 시간 내에 없애기 위한 수단 중 마법만큼 빠르고 확실한 것이 어디 있는가.
“낮의 공격으로 인해 적의 마법 전력이 붕괴되었을 것이라 판단을 하는데…….”
루키아 후작의 질문에 타인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분명 처음 일제 공격이 들어갈 때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마법적 기운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만.”
말을 하던 도중 손에 들린 짧은 화살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걸리는 것이다.
“물론 위험을 무릅쓰라는 것이 아니야. 확인도 할 겸, 적들의 휴식을 방해도 할 겸해서 간단하게 두드려 주면 된다는 말이다. 목적은 적들의 휴식 방해야. 무슨 의미인 줄 알겠는가?”
루키아 후작의 말에 타인 백작이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문제없을 것이옵니다.”
“부탁하지.”
“그럼 전 이만…….”
타인 백작이 예를 올리며 사라지자, 루키아 후작의 콧잔등이 찡그려졌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명령에 따르기만 할 것이지…….”
모든 정황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것도 귀찮았지만, 명령을 내릴 때에 항상 부탁하듯이 해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어찌 되었든 오늘 저녁은 마법전단에게 맡기고 병사들이 푹 쉴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러도록. 힘이 있어야 내일 개문산성을 넘을 것 아닌가.”
“예.”
“후발부대는 어디까지 왔는가?”
루키아 후작의 질문에 펠로만 백작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루거리까지 다가왔다고 합니다. 선발부대가 적들의 방해를 받으며 온 것과는 달리 후발부대에는 아무런 도발도 없고, 몬스터들도 소형들만이 간간히 나타나 빨리 올 수 있었다 합니다.”
“후발부대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야겠군.”
루키아 후작의 한쪽 입가가 올라갔다. 그러자 펠로만 백작이 군례를 올리며 입술을 열었다.
“내일은 분명 개문산성을 함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지. 그럼 편히 쉬도록.”
펠로만 백작의 자신감 있는 대답에 루키아 후작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평소 안하던 인사말까지 남겼다. 예상외의 저항에 약간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이 정도는 앞으로 얻을 결과에 비한다면 그다지 큰 피해도 아니었다.
그렇게 첫날의 전투가 흘러갔다.
* * *
“빨리 움직여라!”
숲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
레간쟈 산맥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빨리 밤이 찾아온다.
신성제국의 병사들이 여기저기 횃불을 밝히고 피곤한 얼굴로 몸을 누일 막사를 설치하고 있었다. 순탄하게 왔다고는 하나 강행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굳이 기사들의 재촉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빨리 막사를 짓고 들어가 잠을 청하는 것으로 가득 찼다.
신성제국의 막사는 이내 침묵 속으로 젖어 들어갔다. 많이 피곤했는지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가 밤공기를 흔들었다. 경계를 서는 병사들도 눈이 반쯤 감긴 채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마법사가 설치해 놓은 알람 마법을 믿는 것이다.
슈퍽! 퍼퍽!
무언가 날아와 박히는 소리가 울리고, 반쯤 감겼던 경계병의 눈동자가 확대되었다. 경계병은 커다랗게 뜬 눈으로 영원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읍!”
써걱.
하품을 참으며 움직이던 병사의 입이 억센 손으로 틀어 막히며 울대를 차가운 칼날이 갈랐다. 어느새 시위는 코고는 소리만이 남았다.
그리고 유성과도 같은 불꽃들이 신성제국군의 막사위로 쏟아져 내렸다.
“기, 기습이다!”
“불이야!”
한순간의 방심으로 나타난 결과치고는 너무도 참담했다. 불길이 치솟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밀려오는 잠도 생명의 위협 앞에선 달아날 수밖에 없는가보다. 마치 시체처럼 잠을 청하던 병사들이 일어나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화살들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대체 적이 어디 있다는 거야!”
“사방이 다 적입니다!”
당황하기는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에 보이는 것은 비명을 지르는 병사들과 벌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불길뿐이었다.
“마법사들은 불길을 꺼라!”
“마법사님들도 이미…….”
“알람 마법이 왜 울리지 않은 것이냐!”
귀족의 절규와도 같은 질문에 화답하듯 어두운 숲속에서 광기에 찬 함성들이 울려 퍼졌다.
“모조리 쳐 죽이라우!”
“우와아아아!”
거대한 대부를 들고 달려드는 을지부루의 뒤로 가우리 병사들이 원기에 찬 눈을 하고 신성제국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들은 신성 제국군보다 한걸음 먼저 이곳에 도착했었다. 당연히 마법사들이 알람 마법을 설치하는 것도 지켜보고 있었다.
알람마법은 일종의 함정처럼 해당 위치를 지나거나 건드려야 울리는 것이다. 당연히 마법사들이 알람마법을 설치하는 것을 사전에 본 가우리 병사들이 걸릴 리가 없었다.
“크야압!”
부루의 대부가 달빛을 가르고 떨어지자 하나의 몸뚱이가 두 개가 되어 쪼개어졌다.
“히익, 아, 악마다!”
“기래 내래 악마디.”
붉은 피를 덮어쓴 부루가 소처럼 커다란 눈에 살기를 가득 담고 병사들의 사이를 누비며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는 천유화와 부장들의 환두대도에도 자비란 단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항복 권유도 없이 그저 병사들을 몰아 쳐 갈 뿐이었다.
“쥐엔 백작님이 전사하셨다!”
“칼 자작님!”
부루가 커다란 막사로 난입하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죽음들…….
지휘부의 죽음을 확인하는 대로 가우리 병사들이 적장의 죽음을 알렸다. 비명과 죽음 속에서 울려 퍼지는 가우리군의 외침은 신성제국 병사들이 더욱 혼란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대열을 갖추고 막아라!”
“죽어라!”
“엇!”
병사들을 독려하며 진형을 갖추게 하던 기사에게도 가우리 병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기사답게 순간적으로 놀란 마음을 진정 시키고 달려드는 병사들의 공세를 막아갔다.
“별 거지같은!”
“꺽!”
치솟은 전의에 비해 실력이 따르지 못했는지, 제국기사의 검이 덤벼든 가우리 병사 중 하나의 뱃가죽을 비집고 들어갔다.
“뭐, 뭐야!”
문제는 칼에 찔린 병사가 기사의 팔을 잡고 안 놔준다는 것이다. 당황한 기사에게로 가우리 병사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도끼가 무기를 잡고 있던 팔을 갑옷 째 잘라버렸고, 이어 쇄도한 창날은 단단한 갑주를 꿰뚫고 몸속에 틀어박혔다.
“죽어!”
“커어억!”
이미 눈을 허옇게 까뒤집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우리 병사들이 계속 창질을 해대는 모습은 마치 악귀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쓰러진 가우리 병사는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도 통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