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25
강철의 열제 325화
“아, 아군입니다. 수효는 약 이천여 명 정도로 보이는 아군이 우리 성을 향해 달려옵니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무휼의 입에서 갑갑함을 담은 의문이 흘러나왔으나, 아무도 무휼의 궁금증에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장관이었다.
수만의 병력이 오락가락 하는 모습에 천유화는 웃음보를 터트렸다.
“프흐흐흐, 저것 보라고! 우리가 해냈다!”
“크하하, 멍청한 놈들!”
언덕 위에 보란 듯이 늘어선 유화와 칠백여 명의 병사들이 저마다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들의 등장을 보았는지 신성제국군이 후퇴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숲에서 튀어나와 개문산성으로 향하는 을지부루의 병력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렬로 길게 늘어서서 웃고 있는 그들의 뒤에는 노획했던 말들이 나뭇가지들을 매달고 먼지를 일으키며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이것으로 적들을 속여 넘긴 것이다.
웃음을 잔뜩 머금은 유화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성하지 않은 모습으로 뭐가 좋다고 웃어대는지…….
“곧 죽을 놈들이 실실 웃기는. 큭큭큭.”
“그러는 부장님은 뭐 다른 줄 아십니까?”
“푸하하하!”
눈앞으로 신성제국의 병력이 천천히 밀려오는 것을 보고도, 서로에게 농담을 던졌다. 마치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지금 그들의 사기는 그 어떤 때보다도 높았다.
스르렁.
천유화의 환두대도가 뽑혀 나왔다. 왼손잡이인 탓인지 오른손으로는 영 불편한 모습이었다.
“제군들!”
유화가 돌아보며 외쳤다.
하나같이 즐거이 웃고 있었다.
“가자! 이 병신들아!”
“우와아아!”
그 말을 끝으로 유화의 말이 튀어나가자, 일자로 늘어선 기마와 수레들이 동시에 내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뭇가지들을 매단 말들이 따라 달려왔다. 환호성을 외치며 말을 달리는 병사들 사이에서 유화가 을지부루에게 들으라는 듯이 소리 질렀다.
“장군, 보셨소? 우리는 짐이 아니란 말이오! 으하하하하!”
“기래. 분명 짐이 아니디.”
멀리서 울리는 유화의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그저 혼잣말이었는지 모를 음성이 을지부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뒤를 따르는 병력들은 모두가 이를 악물고 달렸다. 뒤늦게 퇴각하던 신성제국의 병사들을 가차 없이 쳐 죽이며 폐허가 된 개문산성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썅! 막지마라!”
부루가 눈앞에 거치적거리는 적병을 베어 넘기며 외쳤다.
“우리의 앞을 막지 말란 말이다!”
통한의 외침이었다.
“우리래 지금 달리는 이 길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었다.
“저 부나방들의 피로 만들어진 길이란 말이다!”
부루가 달리자 바다가 갈라지듯이 길이 생겼다. 그들의 광기어린 질주에 신성제국 병사들은 이리저리 달아나기 바빴다.
“저 하늘에서 만나면 군법으로 다스리갔어!”
부루의 외침이 멀리 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크크큭, 장군 제 죄는 나중에 받겠습니다.”
유화의 웃음소리가 끝이 날 때 즈음 신성제국군의 진형에서 화살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퍼퍼퍽!
“크아악!”
유화의 옆에 달리던 병사의 몸에 너뎃 개의 화살이 틀어박히며 떨어져나갔다. 그의 뒤로 계속되는 비명들…….
“멈추지 말고 달려!”
쏟아지는 화살들을 뚫고 달리는 그들의 돌진은 주저함이 없었다. 한쪽 다리가 없어 균형을 잃고 떨어져 버린 병사들도 있었고, 길가의 바위에 수레가 뒤집혀 나뒹구는 병사들도 있었다.
수레에서 기어 나온 이들은 다시 절뚝거리는 다리로 적진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들을 뒤따라오던 동료들이 자신의 말위에 태우고 함께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한바탕 더 난리를 쳐주지.”
만들어 놓은 대 기마 창들이 선두에서 달리던 유화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그가 잠시 속도를 줄였고, 다른 병사들의 말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속도를 늦추었다. 그들의 사이로 빈 수레와 나뭇가지를 매단 말들이 달려 나갔다.
“불을 붙여라!”
유화의 외침에 말들과 수레들을 끌고 온 병사들이 손에 들린 횃불을 집어던졌다. 미리 기름이라도 부어놨었는지 신성제국군의 보급품과 식량을 담은 수레에 불이 순식간에 옮겨 붙었다. 또한 말들이 끌던 나뭇가지들에도 불들이 옮겨 붙었다.
“끼히히힝!”
거칠게 타오르는 불길에 놀란 말들이 날카로운 창날이 앞에 있음에도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충돌했다.
“피, 피해라!”
누군가의 발악과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수백여 마리의 말발굽에 파묻혀버렸다. 불붙은 수레는 병사들의 몸통에 튕겨져 뒤집어지며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었다.
“아악!”
창들에 꼬치 꿰이듯이 꿰인 말들의 고통어린 울음소리와 신성제국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부상자들의 부대가 스쳐 지났다.
두두두! 두두두!
창날의 숲을 통과한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가로로 쌓인 수레더미였다. 급조되긴 했지만 효과적으로 쌓인 장애물이었다.
“끼랴아!”
눈앞의 장애물을 본 유화가 말의 속도를 더욱 높이며 외쳤다.
“제발 뛰어넘어다오!”
거칠 것 없는 이들의 질주였건만.
“제바아알!”
그 누구도 멈추지 못할 것 같았던 질주였건만.
콰아앙!
한계를 넘어선 그들에게 더 이상의 질주는 없었다.
하늘로 튕겨 오르는 유화의 귓가로 지금까지 달려준 말의 울부짖음과 여러 가지 몽롱한 소리들이 울려왔다. 쉬지 않고 장애물을 향해 달려드는 이들의 고함과 비명들.
‘병신들.’
하늘을 유영하는 유화는 그렇게 우스울 수 없었다.
한둘 즈음은 되돌아가도 욕할 이가 없었는데도, 끝까지 따라온다고 악다구니를 쓰던 병사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스쳐지나갔다.
‘병신들 죽으러 가는 길이 무에 그리 좋다고.’
작전이 먹혀들자 승리라도 한 것처럼 웃어대던 병사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리고 있었다.
콰앙!
“쿨럭!”
땅에 내동댕이쳐진 유화의 입에서 한 웅큼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힘겹게 고개를 든 유화의 귓가는 벌떼가 날아다니는 듯이 웅웅 거렸다. 눈앞에 자신의 뒤를 따르던 병사가 하늘을 보며 드러누워 있었다.
목이 기묘하게 꺾인 것이 별 고통 없이 갔으리라.
‘대체 뭐가 좋다고.’
목이 꺾인 그 병사는 웃고 있었다.
환두대도를 지팡이 삼아 일어서는 유화에게로 몇 개의 창날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창날을 막아선 것은 남은 한 팔마저 부러뜨려먹은 병사였다.
‘조금 더 사는 게 무슨 차이가 있다고.’
셀 수 없는 창날들을 온몸으로 받은 병사가 고갯짓을 하며 나아가라고 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유화의 양 옆으로 절룩이며 다가온 가우리 병사들이 자신의 무기를 들고 신성제국의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빨리 죽는 게 무에 중요하다고.’
온몸에 구멍이 뚫려 피를 쏟아내었다. 그리고 유화를 돌아보며 피를 쏟아내는 입으로 억지웃음을 짓는다.
‘아프면 아프다 할 것이지.’
일어선 유화의 두 귀는 충격으로 파괴되었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비명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며 쓰러지는 가우리의 병사들.
‘웃긴 왜 웃어? 바보 같은 놈들,’
그러는 유화도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그의 눈앞으로 신성제국의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살기를 눈에 가득 담은 채 달려드는데도 유화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나같이 입가를 가득채운 미소들.
이미 식어버린 미소들이 유화를 향하고 있었다.
질러오는 창대를 지지대삼아 유화의 몸이 맴돌았다.
‘바보들아 심심치 않게 길동무를 보내주지.’
스치듯 지나던 신성제국 병사의 머리가 몸통에서 굴러 떨어졌다.
‘일단 하나.’
이번에는 두 개의 창날이 그를 향해 쇄도했다.
‘느려.’
그의 환두대도가 땅을 향해 한 번 그어졌고, 다시 땅에서 하늘을 향해 올려졌다. 두 개의 창대가 중간부터 잘려지며 두 명분의 몸통이 바닥으로 쳐 박혔다.
‘둘, 셋.’
에워싸고 덤벼드는 신성제국의 병사들을 상대로 천유화가 춤을 추고 있었다. 먼저 간 동료들이 심심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열심히 춤을 추었다.
‘서른셋.’
몸통이 갈라진 채로 또 하나의 제국군이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달려드는 적들은 없었다.
‘벌써 지친거야? 아직 멀었다고. 이제 서른셋이야. 더도 말고 칠백열두 놈만 내손에 죽어주면 된다고.’
죽어간 동료의 숫자만큼은 되어야 하나보다. 유화의 발이 한걸음 내딛어질 때 신성제국 병사들의 발은 한걸음 물러섰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걸었을까?
그의 눈앞으로 은빛으로 빛나는 갑주를 입은 이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
‘부장님, 그놈들은 대박인뎁쇼!’
눈앞에 늘어선 은빛물결을 보던 유화가 뒤를 돌아보았다.
‘당연하지. 이 천유화 님이 나섰는데 지들이 안 나서고 배겨?’
그를 따라왔던 칠백오십의 동료들이 어느새 그의 뒤에 옹기종기 앉아서 응원하고 있었다.
‘부장, 잘하쇼!’
‘거 깐죽거리다, 칼침 맞는 수가 있수!’
지들끼리 웃어재끼며 농담 따먹기를 하였다.
유화의 고개가 되돌아가며 환두대도가 휘둘러졌다. 언제 달려들었는지 은빛갑주를 입은 자가 검을 내려친 것이다.
검을 막아내고 뒤로 돈 상태에서 환두대도를 허리와 팔꿈치 사이로 찔러 넣었다.
‘아새끼 정신 똑바로 차리라우!’
언제 왔는지 을지부루까지 타박을 한다.
‘쳇! 걱정 마십쇼.’
그의 등 뒤에서 천천히 허물어지는 제국의 기사. 그리고 연이어 달려 나온 이가 유화의 허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멍청한. 네놈 여기서 지면 말 한 마리 매고 뛸 줄 알도록.’
열제 폐하…….
고진천이 미간에 두 줄기 골을 파고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다.
‘망할 놈!’
유화가 자신의 허리에 생채기를 낸 기사의 칼을 퉁겨냄과 동시에 발로 가슴을 밀어 찼다. 나동그라진 기사의 가슴팍에 환두대도를 내리 꽂는 걸로 화풀이를 마친다.
‘제길, 열제께서 보고 계시는데!’
바르르 떨며 숨을 거두는 기사에게 화풀이를 한다. 그런 유화의 앞으로 다른 이들과는 달리 거대한 기도를 보이는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주변의 기사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는 것이 거물이다.
차갑게 냉기를 흘리는 사나이.
‘이놈 이기면 제 실수 용서해 주시는 겁니다!’
그의 치기어린 말에 진천과 부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얻어낸 유화가 호흡을 고르며 그에게 환두대도를 내려쳤다.
섬전과 같은 일격.
‘역시!’
손쉽게 막아내는 것이 생각 이상의 강자.
두 번 세 번 네 번…….
유화에게 다섯 번의 공격은 없었다.
‘뜨겁네.’
생긴 것은 차가워 보이는 사내의 검은 반대로 뜨겁게 느껴졌다. 심장을 가른 칼날 사이로 피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쿨럭!”
천유화의 몸이 허물어져 내리자, 최후의 일 검을 쑤셔 박은 루키아 후작이 냉막한 얼굴로 피를 닦아내었다.
“지독한 놈!”
한 기사가 치를 떨듯이 말을 내뱉었다.
“너…….”
무릎을 꿇은 유화가 힘겹게 고개를 들며 반말을 꺼내자 성난 기사들이 달려들려 하였다.
그런 그들을 제지하는 루키아 후작.
흔들리는 눈동자를 한 유화가 어눌하지만 비교적 또렷한 음성으로 루키아 후작에게 말을 건네었다.
“나, 난 말이지.”
“…….”
힘겹게 말을 꺼내기 시작한 유화가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입에 머금던 미소와 달랐다.
명백한 비웃음.
조롱하는 웃음이 걸린 것이다.
“원래 난 왼손잡이다. 이 병신아.”
그 말을 끝으로 류화의 고개가 천천히 떨어졌다.
뜨거운 태양이 서서히 기울던 어느 날 오후…….
천유화외 칠백오십 명, 영원한 안식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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