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3
강철의 열제 33화
제10장 하늘을 열다
레간쟈 산맥 중앙에 있는 호숫가에는 거센 욕설이 난무하고 있었다.
“썅! 간나 아새끼래 배로 숨 쉬라우! 배로! 가슴이랑 배도 구분 못하네!”
“크허억!”
“헉헉!”
척척척척.
완전무장을 하고 달리는 가우리 군과는 달리, 새로 편입된 형형색색의 머리를 자랑하는 신병들은 맨몸으로 달리면서도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었다.
“어쭈! 뒤로 쳐지디? 조금만 더 쳐져 보라우, 땅에 파묻어 주가서!”
후와악!
“히…… 히이익!”
부루가 뒤를 따라오며 욕설과 함께 대부를 휘두르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청년이 괴력을 발휘하며 달려나갔다.
“헥헥!”
퍼어억!
“끄헉!”
혀를 빼물며 달리던 한 청년이 사정없는 부루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졌다. 마치 잡아 죽일 듯 다가간 부루가 대부를 들이대며 외쳤다.
“배로 숨쉬는데 혀가 나오네? 확 잘라 버리기 전에 집어 너라우!”
“헙!”
부루의 협박이 먹혔는지 다시 몸을 일으켜 달려나가는 청년들이었다. 이런 산맥에 있다면 체력도 뛰어날 듯싶은데 그들은 오히려 평균 이하의 체력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가우리 군이 뛰어난 점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몬스터의 위협 때문에 일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마을 안에서만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탓이 컸다.
“미, 미치겠네. 왜 배로 숨쉬라는 거야!”
“헉헉헉, 무, 묻지 마 다쳐!”
“헉헉, 닥치라구?”
“……그래, 닥쳐.”
배로 숨을 쉬라고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으며 대부를 휘두르는 부루의 서슬에 열심히 달리고는 있었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는 청년들은 그저 살기 위해 달릴 수밖에 없었다.
특이하게도 그 행렬의 뒤에는 짧은 다리로도 마치 목숨을 걸고 달리는 듯한 세 명의 드워프도 있었다.
“화인스톤! 헉헉, 네놈 때문이야!”
“크헉, 다, 닥쳐. 말 걸지 마!”
드워프 생애에 이렇게 뛰어본 적이 없던 그들 역시 죽을 맛이었다. 마을 청년들과는 달리 그들은 온몸에 우루와 비슷한 찰갑(스케일 메일, 비늘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고, 손에는 그들의 대형도끼가 들려 있었다. 머윈 스톤과 갈링 스톤은 화인 스톤을 향해 살기를 뿜어대며 달렸다.
그들이 지금 뛰고 있는 이유!
‘어찌하면 강해집니까!’
쇠를 다루는 일족이면서도 전사로서의 자긍심이 높았던 이들로선 당연한 질문이었고, 부루도 친근감 있는 이들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대답을 주었던 것이다.
‘따라오라우.’
그 짧은 대답 이후의 결과는 지금의 모습이었다.
“어떤 싹퉁머리 없는 아새끼래, 조동아릴 나불대네!”
“허헉!”
“헙!”
안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한 걸음을 내딛을 때 두 걸음을 움직여야 하는 그들로선 부루의 음성이 지옥 같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판 무덤이니 누울 때까지는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행렬을 누비며 호통치는 부루를 보며 그들은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역시 전투일족!’
그들은 부루를 닮고 싶어 했다.
죽어라 달린 병사들에게 주어진 찰나의 휴식 속에 청년들은 모두 사방에 널브러졌다. 그와는 반대로 기존 가우리의 병사들은 그런 훈련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로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헉, 헉, 저 질문 좀…….”
“응? 뭔데?”
“헉, 헉. 대체, 왜 배로 숨쉬라는 겁니까?”
“쯧쯧쯧.”
한 청년이 숨을 몰아쉬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장창을 둘러매고 있던 병사가 혀를 차고서는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오래 살려면 배로 쉬어야지.”
“네?”
단순한 대답에 청년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다시 물어보려는 찰나에 부루의 음성이 다시금 절망에 빠뜨렸다.
“휴식 그마안!”
“으윽.”
그러나 이내 들려온 부루의 음성이 청년들을 절망에서 구해냈다.
“신병은 앉아 있으라우! 나머지는 뛰어!”
“이야!”
“살았다.”
안도감을 표하는 청년들 앞에 선 부루가 천천히 돌아보다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고조 쉬면서 들으라우.”
“옙.”
다른 것은 몰라도 대답만큼은 활기에 차있었다. 부루의 차분한 음성이 청년들의 눈을 모아갔다.
“내래 배로 숨을 쉬라고 한 이유를 말해 주가서.”
“네.”
“대답보라우! 다시 뛰고 싶네?”
“네엡!”
부루의 조용한 협박에 금세 다시 풀어진 대답을 했던 청년들은 산맥이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들의 큰 목소리가 마음이 들은 듯 부루가 고개를 위아래로 까딱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개가 사람보다 오래 사는 거 봤네?”
“아닙니다!”
“기럼, 말이 사람보다 오래 사는 거 보았네?”
“아닙니다!”
마치 어린 학생들이 대답하듯 하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들은 부루의 마음에 들었다. 흐뭇한 표정을 지은 부루가 다시 질문을 이어 나갔다.
“기래, 이 짐승들이 말이디, 공통점이 있어야. 그게 사람보다 숨이 빠르디. 거북이 아네? 여기 호숫가에도 있는 거북이가 사람보다 적게 사네?”
“아닙니다!”
“모릅니…….”
“……날래 엎어 지라우.”
“네.”
부루의 훈련 사전에는 모른다가 없었다. 부루는 다시금 눈빛을 돌려가며 말을 이었다.
“고조 숨이 긴 동물일수록 장수 하는 기야. 기렇다면 말이디, 인간도 숨을 길게 쉬면 어카갔어?”
“오래삽니다!”
“기래, 기러고 또 금방 태어난 아새끼가 어디로 숨 쉬네?”
“…….”
부루의 질문에 병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부루의 인상이 점점 험악해지자 가장 어린 듯한 병사가 일어나 대답했다.
“저…….”
“말하라우.”
“코와 입으로 숨쉽니다.”
“엎어지라우.”
“넵!”
두 명의 병사가 엎드리자, 분위기가 싸늘해진 가운데 부루가 혀를 차며 말했다.
“집에 가서 함 보라우. 숨 쉴 때마다 배가 볼록 올라 올기야. 기럼 말이디, 사람이 디지기 직전에는 숨을 어디로 쉬는지 아네?”
“저…… 목으로 할딱거립니다.”
한 청년이 조심스럽게 대답하자 부루의 고개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끄덕여졌다.
“길티 조아. 디질 때는 숨이 목까지 차는 기야. 기렇게 할딱이다 디지는 거디. 고로 태어나문서 배로 쉬던 숨이, 죽기 직전엔 목까지 올라오는 기야. 사람은 말이디 숨을 다스려야 하는 기야. 기래야 오래 살 수 있디. 그리고 배로 쉬는 이유는 말이디 장시간을 뛰거나 전쟁을 할 때 체력이 쉽게 안 떨어지는 이유야. 너!”
“넵!”
부루가 한 청년을 지목하자 그가 재빨리 일어섰다. 그에게 부루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전쟁할 때 칼질 한두 번 하고 쉴 거네?”
“아닙니다. 적들이 다 죽을 때까지 휘둘러야 합니다.”
“기래. 기럼 어카야겠어?”
“숨을 배로 쉬고 길게 쉬어야 하며 체력을 단련해야 합니다!”
“아주 됴아!”
“오오오!”
호쾌한 부루의 음성에 다른 청년들은 탄성을 자아냈고 정답을 말한 병사는 어깨가 으쓱여졌다. 그의 또렷한 대답에 부루가 다가와 어깨를 두들겨 주며 청년들을 향해 한마디 해주었다.
“기래 기거디. 다들 알간? 기럼 이제 띠라우. 호수 백 바퀴만 뛰면 오늘은 쉬게 해 주가서.”
“…….”
“뭐하네? 띠디 않고.”
결국 부루는 죽어라 뛰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 * *
숙영지로 복귀를 위해 달려오던 고진천의 부대는 어두움이 본격적으로 깔리기 시작하자 질주를 멈추고 야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포로들은 승차감이 안 좋은 수레 탓에 얼얼해진 엉덩이를 달래고 있었고, 질주를 마친 말들과 한 명은 다리를 쉬며 한쪽에 노닐고 있었다.
“거기 강철면상, 내 팔찌 내놔!”
“…….”
먼 거리를 말과 같이 달려왔음에도 기운이 팔팔한 제라르였다. 역시 소드 마스터는 명불허전이었다. 그런 그가 외친대상인 강철면상은 다름 아닌 고진천이었다. 무뚝뚝한 표정만 이라면 강철면상이라 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것도 그나마 철면피라 했다가 진천의 응징으로 인해 외발로 달린 이후에 순화된 언어였다.
“야! 내 팔찌 달라고!”
“음.”
제라르가 고래고래 소리를 쳤지만,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포로들과 하이 엘프인 하이디아, 리셀, 진천뿐이었다. 고래고래 떠드는 제라르의 음성이 신경에 쓰이는 듯 진천이 불편한 음성을 내비쳤다.
“저, 주인님. 원래 뇌전의 제라르 하면 대륙의 10대 검객 중 한 명으로 그 긍지가…….”
리셀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진천에게 말을 붙이자, 그는 한 손을 들어 더 이상의 설명을 이어가는 것을 막았다. 리셀의 손가락에는 돌려받은 통역 반지가 있어 어설픈 사투리는 안 나왔다.
“내놔!”
“으으음.”
통역반지가 리셀에게 있지만 진천이 제라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의 팔목에는 고색창연한 통역 팔찌가 끼워져 있었고 그 주인은 지금 쉴 새 없이 떠드는 제라르였다. 진천은 제라르의 주절거림이 거슬리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오오라! 왜? 이번에는 거꾸로 매달아 놓기라도 하시려고? 어디 해봐! 그러기 전에 일단 내 팔찌부터 내놓으라고!”
“흐음.”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제라르를 바라보던 진천이 입맛을 다시며 팔찌를 자신의 손목에서 빼내었다.
“이제야 말을 듣는…….”
스윽.
“…….”
미소를 지어가던 제라르의 행동이 굳었다. 빼낸 팔찌를 천으로 스윽 닦아내더니 다시 낀 것이다. 그리고 등을 돌리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땀이 좀 찼군.”
“…….”
저벅 저벅 저벅.
그 말만을 남기고 걸어가는 진천의 등을 보고 제라르는 허탈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복수를 하다니.’
진천을 향한 무수한 원망만이 제라르의 입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제라르를 무시하고 걸음을 옮긴 진천은 리셀에게 다가가 무엇인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서도 한쪽에 있는 하이디아를 슬쩍 쳐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잠시 후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숲으로 걸음을 향하자, 그 뒤를 따르듯 우루가 활을 들고 달려나왔다.
“어디 가십네까?”
“넌.”
대답 대신 반문을 하는 진천에게 우루가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긁었다.
“고조 선녀님 드릴 퇴끼라도 잡으러 갑네다.”
“걷는 토끼 같은 거 있다고 잡아오진 마라.”
“걱정 마시라요. 기런데 대사자께선 어디 가십네까?”
“산책.”
짧게 말하고 서둘러 숲 속으로 향하는 진천의 입 꼬리에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마소가 걸려 있었다.
* * *
식사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자 병사들은 포로들에게 다가가 식사를 나누어주고는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곳에 세워진 임시 막사에서 지친 몸을 돌보고 있는 하이디아는 포로라기보다도 고진천과 을지우루에 의해 귀빈 대우를 받고 있었다. 지금도 그녀는 텅 빈 막사에서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 막사의 휘장이 열리며 리셀이 노구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조화의 존재이며 본질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숲의 자녀에게 인간의 마법사 리셀 시아론이 인사를 드립니다.”
“혼돈의 조각이며 마나의 자식인 리셀 님께 하이 엘프의 일족인 하이디아가 감사를 올립니다.”
“하, 하이 엘프!”
인사를 받은 리셀은 자신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리셀은 그저 엘프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정체가 하이 엘프라는 말에 놀란 것이었다. 사실 엘프와 외모 면에서는 구분하기가 힘이 들었지만 차이점은 존재했다.
일반적인 엘프가 마법과 정령과 활을 다룬다면, 하이 엘프는 마법이 아닌 신성력을 다룬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신관이라는 의미였다. 엘프 조차 구경하기 힘든 지금, 하이 엘프는 그보다도 더욱 보기 힘든 존재였다. 또한 엘프라면 몰라도 하이 엘프라면 그 어떤 구속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지켜져 왔던 것이다.
알빈 남작은 그 불문율을 신경 쓰지 않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이 엘프가 구금된다면 평소 평화를 지향 하는 엘프의 일족은 처절한 복수의 집단으로 변한다. 그 복수는 상대방의 멸살로 끝이 날 때까지 계속되며 이후 복수가 끝이 난다면 그 살육의 업을 단 한 명이 짊어지게 된다.
그것이 다크 엘프이다. 다크 엘프들은 이때부터 숲의 어둠으로 들어가 따로 생활하며 엘프들의 가디언으로 남는 것이 법칙이었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엘프를 노예로 부리는 것은 빈번했지만, 하이엘프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었다.
그리고 엘프와 하이 엘프의 구분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저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엘프 인가요, 하이 엘프 인가요?’라고 말이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 종족이기에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알빈 남작은 그러한 질문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구하지 않았다면 더한 살육이 있을 뻔했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리셀의 판단이었다. 그러던 중 막사로 누군가가 뛰듯이 달려 들어왔다.
“선녀님!”
“우루 아닌가?”
즐거운 듯이 달려 들어온 우루의 양손에는 커다란 나뭇잎으로 싼 토끼 요리가 먹음직스럽게 들려있었다. 우루가 여태껏 안 보였던 이유가 바로 이것을 사냥해서 요리했기 때문이었다.
“선녀님, 이거 좀 드시라요!”
가벼운 경장에 푸르른 하늘색 머리카락, 백옥같이 하얀 피부와 바다 같은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우루에게 있어서 신비감을 주고도 남았다. 그런 그녀가 진천의 말 뒤에 올려져 있을 때에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녀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왔을 때에는 무한한 희열과 진천에 대한 은근한 승리감도 가질 수 있었다.
자신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토끼요리를 들고 온 우루의 양 볼에는 홍조까지 번져있었다.
“식습네다. 어서 드시라요.”
하지만 하이디아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고기를 보고는 살짝 미소만을 지어 줄 뿐이었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우루에게 리셀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우루야.”
“이거 맛남네다.”
“우루야.”
“약 같은 거 안 탔시요. 한 입 드셔 보시라요.”
“…….”
자신의 인자한 음성을 깔끔히 무시한 우루의 행동에 리셀은 치미는 살기를 내리누르며 막사 사이로 보이는 별을 바라보았다.
‘내가 3서클만 되었어도…….’
한(恨)만 깊어지는 리셀이었다.
그때 막사 안으로 들어온 남자. 진천이었다. 그의 양손에는 커다란 나뭇잎을 그릇삼아 담아온 온갖 열매들이 담겨져 있었다.
“나와라.”
비정상적으로 퍼진 몸매 덕에 진천의 발길을 막아선 우루에게 진천이 나직하게 말했다.
“요렇게 드시는 겁네다.”
우물우물.
고기 한 점을 떼어 직접 먹는 시늉까지 하는 우루의 귀로는 그러한 진천의 음성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다.
스르르렁.
소름이 돋는 듯한 쇳소리와 함께 진천의 도집에서 환두대도가 삼 분의 일쯤 빠져나오자 우루의 고개가 진천을 향해 재빨리 돌아갔다.
“아! 오셨습네까?”
철컥.
그래도 병기의 예기에는 반응을 하는 우루였다. 진천은 말없이 도를 도로 넣고 자리에 주저앉으며 들고 온 열매를 내려놓았다.
“먹어라.”
하이디아의 앞으로 자신이 가져온 열매를 내밀며 진천은 짧게 명령조로 말했다. 그러자 우루는 고개를 저으며 기고만장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고조 열매 가지고 되겠습네까? 선녀님은 퇴끼 드실 겁네다.”
“…….”
모로 보나 자신이 해온 음식이 더 낫다는 생각에 자부심과 우월감을 느끼는 우루였다. 하지만 그런 우루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천에게 고개를 숙인 하이디아가 열매를 향해 손을 뻗었던 것이었다.
“왜…….”
“음.”
허탈감에 빠져드는 우루와는 반대로 미소를 지어가는 진천이었다. 리셀은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며 혀를 차고는 우루에게 위로를 하며 하이디아가 열매를 집은 이유를 말해 주었다.
“우루야, 이 분은 육식을 안 하신다. 오로지 채식과 열매만을 드시지. 이런 것을 준비하려면 나에게 먼저 질문을 하러 왔어야지 않겠느냐.”
“예?”
“네가 안 보인다고 아까 주인님께서 직접 숲으로 이 분의 식사를 준비하러 가셨지 않느냐.”
“…….”
그때서야 우루는 아까 자신이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진천과 마주쳤던 것을 기억해 냈다. 한마디로 알고도 자신이 사냥 가도록 놔두었다는 설명이 된다. 원망 섞인 눈초리가 진천을 향했으나, 진천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고기가 연하구나. 잘 구워졌어.”
“…….
진천의 손에는 우루가 정성껏 구워온 토끼 구이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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