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32
강철의 열제 332화
언제나처럼 털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래에서 올려쳐진 대부는 하늘을 가르고 반대쪽 어깨 위까지 휘둘러져 있었고, 부루는 살짝 몸을 뒤튼 채로 뒤에 서 있는 아빌런을 향해 웃음 짓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아빌런은 화염 속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나타난 부루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환호를 올렸다. 그 순간에도 떨어진 화염덩어리들이 개문산성의 성벽들을 뒤흔들고 있었지만, 그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아빌런의 함성은 전염병처럼 타고 흘러나갔다.
“와아아!”
“대장군 만세에!”
병사들의 환호성을 뚫고 부루의 당당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무휼! 참새잡이를 시작하라우!”
두 번째 주문을 완성한 동료 마법사들이 마법을 발동하기 위한 최종단계에 돌입하고 있었지만, 을지부루에게 화이어 볼을 날렸던 오웬은 벌어진 입을 닫지 못하고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연발하고 있었다. 아니 그 주변의 일부 동료 마법사들도 마법을 시연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저게 말이 되는가!”
“마스터다!”
“드워프에게 마스터가 존재했던가!”
“비, 빌어먹을 다시 저놈을 날려 버리자구!”
마스터라 불리는 존재가 마법을 파훼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니 이곳에 마스터라는 존재가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막말로 마스터라 하더라도 저렇게 무식하게 정면으로 마법을 받아 내는 짓은 안 할 것이다.
“저, 저건 뭐지?”
그들을 향해 쏘아 올라오는 커다란 통나무들.
“비, 빌어먹을 피해!”
그 통나무들 끝에 매달린 커다란 그물이 그들을 덮쳤다.
그물 자체가 주는 공격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문제는 날아서 내리꽂히는 통나무의 힘이었다. 허공에서 버틸 힘이 없는 그들은 그물에 휩싸여 추락하는 통나무를 따라 바닥으로 하나둘 추락했다.
“이런 별 거지같은!”
그나마 그물을 달고 날아올라온 통나무의 수가 많지 않았던 덕분에 몇몇 마법사들은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의 마법사들은 두세 명씩 공격과 방어를 맡아 움직이고 있었기에, 함께 엉키어 떨어져 내린 것이다.
이런 황당한 경우는 생각도 안 해 보았고, 겪어 보지도 못했다.
성난 마법사들의 입에서는 분노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르게 주문을 이은 마법사들은 개문산성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부루를 공격했던 오웬도 그물을 피하고 부루를 향해 다시 한 번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위험이 날아오고 있었다.
훙훙훙훙!
“저 미친!”
공격을 준비하는 오웬의 앞쪽에 있던 마법사가 질린 음성을 터트렸다. 아까 마법을 막아냈던 드워프가 도끼를 집어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 도끼는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소리를 울리며 그들을 향하여 날아올랐다.
콰콰쾅!
“시, 실드가!”
그 어떤 공격에도 그들을 보호해 줄 것만 같았던 실드가 산산이 박살이 나며 도끼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허공에 뜬 두 육신을 네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쿨럭, 마, 말도 안 되는 일이…….”
화르르륵!
잘려져 나간 자신의 하체를 보며 오웬은 자신이 만들어 낸 불길에 휩싸여 떨어져 내렸다.
“다음!”
을지부루가 빈손을 내밀며 외치자 아빌런이 마치 괴물을 보는 눈빛으로 또 하나의 도끼를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여, 여기 있습니다!”
“됴아. 이번엔 저놈!”
화아악!
또 하나의 목표를 정한 부루의 도끼가 허공을 잘게 찢어버리며 날아올랐다.
“니런! 날래 주라우!”
부루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부루의 도끼가 실드를 부수자 마법사들이 혼비백산하며 이리저리 흩어졌다. 아빌런이 넘겨준 도끼를 다시 쥔 부루의 입에서 탄성이 흘렀다.
“오!”
길게 날아든 화살 한 자루가 도망치느라 공백이 생긴 마법사의 심장을 꿰뚫은 것이다. 부루가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검무휼이 활을 들고 미소 짓고 서 있었다.
“이 정도는 가우리 군으로서 기본이지요.”
“기렇디!”
무휼의 말에 부루가 추임새를 넣듯이 흥겹게 외치며 또다시 도끼를 날렸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마법사들의 실드를 여지없이 깨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수십 발의 화살들이 쏟아져갔다.
“공격하라!”
“저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병사들이 일어서 화살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하늘을 찌르는 함성과 화살들이 신성제국의 병사들과 부루의 도끼 투척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마법사들을 향해 쉼 없이 쏟아져 나갔다.
“단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무휼의 커다란 외침이 병사들에게 힘을 담아주었다. 그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만들었던 마법사가 오늘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두려움의 존재가 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느긋하게 전장을 지켜보던 펠로만 백작이 놀라 입을 벌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하늘에서 펼쳐지는 그물이 새기어졌다. 두 개의 통나무 뒤에 딸려 내려온 그물이 마법사들을 휘감아 끌어 내렸다.
적들의 수성용 병기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마법사들을 향해 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게다가 직접 맞추는 것이 아니라 대충 그물에 걸리도록 쏘는 것이기 때문에 적중률도 높았던 것이다.
“후, 후작각하!”
놀란 그가 뒤를 돌아보며 루키아 후작을 불렀다. 하지만 언제나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만 지어 보이던 루키아 후작도 지금은 입을 반쯤 벌린 채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빼…….”
“예?”
“당장 마법사들 뒤로 빼란 말이다!”
처음 보는 루키아 후작의 모습에 펠로만 백작이 멍청히 반문했다. 그러나 되돌아 온 것은 분노에 찬 루키아 후작의 명령이었다.
“마법 전력을 모두 뒤로 빼라!”
콰아앙!
펠로만 백작은 알겠다는 대답도 할 생각도 못하고 바로 마법사들을 물릴 것을 명령하였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명확하게 들리는 폭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이 성벽에 날아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저럴 수가!”
우윳빛 실드가 산산이 부서지며, 그 안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마법사들이 피분수를 뿌리며 두 조각으로 갈라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아 있던 마법사들이 제각각 실드를 치고 도망 다니다 하나둘씩 굉음과 이어진 화살세례에 추락하고 있었다.
“이런 악몽이!”
신성제국의 자랑스러운 마법 전력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명령을 내려라! 모든 병력은 적의 성벽을 타 넘으라고 말이다! 커다란 희생도 감내한다! 더 이상 시간 끌지 말란 말이다!”
눈자위가 붉어진 루키아 후작이 커다랗게 외쳤다.
땅에 떨어진 마법사들이 차라리 상태가 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순간의 공격으로 마법 전단의 전력이 삼분지 일 정도로 줄었을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뿌우우우우!
죽음을 재촉하는 뿔 고동 소리가 길게 울렸다. 명령을 내린 루키아 후작의 볼살이 푸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쥐에게 물린 고양이는 그 이상으로 분노한다.
지금의 루키아 후작이 바로 그 상황인 것이다.
“대기 병력까지 아낌없이 쏟아 부어서 함락시킨다. 더 이상 적들의 사기가 올라가게 해선 안 된다!”
“알겠습니다. 레기앙 남작과 팔로우 자작은 후위를 이끌고 선봉의 뒤를 받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펠로만 백작이 빠르게 명령을 하자 이십여 기의 기마가 두 갈래로 나뉘어 자신들의 병력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각기 지휘자임을 알리는 깃발을 들어 올리고 개문산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113장 하루 낮 밤, 그리고 이어진 새벽
급하게나마 막아 놓았던 성벽이 달라붙은 병력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그와 함께 신성제국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함께 묻혀 버렸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많은 병력이 괴성을 지르며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와아아!”
“성벽이 무너졌다. 멈추지 말고 몰아쳐라!”
물밀듯이 밀려오는 신성제국의 병사들이었지만, 급조된 성벽이 처음부터 무너지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뭐, 뭐야!”
이내 몰려 들어온 신성제국의 병사들은 둘러싸인 또 다른 장애물 앞에서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각종 집기와 부서진 수레 등으로 급조된 장애물이었지만, 2.5미르(m)가 넘는 높이는 병사들의 발길을 묶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아니 그것보다도 목책들 앞에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는 날카로운 칼날들이 병사들의 발길을 막았다.
“미, 밀지 마!”
선두에 섰던 병사가 뒤늦게 외쳤지만, 그게 들리겠는가?
창날과 칼날을 두려워하며 멈추어 섰던 병사들은 동료들의 힘에 의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진하게 되었고, 두 눈 멀쩡히 뜨고도 자신의 온몸에 차가운 금속을 박아 넣게 되었다.
“아, 안 돼! 아아악!”
“멈추지 말고 공격하라!”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뒤쪽의 기사들은 오히려 전진을 외쳤다. 병사들도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이 죽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수많은 인생이 꺼져가는 곳. 그곳에서 동료의 희생으로 자신이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곳이 전쟁터다.
방책에 달아 놓은 부러진 창과 칼의 날들이 어느 정도 신성제국 병사들의 발걸음을 잡아 주리라 생각했건만, 그것은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채 끌어주지 못했다.
멈추어 서리라 생각했던 선두의 병력들이 뒤에서 미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창칼 앞에서 또 하나의 인간 방벽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끝이 난 것이다.
“빌어먹을. 궁수는 뒤로 물러나고 창수들은 모두 방패수 옆으로 정렬하라!”
검무휼의 명령이 떨어지자 궁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창수들이 채워 넣었다. 창수들이 적을 향해 창날을 고정시키기 위해 방책 위로 올라서는 순간 그들은 산 채로 방책의 창칼에 고정된 신성제국 병사들의 얼굴을 마주하였다.
“사, 살려줘.”
“끄으으.”
절명한 자들도 있었지만, 온몸에 박힌 창칼을 뽑아내려 애쓰며 바동거리는 병사들도 있었다. 마치 벌레수집가들이 살아 있는 벌레에 침을 박아 놓은 것처럼…….
“신경 쓰지 마라.”
당황한 창수들의 귓가로 한 방패수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방금 전까지 우리를 죽이겠다고 달려들던 새끼들이란 말이다.”
이를 악문 방패수의 음성에 잠시지만 당황했던 창수의 얼굴이 차분함을 되찾았다.
텅! 터터텅!
“크윽!”
방패 위로 적의 무기들이 두들겨대고 있었다. 적이 가까이 왔다는 이야기이다. 창수들은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방패를 놓지 않고 버텨내는 동료와 뒤쪽에서 환두대도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는 무휼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빨리 명령을 내려 달라는 애절한 눈빛을 하고 말이다.
“찔러라!”
“이야아아아!”
무휼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다림에 지쳤던 창수들의 입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함성은 곧 비명을 이끌어낸다.
“커억!”
투하악!
둔탁한 파열음과 신성제국 병사들이 방벽을 사이로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 순간만큼은 몸을 보호해 주는 갑주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위에서 내리찍어가는 창에는 그것을 충분히 뚫고도 남을 힘이 있었다.
“통곡의 벽이로구만 기래.”
성벽 위쪽의 지휘망루에서 내려다보던 부루가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주절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전장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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