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36
강철의 열제 336화
“단 한 놈도 뒤로 빠트리디 말라우!”
“우와아아아!”
병사들이 화답하는 함성을 들으며 부루가 대부를 좌에서 우로 바닥을 쓸듯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그러자 대부가 지나간 궤적을 따라 공이 땅 위에서 튕겨 오르듯 머리통들이 솟구친다.
부루가 지키고 있는 곳에서 도망치듯이 밀린 적들이 방책의 한쪽을 두들기기 시작하자, 끝까지 버티던 방패가 산산조각나면서 일순 구멍이 뚫렸다.
“젠장.”
그것을 보고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아빌런이었다. 그를 반기는 부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뎅이! 할당은 채웠네?”
“후웁!”
아빌런은 대답대신 도끼를 내리찍었다.
퍼석!
아빌런의 도끼자루를 통해 손바닥을 이어 뇌리까지 느껴지는 울림. 또 하나의 적병을 죽였다. 그것을 확인하곤 외쳤다.
“방금 채웠습니다요!”
“기래? 기럼 넌 이제 묵갑귀마대야!”
아빌런의 외침을 들은 부루가 활짝 웃으며 축하한다는 듯이 외쳐주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무엇인가를 빼어 던졌다.
“장군 이 와중에서 뭘 건네주겠다고……!”
투덜거리던 아빌런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기저기 난 흠집과 상처 난 모습의 흉갑. 분명 하얀색이 분명했을 작은 흉갑이건만,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빌런이 멍하니 고개를 들어 부루를 바라보았다. 부루는 대부를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내리 찍으며 외쳤다.
“천유화 그 아새끼 꺼디. 이젠 네가 차라우!”
“…….”
빌어먹을, 죽은 사람 걸 주다니.
재수 없다고 말하곤 싶은데…….
눈물이 났다.
“고조 전쟁 통에 질질 짜는 건 또 뭐이야.”
전쟁 통에 눈물을 찔끔 짜는 모습에도 그저 중얼거리는 것으로 끝내었다. 눈에는 눈물이 흘렀지만, 아빌런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고, 그의 두 손은 조심스럽게 받아든 흉갑을 가슴에 단단히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까짓 이제는 주인 없는 거 줬는데, 뭐라고 투덜 대딘 않겠디?”
덤벼드는 적군의 머리통을 굴러다니던 투구를 집어던져 맞추고 나서 잠시의 여유를 가진 그가 하늘을 잠시 흘깃 쳐다보았다.
누구의 눈치라도 보듯이,
‘까짓 줘 버리십시오!’
“기래.”
부루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 또 한 명.
달려들면 밀어내고, 틈이 보이면 대부로 내리 찍는다. 쉴 사이 없이 무기를 휘두르는 동안 차갑고 파라던 하늘은 태양에게 밀려나며 뜨겁고 푸르게 변했다.
“공성추다!”
누군가의 다급한 음성이 울려왔다. 뾰족하게 다듬은 부분에는 아직도 나무의 수액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것이 아침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
“막아라! 통나무를 가져오란 말이야!”
수십 개의 공성추가 부딪히는 순간 방책이 출렁거렸다. 몇몇 병사들이 공성추가 두들기는 뒤쪽으로 몸을 밀어 붙이며 안간힘을 썼다. 통나무라도 가져다 대면 좋겠지만, 그렇게 댈 것이 있었다면, 방책을 더 튼튼하게 하였을 것이다.
콰아앙! 까드드등!
“바, 방책이!”
여기저기서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검무휼이 참담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간?”
부루가 피식 웃으며 말을 던지자, 무휼이 고개를 약간 숙이며 다시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또다시 부딪히는 순간 위태위태하던 방책이 급기야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러나며 저항하라!”
가우리 병사들이 물러서자 적들이 그 자리를 메우며 몰려왔다.
“크하하하!”
그때 전장을 뒤흔드는 대소.
부루가 건물 위에서 마치 보란 듯이 두툼한 두루마리를 집어 들고 양손으로 찢으려 하였다.
“설마! 여기 뭐가 또!”
아빌런이 놀라 방책에서 화급하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가우리 병사들도 다르지 않았는지 어리둥절하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놀란 것은 신성제국 병사들이었다.
“병력은 뒤로 물러나라!”
“위험하다, 방책에서 떨어져라!”
아우성치는 신성제국 병사들이 애써 넘어왔던 방책을 되돌아가며 넘어왔던 기세보다도 더 큰 기세로 도망을 쳤다. 전날 성벽이 무너졌을 때의 충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던 부루가 손에서 두루마리를 힘차게 찢으며 외쳤다.
“이때다, 뒤로 모두 튀라우!”
“…….”
“…….”
찢겨져 날리는 종이를 보며 가우리와 신성제국의 병사들은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속았다.’
마법 스크롤이 아닌 그냥 종이였던 것이다.
* * *
“제길, 저런 잔머리까지 쓰다니!”
펠로만 백작이 분노한 음성을 터트리는 데에 반해 루키아 후작은 오히려 차분해진 모습으로 입술을 열었다.
“이젠 거의 끝난 것이라고 봐야겠군. 보아하니 위치가 높은 장수 같은데 저런 잔머리까지 써서 시간을 끌어 보려고 하다니.”
“하긴, 더 이상 준비가 없다는 것일 수 있겠습니다.”
루키아 후작의 말에 펠로만 백작은 잠시나마 일으켰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저지선을 뚫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렸어. 해가 지기 전에 소탕을 마무리하도록.”
“알겠습니다.”
루키아 후작의 말에 펠로만 백작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적들은 이제 삼천 남짓.
그럼에도 이렇게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제는 적들의 이점도 없는 상황이다. 펠로만 백작은 소드를 뽑아들며 전진을 다시금 외쳤다.
* * *
“저쪽에 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들어온 신성제국 병사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달려왔다. 하지만 그들이 채 달려오기도 전에 건물 위에서 가우리 병사들이 평소 성에서 쓰던 토기를 적들의 머리 위로 집어던졌다.
와장창!
“크으악!”
“위를 조심해!”
“어디 한눈을 파는 기야!”
혼란에 빠진 신성제국 병사들 사이로 을지부루가 끼어들며, 도끼에 머리를 얻어맞고 주저앉은 놈을 먼저 발로 걷어차 올리고 뒤에서 위를 바라보던 놈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우직!
턱뼈가 통째로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주먹에 맞은 놈이 붕 날아 모퉁이 밖으로 나동그라졌다. 그 모습에 당황하며 내지른 적병의 창대를 단단히 잡아채고 동시에 대부로 내리찍었다.
꽈직!
“끄아아악!”
창대를 잡았던 두 팔이 몸통에서 분리가 되자 미친 듯이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사방으로 피를 뿌려대며 도망갔다. 여전이 창대에는 단단히 그러쥔 적병의 두 손이 달려 있었다.
“뭐, 뭐야!”
막 모퉁이를 돌아 들어온 신성제국군 하나가 피분수를 뿌리며 미친 듯 달려오는 동료를 본 것이다. 부루가 조소를 흘리며 힘껏 팔을 휘둘렀다.
“뭐긴 뭐이네, 뒈지는 거이디!”
쐐엑!
“헉!”
병사가 부루의 독특한 억양에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두 손이 달린 창의 차가운 날이 몸통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바람 빠지는 비명을 지르며 창에 꿰인 채 날아가 반대편 담벼락에 박혔다. 창날에 매달린 병사는 잠시간 버둥거리다가 부르르 떨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컥!”
쉭쉬쉬쉭!
“으아악!”
부루는 느닷없는 비명소리가 위쪽에서 들리자 재빨리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열심히 집기들을 집어던지며 지원하던 가우리 병사들이 온몸에 화살을 박은 채 천천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대, 대장군 피하십…….”
한 줌의 생기를 짜내어 그렇게 한마디를 남기던 가우리 병사의 가슴에는 더 이상 기복이 없었다.
“빌어먹을.”
부루의 입에선 욕이 저절로 나왔다. 그때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모퉁이 쪽에서 무기의 요란한 부딪힘 소리와 시종일관 쏟아지는 익숙한 욕설이 들려왔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한 놈씩만 덤비란 말이지! 헛! 고블린 같은 새끼! 이 상황에 모래를 뿌리는 거지같은 새끼 누구야!”
지치지도 않고 나불거리는 인간. 부루의 얼굴에 반가움이 맴돌았다.
“간뎅이 아직 살아 있었네!”
“대, 대장군? 그럼 죽기를 바라셨습니까!”
골목모퉁이를 타고 들려오는 아빌런의 목소리에는 아직 생생한 힘이 실려 있었다.
부루가 아빌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거대한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약 5미르(m)가 되어 보이는 건물 위에는 이미 죽음을 당한 가우리 병사들이 걸쳐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기둥을 보며 한 번에 많은 숨을 들이켰다.
“후웁!”
콰앙!
창검 부딪히는 소음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막 골목을 돌아 나온 아빌런도 느닷없이 터져 나온 소리에 몸을 움찔하였다. 하지만 굉음보다도 지금 부루가 하는 행동에 더 어이가 없다는 모습이었다.
“지, 지금 뭐하시는…….”
“주뎅이 나불거리디 말고 날래오라우!”
콰아앙!
동시에 또다시 울리는 굉음.
“지금 그게 나무인 줄 아십니까! 도끼로 팬다고 무너질 리가아아아악!”
콰드드등!
아빌런은 하던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머리 위를 감싸며 부루의 옆으로 내달려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건물 하나가 거대한 먼지를 피워 올리며 무너져 내렸다.
“길이 막혔다!”
“뒤로 돌아가라!”
“…….”
막혀 버린 길 건너편에서 신성제국 병사들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던 아빌런의 귓가를 부루가 뒤흔들었다.
“안 되는 게 어디 있네. 어서 뒤로 빠지자우.”
부루가 이끄는 방향으로 정신없이 달리면서도 아빌런은 2층집 한 채를 무너트린 부루의 도끼질에 대해 괴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 *
만여 명의 지원군이 어느덧 이만으로 불어나 있었다. 중간중간 오면서 각 요새와 성에서 합류한 병력들이 모여든 것이다. 어차피 개문산성의 방비에 비한다면 다른 성들은 껍데기만이 완성된 상황이다.
왜, 부루가 그곳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겠는가.
왜, 진천이 항상 나아가 싸우려 하는 것인가…….
그 이유에는 이러한 현실이 밑바탕이 되어 있었다. 미칠 듯이 질주하던 이만여 병력의 선두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후미로 명령이 이어져갔다.
“멈추어라!”
“전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모두 수레에서 내려 각자 모포를 몸에 두르고 휴식에 들어간다!”
장수들의 고함소리에 병사들이 몸을 태우고 있던 수레에서 뛰듯이 내려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대대로(大對盧), 어찌 이곳에서 병사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옵니까!”
후미에서 말을 몰아 달려온 금유가 조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대무덕은 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질문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병사들이 지쳤네.”
“허나, 대대로. 지금 시급한 것은 개문산성 아니옵니까! 오전에 개문산성에서 빠져나온 마법사들의 말을 들으셨지 않사옵니까!”
금유의 음성이 점점 격해지는 가운데 무덕의 손이 올라가 그의 말을 끊었다.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쉬어야 하는 것일세.”
“어찌하여!”
금유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다시 한 번 이유를 묻는 음성이 흔들리며 흘러나왔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해 온 것인지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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