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49
강철의 열제 349화
밤이 되자 제라르와 장보고 선단장은 따라온 마법사와 함께 무인도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속도를 내기에 힘든 조각배였지만, 제라르의 영원한 동반자인 페일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빠르게 되돌아 올 수 있었다.
“오! 종종 이렇게 움직여야겠군.”
“설마 바다에서 이런 속도감을 느낄 줄은 몰랐었습니다!”
[지독한 인간들…….]기함으로 돌아온 제라르와 장보고가 베일의 능력에 순수한 감탄을 내뱉을 때 뭍으로 겨우 기어 올라온 페일이 필사적으로 한마디 남기고는 끝내 탈진해 버렸다.
“부작용이 약간 있긴 하군.”
“그게 좀 아쉽군요.”
제라르와 보고가 아쉬움을 한마디씩 내뱉으며 병사들에 의하여 실려 나가는 페일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정찰하면서 만들어온 자료를 탁자위에 늘어놓은 둘은 각 소함대의 함장들을 모아놓고 회의에 들어갔다. 마법사와 페일의 도움으로 비교적 생생한 장면을 감상했던 둘은 정찰의 결과를 세세하게 전달 할 수 있었다.
제라르와 보고가 정찰하며 보고 느낀 점을 모두 말하고 나자 좌중은 침묵에 잠겼다.
“회의하자고 불렀더니만, 단체로 반항하나?”
“끄응.”
“쩝.”
그들의 침묵을 보다 못한 제라르가 으르렁대며 한마디 쏘아붙였지만, 되돌아온 것은 신음성과 땅이 꺼지도록 내뱉는 한숨뿐이었다.
“사실 직접 보고 온 저도 답은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막연합니다.”
그들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보고가 두둔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인상을 쓰며 침묵하던 소함대들의 함장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캡틴 거보라구요.”
“우리라고 말하기 싫은 줄 아십니까.”
“이거 답 없어요.”
그들이 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만 보던 제라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 없군.”
“캡틴 인정하시는 거죠?”
“네놈들 머리에 생각이 없단 말이지.”
“…….”
코웃음을 치는 제라르의 모습에 전직 해적들은 고개를 숙이고 툴툴댈 뿐이었다.
“저 캡틴. 일단은 신성제국이나 해상제국이나 우리에게는 다 적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잖습니까?”
흑고래 발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제라르가 화색으로 그의 말을 반겼다.
“그래 털보! 뭐 좋은 것 생각났냐?”
“그게 저,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어오는 제라르가 부담스러웠던지 발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 번갈아 가면서 공격하면…….”
“머리박고 엎드려.”
“옙! 캡틴.”
제라르의 판결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터가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이쯤 되자 전부다 자물쇠라도 채운 듯 입을 꼭 다물고 서로 눈치만 보았다.
“좋은 작전을 말한 놈에게 최고급 와인 한 병.”
“…….”
“금화 백 개.”
“…….”
제라르의 회유에도 해적들은 입을 꼭 다물고 도리질 치기만 했다. 인상을 잔뜩 찡그렸던 제라르가 그들을 힐끗 쳐다보며 최후의 수단이라는 듯이 마지막카드를 내밀었다.
“페일에게 말해서 세이렌 아가씨와의 데이트를…….”
“제국연합의 놈들과 신성제국 놈들을 서로 싸움을 붙이게 하는 겁니다!”
“어차피 싸우려고 모인 놈들이야. 기각!”
“아예 제국연합과 신성제국 병사들이 식사하는 음식통에 독을 타서 모두 한방에 잡는 겁니다!”
“그 약. 니가 탈거냐?”
“아뇨.”
“기각!”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적들이 벌게진 눈으로 말을 속사포처럼 늘어놓기 시작하자, 제라르가 능숙하게 말을 받아 넘겼다. 물론 거의 다가 급조한 티가 팍팍 나는 쓸데없는 말들이었다.
“먼저 제국연합 놈들을 작살내고, 그 다음에 남은 신성제국 놈들을 작살…….”
“털보 머리 박으랬지?”
“옙! 캡틴.”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먼저 한 이야기를 재탕하는 발터를 원 자리로 돌려보낸 제라르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두 놈 다 지칠 때까지 구경하다가 남은 놈들을 치면…….”
“방금 누구냐!”
귀에 솔깃한 내용이 들리자 제라르가 재빨리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며 묻자 한쪽 끝에 있던 산타레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오, 전직 산적! 자세히 말해봐.”
“흐흐흐, 그게 말입니다요. 제가 예전에 산적질을 할 때 옆 산채 놈들과 세금 징수원 놈들이 쌈이 붙은 일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때 몰래 부하들을 이끌고 숨어 있다가 전투가 끝나고 나서 이긴 놈들을 때려잡고 물건을 모두 턴 적이 있었는데 말입니다요.”
“어떤 놈들이 이겼었는데?”
희희낙락한 얼굴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산타레의 말을 듣던 제라르가 잠시 말을 끊고 질문을 하자 당당하게 대답했다.
“옆 산채 놈이요!”
퍽!
“커헉!”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아가 박힌 제라르의 주먹에 산타레가 나동그라졌다. 제라르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달려들어 밟으며 외쳤다.
“이런 상도덕도 없는 새끼! 동종직업을 등쳐먹어?”
“끄어억!”
퍽! 퍽! 퍽! 퍽!
드디어 폭발해버린 제라르의 폭력은 보고가 말림으로써 간신이 멈출 수 있었다.
“후우, 여하간 도움이 안 되는군.”
“대모달.”
여전히 씩씩대며 한숨을 내쉬는 제라르에게 보고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 말을 걸었다.
“왜?”
“어차피 싸우러 모인 놈들이니 지들이 치고받고 싸우도록 놔두는 게 여러모로 최선이지요. 거기에 우리는 균형만 잡아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
보고의 한마디에 제라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뼉을 쳤다.
“그렇군! 간단한 사실이었잖아!”
“맞습니다.”
“그렇다면 제국연합의 함대를 친다!”
“예?”
제라르가 내놓은 해답에 해적들이 입을 떡 벌리며 반문했다.
“함선수로는 비슷할지 몰라도 붙으면 상대가 안 됩니다!”
흑고래 발터가 벌떡 일어나며 반박하자, 제라르가 피식 웃으며 대답을 늘어놓았다.
“당연히 정면으로 붙으면 안 되지.”
“암습하기에도 조금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주변에 섬들이 많다 하더라도 우리 함대가 적은 수는 아닙니다.”
“어차피 지금 적들은 거의 모두가 하선한 상황인데다가, 빈 배들이 대부분이라고. 거기에 지금 신성제국의 함선들의 대부분은 괴멸되어버렸단 말이지. 사실 오늘의 전투로 제해권을 확실하게 잡은 것은 제국연합이지만 우리의 존재는 노출되지 않았다. 이해가나?”
“으으음.”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발터의 표정은 여전히 펴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라르는 잠시 숨을 돌리고 제국연합 함대를 노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어쩔 수 없어. 이게 최선이란 말이지. 제국연합의 함대를 치는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야. 막말로 싸우다가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제국연합은 바다로 도망가면 된다고 생각 할 지도 몰라. 왜? 제해권이 있으니까.”
제라르의 설명에 한쪽에 시체처럼 처박혀있던 산타레가 고개를 들고 얼굴을 찡그리며 반박을 하였다.
“꼭 그런다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제국연합이지만, 육지에서의 전투는 두 제국이 신성제국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건 뒷산 오크들도 아는 사실이야.”
“그래도 굳이 칠 이유가…….”
제라르의 말에 인정은 하면서도 산타레나 발터는 걸리는지 구겨진 얼굴을 필 줄 몰라했다. 그들의 내심을 읽은 제라르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그림이 안 나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제국연합의 퇴로를 막아야 한다는 거야. 퇴로가 막히면 그들도 필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단 말이지.”
“흐으음.”
자의가 아닌 타의로 배수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쯤 되자 선장들이 저마다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고민을 하는 가운데 제라르가 한마디 덧 붙였다.
“접근하는 방법은 우리가 위장을 위해 벌목작업을 한 것을 이용하는 거야.”
“잘 하면 가능할는지도.”
심사숙고를 한 발터가 처음으로 긍정의 표현을 하자 다른 산적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했다. 그들의 생각이 움직이는 기미가 보이자 제라르가 쐐기를 박는 한마디를 던졌다.
“제국연합의 함대를 무너트리면, 결국 이 바다는 우리 것이 된다.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바다!
바다사나이들에게 이보다도 더 달콤한 설득은 없을 것이다.
“자, 그럼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 볼까?”
이미 눈을 반짝이기 시작한 그들을 앞에 두고 제라르가 해도를 탁자위에 펼치고 세부작전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의 뇌리에는 세이렌과의 데이트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제121장 정벌의 서곡
갑자기 빨라진 행군속도에도 가우리군은 늘어지지 않고 잘 따라 붙었다. 어차피 몸도 가벼웠기 때문에 낙오란 있을 수 없었다. 단지 느긋하던 행군이 빨라진 것에 대한 의문만이 가우리 병사들 사이를 맴돌 뿐이었다.
“척후가 돌아옵니다.”
멀리서 어둠을 뚫고 한때의 기마가 다가오자, 연휘가람이 확인을 하곤 고진천에게 척후대의 귀환을 알렸다. 척후의 선두에는 을지우루가 직접 말을 달리고 있었다.
“이미 준비 ㅤㄷㅚㅆ습네다!”
“그런가.”
말을 몰아 옆으로 다가온 우루의 말에 고진천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빠르게 나아갔다. 그 뒤를 질세라 묵갑귀마대가 따라붙었다. 조금 더 지나자 수풀이 우거진 숲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천여 명은 됨직한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워워.”
말을 멈춘 진천의 앞으로, 먼저 길을 떠났던 리셀이 지친 얼굴로 다가왔다.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사옵니다.”
“괜찮은가.”
약간 안색이 창백한 것을 보고 진천이 무뚝뚝하지만 걱정이 담긴 말로 상태를 물었다. 다행히 마나를 많이 끌어 써서 피곤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
“단지 조금 피곤할 뿐이옵니다.
“어쨌든 지금부턴 좀 쉬도록.”
리셀에게 휴식을 명한 진천이 리셀이 다가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여 명의 병사들이 진천이 지나칠 때마다 각자 예를 올리고 곧 바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여기까지 달려온 병사들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진천의 단호한 음성이 외쳐졌다.
“물러서는 것은 여기까지다!”
* * *
“가우리 열제께서 지금 약속 장소에 도착하셨다고 하옵니다.”
베르스 후작의 말에 알세인 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무언가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옆의 바이칼 공작 역시 복잡한 심경을 얼굴에 그대로 표현 해 내고 있었다.
“정말 하실 생각인가 봅니다.”
바이칼 공작의 음성의 그의 심경을 대변하듯 약간의 흔들림을 가지고 울려나왔다.
“처음에는 을지부루 장군의 죽음으로 인한 충동인 줄 알았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더군요.”
# 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