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53
강철의 열제 353화
다른 막사와는 달리 화려함을 자랑하는 신성제국의 지휘막사 안에서는 거대한 기운을 뿌리는 두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부군단 군단장이자 대륙의 십인 중 하나인 남부의 팔라우 케니클 후작이 그 둘 중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던 용병왕 코요 블라미르였다.
“추가로 예상되는 적 병력이 얼마나 되지?”
보고를 듣던 케니클 후작이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묻자 부동자세로 서 있던 젊은 기사에게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 부분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집계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예상하기로는 10만 이상일 것이지만 적어도 20만은 안 될 것이라고 합니다.”
“넉넉잡고 50만 이하라…….”
“크흣.”
특이한 웃음소리와 함께 블라미르의 얼굴에 새겨져 있는 수십 개의 상처가 씰룩거렸다.
그 상처는 얼굴뿐 아니라 온몸에 새겨져 있는 듯 옷 밖으로 나온 부분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치열한 삶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아주 작정을 했나 보구만.”
블라미르의 말에 케니클 후작의 한쪽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그래 작정하고 미친 거지.”
“크흐흣.”
케니클 후작의 말에 블라미르는 팔짱을 끼고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에 동화되었는지 케니클 후작도 마주 웃음을 터트려갔다.
“나가봐라.”
웃음을 흘리던 케니클 후작의 손짓에 두 거인의 기운에 눌려 잔뜩 긴장하고 있던 기사가 군례를 올리고 재빨리 빠져나갔다.
“그래도 50만이라는 병력이 모이게 되면 확실히 골치 아플 것 같은데 말이지.”
“그렇지. 블라미르, 네가 먼저 환영인사를 해 줘야겠다.”
“크흣, 친구 원하던 바이네.”
제국의 후작이라는 직위를 가진 자신에게 서슴없이 친구라 말하는 블라미르의 대답에 케니클 후작이 이를 드러내며 웃음 지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이제 더 이상 자네는 야인으로 돌아다닐 필요 없지. 안 그런가?”
“크흐흣. 맞아 이제 나도 정착해야지. 스승님의 유지에 따라 돌아 다녔지만 이젠 지쳤다고.”
“그렇겠지. 하지만 나 역시 스승님 때문에 이 고리타분한 자리에서 늙어 버렸다고. 네 녀석이 들어오면 이번엔 내가 좀 돌아다닐 거야.”
“크흣, 그러던지.”
케니클과 블라미르.
둘의 공통점은 바로 같은 스승이었던 것이다. 밀리오르 황제와 둘만이 아는 사실이 이제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것이다.
용병.
어느 나라나 용병이라는 존재들을 쉽게 첩자로 활용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적인 몬스터의 존재는 용병을 필요로 하게 한다. 그런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용병이 없는 곳은 없다. 그리고 용병은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달려간다. 이렇기 때문에 용병은 국경을 자주 넘나든다. 게다가 합법적으로 무기도 소지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의심 없이 적국에 쉽게 침투시킬 수 있는 첩자의 위장신분으로 용병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이다.
물론 흔하기 때문에 용병에 대한 감시도 철저하다. 하지만 용병왕이라는 존재는 그런 위험에서 한걸음 비켜날 수 있다. 그가 지금까지 중립을 지켰기에 각 제국들의 굳건한 믿음이 설마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것을 노린 것이 바로 블라미르의 존재였다. 아무리 신성제국이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제국을 상대로 아무런 준비 없이 싸울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적이 모르는 한 가지 패는 항상 승패에 치명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숨겨둔 패의 유용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라미르라는 패는 숨겨둔 패 치고는 엄청난 패인 것이다.
용병왕인 코요 블라미르가 허름한 장비의 병사들과 가지각색의 복장을 하고 있는 용병들의 앞에 섰다. 병사들은 저마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두터운 천으로 만든 옷이 그들의 목숨을 기댈 갑주요, 단단해 보이는 창대에 매달린 뾰족한 창날이 그들의 최고이자 최후의 무기이다.
반면에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는 모습의 용병들은 달랐다. 물론 간간히 멍해 보이는 용병들도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눈빛이 칼날과 같은 용병들이 섞여 있었다.
바로 블라미르의 직속 부대가 용병들 사이에 숨어있는 것이다. 각기 기사라 불려도 모자라지 않을 강자들인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블라미르의 얼굴에 흡족한 웃음이 떠올랐다.
물론 다른 이들의 눈에는 흉악해 보일 모습이다. 그런 웃음을 얼굴에 그리고 있는 블라미르 역시 허름한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그 안에는 붉은 빛이 감도는 갑주가 자리 잡고 있었다. 피를 상징하는 그의 갑주인 것이다. 그것을 낡은 망토가 감추어 주고 있었다.
“대열을 갖추어라!”
말을 탄 젊은 기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목소리를 높이자, 가장 앞 열에서 창 하나를 그러쥔 병사들이 두려운 눈빛을 하고 모여들었다. 그 사이로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커다란 방패만을 든 병사가 중간 중간 끼어들었다.
자세히 보면 방패라기 보단 커다란 나무판자로 볼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병사들의 생명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용병대는 보병대 뒤로 붙어라!”
또 다른 기사들이 명령을 내리는 깃발을 들고 말을 몰아가자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용병들이 보병들 뒤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어 활을 든 궁수들이 양 옆으로 재빨리 달려와 섰다. 보병이나 용병과는 달리 제대로 복장을 갖춘 것이 정예병임을 알 수 있었다.
기사들이 다그친다 하더라도 10만이라는 병력이 대형을 갖추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른 새벽에 시작된 기사들의 움직임이 아침나절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나마도 각 부대별로 모여 있었기에 정리가 된 것이다.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 팔라우 케니클 후작이 말을 타고 나왔다. 출정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병력을 둘러보던 케니클 후작의 눈이 블라미르의 눈과 마주쳤다. 허름한 모습으로 위장을 한 블라미르의 입술이 들리며 허연 이가 드러났다.
웃고 있는 것이다.
보일 듯 말 듯 마주 미소 지은 케니클 후작이 명목상 지휘관인 롱 마이올 백작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
“출진하라.”
“출진하라아!”
마이올 백작은 케니클 후작의 낮은 음성과는 달리 모여 있는 모든 병사들에게 들리도록 커다란 목소리로 출전을 명했다.
이곳에 진을 치고 있던 병력 중 절반에 해당하는 10만의 대병력이 서전을 장식하러 움직인 것이다.
대륙의 운명을 가늠하는 시발점인 팔란시아 평원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뿔 고동 소리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대지를 타고 울려나갔다.
* * *
뿌우! 뿌우우~!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뿔 고동 소리와 함께 10만의 병사들이 대열을 갖추고 평원 한 자락을 매우고 선 것은 태양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을 때였다.
헤네시아 신성제국의 10만 대군을 맞이한 것은 당연히 슬레지안 해상제국과 아메리 연방제국의 대군이었다.
새까맣게 몰려오는 10만 대군을 맞이하면서도 제국연합의 군대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숫자만으로 본다면 신성제국 보다도 더 많은 15만이라는 병력이 대열을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 선두에는 해상제국의 쇼오 공작과 연방제국의 밀리엄 후작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몸이 달았나 보구먼.”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쇼오 공작이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자 밀리엄 후작이 덩달아 웃음을 터트렸다.
이들의 여유에는 자신들의 병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지만, 다가오고 있는 신성제국 병력이 눈으로 보기에도 허술해 보인다는 점도 작용했다.
“예상보다 더 쉽겠습니다.”
밀리엄 후작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하자 쇼오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들로 정예병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 보자는 건가…….”
“그렇겠지요. 설마 저 상태의 병력으로 우릴 상대하려고 들지는 않겠지요.”
“후후후.”
그들의 얼굴에는 이미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섣부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공격해 들어가는 입장이라면 분명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이면 그 어느 누구라도 지금 이들처럼 웃음 지을 것이다.
신성제국 진영에서 사신이 달려와 전쟁의 시작을 통보했다.
어차피 이미 준비는 서로 끝난 마당이지만, 예의는 지키려는 모양이었다.
신성제국 사신이 진영에 되돌아가자마자 뿔 고동 소리들이 연달아 짧게 울리며 10만의 대열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헤일 셀미어 백작. 서전을 장식해 주게나.”
밀리엄 후작의 말에 연방제국 출신의 셀미어 백작이 군례를 올리며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을 몰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밀리엄 후작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호오, 조만간 연방제국에 새로운 마스터가 나타나겠구려.”
“하하하, 제가 가장 아끼는 제자이자 수하지요.”
쇼오 공작의 사심 없는 칭찬에 밀리엄 후작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만큼 자랑스러운 제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가 점쳐지는 서전을 이끌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전쟁에서 서전과 종전을 이끈 지휘관은 어떠한 모습으로든 기록에 남는다. 중간 소소한 전투에서보다 첫 서전, 그것도 지금과 같은 대군을 이끄는 전투에서의 서전을 승리한다면 그 출세 길이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 분명했다.
대지가 달아오르고 20만이 넘어가는 인간들의 숨결이 서로를 향해 다가간다. 맹수가 먹이를 노리듯 두 무리의 병력들은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갔다.
“대열을 흩트리지 마라!”
“앞과의 거리 유지하란 말이다!”
나아가는 병사들을 향해 기사들의 외침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마치 눈앞의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독려하는 소리보단 병사들의 줄 맞추기에 더 급급한 모습이었다.
사실 이것이 정답이다. 수만이 넘어가는 대병력들의 전투, 그것도 이런 대평원에서의 전투는 진형이 흐트러지는 쪽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의 정도가 중요한 것이다. 옆의 병사가 화살에 맞아 나가떨어지더라도 동요치 않고 대열을 갖추며 나아갈 수 있는 배짱이 중요한 것이다.
기본에 충실한 쪽이 전쟁에 승리하는 법이다.
그래서인가?
다가오는 제국연합도 대열을 흩트리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후욱! 후욱!”
맨 앞 대열에 서 있는 병사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눈앞에 늘어져 오는 적들의 벽이 마치 자신에게만 다가오는 것 같은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병신새끼, 정신 차려!”
“허억, 헉. 아, 알겠습니다.”
다행히 징집병들 사이사이에 경험 많은 병사들이 껴 있어서 흥분해서 걸음이 빨라지거나 위축되어 느려지는 병사들을 윽박질러 어찌어찌 가라앉혔다.
하지만 그런 선두와는 달리 뒤따라오는 용병들의 눈빛은 마치 먹이를 살피는 맹수들과도 같았다.
우둑, 우둑.
어떤 용병은 자신의 목을 좌우로 꺾으며 몸을 풀며 나아가고 있었다. 어떤 용병은 고개를 빼어 올려 적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보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자신의 거검을 천천히 잡아가는 용병왕 블라미르가 살기어린 눈빛을 하며 적진을 살피고 있었다.
“큭, 찾았군.”
득의에 찬 블라미르의 웃음이 흘러나오자 그 주변에 일정한 모습으로 호위하듯 함께 발걸음을 옮기던 용병들에게서 살기가 치솟았다. 목표를 찾았다면 말살하는 게 그들의 임무.
블라미르의 눈동자에는 화려한 갑주를 하고 적 대역의 중간에서 말을 몰아오고 있는 헤일 셀미어 백작이 각인되어졌다.
빠우! 빠우웅!
느릿느릿 이동하던 두 거대병력이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신성제국 측에서 일제히 뿔 고동들이 울려 퍼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울려대는 뿔 고동 소리와 함께 팔란시아 평원 대전의 서전은 신성제국이 알렸다.
“속보로!”
“속보로오!”
병사들의 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대열 맞추란 말이야!”
걸음이 빨라지자 지금껏 잘 맞추어왔던 대열이 흐트러졌다. 사실 10만이나 되는 병력이 일정한 대열을 갖추며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쉬운 일인가?
훈련의 미비가 눈에 보이는 듯이 대열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성제국이 자랑하는 집단진의 운용과는 확연하게 다른 어설픈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이 제국연합에 자신감을 주었는지 다가오는 병사들의 모습에 힘이 있었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반면에 신성제국은 조금씩 대열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역시 소모품들이군.”
용병왕 코요 블라미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직 적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남았는데도 이렇게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더 가봐야 답이 없었다.
“찰스.”
“예.”
블라미르의 부름에 옆에 로브를 입고 있던 자가 다가왔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가벼운 복장으로 중요 부위만을 보호한 모습은 전형적인 마법사의 복작이었다.
“머저리 같은 지휘관에게 더 기다리지 말고 달리라 전달해라.”
“지금 말입니까?”
“어차피 앞의 멍청이들은 소모품이야 그저 우리들이 안전하게 갈 수 있으면 된다. 뛰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나지막하지만 살기를 담아 윽박지르는 블라미르의 명령에 마법사가 몸을 움츠리며 통신을 시도했다.
잠시 후, 선두에서 말을 몰고 가던 롱 마이올 백작이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그가 있는 방향을 되돌아보았지만, 더 이상 망설이지는 않았다.
“전군, 돌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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