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54
강철의 열제 354화
와아아아!
10만이라는 거대한 병력의 함성이 팔란시아 평원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가 몰려오는 듯한 모습으로 급격히 가까워지는 신성제국 병사들의 물결에 제국연합을 이끌던 헤일 셀미어 백작이 약간 당황한 얼굴을 보였지만 그것은 이내 미소로 바뀌었다.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이미 승리라도 한 듯이 헤일 셀미어 백작의 팔이 올라가자 기사들과 병사들이 호응하듯이 마주함성을 질러갔다.
“궁수대 준비하라!”
셀미어 백작의 외침에 수기들이 일제히 올라갔고, 보병들의 사이사이로 활을 든 궁수들이 몰려나와 병사들의 앞에 늘어섰다.
“기사단과 기마대는 적습에 대비하라!”
연이어 울린 명령에 보병들의 대열 양 끝에 대기하던 기마들이 대열을 갖추고 금방이라도 달려갈 준비를 하였다.
지금껏 느리게 이어졌던 두 무리의 행동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신성제국 병사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있는 것이 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셀미어 백작이 호쾌한 동작으로 자신의 애검을 뽑아들며 외쳤다.
“전군 돌격하라!”
“돌격하라!”
돌격 외침이 울리고 뿔 고동 소리가 사방을 진동하며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달려 나가는 제국연합 병력의 머리 위로 화살의 비가 날아올랐다.
제국연합 병사들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던 화살의 비는 곧 마주 달려오는 신성제국 병사들을 향해 사신의 낫처럼 내리박혀갔다.
“앞 열은 계속 달리고 그 다음 열은 화살에 대비하라!”
“방패 들어올려!”
달려 나가는 신성제국의 대열 여기저기서 기사들의 다급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의 외침에도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기 위해 날아드는 화살의 비에도 병사들의 행동은 민첩하지 못했다. 너무 일찍부터 달리기 시작한 탓에 체력 소모가 컸던 탓이다.
그럼에도 생명이 달린 일인지라 병사들은 최선을 다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패라고 부르기에는 엉성하지만 그 크기가 넓은 판자를 든 병사들이 달리던 자리에서 멈추었다.
제일 먼저 멈춘 병사의 옆으로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른 방패병들이 몰려와 대여섯 명씩 짝을 지어 어설프게나마 방패를 바짝 붙였다.
그러자 화살비를 피할 수 있는 훌륭한 방어막이 곳곳에 만들어 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몸집보다 큰 방패를 들고 달리는 병사들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어 그들보다 앞쪽의 병사들은 그저 앞으로 달리는 것이 최선일 뿐이었다.
이제 화살의 비가 쏟아져 내리고 죽음이 찾아왔다.
타타타탕!
“커헉!”
방패의 그늘을 찾아 달려오던 병사들의 몸에 서너 개의 화살이 박혀들었다.
화살비를 막아내는 방패의 안전한 그늘 안에서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동료들의 눈빛을 맞으며 수많은 병사들이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해 갔다.
“이동하라!”
화살비에 비교적 안전한 기사들은 갑주를 방패삼아 화살들을 튕겨내며 명령을 내렸다.
한 번의 일제사격이 끝나고 또다시 그들을 향해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지만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방패의 그늘을 피해 앞쪽에 있는 방패그늘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제국의 정예병이라면 쓸 필요도 없는 방법이었지만, 급조된 징집 병들을 가지고 쓸 수 있는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이었다.
헤일 셀미어 백작의 얼굴 표정이 굳어져갔다.
지금의 전장상황이 제국연합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던지, 아니면 신성제국의 대응이 지나치게 좋다 던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상대로 신성제국의 병사들은 너무 일찍부터 달리기 시작한 탓에 화살공격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이미 지치기 시작하였다. 그의 얼굴이 굳어지게 된 이유는 바로 적들의 대응 방식 때문이었다.
첫 번째 화살이 쏟아져 내릴 때 달려오던 적 대열에서 마치 비를 피하기 위한 대피소처럼 만들어진 방패우산들…….
성인 남자들의 몸통보다 훨씬 넓은 나무판자들이 여럿 보이자, 아무런 방어 수단이 없는 병사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대피소로 변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세 번째 일제사격의 간격을 틈타 병사들이 이리저리 방패의 그늘을 옮겨 다니며 전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신선한 방법이라던 지 두려운 방법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소수전투 부대 운용에서라면 손뼉을 칠만한 대응이겠지만, 이 전투는 적어도 10만 이상의 대병력이 맞붙는 전투다.
처음 양측이 대열을 갖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대병력이 평원에서 붙는 이런 전투는 힘과 힘의 싸움이며 대열과 대열의 싸움이다. 어느 쪽의 대열이 먼저 무너지느냐가 전투의 승패를 가리는 상황에서 지금 신성제국의 행동은 상식 이하였다.
“대체 뭐하자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만…….”
셀미어 백작의 어처구니없다는 음성에 보좌관으로 따라붙은 레이 필리어스 자작이 어색한 웃음을 그리며 말을 받았다.
단지 화살 공격을 뚫고 온다는 상황으로만 보았을 때 저들의 효율은 괜찮았다.
처음 화살의 비가 쏟아졌을 때 비교적 앞 대열에서 달렸던 병사들은 방패그늘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마치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온몸에 달고 나뒹굴었지만, 그 이후의 희생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확실히 준비한 것이 분명한 행동으로 일제히 쏟아져 내리는 화살들의 간격을 틈타 이리저리 방패의 그늘을 넘나들며 착실히 접근해 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화살 공격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셀미어 백작의 눈에 보이는 신성제국 병사들의 대열은 이미 대열이라 부르기에 힘이든 상황이었다.
이리저리 흩어져 달려오는 모습에선, 집단이 보여주는 단단함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저렇게 달려와 봤자, 단단하게 뭉친 제국연합의 병사들 앞에 아무런 손해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런대도 저들은 마치 도착하는 것이 이번 전투의 목표처럼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저런 방식은 소수전투에서 난전에 능한 용병들이나 써먹을만한 방법이었다. 셀미어 백작의 생각과 비슷한 것을 떠올렸는지 보좌관 필리어스 자작이 어이없는 음성을 흘렸다.
“무슨 용병들 전투하는 것도 아니고…….”
“용병?”
필리어스 자작의 중얼거림에 내심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셀미어 백작의 눈동자에 약간의 병화가 있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적 대열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변화에 필리어스 자작도 셀미어 백작의 시선을 쫓았다.
“용병인가?”
“으음.”
셀미어 백작의 확신어린 음성에 필리어스 자작이 긍정적인 음성을 흘렸다.
선두에서 달려오는 병사들과는 달리 통일되지 않은 복장을 갖춘 이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 수도 적은 수는 아니었다.
“용병들이 섞인 것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습니다만, 지금 공격을 뚫고 오는 병사들의 후미도 이상합니다.”
전쟁에 용병들이 섞이는 것은 당연하다. 거대 용병을 제외한 나머지 뜨내기 용병들이라고 해서 제국의 징집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물론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충분한 보수를 받지만 말이다. 그들에게도 용병이 상당수 섞여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필리어스 자작의 말대로 용병대열의 앞에서 화살을 뚫고 오는 일반 병사들의 행동이었다. 가장 앞 열의 병사들의 행동은 징집병이 확실한 듯 화살에 이리저리 쫓기는 투가 역력하다면, 삼분지 이 부분에서 용병대열 전까지의 병력들의 행동은 조금 달랐다.
여유가 느껴졌다.
“알겠군.”
중간대열 이후부터는 징집병의 복장으로 변장을 한 용병들이 틀림없었다.
비로소 굳어졌던 셀미어 백작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몰랐을 때나 불안한 것이지 알게 된다면 절대로 불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용병의 비율을 속이다니 잔대가리 쓰는 것이 눈에 훤하게 보입니다.”
필리어스 자작 역시도 셀미어 백작처럼 적들의 행동을 읽어냈다.
“결과적으로 난전을 유도한다는 것인가?”
셀미어 백작이 말 위에서 팔짱을 끼며 피식 웃음을 흘리자, 필리어스 자작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핫! 그럼 그렇지. 뭐 그래도 저들 입장에서는 꽤나 나쁘지 않은 생각 아니겠습니까?”
“뭐 그럴 수 도 있겠지.”
셀미어 백작이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필리어스 자작의 말을 받았다.
어차피 징집병으로 이루어진 병력으로는 필패가 분명하니 용병들을 이용하여 난전을 유도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이쪽에게 조금의 피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안통하게 될 것이다.
“난전을 준비 하도록.”
“알겠습니다.”
뭐든 미리 준비한다면 쉬운 법이다.
대군을 움직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사들의 집단 운용이다. 그러기 위해 기사들과 귀족들은 일정 수의 병사들을 조율하는 임무를 가진다. 그리고 그 기사와 하위 귀족은 상위 기사나 귀족의 조율을 받는다.
그것이 대군을 이끌 때 중요한 점이다.
그것이 망가지는 경우는 뜻하지 않은 난전이다.
하지만 이미 난전을 유도하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지휘관과 기사들이 난전을 위해 대거 투입되기 때문이다.
필리어스 자작이 셀미어 백작의 명령을 전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휘부에 대기하던 수많은 기사와 하위 귀족들이 병사들의 대열로 속속들이 달려 나갔다.
그들이 난전에서 병사들을 이끌어 줄 것이다.
“뭐, 이정도 잔머리라도 써줘야 즐겁겠지.”
셀미어 백작이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자신의 애검을 쓰다듬으며 들뜬 마음을 진정시켜갔다.
그의 눈에는 이미 승리가 보였다.
제124장 용병왕 블라미르
“크흣, 빨리도 알아챘군.”
용병들의 대열에서 발걸음을 함께하고 있는 용병왕 코요 블라미르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탄탄하게 갖추어진 제국연합의 대열에서 말을 탄 기사들과 하급귀족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본진으로 보이는 곳에서 수백의 기마가 튀어나와 이리저리 병사들의 대열로 스며들어갔다. 누가 보아도 난전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이쪽의 전략을 알아챘으면 그렇게 해야지. 아주 훌륭해.”
적장에게 기특하다는 칭찬이라도 해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쪽의 전략이 자신들에게 들통이 났다고, 동네방네 떠벌리듯이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답이다.
자신들의 전략이 알려졌다고 해서 병력을 도로 물릴 수는 없다. 한 도시를 이루고도 남을 인원이 평원에 펼쳐져 달려오다가 반전을 한다?
동네 고블린들도 안 할 행동이다.
아마도 그렇게 하는 순간 학살이 시작될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대놓고 대응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공격하는 쪽에게 초조함을 줄 수 있다. 제국연합의 지휘부도 그런 것을 노리는지 더욱 요란하게 움직였다.
“찰스, 신호를 보내.”
블라미르의 명령에 그 뒤를 따르던 마법사 찰스가 나직하게 대답하고는 허공을 향해 작은 불길을 쏘아 올렸다.
그러자 용병대의 뒤쪽에서 제국 마법병단이 허공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빨리 움직여!”
화려하게 비상하는 제국의 자랑 마법병단에게 제국연합 수뇌부들의 눈길을 뺏긴 그 순간 달리던 용병들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변했다. 달리면서 다섯 명의 인원씩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짝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마법병단!”
셀미어 백작의 입에서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새까맣게 대지를 매우며 다가오는 신성제국의 병사들은 그에게 아무런 두려움을 주지 못했지만, 지금 허공으로 떠오르는 소수의 마법사들은 달랐다.
“마법사들은 대응을 준비하라!”
셀미어 백작의 명령에 해상제국과 연방제국의 마법사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을 메우는 화살 비 위로 떠오른 마법사들이 서서히 신성제국의 마법병단을 맞이하러 나아갔다.
잠시 후 인간에게 주어진 경이적인 무력, 마법이 팔란시아 평원 위를 수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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