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57
강철의 열제 357화
제125장 다시 모인 이들
콰콰콰콰콰!
수레바퀴가 부서질 듯이 비명을 지르며 굴러간다.
말들의 입가에는 거친 호흡이 연신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위에 올라탄 이들의 호흡도 거칠기 짝이 없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전장, 바로 고진천이 이끄는 가우리의 4만여 병력들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들 4만여 병력의 뒤를 따르는 말의 무리였다. 누구를 태우지도 않은 것이 마치 야생마들의 무리와도 같아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가장 선두의 대열을 이루는 것은 온몸에 칠흑의 마갑을 두른 묵갑귀마대의 퓨켈과 퓨마들이었다. 몬스터에 가까운 이 흉폭한 종자들을 이끄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한 마리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바로 이들의 위에서 힘으로 군림하는 최강의 전마였다.
“푸르릉!”
강쇠의 콧김소리가 울리자 지친듯했던 퓨켈과 퓨마들의 속도가 다시 올라갔다. 마갑 사이로 보이는 육중한 근육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마치 무늬처럼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런 묵갑귀마대의 전마들 뒤로 수많은 말들이 주인을 태우지 않은 채 빈 안장만을 달고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하염없이 달리기만 하던 인간과 말들의 대열이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눈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수만의 병력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고윈인가?”
선두를 달리던 고진천이 마주 달려오는 100여 기의 기마를 보고 미소를 머금었다. 그 기마들이 들고 있는 깃발들에는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한 마리 매와 붉은 삼족오기가 섞여 있었다.
바로 고윈의 매의 군단이라는 표식이었다.
그들이 진천의 앞에 다다를 때 즈음에는 전체 행군의 속도가 크게 떨어져 있었다.
다가온 100여 기의 기마는 먼 거리를 달려온 가우리의 본진을 감싸듯이 양 옆으로 말을 돌려 따라왔고 진천의 옆으로는 고윈이 말을 몰아 다가왔다.
“충!”
“오랜만이군.”
진천이 군례를 올리는 고윈을 맞이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자 고윈이 고개를 숙이며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빨리 도착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전쟁은 돈과 시간으로 하는 것이니까.”
“하, 하하핫! 그렇지요.”
진천의 대답에 고윈은 웃음을 터트리며 앞으로 나서 길잡이를 자처했다.
시간과 돈.
다른 수많은 부분이 전쟁에서의 승패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전쟁이 아닌 역사를 만들어왔다.
대군을 유지하는 핵심중 하나는 돈이다. 돈이 있어야 먹고 입히고 창칼을 만든다. 이 돈의 중요성은 일개 병사도 알고 있다.
진천과 4만여 병력이 수많은 막사들이 지어져 있는 병영으로 들어섰다.
그 넓은 병영 안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수천 명이 채 안됐다.
“모두 각자 정해진 막사로 들어가 쉬도록 한다!”
여기저기서 병사들을 이끄는 지휘관들의 음성이 울려왔다.
진천 역시 지휘막사로 지어졌는지 커다란 규모의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후퇴 후 진격.
후퇴는 요란스럽게 하되, 진격은 알아차려도 대비할 수 없게 한다.
이것이 이번 전쟁의 핵심이었다.
막사 안에서 연휘가람을 바라보는 고윈의 얼굴에 대단하다는 표정이 묻어났다. 단지 후퇴 후 진격이라는 전술 자체는 대단할 것이 못된다.
고진천이라면 충분히 내릴 수 있는 결정중 하나라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휘가람에게 작전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들은 고윈의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진천이기에 이런 작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휘가람이 있기 때문에 택한 것이라는 것임을…….
이번 전쟁의 핵심인 요란하게 후퇴하는 것은 굳이 요란스러움을 떨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가우리 본국의 전쟁 상황이 자연스럽게 모두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후방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그들이 내린 재진격의 명령.
고윈은 타당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미 처음부터 준비를 한 듯이 리셀이 후방 깊숙한 곳에 많은 물자를 준비해 둔 것이다.
하지만 고윈이 감탄한 것은 이 부분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과 매의 군단에게 내리어진 명령에 있었다.
본진의 진격로마다 병력이 머물 막사를 만들고, 중간 중간마다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미리 마련하라는 명령이었다.
거기에 전투용 기마가 아닌 단순한 짐말들을 차출하는 일도 그에게 떨어진 것이다.
단순하지만 시간이라는 적을 상대로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이후 고진천과 본대는 짐말을 타고 달렸다.
수레 역시 수만의 짐말과 가축 등이 끌며 달렸다. 그 뒤를 전마들이 따랐다. 여기에 강쇠가 우두머리로 그 역할을 하였다.
이들이 멈추는 시간은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
막사를 지을 시간도 필요 없고, 식사를 준비할 시간도 필요 없다. 오히려 그 시간을 쪼개어 휴식과 진군하는 대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곳이 아군의 영역이기에 가능한 점도 있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이와 같은 발상은 그 누구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발상이 다른 것이다.
지독히 효율적인 발상이 이들을 이렇게 이끄는 것이다.
“마치 연락병을 운용하는 것과도 같군…….”
“안 들어오고 뭣 하나.”
“아, 예.”
감탄을 흘리는 고윈의 귓가로 무뚝뚝한 진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먼 거리를 달려왔으니 피곤할 법도 한데 벌써 자리를 잡고 지도를 펴는 진천과 휘하의 장수들이었다.
“제국들 간의 전쟁 상황은 어떻게 되었는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진천의 질문에 고윈은 전날 들어온 팔란시아 평원의 서전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 * *
두 손을 가슴팍에 가지런히 올리고 있는 모습은 잠을 자는 사람처럼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산 사람이라면 있어야 할 가슴의 기복이 전혀 없다는 것은 이 사람이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단지 그것 뿐 아니라 말끔히 닦여져 있었지만, 정수리를 시작으로 사타구니까지 이어진 상처, 그리고 그것을 촘촘히 엮은 실들은 이 사람이 몸이 세로로 완전 두 쪽이 나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밀리엄 후작은 떨리는 음성으로 이 처절한 시신을 바라보았다.
두 눈을 감지도 못하고 부릅뜬 상태로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감정은 바로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한스러움이었다.
“정녕 헤일이 맞느냐?”
밀리엄 후작의 질문에 이미 처참한 시신으로 변한 헤일 셀미어 백작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킬 뿐이다.
“헤이일!”
밀리엄 후작의 외침에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방제국의 신성이라 불리기 이전에 자신의 혈육과도 같은 제자였다. 언젠가 자신을 넘어설 인재이기도 했다. 그런 셀미어 백작이 서전을 장식하러 나아가 싸늘한 시신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 빌어먹을 사태에 해답을 할 놈이 왜 한 놈도 없는 것이냐.”
항상 여유로움을 잃지 않던 밀리엄 후작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분노라는 괴물에 물들어 살기를 발하고 있었다.
“진정하시게.”
“크윽.”
보다 못한 쇼오 공작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어 그를 진정시켰다. 이곳에서 그를 진정시킬 사람은 해상제국의 쇼오 공작뿐이었다.
평상시라면 수하의 장수가 죽어 나가도 자신의 제국에 대한 체면 때문이라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밀리엄 후작이란 것을 잘 하는 쇼오 공작이다.
그런데도 쇼오 공작 앞에서 이토록 분노하는 것은 밀리엄 후작이 셀미어 백작을 그만큼 아꼈다는 이야기다.
밀리엄 후작의 분노가 가까스로 가라앉을 때 즈음 막사 안으로 들어온 것은 셀미어 백작의 참모인 필리어스 자작이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 역시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후, 후작 각하.”
힘겹게 말문을 여는 필리어스 자작의 오른팔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쪽 다리 또한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마법으로 치료를 받은 듯하였지만, 이 상태로 보고를 하러 올 정도로 좋은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홀먼 백작이나 다른 지휘관들은 무엇을 하고, 자내가 오는가!”
환자 앞에서는 조용해야 하겠지만, 밀리엄 후작의 이성은 거기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분노한 밀리엄 후작과 어이없어하는 쇼오 공작의 시선을 받은 필리어스 자작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입을 열었다.
“쿨럭. 호, 홀먼 백작은 물론이고 다른 지휘관들은 모두 전사하였습니다.”
“뭐?”
힘겹게 입을 연 필리어스 자작의 말에 밀리엄 후작은 물론이고 쇼오 공작도 놀란 눈을 하였다.
분명 전장상황을 살피러간 정찰병의 말로는 신성제국의 병력이 반수만 겨우 살아서 후퇴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놀란 두 제국의 지휘관을 향해 필리어스 자작은 굵은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크흑, 신성제국 놈들이 노린 것은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필리어스 자작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보고를 시작했다.
# 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