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6
강철의 열제 36화
진천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제라르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을로 보기에는 군사요새 같은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던 중 이채로운 광경이 보였다. 아이들의 손에 나무 활이 쥐어져 있는 것이었다. 화살촉의 앞부분은 헝겊으로 쌓여있어 다치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어이, 꼬마야.”
“응? 말 아저씨네?”
“…….”
그가 달려온 것에 대한 소문이 이미 퍼졌는지 아이는 눈을 굴리며 서슴없이 그의 별명을 지어 버렸다. 제라르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 활은 누가 준거니?”
“이거? 군인 아저씨들이 나눠줬어요.”
“왜?”
“아저씨 바보에요? 그래야 울 엄마를 지키죠.”
자신을 바보 취급하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제라르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몇 번을 물어보아도 대답은 비슷했다.
‘말로만 해선 안 된대요.’
‘이거 못 다루면 밥 먹을 자격도 없대요.’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기 위해선 무기를 들라고 했어요.’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려면 싸울 줄 알아야 한대요.’
제라르는 마음이 복잡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대륙에서는 금기시하는 것을 이곳에서는 당연시 하고 있었다. 글을 익히고 무기를 다루는 것을 일반화시키고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는 사상까지 어린아이들의 머릿속에 심어 나가고 있었다.
민중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문과 무는 귀족의 손에만 쥐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만약 평민이 문과 무를 가지게 되고 알게 된다면 반란은 누가 수습할 것이며, 귀족은 어찌 이어나가겠는가? 그런 세상에서 살던 제라르에게 이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거기에 또다시 이곳의 여성들은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 서 있었던 것이다.
제라르가 머문 지 이틀째, 이곳에서 직접 물어보고 눈으로 본 제라르의 충격은 깊어져만 갔다. 그가 아무리 자유 기사라 하더라도 어디를 가든지 귀족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체 그는 무슨 생각인 것인가…….’
제라르의 머릿속을 채우는 의문이었다.
“허허, 안녕하시오.”
“아!”
노을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졌던 제라르의 뒤에서 리셀의 너털웃음이 들려왔다. 제라르는 짧게 인사를 하곤 다시 노을을 바라보았다.
“대체 저들은 어디서 온 인간들인지…….”
제라르의 짧은 의문이 흘러나왔다. 리셀은 빙긋이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삶의 방식이 다른 것뿐입니다.”
“방식이라니요?”
현자에게 답을 요구하듯이 정중한 질문이 리셀에게로 흘러갔다. 그의 그런 질문에 리셀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들은 무력을 상당히 중시하지요. 그러면서도 항상 머리를 깨우치도록 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교육을 시키고 일반 사람들까지 무력을 익히게 하냐고. 폭동이 두렵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무어라 했겠습니까?”
“……!”
제라르의 눈이 떠졌다. 그를 괴롭혔던 의문이 그것이었다. 리셀이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폭동? 안 나게 하면 그만이다.”
“네?”
어이없는 말에 리셀이 확인하듯 반문했다.
“자기가 칼을 든 이유를 모른다면 이길 수 없다. 지킬 것이 무엇인지 왜 이겨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리셀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백성이 현명해져야 군주가 실수를 안 할 것이 아닌가라는 대답이지요.”
“그게 무슨!”
대륙의 관점에서 보면 반대되는 대답이 나오자 제라르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그를 향해 리셀이 조용히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적어도 내가 주인으로 모시는 분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군림하는 자에게는 그만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백성들을 멍청이로 만드는 짓거리는 결국 나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일이 된다고 말입니다.”
“…….”
제라르는 자신의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응애애애.”
“…….”
“응애애애애애애!”
“쌌군.”
고진천은 자신의 품 안에서 울어대는 을지를 보며 짤막한 대답을 내놓았다. 을지를 안고 있던 진천이 팔 안에서 느껴지는 온기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었다. 물론 주변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유모와 시녀들은 을지가 울어댈 때부터 이미 알아차렸지만 말이다.
“대사자님, 을지님을…….”
“음.”
“우에에에엥.”
목이 터져라 울고 있는 을지를 넘겨준 진천이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알빈 남작의 저택을 다녀온 지 3일째가 되었다. 이전에는 가끔 얼굴만 비추고 지나가던 진천이 3일간 매일이다시피 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을지를 안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 처음에는 거의 죽어라 울어대는 을지였지만, 이제는 면역이 되었는지 배고플 때와 대소변을 보았을 때만 울게 되었다.
“흐으음.”
“무슨 근심이 있으시온지…….”
진천의 근심이 얼굴 밖으로 나타나자, 시녀들의 우두머리인 여인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러자 문득 무엇이 생각났는지 진천이 고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 부루나 우루가 온다 하더라도 아이를 가까이하지 말도록.”
“예?”
“그놈들도 못 믿어.”
시녀장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의미의 말이었다. 하지만 진천으로선 심기가 편치 않았던 것이다.
‘대체 그놈들이 나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길래…….’
머릿속에서 맴도는 의문 덕에 얼굴을 구기며 밖으로 걸어 나온 진천은 눈앞에 보이는 것에 다시금 미간에 두 줄기 선을 그어 내렸다.
“나오십네까?”
“고조 바람도 쐬시라요. 가자우.”
“네.”
진천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넨 부루와 우루가 숙영지 최고의 미소녀 사라와 인간과는 견줄 수 없는 미모의 하이디아와 함께 무엇이 즐거운지 노닥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나 봅니다. 저런 미녀들을 하나씩 꿰차다니 말입니다.”
“크으음.”
고진천의 그럼 아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휘가람이 옆에서 실실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그런 휘가람이 빙글거리며 서 있자 진천이 경계의 눈빛을 띠며 입을 열었다.
“병사들 훈련은?”
“오늘 일정 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치안 강화는?”
“했지요.”
“석벽 위에 올릴 대형 노의 배치는?”
“끝났습니다.”
이미 모든 일을 마치고 왔던 휘가람에게는 진천의 파상적인 질문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흐음.”
“엇차, 네리아에게 좀 가야겠는데요?”
“네리아는 또 누구냐?”
“아, 이번에 새로 들어온 호크라는 분 따님인데 갑자기 보자네요.”
“…….”
그랬다.
휘가람은 숙영지 내의 처녀들의 우상이었다. 진천이 못난 것은 아니었지만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위압감이 여인들을 멀리하게 만들었고, 시녀들 역시 열제의 후손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애초에 접근도 안했다. 게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 생각했던 부루와 우루마저 눈앞에서 배신을 한 것이었다.
‘위아래도 없는 놈들.’
진천은 욕구 불만이었다.
한쪽에서 한 병사가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먹을 것을 건네주고 있는 장면이 진천의 눈에 들어왔다.
“잘 먹어라.”
“네.”
“기율 오빠라구 해라. 다른 사람들이 뭐 주더라도 함부로 믿지 마. 남자는 다 늑대야.”
“오빠는?”
“난 빼고.”
부여기율은 어김없이 오늘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고 있었다.
“후우.”
그 모습을 보던 진천이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려 다시 을지의 거처로 들어갔다.
“…….”
기저귀를 갈아서인지 방실거리는 을지를 본 진천의 얼굴이 다소나마 펴지고 있었다. 유모에게 을지를 넘겨받은 진천이 약간의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진천 오빠라고 해봐.”
“꺄아하아~.”
“…….”
“…….”
순간 시녀들의 몸이 굳어졌다. 그럼에도 진천은 계속 오빠라는 단어를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었고, 을지는 이윽고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열었다.
“아부우 아쁘아!”
“…….”
순간 진천의 미소가 걸린 입은 그 상태로 굳어져 버렸다. 오빠라는 말과는 달리 원치 않던 아빠라는 단어가 진천의 마음에 대못을 내리박고 있었다.
“대사자님! 제랄이라는 사람이 찾사옵니다.”
“나가마.”
마음의 상처를 입은 진천이 왠지 의기소침해 보이는 어깨를 하고 거처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대충 의도를 눈치 챈 시녀들의 을지에 대한 언어학 학습이 집중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특히 최우선적으로 오빠라는 단어에 대한 학습이 집중적으로 시행되었다.
고진천이 밖으로 나오자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이 서 있는 제라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자고 했나?”
“예.”
진천의 무뚝뚝한 질문에 제라르에게서 공손해진 대답이 나왔다. 팔짱을 끼고 제라르를 내려다보는 진천의 눈길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결정했군.”
“예.”
찰나의 침묵이 다시 오간 뒤, 다시 한 번 다짐하듯 제라르의 입이 열렸다.
“남겠습니다.”
“좋군.”
말을 하는 제라르도 진천의 무뚝뚝함에 질렸는지 피식 웃고 말았다. 제라르가 미소를 띠운 채 질문을 던졌다.
“저에게 남아도 되고 안 남아도 된다 하셨지요?”
“맞다.”
“만약 제가 떠났다면 고이 보내 주셨겠습니까?”
“아니.”
제라르의 미소 걸린 입이 마치 경련이 일어나듯 떨렸다. 제차 확인을 하듯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죽일 생각이셨군요.”
“맞다.”
제라르도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분명 놔준다는 얘기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신을 살려 보낼 것 같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면에 함부로 거짓을 말할 사람이 아니라 생각되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주 태연한 모습으로 죽일 거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최소한 그가 말을 돌린다든지 할 줄 알았던 제라르였다. 하지만 자신의 궁금증은 풀어야 했다. 왜 거짓을 할 이유가 없는 위인이 거짓을 하면서까지 제안을 했는지.
“그럼 왜 처음부터 죽던지 여기서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 안하고 거짓으로 말한 겁니까?”
제라르의 질문에 진천이 뚱한 표정으로 툭 뱉어내듯이 말했다.
“목숨을 아끼는 겁쟁이는 필요 없으니까.”
“풋.”
진천의 당연히 하다는 대답에 제라르는 하늘을 보고 실소를 흘렸다. 지독하게도 사람을 고를 때 마음까지도 요구 하는 사내였다. 하찮은 화전민들에게 조차 진정한 마음을 요구했던 그의 모습이 왠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의 아래로 모이는 사람들이 모두가 이렇다면, 그 끝은 어떨까 궁금한 제라르였다.
자신의 길을 확인하고 싶었던 제라르의 입이 열렸다.
“저를 어디에 쓰시렵니까?”
“남의 무덤 파는 것 따위에는 안 쓰겠다.”
“…….”
이미 리셀에게 트레져 헌터라는 것을 배운 진천도 도굴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제라르의 무릎이 천천히 땅으로 굽혀졌다. 한쪽 무릎을 세운 채 꿇어앉은 제라르가 소리 높여 외쳤다.
“나 대륙의 자유로운 기사 뇌전의 제라르는 이 순간 이후로 주군의 뜻에 따라 행하는 한 자루 검이 될 것을 하늘에 맹세하는 바입니다.”
비록 형식은 달랐지만 당당한 제라르의 충성맹세는 진천에게도 충분히 전달되었다. 진천이 무릎을 꿇은 그에게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의 신념을 내가 받아들이겠다. 이후로 내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면 지금 그 신념에 따라, 나를 베어라.”
진천의 음성이 그를 훑고 지나가자 제라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는 숙소로 향했다. 담담한 걸음이지만 제라르의 마음에는 벅찬 희열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병사들을 몰고 대륙을 달리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
진천은 담담히 걸어가는 제라르의 등을 보면서 작은 미소를 입에 걸었다.
‘던젼이라…….’
도굴은 꺼림칙했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무덤을 파는 것과는 달리, 리셀의 설명에는 던젼이라는 보물창고를 터는 일이라고 했다. 진천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돈 걱정을 날려 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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