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61
강철의 열제 361화
“출항하라!”
둥! 둥! 둥! 둥!
크기가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함선들이 일제히 닻을 올리고 바다로 향하기 시작했다.
각 해적선단의 편제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제라르의 함선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명령이 전달되어갔다.
“흐음.”
해도를 내려다보는 제라르와 장보고의 얼굴에는 신중함이 서려 있었다.
아무리 각 선장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을 하였지만, 제라르의 입장에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충분히 심사숙고를 하고, 철저하게 작전을 짠 이후의 출항이었지만, 실전은 다르기 마련이다.
“대모달, 전 함선 출항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어. 장 선단장.”
항상 제라르의 주변에 붙어살던 페일이 눈에 보이지 않자 장보고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음을 던졌다.
“페일은 어디 갔습니까?”
“정찰.”
“벌써 말입니까?”
보고의 반문에 제라르는 해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한두 척도 아니고, 이 정도 규모라면 쉽게 걸릴 수도 있으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발견되느냐 발견하느냐.
이것은 항상 전쟁의 승패에 중요한 요건이 된다.
사실 이런 부분에 있어 가우리의 수군은 제국함대보다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가우리의 수군은 일단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고, 제국연합의 함대는 이미 밝혀질 대로 밝혀져 있었다.
거기에 페일을 비롯하여, 소수지만 가우리 인들과 인연을 맺은 세이렌들이 바닷물 속으로 정찰을 맡아주는 것만으로도 가우리는 각 제국들이 따라 올 수 없는 우위를 가지는 것이다.
“며칠 전에 떠난 선발대 상황은?”
제라르의 물음에 보고가 걱정 없다는 듯이 해도의 한쪽을 짚으며 답했다.
“이미 도착해서 위장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적 정찰에 걸리지는 않았겠지?”
보고가 짚은 곳은 신성제국 해안선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그렇지만 신성제국의 함대는 찾아 볼 수도 없다. 제국연합에 의하여 완전히 장악되었기 때문이었다. 제라르의 걱정에 보고는 아무런 문제없다는 듯 웃음지어보이며 말했다.
“일반적으로 정찰은 신성제국 서북쪽 해안 쪽을 주로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앙해 쪽에서 신성제국 서쪽 해안으로 이어지는 항로는 경계가 허술합니다. 뭐 저라도 이곳까지 함대를 낭비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그래주어야지. 어디 해적나부랭이가 덤벼들까 생각하겠냐고. 푸흐흐.”
보고의 말에 제라르는 악동과 같은 웃음을 지어갔다.
* * *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 약동하는 구릿빛 근육이 꿈틀거린다.
“썅!”
그리고 욕설 또한 난무한다.
“욕할 시간 있으면 빨리 좀 움직여라.”
“지난 몇 달간 나무꾼처럼 줄창 나무만 베게 만들더니만, 이건 또 뭐하는 짓인지.”
잎사귀가 무성한 커다란 나뭇가지를 나르던 사내가 핀잔을 주자 욕설을 내뱉었던 사내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에 핀잔을 주었던 사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게 다 살자고 하는 짓이라잖냐.”
“젠장, 해적 생활 12년에 이런 짓은 처음이다.”
“누군? 여러 번 한 짓이고?”
두런두런 말을 나누던 두 해적 중 하나가 갑자기 눈을 화등잔 만하게 뜨더니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가져가며 경고성을 발했다.
“침묵상황!”
“흡!”
그 순간 주변에서 커다란 나뭇가지들을 옮기던 사내들이 움직임도 멈추고 숨조차 죽인 채 나무라도 된 듯 멈추어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얀 깃발이 곳곳에서 휘둘러지고 나서야 모두 숨을 몰아 내쉬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길 이거 십 년 감수 했네.”
“빨리 움직이자고.”
“빌어먹을 차라리 치고받는 게 훨씬 편하지…….”
“이 망할 놈들아 누군 이 짓이 좋은 줄 알아? 그렇게 안달하지 않아도 조만간 실컷 치고받을 거니까, 걱정마라!”
약간의 불평을 쏟아내던 해적들이 어디선가 들려온 윽박지름에 이전보다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쯧. 썩을 놈들.”
잔소리를 듣고서야 바쁘게 움직이는 해적들을 바라본 춘삼이 망루위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선단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모습이 이제는 하나의 수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군대 군대 갑판이 보이는 곳도 있었지만, 그런 곳들도 빠르게 나뭇가지들로 위장되어져 가고 있었다.
실로 대공사였다.
이곳 주변에 있는 배들만 100여 척 가까이 되었다. 이 모든 배들이 미리 보아둔 섬에 들러붙어 그 섬의 일부인양 위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섬에 움푹움푹 들어갔던 곳마다 배들이 들어섬으로써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초유의 매복이 시작된 것이다.
“젠장, 나도 활질 하는 게 제일 편하다고.”
춘삼 역시 허벅지에 차고 있는 활을 슬쩍 바라보곤 한숨 섞인 음성을 내뱉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이미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 * *
헤일 셀미어 백작의 죽음에 당장이라도 쳐들어갈 기세를 보이며 분노하던 밀리엄 후작이었지만,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아갔다. 이런 커다란 전쟁에서 감정이 앞선다면 필패가 분명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병력으로 보아선 지금 밀어붙이는 것이 가장 낫겠지만, 하급 지휘관들이 이렇게 모자라서야…….”
쇼오 공작의 안타깝다는 음성이 밀리엄 후작의 아픈 가슴을 후벼 팠다.
죽은 자는 책임을 지지 않는 법 아닌가?
셀미어 백작의 무책임한 죽음은 밀리엄 후작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투 자체는 승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총사령관을 비롯한 대다수의 하급 지휘관들이 싹쓸이 당한 상태에서는 전술적으로 승리라기 보단 패배에 가까웠다.
전투 한두 번에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실리적인 부분은 신성제국이 가져간 상황이었다. 거기에 코요 블라미르가 최종적으로 신성제국과 손을 잡았다는 점은 이들에게 또 다른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번 충원병력과 보급물자가 오면 다시 한 번 밀어붙여야 할 겁니다. 그땐 제가 직접 군을 이끌 생각입니다.”
밀리엄 후작의 차분한 설명에 쇼오 공작이 적잖이 놀란 모습을 보였다.
“직접 말이오?”
확인하듯이 다시 질문을 던지자 밀리엄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적진에 두 명의 마스터가 확인되었으니 제가 직접 나서는 것이 나을 듯싶습니다. 쇼오 공작님께선 본진 사령부를 맡아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밀리엄 후작의 말에 쇼오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의 사기 진작에도 그 점이 차라리 나았다. 특히 병사들에게 마스터의 존재는 이들이 느끼는 것 보다 더욱 크게 다가왔다.
아무리 무소불위의 무력을 가진 존재라 하지만, 그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병사들 입장에서는 달랐다. 그들에게 있어선 적진에 그 존재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움츠려 들 수밖에 없었다.
왜냐?
항거불능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군에서도 마스터라 불리는 존재가 있다면 은연중 안심을 하게 된다. 마스터는 마스터가 막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밀리엄 후작의 말이 일리 있소. 거기에 실추된 제국연합의 명예도 회복해야 하지 않겠소?”
은근히 이전 전투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상기시키는 쇼오 공작의 말이었지만, 밀리엄 후작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반박할 수 있는 말도 없었거니와 그의 말대로 자신이 나선 것에는 그러한 생각이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처음의 전투야 블라미르, 그자가 제국간의 쟁투에 끼어들었으리라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일전에 그자에 대한 언급을 하였을 때 공작님께서도 전혀 예상치 못하였잖습니까.”
“큼, 그렇구려.”
밀리엄 후작이 블라미르에 대해 언급을 해가기 시작하자, 쇼오 공작이 한 발짝 물러섰다.
언급을 아예 안했으면 모를까, 밀리엄 후작이 그를 못 끌어들여 안타깝다는 말에 걱정 말라고까지 한 그였다.
더 이상 주도권 싸움을 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밀리엄 후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다릅니다.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지요. 처음이야 적의 숨겨진 힘과 의도를 잘 알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안 이상 같은 결과는 없을 겁니다.”
“그럴 것이요. 사실 적들도 그런 수작이 두 번은 통하지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처음 전투에서 무리를 하면서까지 한 것 아니겠소?”
밀리엄 후작이나 쇼오 공작도 신성제국의 처음과 같은 작전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전투 종료 후의 상황을 보기만 해도 신성제국이 무리했다는 흔적은 곳곳에 나오지 않는가?
“하하하, 어찌 되었든 쇼오 공작님이 다시 절 믿어 주신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겠습니다.”
“이런 별 말을 하오. 우리는 동맹 아니오.”
밀리엄 후작의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심이 섞여 있었다. 그가 지상전투를 맡고 있다고는 하지만, 쇼오 공작이 전투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어서 그의 지휘에 제동을 건다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밀리엄 후작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쇼오 공작은 마주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럼 오늘 아침에 도착한 함대가 수송해온 통해 보급물자와 병력이 이곳에 도착하는 대로 출정 준비를 꾸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하시오.”
두 제국의 사령관들의 대화는 그날 밤이 깊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또 다른 전투를 위해서 말이다.
* * *
600여 척의 함선이 바다를 매우며 나아가고 있었다.
해상제국의 깃발과 연방제국의 깃발을 달고서 유유히 항진하는 모습은 누구라도 여유를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지금 이들이 항해하는 바다가 해상제국이나 연방제국 앞바다는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 중인 신성제국과 가까운 바다였다.
“이거 뭐 전쟁 중인 것 같지도 않군.”
갑판을 닦던 한 선원이 걸레를 한쪽에 세워두며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첫 상륙 이후 해상제국의 함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신성제국의 잔존세력 무력화였다. 너른 바다를 떠다니는 모든 배를 잡을 수는 없지만, 각 주요 군사항은 달랐다.
그나마 남아있던 항구의 선박들은 해상제국의 급습으로 인해 괴멸되다시피 했다. 원래라면 아무리 해상제국에 비해 함대 세력이 열세인 신성제국이라 해도 그리 힘없이 무너지지 않겠지만, 가우리 원정으로 소비된 함선과 또 제국연합의 함대와의 대규모 교전으로 인해 더 이상의 전력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으로 한동안 신성제국의 함대는 제국연합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걸 언제 다 닦지?”
잠시 평화에 취해 손을 놓았던 선원이 다시 걸레의 자루를 집어 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너른 갑판 위에 사람이라고는 배의 운용에 필요한 선원들 몇이 다였다. 한숨을 내쉰 후 주변에 함께 항해하고 있는 호위함들을 바라보았다.
“제길, 다음에는 꼭 호위함에 붙여 달라고 해야지 이건 뭐, 물건이랑 다 빠지고 나면 텅 비어 버리니…….”
수송선인 탓에 물자와 인원이 빠진 배가 더욱 썰렁해 보이는 것이다. 선원의 투덜거림과 함께 배는 계속해서 신성제국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뚫어져라 본다는 말이 있다.
지금 제라르는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는 듯, 벽에 걸린 해도를 몇 시간째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시선을 해도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페일이 돌아왔습니다!”
사령관실로 뛸 듯이 달려온 장보고의 뒤로 페일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들어왔다.
-나 왔다.
“오! 페일 고생했다.”
제라르는 지친기색이 역력한 페일에게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지금 그의 함대에서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정찰을 맡은 페일과 세이렌들일 것이다.
-제국연합의 배들이 모든 물자를 하역하고 바다로 나왔다.
“위치는?”
기다렸던 대답이 페일에게서 나오자 제라르가 반색하며 물어갔다.
그러자 페일은 벽에 걸린 해도를 향해 다가가 한쪽을 짚어갔다.
-이곳을 지나고 있다. 예상과는 크게 다르지 않는 항로를 이용하고 있더군.
페일이 짚은 부분을 바라보는 제라르와 보고의 얼굴이 환해졌다. 제국연합의 함대가 움직이는 항로를 이미 파악해 놓고 100여 척의 함선을 섬에 붙여 위장까지 한 상황에서 만에 하나라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하던 그였다.
“좋군.”
제라르가 만족한 듯이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리자, 페일은 아직 자신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나섰다.
-문제가 생겼다.
“문제?”
페일이 약간 신중해진 얼굴로 문제를 언급하자, 제라르의 입가에 살짝 만들어졌던 미소가 사라졌다.
-함선의 예상수가 늘었다.
“얼마나?”
-자세하진 않지만, 약 800여 척은 되어 보였다. 그중 300여 척은 순수하게 전투용 함선인 것 같았다.
“뭐?”
“삼백?”
페일의 말에 제라르와 보고의 얼굴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그래 나올 때 불어난 듯싶더군.
“제길 왜지? 분명 들어갈 땐 500여 척에 전투함은 100여 척 뿐이었는데…….”
적의 전투함이 300척이라면 규모면으로는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니 오히려 앞서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비었다고는 해도 500척의 수송선까지 무시 할 수는 없다.
“더 이상 기다리기도 힘듭니다. 이번 수송선단을 치지 않는다면 다음번엔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최적기입니다.”
보고의 얼굴에도 걱정스러움이 묻어났지만, 어쩔 수 없다는 음성으로 제라르에게 말을 걸어왔다. 보고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던 제라르가 결정을 한 듯,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차피 제국연합과 싸우기로 결정한 상황. 200여 척이 늘었다지만 분명 지난 전쟁과 주변해역을 정리하느라 지친 병력들일 것이야. 아무래도 병력 교체를 빠르게 하려나본대, 이번이 아니면 더 힘들어진다.”
“그렇습니다!”
결단을 내린 제라르의 말에 보고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눈을 마주친 제라르가 한쪽에 대기하고 있는 마법사에게 외쳤다.
“각 함대에게 지금 변화된 적의 정보를 전달하도록!”
“예!”
“이후 전달받은 각 함대들에게 전속항진 명령을 내린다!”
“알겠습니다, 대모달!”
마법사가 통신구를 이용하여 전달을 시작하자, 제라르가 창가로 다가가 저물어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외쳤다.
“모조리 털어주지. 목숨까지도.”
노을에 비추어진 바닷물이 마치 핏빛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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