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69
강철의 열제 369화
새벽의 미명이 다가오는 바다 위.
푸르른 물결위로 부서진 배의 잔해와 물고기 밥으로 남기어질 시체들이 가득했다. 이미 냄새를 맡았는지 인근 섬에서 날아온 승냥이들이 하늘을 맴돌고 있었으며, 이미 일부는 때 아닌 만찬을 즐기러 하강해왔다.
“이, 이럴 수가.”
떠오르는 태양아래에 펼쳐진 광경에 세뮤 백작은 넋을 놓고 있었다. 바다를 제압했던 해상제국의 깃발은 이미 거의 내려간 지 오래고 연방제국의 깃발은 이미 찾아 볼 수 없었다.
밤에 시작된 전투는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고작 열여덟 척의 괴선박을 못 막은 대가치고는 엄청난 결과가 온 것이다. 함대의 대열에 난입한 열여덟 척은 수백여 척의 연결고리를 간단하게 끊어내었다.
그들에 의해 대형이 흐트러지자 해적 깃발을 달고 다가온 적들에 의하여 제국연합의 함대들은 천천히 외곽부터 각개격파를 당했다.
그 와중에 혼란을 주는 요인이었던 열여덟 척의 괴선박을 제거하러 떠났던 마법사들은 아무런 성과도 가지지 못한 채 절반만이 되돌아왔다.
“백작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참모들이 넋 빠진 얼굴로 불이 꺼져가는 바다를 바라보는 세뮤 백작의 팔을 이끌었다.
그러나 세뮤 백작은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이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트, 틀렸습니다.”
절망에 빠진 귀족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세뮤 백작의 사령선은 주변에서 싸우다가 자신의 함선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배를 버리고 탈출해온 귀족들로 그득했다.
그나마 해상제국의 깃발을 달고 있는 배들은 십여 척이 전부였다. 외곽의 전투함이 먼저 무너지고 이후에 수송선들이 그 거대함에 어울리지 않게 무너져 내렸다. 텅 빈 수송선에 전투원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얼마 저항도 못하고 함락당해 갑판 위에 모두 결박당한 체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처분을 기다리는 모습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혀, 협상을 하여야…….”
서걱!
“헉!”
“세뮤 백작님!”
조심스럽게 협상을 입에 담았던 귀족의 머리가 갑판위에 뒹굴었고 주인 잃은 몸뚱이는 천천히 허물어져 내렸다. 여전히 멍한 표정의 세뮤 백작은 피가 뚝뚝 흐르는 자신의 소드를 든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정녕 한밤의 꿈이 아니란 말인가…….”
처절한 패전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듯 주변을 둘러보던 세뮤 백작의 입에서 자조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세뮤 백작의 뒤로 다가온 푸른 갑옷의 기사들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군례를 올리며 말했다. 세뮤 백작은 말없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역시 지금의 상황에 참담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법사.”
“예, 사령관님.”
세뮤 백작의 곁으로 지친 모습의 마법사가 다가왔다.
“저들이 정말 일개 해적으로 보이는가.”
“모르겠습니다.”
세뮤 백작의 질문에 마법사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한 가지 말씀 드리자면, 전날의 전투에 저희 마법사들을 끊임없이 공격하던 것 중에 눈에 보이지 않게 빠르게 날아온 화살이 있었는데…….”
말을 하던 마법사의 손에 들린 짧은 화살에는 굳어버린 핏물이 묻어 있었다. 동료의 시신에서 뽑아왔음이 분명했다.
“이것은?”
세뮤 백작과 주변의 기사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무언가 집히는 것이 있는 표정들이었다.
“이전 신성제국의 로셀린 침공 시에 쓰였다던 그 괴병기에 대한 것과 같지 않습니까?”
“가우리군의 특수무기?”
“지나치게 짧은 화살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날아온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은 적 있습니다.”
세뮤 백작의 주변에 있던 제국연합의 무장들이 서로 나서며 자신이 아는 바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해적들 무리를 향해 가우리라고 단정 짓는 이는 없었다.
“적들의 사령선으로 보이는 함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령선임을 상징하는 듯, 여러 깃발이 달려있는 배가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이 견시수의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함선에 비해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그 배는 제국연합의 사령선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크고 단단해 보였다.
“마중 간다. 전원 전투 위치로 복귀하라!”
더 이상 고민을 할 생각조차 없는지, 지금까지 넋 나간 표정을 버린 세뮤 백작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져 내렸다.
뱃머리에 서서 다가오는 적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세뮤 백작의 손에는 아까 마법사가 보여주었던 작은 화살이 쥐여져 있었다.
뿌우우우!
전투의지를 알리는 뿔 고동 소리가 울려오자, 팔짱을 끼고 뱃전에 한 발을 올린 채 응시하던 제라르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펼쳐졌다.
“그래, 그래야지. 장 선단장 우리도 응대해 줘!”
“알겠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장보고가 호탕하게 대답을 하고 직접 뒤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북채를 대신 잡고 힘차게 울렸다.
둥! 둥! 둥! 둥!
꺼져가던 전투의 불씨를 되살리는 뿔 고동 소리와 북소리가 서로를 마주하며 울려 퍼졌다.
제라르의 사령선을 중심으로 호위를 하던 함선들이 먼저 제국연합의 남은 함선들을 향해 들러붙었다. 거리가 가까워오자 의례 그러듯 서로 간에 화살 비를 쏟아낸 그들 사이로 줄을 매달은 갈고리들이 서로 교차했다.
우지끈!
“와아!”
배와 배가 맞닿는 소리가 울려 퍼짐과 함께 밤새 소리 지르고 싸웠을 이들의 입에서 나올 외침이라고는 못 믿을 만큼 거대한 함성이 쏟아지며 서로의 배를 향해 달려 나갔다.
배와 배 사이로 가교를 놓듯 널찍한 판자들이 놓이며 그 위를 가우리의 병사들이 달려 나갔고, 몇몇은 밧줄을 이용해 날듯이 상대방의 배로 넘어 들어갔다.
제라르와 세뮤 백작의 함선도 서로의 머리를 맞대며 큰 충격과 함께 굉음을 울렸다.
그러나 이미 전투가 재개된 호위함들과는 달리 묘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제라르의 함선에서 발판이 드리워졌다.
덜컹!
배가 약간 출렁거리며 가교가 놓이자 그 선두에 제라르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다가왔다.
그 뒤를 장보고와 병사들이 따랐다.
텅!
제라르의 발이 세뮤 백작의 갑판 위를 내딛는 순간 약간이지만 제국연합의 병사들이 움찔거림을 보였다.
산책이라도 하는 듯이 넘어온 제라르와 그를 맞이하듯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세뮤 백작이 묘한 대치를 이루었다.
“반갑수다.”
팔짱을 터억 하니 끼며 제라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행동에 해상제국의 기사들이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당사자인 세뮤 백작의 태연한 모습에 모두 입을 다물고 노려만 보았다.
“네놈 정체가 뭐냐.”
“해적이지.”
“진짜 정체가 무엇이냐 물었다!”
고개를 삐딱하게 꺾으며 대답하는 제라르의 행동에 세뮤 백작이 노성을 터트리며 되물었다.
그러자 제라르가 재미있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입을 열었다.
“뭐, 해적이라고 해도 안 믿으면 어쩔 수야 없지만, 굳이 자세히 말하자면 바다의 지배자 내지는 해적왕 정도?”
여전히 긴장감도 없고 성의 없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세뮤 백작은 손에 들려있던 애기살을 제라르의 앞으로 집어던지며 다시 물었다.
텅!
“해적이 이런 무기를 들고 다니는 건가?”
짧은 화살이 제라르의 발치에 소리를 내며 박혔다.
그것을 본 제라르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바닥에 박힌 애기살을 뽑아 들었다.
“이런. 이건 안 들키는 게 좋은데. 뭐 어쩔 수 없나? 마법사가 적은 우리로서는 이것만큼 효율적인 무기가 없어서 말이지.”
집어든 애기살을 허공에 던졌다가 잡았다가 하며 대답하는 제라르의 행동에 세뮤 백작은 신중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며 노려보았다.
“네놈들이 가우리의 해군이라는 거냐.”
“ㅤㅉㅡㅂ.”
세뮤 백작의 말에 제라르가 입맛을 다셨다. 간밤의 전투에서 굳이 해적깃발을 단 것은 제국들 간의 전쟁이 더 심화되기 전까지 굳이 정체를 알리지 않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말해라!”
으르렁거리는 세뮤 백작의 물음에 제라르는 옆의 장보고를 향해 눈짓을 보내었다. 그러자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려 사령선에 신호를 보내었다.
잠시 후 해적기가 빠르게 내려졌다.
해적기가 사라진 자리로 붉은 깃발이 천천히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피처럼 붉은 바탕에 세발 달린 새의 그림이 바람에 휘날렸다.
삼족오였다.
“대 가우리의 해군이지.”
이제야 대답을 하는 제라르의 뒤로 늘어선 수백여 척에 이르는 함선의 깃대로 삼족오들이 일제히 솟구쳐갔다. 태양을 등진 모습이었기에 마치 수백 마리의 삼족오가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듯한 착각을 가져오고 있었다.
“큭.”
고개를 떨어트린 세뮤 백작의 입가로 웃음의 한토막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커다랗게 울려 퍼져갔다.
“크큭, 크하하하핫!”
느닷없이 울려 퍼지는 세뮤 백작의 앞에 서있던 제라르는 살짝 인상을 썼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치졸하고, 교묘한 놈들.”
고개를 든 세뮤 백작의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반면 느닷없이 교묘하고 치졸한 인간이 되어버린 제라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어이없다는 말을 내 뱉으려는 제라르의 음성은 세뮤 백작의 고성으로 인하여 묻혀 버렸다.
“그걸 믿으란 말이더냐!”
“뭐?”
“제국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는구나!”
“아니, 지금…….”
세뮤 백작의 입에서 쏟아지는 독설 속에서 제라르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으나 세뮤 백작은 그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닥쳐라! 네놈들 이 전투는 끝났지만 이 전쟁은 절대 네놈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
붕어처럼 입만 뻥끗 거리는 제라르를 앞에 두고 세뮤 백작은 뒤를 돌아 자신의 애검을 뽑으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대 슬레지안 해상제국과 아메리 연방제국의 전사들이여! 저 치졸한 자들에게 제국의 진정한 힘을 보여라!”
“와아아!”
세뮤 백작의 붉어진 눈동자 속으로 최후의 함성을 짜내는 그의 병사들이 얼굴들이 아로 새기어졌다.
그들의 함성을 받으며 돌아선 세뮤 백작이 소드를 들어 올려 제라르에게 겨누며 외쳤다.
“신성제국의 개들을 처단하라!”
그의 마지막 명령과 함께 제국연합의 병사들이 제라르 일행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그제야 비로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린 제라르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한숨 섞인 음성을 내 뱉었다.
“계웅삼, 그 친구 심정을 알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세뮤 백작의 함대에게 있어서 이들의 등장은 낮도깨비와 같았다. 그런 것도 모자라 신성제국의 공격에 커다란 타격을 입은 나라가 이렇게 제국에 필적하는 함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가우리나 제라르 입장에서는 당연했지만, 세뮤 백작이나 제국연합의 인원들에게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우리의 신무기라 생각된 화살을 보았을 때에도 가우리라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었다.
제라르 입장에서도 솔직히 발각의 위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만에 하나 걸린다면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 함선들은 준비된 깃발을 가지고 있었고, 자랑스럽게 펼쳐 올렸던 것이다.
그것이 더욱 불신을 가져온 결과가 되었다.
몰려오는 적들을 앞에 둔 제라르와 장보고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해적도 모자라 이젠 신성제국 병사까지 되어보는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나란히 달려가는 제라르와 장보고의 입에서 푸념만이 흘렀다.
#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