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72
강철의 열제 372화
오랜 침묵.
긴 침묵 속에서 진천은 멀뚱히 서서 막사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 열제 폐하.”
“쉿!”
진천의 뒤쪽에서 약간 긴장된 음성이 흘러 나왔고, 이어 질책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진천이 돌아보자, 아까 자신을 따라왔던 로셀린의 젊은 기사가 긴장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고참이 분명한 기사가 안절부절 하지 못한 상태로 젊은 기사를 타박하다 말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뭔가?”
진천이 묻자, 젊은 기사는 더욱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 옆의 기사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다름 아니라, 밤도 늦었으니 천천히 들어가 쉬심이 어떠하신지요. 옥체가 상할까 걱정이 되옵니다.”
젊은 기사에 비해 고위직 귀족을 많이 상대한 모양인지, 흘러나오는 말에는 진천을 걱정하는 내용이 그득했다.
“옥체는 개뿔.”
진천의 간단명료한 평가에 젊은 기사 앞에 나섰던 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그때 젊은 병사가 눈동자에 호기심을 가지고 물음을 던졌다.
“그저 산책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궁금했습니다.”
“병사들의 막사를 보는 행동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진천은 질문을 던진 젊은 기사를 차분히 응시했다. 진천의 눈빛이 마주쳐지자 젊은 기사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진천이 퉁명하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땅바닥에 처박혔나?”
“아, 아닙니다!”
“그럼 고개를 들어 나를 봐라. 대화는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다.”
진천의 말에 젊은 기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진천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눈이 제대로 마주치자 진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말을 열어갔다.
“지휘관은…….”
진천의 입이 열리자 젊은 기사 옆에 있던 선임기사도 고개를 들어 귀를 기울였다.
지금 4국 동맹의 귀족들과 기사들에게 진천이란 존재는 정말로 특이한 위치였다. 각국의 왕도 그 앞에서는 알아서 숙인다. 물론 가우리가 4국 동맹의 정점에 달하는 무력을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무언가 다른 소문이 흘렀다.
왕들이 사석에서 형님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근위기사 출신인 이들이야 당연히 그런 이야기를 자주 접했고, 먼 거리에서나마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특히 기사들에게 널리 퍼진 것은 바로 진천의 무력이었다. 그의 행보 하나하나는 지난날 알게 모르게 전설처럼 부각되어져왔다.
전쟁을 하면서 왕이 친정을 하는 것은 가끔이지만 있었다. 그러나 친정이라 해도 이렇게 장수의 위치에서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달리는 것은 거의 없었던 일이다. 있더라도 왕자의 위치에 있던 혈기 왕성한 때에나 있던 일이다.
거기에 몇몇 병사들의 목격으로 알려진 사실은 전투에 돌입할 때도 가장 선두에서 달린다는 사실이었다.
“승리를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것을 하는 것이 지휘관이다. 그 첫째가 믿음이다.”
진천의 말문이 본격적으로 열리자 두 기사는 한자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믿음은 곧 사기와도 직결된다. 지휘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
“명령불이행 등, 병력 운용에 차질이 생깁니다.”
젊은 기사가 답을 내어 놓았다.
“맞다. 그런 믿음을 토대로 전쟁의 승리요건 중 하나를 잡아가는 것이다. 전술과 전략이 좋아도 지휘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패배는 당연하다. 그럼 둘째는 뭔 줄 아는가?”
질문을 던지는 진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변화를 눈치 챈 두 기사는 신중하게 생각을 하였다. 지금 진천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원천적인 것이다. 대열 병력의 질과 전술 전략을 떠난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두 기사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의 침묵이 길어지자 진천이 천천히 병사들이 잠들어있을 막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믿음을 철저히 이용하는 것이다.”
“네?”
뜻밖의 말에 두 기사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치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내뱉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진천은 그들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을 이어나갔다.
“절대적인 믿음은 지휘관이 불구덩이로 밀어 넣어도 변치 않는다.”
확신.
“절대적인 믿음은 그 길이 죽음으로 점철된 길이라 하더라도 따르게 만드는 법이다.”
진천의 음성에 힘이 실려 갔다.
“그 절대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지휘관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다. 그들의 희생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법이다. 죽은 놈만 불쌍하게 되는 것이지.”
“푸르륵!”
말을 거칠게 내뱉어가는 진천의 모습에 강쇠가 걱정스런 울음을 흘리며 다가와 그의 몸에 머리를 비벼대었다.
기사들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토록 선망했던 이의 입에서 나온 것 치고는 너무도 이기적인 대답이었던 것이다. 내심 대서사시의 영웅과 같은 대답을 그들 스스로 상상했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진천의 대답은 더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전쟁은 이기적인 놈들이 승리하는 거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을 해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진천은 신형을 돌려 처음 질문을 던졌던 젊은 기사를 응시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겨준 진천이 자신의 막사로 걸음을 옮겨갔다.
“난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놈이다.”
진천을 따라가야 함에도 두 기사는 바닥에 뿌리가 내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이 지나 태양이 하늘 꼭대기에 매달렸어도 어느 누구 하나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깨어난다 하더라도 밤에 이동을 해야 함을 알기에 병사들은 도로 잠을 청하며 누웠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 어둠이 깔려오자 병사들이 하나둘 씩 막사 밖으로 나왔다.
자다가 지친것도 있었지만 구수한 향기가 풍겨왔기 때문이다. 인원이 많이 모자란 로셀린의 현실을 반영하듯이 소년티를 벗지 않은 병사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개중에는 손자들의 재롱이나 봐야 할 정도로 늙은 병사도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고 다시 이동을 위해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전날 고진천과 대화를 나누었던 두 기사 중 선임기사가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정말 그랬단 말인가?”
“그렇네. 나도 충격이었지.”
“으음, 역시 소문은 믿을게 못되는 건가?”
“그러게 말일세.”
기사들의 반응에, 말을 꺼내었던 선임기사는 왠지 자신이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분명 어제 들은 대로 이야기를 했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숀은 어디 갔나?”
“글쎄?”
왠지 모를 착잡한 기분에 쌓여있던 선임기사에게 동료기사가 자신과 한조를 이루는 젊은 기사 숀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그제야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어제 교대하고 와서 계속 같이 있었는데.”
“숀이 견습에서 정 기사가 된지 얼마 안됐다고, 잘 챙겨 주라는 단장님 말씀 못 들었는가?”
“어? 저기 오는 게 숀 아닌가?”
한 기사가 한쪽을 가리키자 선임기사는 고개를 돌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숀?”
식사들을 하느라 간편한 복장들을 하고 있는 자신들과는 달리, 당장 어디 작전이라도 나가는 듯이 갑주를 두르고 개인에게 지급된 모든 무구와 말까지 끌고 오는 게 아닌가?
“숀, 무슨 명령이라도 있는 건가?”
기사들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며, 의아한 모습으로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복장이…….”
점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가는 기사들 사이에서 숀과 함께 짝을 이루던 선임기사가 살짝 얼굴을 굳혔다.
“직접 보고 싶습니다.”
“뭘?”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가는 기사들에 반해 선임기사의 얼굴은 점점 묘하게 굳어만 갔다.
“전날 열제 폐하께서 하신 말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뭐?”
“그럼 지금…….”
기사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숀을 바라보았다.
“가우리 본대에 전출을 신청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자네 지금…….”
숀의 말에 기사들이 벌떡 일어나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숀의 의지는 확고했다.
“믿음. 이기적인 행동.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왜 항상 전장의 선두에 선다는 것일까요?”
숀의 질문에 기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 무엇인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전출을 신청했습니다. 직접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미리 의논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전 바빠서…….”
빠르게 자신의 할 말만을 내뱉은 채로 바쁘게 사라져갔다. 그런 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기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며 멈추었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거참, 요즘 젊은 것들은 생각과 판단이 빨라.”
“그나저나 나도 궁금하긴 하네. 왜 그런 말을 해줬을까?”
“글쎄.”
식어버린 스프그릇을 내려놓은 기사들이 멀어져가는 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말을 나눌 때 침묵을 지키던 선임기사가 벌떡 일어섰다.
“왜, 그러는가?”
“나.”
“왜, 그러나 자네?”
“전출 가네.”
“…….”
난데없는 대답에 동료기사들은 어이없는 눈빛을 보내었다.
“어이, 마이언 경!”
동료들의 부름에도 선임기사 마이언은 뒤도 안돌아 보고 기사단장이 있는 막사로 달려갔다.
그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야만이 지금 그의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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