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76
강철의 열제 376화
제132장 복수의 시작
노장의 포효에 놀랐음인가?
아니면 홀로 삼천의 병력을 향해 달려오는 그의 무모함에 어이가 없음인가…….
홀로 달려오는 대무덕을 향해 아무도 화살을 날릴 생각도, 또 날리라는 명령도 하지 않고 있었다.
콰콰콰콰!
돌로 이루어진 바닥이 그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조각조각 부서져 비산했다. 그 거침없는 돌진에 넋을 잃고 있던 위젠 남작의 입에서 공격 명령이 떨어져 내렸다.
“쏴, 쏴라! 무엇을 멍청히 구경하고 있느냐! 어서 쏘아라!”
위젠 남작의 명령이 울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궁수들이 화살을 재어 날리기 시작했다. 궁수를 담당하는 지휘관의 구령도 없이 허둥지둥 화살을 재어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단 한 명을 위한 죽음의 비가 쏟아져 나갔다.
콰앙!
“뭐, 뭐야! 다시 화살을 재!”
화살이 허공을 날기 시작할 때, 무덕이 밟은 돌 판은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 반동으로 무덕의 신형은 그들의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확대되어 왔고, 쏘아 올린 화살들은 그가 지나쳐 온 빈 공간만을 힘없이 두들겼다.
“직접 노리란 말이다!”
그 많은 화살들이 허무하게 낭비되자 위젠 남작이 호통을 쳤다. 그쯤 되자 궁수들도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는지 무덕을 향해 화살을 날려 대기 시작했다. 두서없지만 한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화살은 어느 누구도 그의 죽음을 의심치 않을 정도였다.
말린 왕국의 판 백작이 병력을 급하게 하선시켰지만, 이미 적진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대무덕을 따라 잡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노호성을 터트리는 모습에 노인으로만 생각했던 처음의 판단은 고쳐야만 했지만, 화살비를 향해 달려가는 무덕의 행동은 그의 머릿속에 무모함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첫 번째 쏟아진 화살비.
그 화살비들은 단 한 번의 내딛음으로 생겨난 엄청난 돌진으로 인해 허무하게 흩어졌다. 그러나 신성제국의 병사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아무리 무서운 기세로 달려온다고 해도 단 한 명이 아니던가?
침착함을 되찾은 신성제국 병사들의 화살이 제대로 무덕을 노리며 쏘아져 왔다.
“아, 안 돼!”
판 백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신은 총사령관의 사망으로 인해 잔여 부대를 자신이 이끄는 불명예를 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소수의 병력을 상대하는 초전부터 총사령관이 최초 사망자가 된다면 병사들의 사기는 땅바닥을 기다 못해 전투 불능의 상황까지 갈지도 모른다.
티잉!
첫 번째 화살이 대무덕의 작은 손짓 하나로 환두대도에 막혔다. 그러나 그 뒤를 따라 무수한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그 화살비 속에서 무덕의 환두대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탕! 탕!
쏟아지는 화살의 궤적들이 환두대도를 따라 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짧게 짧게 끊어내듯이 움직이던 환두대도가 점차 물처럼 흐르며 하나의 춤처럼 변해 갔다.
따당! 땅땅땅땅!
마치 악사들이 연주를 하듯 화살과 무덕의 환두대도가 전장에 음률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칼날과 화살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사방을 울려 갈 때마다 판 백작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져만 갔다.
“말도 안 돼…….”
신성제국 병사의 수는 약 삼천여.
물론, 그 삼천 명이 전부 화살을 날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많이 잡아 줘 봐야 한 오백여 명이 전부다. 그렇지만 그 오백여 명이 쏜 화살이 하나도 무덕의 몸에 와서 박히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설명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가우리 군대의 전의가 지금 그 어떤 때보다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판 백작은 지휘관으로서지금의 호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신성제국의 버러지들을 척살하라!”
“우와아아!”
판 백작의 외침과 동시에 연합군 병사들이 쏟아져 나갔다. 날아오는 화살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없었다.
얼빠진 채로 무덕에게만 집중하던 신성제국 병사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뒤늦게 터져 나온 가우리군의 함성이었다. 커다란 함성소리와 함께 몰려오기 시작한 가우리군을 본 궁수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 남작님!”
궁수를 지휘하던 고참 병사 하나가 달려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화, 화살 소모가 너무 큽니다!”
“뭐라고? 얼마나?”
“벌써 남은 수량의 삼분지 일이 넘는 분량이 소모되었습니다!”
그 말에 위젠 남작은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홀로 달려오는 늙은 장수를 죽이기 위해 화살들이 쏘아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연이어 닥쳐오는 현실에 위젠 남작은 욕설을 계속 퍼부었다.
항시 전투가 이루어지는 곳도 아닌데 화살이 넉넉하게 구비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도 얼마 있던 것은 제국 연합의 전투 때문에 각출해 가지 않았나?
빠져나간 물자를 채우기에는 시일이 너무도 짧았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 모자란 화살들을 단 한 명을 잡기 위해 쏟아 부었던 것이다. 오백여 명의 궁수가 각자 열 대 정도의 화살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거의 반수 가까이 소비시키고도 늙은 장수 한 명을 잡지 못했으니 위젠 남작은 미칠 것만 같았다.
“궁수들은 어서 저자를 죽…… 아니, 차라리 뒤쪽의 적군을 노리고, 창수들은 저자가 마차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명령을 번복해가는 위젠 남작의 외침 속에서 그가 지금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아닌데 궁수들이 네 번째 시위를 당길 때에는 이미 마차로 만들어진 방벽 앞까지 당도한 것이다. 명령을 내리는 위젠 남작 이상으로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던 병사들의 눈에는 더없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장창수 대기! 절대 올라서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위젠 남작의 명령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듯이 기사들이 이리저리 외치고 있었다. 창병의 대부분이 징집병인 그들의 눈에는 저 뒤에 몰려오는 4국 동맹의 병력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눈앞의 공포만이 전부였다.
“저자가 뛰어넘는 순간을 노려라!”
“하늘에서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법이다! 침착하고 바늘 하나 빠져나갈 틈도 만들지 마라!”
연이은 기사들의 외침에 장창수들은 침착함을 찾아갔다.
어차피 인간일 뿐이라는 기사들의 외침이 공포를 비집고 들어와 안정을 주었다. 사실 기사들 역시도 화살 비를 뚫고 가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단지 적은 혼자였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콰콰콰콰콰!
“우오오오오!”
바닥을 부수듯이 박차며 달려오는 대무덕의 입에서 노호성이 울려왔다.
“사라졌다?”
달려오는 무덕을 향해 창끝을 겨누고 있던 병사들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어갔다. 마차 위를 타넘지 못하게 만반에 준비를 하던 그들로써는 당황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들의 당황 속에서 커다란 충격음이 울려왔다.
콰앙!
“으악!”
“뭐, 뭐야!”
굉음과 함께 마차로 쌓은 방벽의 한축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마치 공성병기로 공격받은 듯 공중으로 붕 떠버린 마차와 그 위에서 창을 들고 대기하다가 함께 날아가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공포보다는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판 백작과 병사들의 눈에 비춰진 대무덕은 괴물 그 자체였다.
마차의 방벽 앞에 도달하자마자 체중을 앞으로 실어가면서 강하게 한 발을 내딛었다. 그와 동시에 몸통이 틀어지며 어깨와 등이 마차를 향해 쇄도했다.
이후 울려온 폭음과 단단하게만 보이던 마차의 방벽이 말 그대로 튕겨서 날아올랐을 때, 판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함성을 외쳤다. 그리고 명령을 내릴 생각도 못하고 정신없이 달려 나갔다.
막혔던 공간을 부수고 나타난 공간.
대무덕의 눈앞에 겁에 질린 신성제국 병사들의 얼굴들이 들어왔다.
콰아앙!
마차의 동체가 추락함과 동시에 무덕이 환두대도를 휘둘러갔다. 가장 눈앞에 있던 창을 든 병사를 가르고 지나갔다. 피가 튀는 순간 또 다른 병사의 가슴팍을 환두대도로 찍어 들어갔다.
“끄어어어!”
“크아악!”
그때서야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짚단을 베어 나가듯 종횡무진하며 병사들의 사이에서 환두대도를 휘두르는 무덕의 입에서 뜻 모를 중얼거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겨우…….”
무덕의 주먹이 한 병사의 안면을 부수듯 박혀들었다.
안면이 박살난 채로 뒤로 튕겨나가는 이를 따라 달려 나간 무덕이 그 병사가 놓쳐 허공으로 뜬 창을 잡아챔과 동시에 몸을 맴돌리며 집어던졌다.
퍼억!
“꺼억!”
“끅!”
병사 둘이 창 하나에 꼬치 꿰어져 날아갔다. 붉어지는 눈시울을 한 무덕의 입가에선 중얼거림이 계속되었다.
“겨우 이딴…….”
“어서 저자를 막아라!”
수수깡처럼 베어 넘어지는 적 병사들, 그 뒤에서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오는 기사들…….
무덕은 피에 목욕을 한 모습으로 적들을 바라보며 지독하게 허탈하고도 허무한 음성을 내뱉었다.
“겨우 이딴 놈들에게 가우리의 영혼이 모욕을 받았다는 건가.”
“베어라!”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환두대도를 늘어트린 무덕을 향해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몰려오는 신성제국의 기사들을 향해 무덕의 허탈한 웃음소리만이 흘러가고 있었다.
“허허허.”
위젠 남작의 얼굴에 참담함이 서렸다.
처음부터, 막는다는 것은 무리라 판단했다. 가우리를 비롯한 4개국 동맹이 제국을 향해 이렇게 발을 들여 놓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그러한 역사가 없었다. 언제까지나 왕국들이라는 존재는 제국들의 힘겨루기 사이에 선 위태로운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방어선이 무너집니다!”
기사 하나가 얼굴에 피 칠을 하고 달려왔다.
굳이 무너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무너지는 모습이 눈에 보이고 있었다. 제대로 된 성채도 없이 일개 소수 병력으로 막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무리 신성제국이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달렸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체를 보았을 때뿐이다. 지금처럼 열 배에 가까운 적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전혀 불필요한 수식어일 뿐이다.
“제국의 개들을 죽여라!”
“와아아!”
근거리에서 들려오는 자신감 넘치는 가우리와 그 동맹국 병사들의 외침에 위젠 남작은 이를 갈았다. 자신이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으드득!
“저자 때문이다.”
위젠 남작의 시선이 병사들을 휘젓고 다니는 대무덕에게로 향했다. 처음부터 역부족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급격히 무너진 건 늙은 선봉장 하나에 그나마 모은 병력이 휘둘려 버린 탓이 컸다.
“총사령관님을 따라라!”
적진에서 울려온 외침에 위젠 남작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뭐?”
위젠 남작은 총사령관이라는 소리에 정신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만이 넘어 보이는 병력으로 고작 삼천밖에 안 되는 수비 병력을 무너트리는 데 총사령관이 직접 나섰다는 것이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전장을 살피던 위젠 남작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을 이끌고 돌파한 적군의 수장과 기사단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향하는 방향에는 처음 달려들었던 그 노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저자가 총…… 사령관?
홀로 돌격해 왔던 노장이 병사들을 쓰러트릴 때마다 적군들의 함성이 커졌다. 그리고 그쪽을 향해 맹목적으로 돌파를 해오고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저자다!”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위젠 남작의 확신에 함께 있던 기사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지금껏 적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달려들었다고 생각했던 엄청난 무위의 무장이, 적의 총사령관이었다는 것…….
“기, 기사단은 모두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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