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81
강철의 열제 381화
문제는 왜 그럴 거면 백여 척의 멀쩡한 함선을 육백여 척의 함선이 추가로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던져 주었느냐 하는 것이다. 가우리의 깃발을 달아 가면서 말이다.
“만약 그 가우리로 위장한 함대가 제국연합의 소속이 맞는다고 하면, 아무래도 우리의 시선을 돌리려는 것이 맞을 듯싶습니다.”
뒤늦게 끼어든 루키아 후작의 설명에 슈엥 공작은 머릿속에 담겼던 의문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신성제국 연방제국 해상제국.
각 제국의 이름보다는 통치 형태 등으로 불리는 삼대제국은 서로를 알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다못해 황제의 뜰 안에 개새끼 몇 마리까지 있냐는 소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특성상,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규모 등도 여실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성제국도 코요 블라미르라는 패를 이제 와서야 꺼내어 놓지 않았는가?
그런 부분을 계산한다면 사만여의 병력이 제국연합의 병력이라 알리기보다는 상대적으로 관심 밖에 있는 4국 동맹의 소속으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거기에 동쪽 해안에 상륙한 인원까지…… 이것은 명백한 양동작전입니다. 제국의 병력을 집중시키지 못하게 하려는 음모입니다.”
말문이 트이자 줄줄 흘러나오는 루키아 후작의 설명에 밀리오르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 있는 의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법사 한 명이 급히 들어와 슈엥 공작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나갔다.
추가로 들어온 보고임에 틀림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황제의 대전으로 직접 일개 마법사가 들고 달려올 정도의 특급 보고일 것이다.
“이것은!”
마법사가 건네주고 간 보고서를 펼친 슈엥 공작의 동공이 급격히 팽창했다. 그 모습에 밀리오르 황제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잡소리 다 잘라 내고 요점만 보고 하게나. 슈엥.”
그 역시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제국연합일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무슨 내용이기에 그렇습니까.”
슈엥 공작의 단정적인 음성에 루키아 후작마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갔다. 슈엥 공작이 황제의 앞으로 바삐 다가와 보고서를 두 손으로 올리며 입을 열었다.
“최후까지 몸을 던지며 적들을 상대하며 마법사에게 많은 정보를 보내게 하였던 스벤 남작과 쿨 준남작의 희생으로 통신이 끊어지기 전에 이 중대한…….”
나름 희생한 스벤 남작과 쿨 준남작의 희생에 감격하며 찬사를 줄줄이 늘어놓던 슈엥 공작의 말을 끊은 것은 다름 아닌 황제 밀리오르였다. 슈엥 공작이 내민 보고서를 낚아챈 밀리오르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필리언 제라르?”
“제라르?”
황제의 말에 대전에 모여 있던 루키아 후작을 비롯한 기사들과 대신들의 얼굴에 놀람이 서렸다. 모두 제라르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웅성거렸다.
“분명 뇌전의 제라르가 맞는 것입니까!”
루키아 후작이 슈엥 공작을 향해 확인하듯이 되묻자, 그 대답을 밀리오르 황제가 대신 해 주었다.
“맞는 것 같군. 뇌전을 일으키는 오러 블레이드라고 여기 분명히 쓰여 있군. 기사들이 한 번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토막이 났다니 마법으로 흉내를 낸 가짜도 아닐 것이고.”
“실종된 그가…….”
그들의 뇌리에 대륙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도 하고 최대의 미스터리라고도 하는 한 사건이 떠올랐다.
중앙해의 해적을 직접 토벌하겠다고 나선 자유기사 제라르가 연방제국에게서 지원받은 함대를 이끌고 나아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희대의 사건.
“연방 놈들도 숨겨진 패 하나를 쥐고 있었단 말인가. 킥킥킥!”
밀리오르 황제의 입에서 재미있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연신 흘러나왔다.
“폐하.”
웃음을 흘리는 밀리오르 황제의 앞에 루키아 후작이 부복했다. 밀리오르 황제는 그의 행동에 웃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저에게 일군을 맡기어 주시면, 4국 연합의 잔당들을 남김없이 토벌해 내겠습니다.”
정벌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그의 마음에 그득했다. 아울러 자신에게 패배와 실패의 쓴 잔을 마시게 한 가우리를 쳐서 무너진 그의 자존심을 회복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밀리오르 황제가 그의 마음을 모를 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나오는 대답은 루키아 후작의 마음을 외면했다.
“놔두지.”
“폐하!”
“그런 잔챙이는 언제든 없애면 그만이야. 어차피 제국 주변만 훑으며 분탕질을 칠 것이 뻔하다. 훗, 훤히 보이는 놈들의 속셈에 넘어갈 것인가?”
밀리오르 황제의 말에 루키아 후작은 아쉬움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세 제국의 대군이 한곳에 모여든 지금, 병력을 따로 빼낸다는 것은 제국연합이 가장 바라는 일이었다.
“때가 됐군.”
밀리오르 황제의 말에 루키아 후작을 비롯한 대전에 모여 있던 이들의 시선이 그를 향해 모아졌다.
밀리오르 황제가 천천히 일어섰다.
대전에 서 있는 많은 귀족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 밀리오르 황제의 입가에는 악동과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광폭함이 맴돌고 있었다.
“벌어진 판을 좀 음미하려 했더니만, 제국연합에서 꽁수를 쓰며 지들 무덤을 파는군.”
밀리오르 황제의 시선 끝에 슈엥 공작이 걸렸다.
“지금 대기 중인 북부군단 사령관 콰이어 공작과 수도군단의 샤이완 공작에게 팔란시아로 진격하라는 명을 전달해라.”
“황제의 명을 받드옵니다!”
슈엥 공작이 대전에 크게 부복하며 외쳤다. 그의 행동을 본체만체 한 밀리오르 황제가 루키아 후작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루키아 후작, 그대는 퍼블릭의 빈자리를 채워 신성기사단을 맡고 와해된 그대의 군단과 퍼블릭이 맡았던 기동군단을 합쳐서 팔란시아로 떠날 준비를 하도록.”
“예, 폐하. 명을 받드옵니다!”
루키아 후작이 부복하며 외치자, 밀리오르 황제가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제국연합을 꺾고, 그 다음에는 그 병력 그대로 로셀린과 하이안, 가우리, 말린까지 밀고 내려갈 것이다!”
이미 그의 시선 안에는 두 제국 따윈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밀리오르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대전을 빠져 나오던 슈엥 공작의 눈동자에 루키아 후작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원정에서의 패배는 루키아 후작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으음.”
슈엥 공작의 입에서 낮은 심음이 흘렀다.
무언가 가슴 한쪽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정보를 취합한다면, 분명 방금 전 대전에서 오갔던 이야기가 가장 현실성 있다.
단지 밀리오르 황제의 말뿐 아니라 루키아 후작과 자신도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들 아니던가?
“혹시…….”
슈엥 공작의 머릿속으로 고진천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황제의 힘이 막강한, 그것도 고위 귀족을 한 번에 갈아 치워 버릴 정도로 강력한 신성제국의 황실에서 자신이 오래 버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눈이었다.
사람을 보는 눈.
상황을 보는 눈.
나쁘게 말하자면 눈치가 빠른 것일 수 있지만, 분명 그의 사람 보는 눈은 슈엥 공작의 가장 큰 무기였고, 밀리오르 황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 눈으로 본 고진천은 분명한 제왕의 모습이었다.
그의 막나가는 행동에도 밀리오르 황제도 즐거워했다. 만약 가우리의 고진천이라는 이가 연방제국이나 해상제국의 황제였다면, 아마 밀리오르 황제는 즐거워하는 행동 대신 일대의 숙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겠지.”
잠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진실로 가우리가 주도하는 일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던 슈엥 공작은 김샌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바삐 움직여 나갔다.
아무리 그라도 해상제국이나 연방제국까지 서슴지 않고 이용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삼대제국을 다 적으로 돌리기에는 4국 동맹이 너무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었다.
밀리오르 황제의 선언으로 인해, 제국의 수도가 들썩였다.
이미 팔란시아에 대다수의 병력이 가 있었지만, 신성제국의 마스터들이 이끄는 핵심들은 수도 인근에 위장을 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해상제국의 영향이 끼치고 있는 북부와 수도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비어버린 그들의 자리는 이미 징집된 이들로 머리만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정예 중에 최정예들이라는 이들이 모조리 수도를 비우고 떠난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징집병과 정예의 차이는 훈련의 차이도 있겠지만, 장비의 차이 또한 컸다. 겨우 급소 부위들만 가리는 정도의 갑옷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병사의 생존 능력은 더 커지는 것이다.
물론 훈련량이 터무니없이 모자란 징집병에게는 그런 장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아니, 주어 봐야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그저 창 한 자루 주는 것이 다였다. 그나마도 창대가 부러진다거나 하면 병사들이 알아서 창대를 만들어야 하는 열악한 지원이었다.
그 차이점을 이용해 추가 병력들을 징집병으로 위장해서 보내었다. 허술한 장비와 무구를 들고 모인 병사들은 누가 보아도 징집병이었다. 대열 또한 일부러 흩트리는 것으로 제국연합의 눈을 속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성제국의 많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제국연합의 사기는 그 어떤 때보다도 높았다.
첫날의 전투와는 다르지만, 이후에 이루어진 간헐적인 전투에는 일방적인 제국연합의 우세였다. 그때에 죽어 나간 병력은 모조리 징집병들이었다. 거기서 살아남은 소수의 병사들에게 정예병에게나 주어지는 무구가 돌아갔다.
한 마디로 단순히 제국연합의 눈을 속이기 위한 소모가 아닌, 비정하지만 일종의 옥석 고르기를 위한 전쟁 수행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제국연합의 눈을 속이면서 신성제국의 거의 모든 힘이 한자리로 모이고 있었다.
특히 그 어떤 때라도 둘 이상 모이기 쉽지 않다는 마스터들 또한 모조리 집결한다는 점만 봐도 신성제국이 이번 전쟁을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 * *
밀리오르 황제의 명령은 제국 전역으로 알려져 갔다.
그것은 비교적 전투와는 거리가 먼 제국 남부지방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었다. 북 로셀린 왕국이 있을 때 그 사신들이 머물던 관문 역할을 하던 클로우 요새도 황제의 명령을 받고 술렁이고 있었다.
“젠장, 전선에 나가는 것이 차라리 좋겠군.”
클로우 요새 사령관 베이런 자작은 통신마법사의 보고를 듣고는 투덜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 자네는 이 사실을 전선을 맡고 있는 엔로이 자작에게 전달해 주도록.”
베이런 자작의 명령에 통신마법사가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바쁘게 달려 나갔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전쟁을 바란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무가의 귀족이라면 전쟁을 통하여 승작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클로우 요새는 전쟁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4국 동맹 놈들이랑 투닥거려 봐야 본전치기니…….”
주변에 적이 될 만한 상대라고는 가우리를 중심으로 한 4국 동맹이 전부인데 그마저도 이미 오래전에 전선을 풀며 철수를 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들과 전쟁을 한다 해도 별반 좋은 결과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른과 아이가 싸우면 당연히 어른이 이기는 것 아닌가?
제국 입장에서는 그런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물론 실제 결과는 두 번 다 제국의 패배로 끝이 났지만, 그것을 진정 패배로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퍼블릭 후작의 경우야 원래 그 잔혹성으로 자신을 주체 못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패배를 자초했다는 의견이 분분했었고, 루키아 후작의 경우는 무리한 진출로 인해 몬스터에게 피해를 받은 것이 중첩되었다는 것이 패배의 요인으로 알려졌었다.
사실이야 어쨌든 어느 누구도 약해서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두 거물의 패배로 인해 신성제국의 무관들은 안 하느니만 못한 전투 상대로 4국 동맹을 꼽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그래도 예전엔 이곳도 쓸만한 동네였는데 말입니다.”
투덜거리는 베이런 자작에게 시립해 있던 노먼 준남작이 은근슬쩍 말을 붙여왔다.
“그야, 북 로셀린 멍청이들이 망하기 전에나 그랬지.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야.”
“그건 그렇지요. 예전이었으면 이곳에 오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줄을 이뤘으니 말입니다.”
베이런 자작의 말에 노먼 준남작이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북 로셀린의 사신단이나 귀족들이 뻔질나게 신성제국을 오가며 무엇을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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