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88
강철의 열제 388화
“그럼 진군 속도를 더 높여야겠군.”
[함께 가는 게 아닙니까?]눈을 휘둥그렇게 뜬 알세인의 놀란 음성에 진천이 고개를 살짝 저어갔다.
“지금은 진격 속도를 늦추면 안 된다.”
[그렇군요.]진천의 대답에 알세인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스쳐지나갔다.
“허나 우리가 아무리 속도를 높인다 하더라도 싸우며 이동해야 하니 결국엔 합류를 할 것이야.”
[그렇겠지요?]알세인의 얼굴이 다시금 펴졌다. 확인을 하듯 내뱉은 질문에 진천이 고개를 끄덕여 줌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단, 아까 말했던 우리의 전술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어떤 변화 말입니까?]“지금 상황에서 함락 후 수습은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 시간에 병사들이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말씀은…….]진천의 설명에 알세인이 말끝을 흐렸다. 무어라 말을 이으려는 알세인에 앞서 진천이 심중에 담았던 결정을 꺼내놓았다.
“우리가 부순다. 뒤를 맡아다오.”
[알겠습니다.]오로지 파괴의 길만을 가겠다는 말이었다.
알세인은 진중한 얼굴로 걱정 말고 나아가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 모습에 진천이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대며 여유 있는 모습으로 말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뒷정리라 하였지만, 단순한 정리가 아님을 알겠지?”
약탈을 말하는 것이다.
전장 정리라 함은 잔당 토벌 등등의 일도 있겠지만, 진천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는 자원의 탈취였다. 어찌 보면 오랜 전쟁으로 국토가 초토화 되다시피 한 로셀린 입장에서도 신경을 써야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알고 있습니다.]“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예?]진천의 말에 알세인이 살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정복이 아닌 정벌이다. 그 땅을 우리가 점거하여 거머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거머쥔다 하더라도 단지 일부일 뿐.”
진천의 말은 알세인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 드넓은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전쟁이 아님을.
진천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신성제국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갈 민초에게는 죄가 없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침략자니까.”
마치 폭군과 같은 말을 늘어놓는 진천이었지만 알세인은 귀를 기울였다.
[명심하겠습니다.]항상 그랬다.
마족이니 악마니 괴물이니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아군 입장에서는 전신이고 단단한 강철로 만든 기둥과 같은 이였다.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은 없었다.
“다음 끼니를 걱정해 줄 필요도, 의무도 없음을 명심해라. 병아리 한 마리, 풀 한 포기, 이삭 하나까지 모조리 쓸어 담아라. 나아가 농사지을 쇠붙이 역시 포함한다. 그것이면 적을 향해 쏘아 올릴 화살촉과 창날과 검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지역의 모든 발 달린 것들을 모조리 끌고 가야 한다. 그들이 그들의 나라가 만들어 놓은 폐허를 다시 일구게 할 일꾼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지나간 자리에 풀 한 포기 남기지 말아라. 우리가 잔정을 남긴다 해서 제국이 웃어주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철저히 약탈하고 파괴해야한다. 이 전쟁이 어느 쪽의 승리로 끝이 날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제국들의 힘에 기댈 수 없을 것이다.”
진천의 기나긴 당부가 끝나자, 알세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잔인한 전쟁이 되겠군요.]알세인의 자조 섞인 음성이 수정구를 통해 흘러나왔다. 지난 전쟁을 통해 전쟁이 일반 백성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뼈저리게 느꼈던 그였기에 더더욱 가슴이 아픈 것이다.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잔인한 전쟁은 없다.”
왠지 쓸쓸함이 담긴 진천의 음성에 알세인이 고개를 들었다.
슬픔.
고독.
회한…….
단순한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런 복잡함이 진천의 얼굴에 나타난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진천의 표정에 알세인이 약간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살인, 파괴, 방화, 약탈, 강간, 나아가 모든 이의 평화를 짓밟는 행위…….”
[열제 폐하…….]수정구로 연결된 통신이었지만, 알세인은 느낄 수 있었다.
지독한 슬픔이 담긴 진천의 눈.
처절한 세상으로 이끄는 이의 고독함.
피를 뒤집어쓰고 살아가야하는 이의 업보.
그 모든 것을 짊어진 진천의 모습에 알세인은 심장 한구석이 저며 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전쟁이다.”
[알겠습니다.]진천은 말하고 있었다.
전쟁자체에 그 어떠한 수식어를 붙이는 행동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단어 자체로도 이미 이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것을 뜻함이었다.
터억.
진천의 심정을 느낀 탓인지 왠지 가라앉은 알세인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졌음인가?
진천의 투박한 손이 수정구의 한쪽을 짚었다.
마치 형이 동생을 어루만지듯, 아버지가 아들을 두드려주듯.
“기억하느냐.”
진천의 말에 알세인이 그의 시선과 입술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담아놓으려는 듯, 잊지 않으려는 듯.
“난 지옥에서도 가장 깊은 곳까지 갈 생각이다. 그것으로 내 땅의 모든 것이 평화로울 수 있다면 말이다.”
진천의 손이 수정구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그 안에서 힘 있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 옆에 제가 있을 겁니다.]진천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난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왕이다.”
[알고 있습니다.]수정구 안에서 비추어지는 알세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수정구가 꺼지고 고진천의 모습이 사라지자 알세인은 천천히 등을 기대며 어둠이 묻혀 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기적인 왕…….”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는 영웅적인 군왕들의 행동이나 말과는 철저히 다른 신념이었다. 아니 오히려 여러 영웅 전기에서 악마로 묘사되어지던 이들과 같은 행동과 언행이었다.
“당신은 위대한 왕이십니다.”
왠지 모를 기쁨이 그의 가슴과 두 눈을 적셨다.
로셀린의 젊은 왕이 그렇게 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지금까지의 모든 대화를 듣고 지켜보던 이들도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지켰다.
침묵 속에서 모두가 웃었고, 울었다.
이튿날, 말린 왕국과 하이안 왕국의 이만 병력이 합류를 결정함으로써 삼 일 후 총 칠만여 대군이 빠르게 북상을 하기 시작했다. 각자 왕국의 운명을 걸고 말이다.
* * *
제국연합과의 일전을 위해 모든 힘을 모으는 신성제국의 황성은 그 어떤 때보다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팽팽해진 실과 같은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가 있는 내실로 향하는 길, 평소라면 여유롭게 걸어야 할 곳이지만, 루키아 후작의 걸음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려는 듯 급해 보였다.
“황제 폐하께 내가 왔다 전하게.”
내실의 입구에 선 루키아 후작이 시종장에게 말을 건네자 오래 지나지 않아 황제의 또렷한 음성이 울려왔다. 허락이 떨어지자 지체하지 않고 들어선 루키아 후작이 황제에 대한 예를 올리기기 무섭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급보이옵니다.”
“경의 모습을 보니 급보인 것은 충분히 알 수 있겠군. 말해 보게나.”
황제의 표정은 호기심 반, 흥미 반이었다. 그러나 루키아 후작의 냉막 하던 얼굴 표정은 그 어떤 때보다도 차가움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어찌 보면 딱딱하게 굳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로셀린과의 접경지역과 클로우 관문요새가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두절?”
“그렇습니다. 마법 통신이 연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황을 살피기 위해 투먼 성주에게 수색대를 급파하라 명했습니다만…….”
루키아 후작의 말끝이 흐려졌다.
보고를 받은 황제의 안색도 아까와는 달랐다. 호기심과 흥미가 어우러졌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경의 판단은?”
지금 상황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그것을 확인하고자 묻는 것이었다. 밀리오르 황제의 질문에 루키아 후작은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을 열었다.
“가우리입니다.”
“그렇겠지.”
루키아 후작의 대답과 밀리오르 황제의 생각은 같았다. 아니 다른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사실을 두고도 두 사람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습격의 징후도 몰랐다니, 현지 지휘관이 멍청한 것인가, 아니면 가우리 군대가 철저한 것인가?”
밀리오르의 질문 아닌 질문에 루키아 후작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전선에 위치한 거점은 그렇다 쳐도 클로우 관문요새는 좀 의외입니다. 통신장악이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합니다.”
“가우리의 마법전력이 그렇게나 높은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알고 있는 내가 바보였던가?”
“제국연합이 끼어 있다면 혹시 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정말 가우리에 숨겨진 전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루키아 후작의 말에 밀리오르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어쨌든, 제국의 땅이 왕국에 지나지 않는 무리들에 의해 밟혔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지. 시종장, 로셀린 지역 정보담당자를 불러라.”
시종장이 바삐 나가고 잠시 후 한 인영이 바쁜 걸음으로 나타났다.
로셀린 왕국과 그 인근 지역의 정보를 담당하는 이가 나타나자 밀리오르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갔다.
“신 톨루이 자작 황제 폐하의 부름을 받…….”
촤아악!
톨루이 자작은 고개를 숙인 채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쯧, 죄다 쓸모없어.”
밀리오르 황제는 눈살을 찌푸린 채 피가 뚝뚝 흐르는 롱 소드를 호위기사에게 건네주었다.
툭.
“어서 치워라, 피비린내는 딱 질색이야.”
밀리오르 황제가 잘려진 톨루이 자작의 머리통을 툭 차고는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시녀들이 몸에 튄 피를 닦아내는 사이 밀리오르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루키아 후작에게 입을 열었다.
“분명 가우리군은 철수를 했다지 않았는가? 그런데 갑자기 급습이라니, 어이가 없군. 이 부분에 대해서 아무런 징조가 없었나?”
황제의 질문에 루키아 후작은 들려나가는 톨루이 자작의 시신을 슬쩍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톨루이 자작이 파악하고 있었습니다만…….”
“…….”
루키아 후작의 정직한 대답에 밀리오르는 말없이 자신의 뒤통수를 긁으며 웃었다.
“그것만이라도 물어보고 자를 걸 그랬군.”
“일단 정보부에 소속된 이들을 소환하여 직접 추궁해 보겠습니다.”
손에 묻은 피를 시녀가 가져온 물에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아 참, 그리고 모든 자료가 정리 되는대로 나머지 머저리들도 톨루이 자작과 함께 묻어버리게나.”
“알겠습니다.”
* * *
가우리의 병력이 바다를 통해 상륙했다는 소식은 제국연합에게도 들어갔다. 전혀 도움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제국연합으로서는 전쟁을 더욱 수월히 풀어 갈 수 있는 상황으로 반전되어 갔다.
“그들도 느낀 점이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웅크리고 있던 왕국연합이 이렇게 과감히 움직일 수 있었겠습니까?”
밀리엄 후작의 말에 쇼오 공작이 와인 잔을 기울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이오. 허나 우리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작전을 편 것은 좀 불쾌하구려.”
“물론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그쪽에서 하는 말로는 신성제국 첩자들의 이목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니 믿어 주어야지요.”
밀리엄 후작이 두둔하는 말을 내뱉자, 쇼오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되었든 전쟁이 끝나면 관계를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이오만…….”
“당연하지요. 감히 제국의 명에 이리저리 토를 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나는 본국에 알려 신성제국 북부의 부족들에게 마음 놓고 휘저으라고 알리고 와야겠소이다. 혹시라도 신성제국의 북부군단이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오.”
# 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