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389
강철의 열제 389화
북부군단 이야기가 나오자 밀리엄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시지요. 이로써 적들의 남부군단과 북부의 정예는 발이 제대로 묶이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곧 제국연합의 승리가 보인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않겠소?”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하하핫!”
쇼오 공작과 밀리엄 후작의 웃음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 * *
“지금쯤이면 신성제국도 알아차렸을 겁니다.”
연휘가람의 차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넓게 펼쳐진 지도 위에 어지러이 그려진 선과 각 성을 나타내는 모형들이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에 팔짱을 끼고 귀를 기울이던 고진천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허나, 아직 우리의 정확한 규모는 그들이 알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리셀이 휘가람의 말에 보충을 하듯이 한 마디 걸치자, 몽류화가 그 다음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일단 마법적인 요소는 울절께서 처음부터 막아주셨고, 혹시 모를 파발 또한 제가 완전 차단을 하였기에 적들은 우리에 대해 자세한 것을 알지는 못할 겁니다.”
“고조 내래 전서구라도 있을까 하늘에 떠 있는 새는 모조리 잡디 않았습네까!”
을지우루도 지지 않을세라 끼어들었다. 그러나 이어진 웅삼의 한 마디에 좌중은 웃음바다로 변해버렸다.
“전 날개 달린 사자를 이번에 처음 보았지요.”
“킥킥킥.”
“끙.”
그때 병사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자를 피한다고 얼마나 법석을 떨었는가?
“그건 그리핀이라고 하는 거라네.”
“그러고 보니 날개 달린 사자 떨어지니까 제일 먼저 달려가신 분이 울절이셨지요 아마?”
“…….”
“고조 다음에도 종종 부탁한다고도 하셨디.”
“푸하하하!”
“끙.”
문헌에서나 접하고 실제 구경하기도 힘든 그리핀이 떨어졌으니 리셀이 어찌 가만있겠는가?
병사들을 동원해 그리핀 사체를 챙기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다음에도 부탁한다는 청탁 아닌 청탁을 하는 리셀의 표정을 떠올린 우루가 그 말을 꺼내며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 되었든, 지금 적은 우리의 존재를 알되 정확히는 모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휘가람이 능숙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언제 웃고 떠들었냐는 듯이 모두들 웃음을 멈추고 그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적들의 동향은?”
고진천의 질문에 몽류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척후를 활용해 걸리지 않는 선에서 관찰을 해 보았습니다만, 아직 병력의 이동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류화의 보고에 이어 리셀이 진천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을 추가했다.
“저 역시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서 둘러보았지만, 직접적인 대규모 병력의 이동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허나 경계가 강화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저기 소규모 정찰대로 보이는 이들의 이동이 포착되었습니다.”
“음.”
류화와 리셀의 보고에 진천이 고개를 양 옆으로 천천히 꺾으며 생각에 잠기었다. 그러다 갑자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느닷없는 그의 실소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웃기지 않나?”
“무엇이 말입니까?”
리셀이 되묻자, 진천이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때려 부수러 온 입장에 저들이 밍기적 거리면 잘된 것 아닌가?”
“적들이 우리의 규모나 목적을 알기 전에 우리는 최대한 박살내며 진격을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한 두어 군대쯤 더 부수다 보면 지금과는 달리 활발하게 움직이겠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좋아. 오늘 회의는 이상. 정해진 작전은 그저 때려 부수며 나간다. 질문 있나?”
“고조 마음에 듭네다!”
“각자 자리로 돌아가도록. 내일 출군이다.”
“충!”
무성의한 결정에도 다들 희희낙락하며 일어섰다.
적들이 이쪽을 우습게보면 볼수록 전쟁은 편해진다. 그것을 고민 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신성제국이 뭐가 아쉬워 가우리를 상대로 함정 같은 것을 피겠는가?
그럴 조짐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캬오옹!
“응?”
모두가 자리에 일어선 가운데 갑자기 짐승의 울부짖음이 울려왔다.
“냥이 울음 소린대?”
눈을 휘둥그레 뜬 삼두표가 서둘러 나가자, 나머지 인원들도 궁금한 표정을 담고 따라 나섰다. 당연히 진천도 그들 무리에 섞여 나갔다.
숲의 제왕 오거도 울고 갈 존재.
한번 울음을 터트리면 모든 동식물들이 꼬리를 말게 되는 존재.
그런 존재가 바로 샤벨 타이거였다.
“크릉.”
지금 삼두표의 애완 샤벨 타이거인 냥이는 불만이 그득했다.
그런 막강한 샤벨 타이거라도, 퓨켈 무리에게는 선뜻 다가가기 힘들었다.
짐승의 세계에 맞장이 어디 있는가?
이를 드러낼라하면 퓨켈 무리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노려본다. 그 뿐 아니었다.
퓨켈 무리와 함께하는 퓨마들.
뿔이 두 개인 퓨켈과는 달리 단 하나만이 나 있는 퓨마는 샤벨 타이거인 냥이로써도 처음 보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 무리는 항상 퓨켈과 함께였기에 더 이상의 신경은 쓰지 않았다.
그 무리의 옆에는 전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가 돼서야 냥이는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냥이가 지날 때마다 전마들은 알아서 조용히 길을 내주었다. 그렇게 자신의 힘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하던 냥이는 어느 한쪽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즈넉한 분위기, 왠지 그 자리에만 있어도 멋지게 보일 법한 배경이 깔려있는 자리에 한 마리 늙은 말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냥이는 그 말의 주인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인간의 왕이 타고 다니던 그 말이었다.
“캬우웅.”
냥이의 울음이 낮게 흘러나왔다.
나직한 경고음.
“……푸릉.”
“…….”
되돌아온 것은 코웃음.
냥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코웃음을 흘린 것도 모자라 늙은 말의 눈가가 조각달처럼 휘어지는 것이 아닌가?
비웃음이었다.
“쿠와아앙!”
냥이는 분노했다.
비록 주인의 엄격함 때문에 식사거리가 널렸어도 입에 대지 않았던 냥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본성은 맹수였다. 냥이의 흉성이 울리자 전마들이 냥이의 주변에서 물러섰고, 퓨켈과 퓨마들은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큐힝. 큐히힝!”
그중에 퓨켈 몇 마리가 살기 띤 울음을 흘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리를 제지하는 나직한 울음소리.
“푸릉!”
“큐힝, 큐히히힝.”
다가오던 퓨켈들이 다시 무리로 향해 돌아가더니 털썩 주저앉아 이쪽을 주시한 채로 구경하기 시작했다.
철저한 무시.
황당해 하는 냥이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 늙은 말은 몸을 웅크리며 잠을 청했다. 그 모습을 본 냥이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세상을 뒤흔드는 포효를 터트렸다.
먹이를 노리듯 날아오른 냥이의 두 앞발이 늙은 말을 향해 빠르게 뻗어나갔다.
파파파팍!
눈 깜짝할 순간이었지만, 십여 번의 연타가 지나갔다. 하지만 튀어 오르는 것은 늙은 말의 살점과 핏물이 아닌 풀과 흙이었다.
“……!”
눈앞에서 사라진 상대를 찾기 위해 재빨리 고개를 돌린 냥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지런히 모인 두 개의 말발굽이었다.
“냥아!”
삼두표의 애타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컁!”
그에 부응하듯 울려 퍼지는 짧은 울음소리.
바바바바!
두두두두!
“저런.”
“허어.”
“상식이 안 통하는 종자로다.”
두표를 따라 나온 이들의 감탄사 끝에 리셀의 탐구심 가득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샤벨 타이거는 뛰고, 말은 쫓았다.
“쯧쯧, 저 자식 하고 많은 놈들 중에 강쇠를…….”
꽁지 빠지게 도망 다니는 냥이를 본 부여기율이 혀를 찼다.
“주인 닮아서 생각이 없는 거지.”
기율의 옆에선 몽류화가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네놈들이 동기냐!”
동기들에게 배신당한 두표의 입에서 처절한 음성이 울려왔다. 그때 웅삼의 신이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어오른다!”
“거참, 그놈 날래군.”
“크흑.”
도망 끝에 커다란 나무 위로 냥이가 기어올라간 것이다. 그 밑에선 강쇠가 콧김을 계속 뿜으며 맴돌았다. 그러다 뒤를 돌더니 뒷발을 모았다.
콰앙!
“허이구!”
콰앙!”
“어이쿠!”
강쇠가 뒷발을 모아 나무를 가격할 때마다 굉음이 터져 나왔고, 그 소리를 추임새 삼아 류화와 기율이 흥얼거렸다. 굵은 나뭇가지 위에 위태롭게 올라선 냥이는 충격이 올 때마다 떨어지려는 몸을 다잡고 연신 두표를 보며 울어댔다.
“캬앙!”
울상을 한 두표의 귓가로 하일론의 결정적인 한 마디가 들려왔다.
“저거 그냥 덩치만 큰 고양이 아닙니까요?”
“글쎄…… 행동 양식으로 보자면…….”
“……하일론.”
질문을 던진 하일론이나 받은 리셀이나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 이를 갈던 두표는 나무가 뿌리째 기울기 시작하자, 급해진 마음으로 강쇠를 말려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고진천을 찾았다.
그리고 보았다.
“열제 폐하!”
“음?”
고진천은 어느새 연휘가람과 을지우루와 함께 술과 안줏거릴 바닥에 피고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캬오오오옹!
제137장 인질이 된 고진천
콰앙!
강렬한 일격에 탁자가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내렸다.
“뭐라고 했나.”
“전혀 연락이 안 됩니다. 아무래도 전부…….”
으드득.
투먼 성주인 타이만 남작의 이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세 번째다.”
“만에 하나 모를 위협에 대비해서 충돌을 하지 말라고 명령을 전달했었습니다만, 이번에도 똑같았습니다.”
타이만 남작의 앞에선 브로이 준남작이 마치 자신의 탓이라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내 어찌 루키아 후작님을 뵌단 말인가!”
“다시 한 번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클로우 요새의 소식을 알아보는 것 하나도 이렇게 힘이 들 줄은 몰랐다. 아침에도 냉막한 루키아 후작의 표정을 대면한 타이만 남작으로써는 미칠 지경인 것이다.
“이번엔 마법사를 뒤따라 보내라.”
“마법사도 말입니까?”
제국연합과의 전쟁을 위해 일반 병사들도 모조리 차출해 나간 마당에 마법사라고 남겨둘 리 없었다. 그나마 요충지였기 때문에 통신마법사를 제외하고도 두 명이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전쟁 전에도 네 명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런 귀한 마법사를 위험할지도 모르는 정찰에 내보낸다는 말에 브로이 준남작은 다시 한 번 확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마법전력을 아낄 때가 아니다. 적의 규모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법사 한 명 더 아낀다고 되겠느냐!”
“알겠습니다.”
타이만 남작의 호통에 브로이 준남작이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빌어먹을…….”
잠시 분기를 가라앉힌 타이먼 남작이 한쪽에 부서져 내린 탁자의 잔해를 보고 인상을 찡그리더니 밖을 향해 외쳤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남작님 부르셨습니까?”
타이만 남작의 부름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시종 하나가 허리를 숙이며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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