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02
강철의 열제 402화
“다행스러운 점은 가우리를 비롯한 4국동맹이 신성제국 남부를 휘저어주는 바람에 부상에서 나은 루키아 후작이 새로이 편성된 군단을 이끌고 남부로 이동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오! 그런 반가운 소식이!”
밀리엄 후작의 발에 쇼오 공작의 얼굴이 환해졌다. 밀리엄 후작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자세한 소식은 알려오지 않았지만, 4국동맹이 신성제국의 보급로를 가로 막고 크든 작든 보급운행에 차질을 주고 있다고 하니 보급문제는 이로써 적들이나 우리나 피장파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신성제국은 수비국의 이점이 무색해져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허나 그리되면 북부군단이나 다른 지역 군단들에서 정예를 뺄 수도 있지 않겠소?”
상황이 좋기는 하지만, 만약 신성제국이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한다면 제국 북부에서 난동을 피우는 야만인을 상대하던 북부군단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쇼오 공작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밀리엄 후작이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하지요. 아무리 북부에서 혼란을 주는 야만 부족들이 있다 하지만, 정규병들로 이루어진 4국 동맹보다는 그 위험도가 덜 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이라도 지금 승기를 잡은 상황을 이용해 정비가 끝나는 대로 밀고 올라가야겠습니다. 그래야 신성제국의 나머지 군단이 합류를 생각할 즈음에는 전황 자체가 크게 기울어 질 것 아닙니까?”
“하하하! 밀리엄 후작 말이 맞소! 미리 걱정하는 것만큼 미련한 것은 없지 않겠소? 뭐 지금 당장 북부군단 등 다른 군단들이 움직인다 하더라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니 말이오.”
“맞습니다. 더 이상 변수는 없을 것 입니다.”
변수는 없다고 확언하는 밀리엄 후작과 쇼오 공작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막사 안을 뒤흔들었다.
* * *
팔란시아 평원에서 물러서는 신성제국 병사들의 모습에는 피곤함이 서려 있었다. 아무래도 팔란시아 평원에서 이루어졌던 전투에서 패전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내고 후퇴를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병사들은 사기에 좌지우지 되지 않던가?
하지만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이들을 지휘하는 수뇌부들의 표정에는 패배에 대한 기색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정연하게 후퇴 행렬을 이끄는 것이 마치 오랜 훈련을 마치고 회군하는 모습과도 같았다.
“클. 지금쯤 놈들은 세상 다 얻은 듯이 좋아 하고 있겠지?”
거대한 붉은 대검이 그가 바로 용병왕 코요 블라미르인 것을 증명해 주듯 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 내가 그 입장이라도 좋아했을 걸세.”
“크흣.”
케니클 후작의 말에 블라미르가 바람이 새는 듯한 웃음을 흘리며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어떤가?”
블라미르의 말을 받아주던 케니클 후작이 이번에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블라미르는 그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들었는지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크흣, 검속은 충분히 빠르더군.”
“호오. 밀리엄 후작이 젊었을 때부터 쾌검수로 이름이 나긴 했었지.”
이들의 대화주제는 바로 연방제국이 자랑하는 검호 밀리엄 후작이었다. 밀리엄 후작과 전투 중 손을 섞었던 블라미르의 말에 케니클 후작은 깊은 관심을 보였다.
마스터라는 무인의 희귀성 덕분인지 대련은 몰라도 생사를 걸고 하는 전투는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면 케니클의 관심은 당연했다. 블라미르는 그러한 케니클 후작의 호기심어린 표정에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하지만 광검에 비할 바는 아니야.”
“후후후. 고맙네.”
광검의 케니클. 케니클을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그런 케니클과 동문수학을 했던 블라미르로써는 밀리엄 후작의 검이 빠르다 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자네가 적절히 자리를 피해주기까지 하니 제국 연합으로서는 다 이긴 듯이 생각 하겠군 그래.”
“크흣. 그 늙은이 내가 물러나니까, 기고만장해 하는 모습이 웃기더군.”
신성제국 입장에서는 그들을 조금 더 제국 안쪽으로 깊이 끌어 들여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블라미르가 연방제국 출신이며 대륙의 십인에 이름을 올린 밀리엄 후작을 상대해 이긴다면 그것은 당연히 작전 실패를 부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블라미르는 손을 섞은 도중에 힘에 부친 듯이 물러섰던 것이다.
“뭐 어찌 되었든, 응?”
말을 다시 이어가던 케니클 후작의 시선과 블라미르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전방으로 움직였다. 둘의 입가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미소였다. 시선은 여전히 전방을 주시한 체로 케니클 후작이 장난끼어린 목소리를 흘려내었다.
“그 기고만장해 하던 밀리엄의 얼굴이 찌그러지는 모습을 금방 구경하게 되겠군.”
“크흐흐흐흐!”
둘의 시선 끝에 나타난 것은 신성제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검호 콰이어 공작과 샤이완 공작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북부군단과 수도군단이었다.
“으하하하 둘이 찔끔거리며 싸우느라 고생이 많았겠군!”
이십오만의 대병력과 십만에 가까운 지원 병력이 조우한 가운데 북부군단장인 콰이어 공작이 반기듯 양팔을 벌리고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다가왔다.
“크흣, 입맛만 버렸지요.”
“으하하! 맞아 입맛만 버렸을 것이야!”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잔 어떠신지요?”
“우호호! 역시 자네뿐이야. 술은 역시 전장에서 먹어야지!”
콰이어 공작의 거침없는 환대가 오히려 맘에 드는지 블라미르가 농담을 던지며 그를 맞이했다.
만나자마자 농담이 오가고 바로 술 이야기로 넘어가는 그 둘의 모습에 케니클 후작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고는 고개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들이 많으셨습니다.”
“멀긴 배때기에 기름만 가득한 수도 귀족들 꼬라지 보는 것도 지겨웠는데 잘 되었네.”
“후훗.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황제폐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자리가 수도군단 아니겠습니까?”
“끄응. 그래도 너무 지겨워. 차라리 북부 야만인들이랑 실랑이 하는 게 더 나아.”
샤이완 공작이 콰이어 공작이 부럽다는 눈길을 보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 샤이완 공작의 말에 콰이어 공작이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망발이오 형님. 수도군단 자리는 형님에게 딱 맞는 자리란 말이오. 행여나 북부로 기어올 생각 마시오!”
“망할 녀석. 곧 죽어도 바꾸어 준단 말은 안 하는구먼.”
“으하하하! 내가 수도에 자리 잡으면 귀족이란 귀족들은 씨가 마를 것이오!”
무인이 아닌 자는 인간 취급을 안 하는 콰이어 공작이었기에 문관이 잔뜩 몰려있는 수도는 그 어떤 지옥보다도 끔찍할 것이다. 난동이나 안 피면 다행인 것이다.
“그럼 오늘은 나도 끼어 한자리 끼워 줄 것이냐?”
“으하하! 형님 난 언제나 환영하오! 어떤가, 케니클 자네도 한잔 하지 그러나?”
샤이완 공작도 은근히 술이 당기는 듯 입맛을 다시며 묻자, 콰이어 공작은 크게 웃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쪽에서 웃고 있던 케니클 후작까지 끌어 들였다.
“뭐, 이렇게 뵌 것도 오랜만인데 한잔해야지요.”
“좋아 뒷정리는 참모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술이나 하러 가세!”
“으하하 좋은 생각입니다 형님!”
케니클 후작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샤이완 공작이 기꺼워하자, 콰이어 공작이 연신 호탕한 웃음을 던지며 블라미르의 어깨에 한 팔을 두르고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초저녁이었지만, 샤이완 공작과 콰이어 공작을 비롯한 케니클 후작과 블라미르의 술자리는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크으으. 역시 술은 야전에서 먹는 맛이 최고군!”
“크흣, 동감입니다.”
“우하하, 내 이래서 블라미르 자낼 좋아한다니까!”
오랜 용병생활을 해오던 블라미르와 북부의 야만인과 오랜 기간 싸워왔던 콰이어 공작의 기질은 이런 면에서도 닮아있는지 죽이 잘 맞았다. 그들이 술과 여자 이야기로 꽃을 피울 때 케니클 후작은 샤이완 공작에게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루키아 후작께서 남부로 이동한다던데. 그거 질책성 인사인 겁니까?”
같은 후작의 지위였지만, 자신보다 나이와 연륜이 앞서는 루키아 후작이었기에 존칭을 쓰며 샤이완 공작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런 케니클 후작의 질문에 샤이완 공작은 손에 든 술잔을 비우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패전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 대륙의 십인에 속하는 강자를 놀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음. 4국 동맹이 꽤나 귀찮게 만드는 가 봅니다.”
샤이완 공작의 설명에 케니클 후작은 한결 편해짐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것도 있고, 일단 가우리를 직접 다녀왔던 슈엥 공작의 발언도 조금 힘을 얻은 면이 있지.”
“흥! 그런 우유부단한 놈이 전쟁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럽니까?”
슈엥 공작의 말이 나오자 지금까지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있던 콰이어 공작이 퉁명스러운 말투를 내뱉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루키아 후작 그 친구까지 직접 자원했으니, 만만히 보지는 않겠다는 것 아닌가.”
“어험. 그야…….”
“아무리 편협하다는 퍼블릭이라지만, 그도 대륙의 십인 중 일인이었고 루키아 후작 그 친구 역시 실력만큼은 우리와 견줄만 하지 않은가.”
콰이어 공작의 말에 샤이완 공작이 살짝 고개를 내 저으며 줄줄이 말을 늘어놓자, 콰이어 공작은 더 이상 무어라 할 말이 없는지 머리를 긁적이고는 술잔을 비웠다.
“루키아 후작께서 직접 지원을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샤이완 공작의 말에 케니클 후작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루키아 후작으로서는 원정의 실패도 뼈아프겠지만,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상처까지 입고 도망쳐 온 것이 스스로 용서가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우리에 의외의 강자가 있는가 보군요. 퍼블릭 후작께서 전사하신 일도 그렇고 말입니다.”
“처음에야 동부의 무신이라는 바이칼 공작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루키아 후작 그 친구가 가우리 원정에서 그리 당하고 온 것을 보며 좀 생각들이 달라지긴 했지.”
“정말 의외였습니다.”
“뭐 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루키아 후작이 원해서였기도 했고, 또 수도에서 암약할 제국 연합의 첩자들의 눈을 흐릴만한, 이야깃거리를 주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 루키아 후작이 남부전선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이쪽 전선에는 자네 둘이외의 강자가 없다는 의미로 말일세.”
샤이완 공작의 말에 케니클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군단이야 야만인을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수도군단이야 황제 직속 친위군단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제국 연합으로써는 예상치 못한 결과였을 것이다.
“제국 연합을 밀고나면, 4국 동맹과의 전쟁이 이어지겠군요.”
케니클 후작이 슬쩍 미소를 드리우며 질문을 던지자, 콰이어 공작이 콧잔등을 슬쩍 찡그리며 질문을 받았다.
“지깟 놈들이 제국 연합이 무너지고 나면 대항이나 하려는지 모르겠군.”
“후후후. 뭐 글쎄 그건 그때 가봐야 하지 않겠나?”
콰이어 공작의 못마땅하다는 음성에 샤이완 공작이 낮게 웃음을 깔며 대답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기만 하던 블라미르가 그제야 입을 열며 한마디 거들었다.
“크흣. 덤비면 모처럼 풀린 몸 한 번 더 풀어 좋고, 덤비지 않으면 야……, 그것대로 일찍 쉬어 좋지 않겠습니까?”
“에잉. 그래도 기왕 빼든 무기인데…….”
길었던 평화가 싫은지 콰이어 공작은 블라미르의 말에도 무언가 불만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싱거우면 연방제국이나 쳐들어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으하! 으하하하! 그 말이 정답일세!”
케니클 후작의 말에 콰이어 공작이 흡족한 웃음을 크게 터트려갔다.
“자자, 그러기 위해선 이 전쟁에 빨리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자 승리를 위하여!”
“위하여!”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샤이완 공작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외치며 잔을 들었고, 이들은 모처럼의 술자리에 마침표를 찍었다.
* * *
해가 완전히 넘어가 밤이 찾아온 가우리군의 진지 입구에서 을지우루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었다.
“흐음, 선발대 이야기로는 올 때가 되었는데 말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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