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28
강철의 열제 428화
“이럴 것이 아니라 적들이 뭉치기 전에 한 번 더 대규모 교전을 이끌어 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이번 교전에는 쇼오 공작님과 제가 함께 출전해야겠습니다.”
“하긴. 아무래도 저쪽은 마스터가 세 명이나 되니 말이야.”
“그렇지요. 사실 루키아 후작이 이곳에 있다면 뻔한 것입니다. 저나 공작님을 노리고 두 명의 마스터를 붙인다는 작전. 그것만이 우리 연합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길이니까요.”
“그거야 우리가 모를 때이지 않소.”
대화를 나누며 시선을 마주한 밀리엄 후작과 쇼오 공작의 얼굴 표정에서는 미소가 점점 짙어져 갔다.
* * *
소수의 충돌이었으나 엄연히 전투가 벌어졌던 트리폴리아 요새였지만, 어둠에 쌓인 지금은 평화로워 보였다. 짧았던 전투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을 연출했던 내성의 꼭대기 탑 위에는 리셀이 홀로 조용히 밤바람을 쏘이며 상념에 빠져 있었다.
‘끄흐으으, 내, 내 잘못이 아니야! 난 단지 세베론 대법사님과 사형들의 말을 따랐을 뿐이라고!’
그리모가 발악하며 외치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디온 스승님.”
마법사들의 사승은 3서클을 이룩할 때 성을 이어받으면서 완성이 된다. 하지만 그런 유래를 깨고 리셀은 2서클이면서도 그 성을 이어받았다.
그는 천재였으니까.
허나 그 이후 그는 더 이상 천재가 아니게 되었다.
2서클 이후 그는 성장을 멈추었다. 그러나 리셀은 단지 마나에 대한 감만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2서클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지식은 이미 마탑 내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스승의 도움이 있었다 하지만, 아하른 마탑의 마법 체계를 집대성함으로써, 그 효율을 끌어 올린 것도 리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아하른 학파의 전력이 10% 성장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2서클은 항상 그의 발목을 잡고 결국에는 스승의 발목도 잡았다.
하지만 스승은 그를 절대로 놓지 않았다.
반드시 대성할 것이라며 격려해 주고 보듬어 주었다.
스승이자 아버지였다.
그러나 스승의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 그 사고의 결과는 스승의 죽음이었다.
리셀을 지켜 주었던 마지막 보루였던 스승이 죽자마자, 아하른 마탑의 수치라 불리며 쫓겨났다.
제자로서 스승의 시신도 보지 못한 채였다.
먼저 간 스승이 원망스럽기도 또, 자신의 공을 알아주지 않는 아하른 마탑도 원망스러웠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고달픈 삶이 그러한 기억을 한구석으로 묻어 버리게 만든 것이다.
가끔 떠오르는 스승의 인자한 기억이 모진 삶을 이어 가게 만들었고 그의 연구를 멈추지 않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랬는데 그리모가 말했다.
스승은 살해를 당한 것이라고.
마도학장은 핑계였다.
바로 리셀을 위한 스승의 연구가 또 다른 대법사인 세베론의 탐욕을 불러온 것이다.
인공적인 마나의 주입으로 서클을 만드는 행위.
“스승님…….”
리셀의 눈에서 굵은 물줄기가 길을 만들며 흘러내렸다.
마치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리셀은 울음을 터트렸다.
“이 못난 제자가 그리 걱정이 되셨던 겁니까! 자신이 평생 쌓아 온 마나를 이 못난 제자에게 물려주기 위한 연구를 하실 정도로 말입니까!”
리셀의 스승 디온은 자신의 마나를 리셀에게 넘겨주려 했던 것이었다. 그것이 디온의 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탐욕에 짓밟히고 말았다.
물론 그 탐욕의 대가로 세베론 대법사는 폐인이 되었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세베론의 제자인 마법사인 뮤, 미케인, 탈로스 그리고 그리모가 뜻하지 않은 수혜자가 된 것이다.
당시 젊었던 그들은 뜻하지 않은 기연에 기뻐하면서도, 리셀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다. 허나 이 모든 일의 책임을 세베론에게 떠넘기며 묻어 버렸다.
그리고 리셀을 버리는 데 힘을 썼다.
이후 신성제국이라는 새로운 둥지를 찾았다. 바인 아하른이라는 커다란 꿀단지를 들고 말이다.
우우웅.
리셀의 심장에 연결된 무한(∞)의 고리가 진동했다.
왜 인간은 마나를 몸 안에 가두려고만 하는가?
그 화두가 가져온 천재의 몰락.
하지만 고진천을 만나 그 틀을 깨고 지금 이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리셀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스승님, 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오열로 인해 목소리가 거칠어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한 음성이었다.
우우우웅!
무한(∞)의 고리가 리셀의 마음에 화답하듯 어두운 밤, 그렇게 울어 대고 있었다.
제153장 금단의 대법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당히 마법전단을 이끌고 나갔던 그리모에게서는 더 이상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날개 잃은 한 마리의 날벌레처럼 부르르 떨어 대며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미…… 우 사허엉(뮤 사형).”
뮤 베이니어는 자신에게 힘겹게 말을 꺼내는 그리모를 바라보며 지난 시절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난 믿을 수 없구나. 정녕 리셀이 널 이리 만들었더냐…….”
“우으으으!”
“으어어!”
“으어어억!”
리셀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갑자기 그리모가 미친 듯이 발광을 했고 그와 동시에 주변의 다른 마법사들도 온몸을 비틀어 대며 괴성을 흘렸다.
“허어…….”
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현자라 불리는 그가 지금 이들의 상태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다. 일그러진 얼굴들이었지만,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감정의 편린은 명확했다.
충격과 공포…… 그리고 무력함.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의 충격과 공포는 당연하다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무력감이라는 감정의 흔적은 뮤의 뇌리를 자극했다.
무력감이 생겼다 함은 이들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법사와 마법사의 대결에서 서클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폐인지경에서까지 무력감을 느낄 정도라면 압도적인 힘을 느꼈거나 철저한 함정에 빠졌다는 이야기였다.
“으음.”
문제는 이러한 의구심을 풀어 줘야 할 마법사들은 지금 모두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결국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돌아온 트리폴리아 요새의 성주 트리폴 백작만이 그의 의문을 풀어 줄 유일한 단서인 것이다.
“이들을 잘 돌보도록 해라.”
“예.”
뮤는 며칠을 두고 보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는 그리모와 마법사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전쟁 내내 쉴 곳 없이 질주만을 계속해 왔던 가우리의 병력은 모처럼 트리폴리아 요새라는 커다란 보금자리를 맞이해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휘관들 역시 그간 밤낮을 쪼개어 회의를 하던 상황에서 벗어나 찰나의 휴식을 누리고 있었다.
“고조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만, 이젠 밥상을 엎어? 미틴 거 아니네?”
“…….”
이러한 평화 속에서도 작은 파문이 일고 있었다.
“땅바닥에 금뎅이라도 가져다 놓은 거이네? 대갈통들 까 부숴 버리기 전에 당장 쳐들어 올리라우!”
“옙!”
가장 앞에 눈두덩이 퍼렇게 부어 오른 상태로 부동자세로 서 있는 계웅삼의 뒤에는 마찬가지로 여기저기 얻어맞은 흔적이 선명한 삼두표와 부여기율, 그리고 몽류화가 서 있었다.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들어 올리는 웅삼과 우렁차게 대답하는 삼인방의 모습을 보며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던 을지우루가 혀를 차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쯧쯧, 어케 된 게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장군 놈들이 하는 짓거린 변하는 거이 없는 기야? 나이를 먹으면 좀 변하는 게 있어야 하디 않갔어!”
“끄응.”
우루의 한마디 한마디에 계웅삼과 이하 삼인방은 면목 없다는 듯이 들었던 고개를 다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열제께서 납십니다!”
그때 한쪽에서 병사가 고진천의 입장을 알려 왔다. 그러자 계웅삼과 삼인방의 얼굴들이 더욱 시퍼렇게 물들었다.
“…….”
안으로 들어선 진천은 묵묵히 그들을 둘러보다가 상석에 마련된 자리로 가 앉았다. 이후 병사 하나가 차를 한 잔 가져다 놓자 한 모금 맛을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기에 애들을 이렇게 떡 쳐 논 거지.”
“후우…….”
기어이 튀어나온 진천의 질문에 우루의 한숨은 땅바닥으로 꺼져 들어갔고, 계웅삼과 삼인방의 심장은 철렁 떨어져 땅바닥을 뒹굴었다.
한숨을 내쉬었던 우루가 이들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문을 열어 나갔다.
“아침에 잠시 요새 밖으로 직접 정찰을 나가신 뒤에 이어진 아침 배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네다.”
“배식장을?”
“고조 한마디로 밥상을 죄 엎어 버린 게디요. 문제는 그게 아닙네다.”
“문제는?”
진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우루가 웅삼을 쳐다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트리폴리아 요새 공성전의 영웅이신 우리의 위대한 계웅삼 장군께서리, 식전 운동으로 로셀린 출신 배식 담당병을 두 쪽 내려 했습네다.”
“뭐?”
“수많은 병사들이 줄을 서 있는 그곳에 칼을 빼 들고 달려들고 저기 뒤에 있는 아새끼들은 질세라 함께 달려들었디요.”
“…….”
멀쩡히 밥 푸던 병사를 두 쪽 내려 했다는 우루의 말에 진천은 아무런 표정 변화를 보이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진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루가 다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 수많은 병사들이 있는 곳에서 칼 빼 들고 이렇게 ‘루키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외치며 달려들었던 것입네다.”
덜컹!
“뭐?”
루키아라는 이름이 울리자 진천이 벌떡 몸을 일으키자 의자는 뒤로 나동그라져 버렸다.
그러나 우루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아새끼가 여기 왜 있갔습네까?”
“크흠.”
“결과적으로 배식 담당하는 병사는 지금 오줌 지리고 누워서 횡설수설하고 있습네다. 뭐 삶의 끝을 봤다고 하면서 말입네다.”
우루의 말에 진천이 다시 진정을 되찾으며 의자를 세우고는 거기에 엉덩이를 붙였다.
“한 놈은 엄한 밥돌이를 두 쪽 내려 덤비고, 다른 놈들은 그걸 자기가 직접 쪼개겠다고 가로채고, 이 썅노무 아새끼들이 들쑤시는 바람에 첩자들이 내부에 있는 것 아니냐고 한바탕 술렁였습네다.”
“그럼 그 병사는?”
“혹시나 했디만, 루키아를 닮기는커녕 묵갑귀마대에 따라붙은 로셀린 출신 기사들까지도 알고 있는 병사라 합네다.”
“…….”
진천은 이제야 대충 전말을 이해한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들을 내려 보았다.
“억울합니다…….”
“저 아새끼!”
한쪽에 있던 류화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자, 우루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그래도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 같군.”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계 장군님, 초상화! 초상화!”
“그, 그렇지! 초상화!”
진천의 한마디에 살길을 찾은 사형수처럼 눈을 빛내며 쫑알대는 삼인방이었다. 그리고 계웅삼은 재촉하는 기율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금껏 그들을 족치던 우루도 무언가 싶어 그들이 하는 행동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웅삼의 품에서 무엇인가가 부스럭거리며 꺼내졌다. 자연히 진천과 우루의 시선은 그것으로 집중되어졌다.
“이거이 뭐간?”
웅삼의 품에서 나온 그것은 잔뜩 구겨진 종이였다. 그것을 마치 보란 듯이 내밀자 우루가 퉁명스러운 음성을 내뱉으면서도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펼쳐 보았다.
“뭔가?”
진천도 궁금한지 팔짱을 낀 채로 종이를 펼쳐 드는 우루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천의 질문이 아니더라도 우루 역시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인지라, 접혀진 종이를 빠르게 펼쳐 나갔다.
펼쳐지며 나타난 것은 초상화였다.
“이거이 사람 얼굴 같습네다.”
“사람 얼굴?”
“허어!”
누군가의 초상화라는 이야기에 진천은 지금 상황과는 상관없이 더 궁금한 표정을 지었고, 우루는 대답 대신 감탄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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