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3
강철의 열제 43화
“크크크크크.”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을지부루가 기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휘가람과 우루가 병사들을 몰아 사로잡고 있는 상황에서도 포위망을 굳히기만 하던 부루는 옆에 서 있는 부여기율을 불렀다.
“뺀질이, 일로 오라우.”
“옙.”
한번 사라에게 접근했다가 지옥을 경험했던 기율은 부루의 부름에 잽싸게 달려나갔다.
“우리도 준비 하자우.”
“옙! 준비하랍신다아!”
“우야아아아!”
덜컹 덜컹.
부월수들의 함성이 울리며 수레에서 무언가를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고조 사람은 말이디, 대가릴 굴려야 사람인기야. 알간?”
“……예.”
부루의 의기양양한 모습과는 달리 기율의 표정에는 일말의 불안감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무렵 거의 모든 병력이 빠져나간 도시에서는 한가로이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의 식량원중 하나인 물고기를 잡기 위해 수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
“왜?”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수부가 무엇인가를 찾는 듯 바삐 움직이자 밖에 있던 다른 수부가 들어와 물었다. 그럼에도 수부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자 말하듯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준비 안 하고 뭐하나!”
“아, 선단장님.”
계속해서 사방을 뒤지면서 돌아다니던 차에 선단장인 장보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고가 안으로 들어서자 수부가 달려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섰다.
“그물을 만드나!”
“그게 아니 굽쇼. 그물이…….”
“그물이?”
그물이 허공을 날아갔다. 그리고 던져진 그물에는 물고기 대신 오크들이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기래 이거디!”
“저 그런데 수군 선단장님이 뭐라 안 할까요?”
“장 선단장? 걱정 말라우. 괴기나 돼지나 많이만 잡으면 장땡이디!”
기율의 조심스러운 말은 부루의 호탕한 웃음에 묻혀 사라졌다. 휘가람의 부대가 열심히 쇠 그물을 만드는 것을 본 부루가 생각해낸 것은 바로 고기 그물이었다. 쇠 그물은 짜기도 힘들고 시간도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에 그물은?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쇠 그물보다 넓고 가벼운 탓에 멀리까지 날아간 그물은 휘가람 부대의 쇠 그물보다도 효과가 높았다.
“꾸익!”
“꾸이이이익!”
“크하하하핫!”
움직일수록 엉켜가는 그물에 오크들은 더욱 소리를 높였다. 비록 찢어지더라도 원래 질긴 탓에 오크들과 함께 엉켜만 갔던 것이다. 오크들이 완전히 걸려들자 부루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웠다.
“이제 타작 하라우!”
“옙!”
“우와아아아!”
한손에 도끼대신 몽둥이를 집어 들고 맹렬하게 달려오는 부월수들의 모습에 오크들은 쏟아지는 공포에 몸부림을 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에라이!”
퍼억!
“꾸이이이이이이익!”
퍽퍽퍽퍽!
돼지 멱따는 소리가 허공에 수놓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들이 맡은 자리는 화전민촌의 방책 바로 아래였던 것이다. 돼지들 위로 쉼 없이 휘둘러지는 타작 질에 방책에서 바라보던 사람들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잔인한.”
“설마…… 우리도.”
꿀꺽.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충분히 창칼로도 다 죽일 수 있는 실력자들이 몽둥이로 죽어라 비명을 지르는 오크들을 타작하는 모습에 잔인함까지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음성이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 나왔다.
“차라리 곱게 죽여주지…….”
그렇게 진천의 명을 수행하던 병사들이 서로가 더 많은 오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탓에 지금껏 싸운 시간보다도 더 빨리 정리가 되었다.
한쪽에 벌벌 떨며 묶인 오크들부터 시작해서 마취 화살에 잠들어 쓰러진 오크들까지 살아남은 수는 모두 사백여 마리였다. 병사들의 피해는 높지 않았지만 노려보는 진천의 눈빛은 장수들로 하여금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
“작전을…… 마쳤습니다.”
“…….”
조심스럽게 최종 보고를 하는 휘가람의 말에도 진천의 미간에 그어진 두 줄은 펴지지 않고 있었다. 침묵이 지나갈수록 을지부루와 우루는 죄진 사람마냥 고개를 숙여가고 있을 뿐이었다.
진천의 눈빛이 우루를 향했다.
“우루.”
“옙! 대사자, 아니 열제폐하!”
평소에 하지 않던 부복까지 하는 우루였다.
“…….”
우루가 눈앞에 엎드려 있는 상황에서 진천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약 백여 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오크들이 전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었다.
“네가 나를 거냐?”
“…….”
“두발 달린 놈들 죄다 재워놓으면, 네가 업고 갈 거냐 물었다.”
“봐 주시라요…….”
“후우.”
“한번만.”
떡 벌어진 덩치의 어깨가 갑자기 왜소한 것이 마치 비 맞은 강아지마냥 보이고 있었다. 진천은 하나는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않는 우루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천의 한숨에 죄진 듯한 우루의 어깨는 더더욱 위축이 되어 가고 있었다.
“부루.”
“넵!”
화살은 우루를 관통하고 부루를 향했다. 진천의 부름에 경직된 부루의 모습은 마치 군영에 처음 들어온 신병마냥 바짝 군기가 서려 있었다. 진천이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건 뭐냐?”
“그물…….”
진천이 가리킨 곳에는 그물의 형태를 잃어버린 걸레 조각이 흩뿌려져 있었다. 진천의 미간에 세로로 진하게 그어진 두 줄기 선은 우루의 경우보다 더 분노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그물인가?”
“예…….”
“내 눈엔 걸레로 보인다.”
“…….”
엉키고 설킨 것은 둘째 치고 여기저기 오크들의 피와 맞으면서 싸놓은 오물들이 범벅이 되어 향기마저 심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여기저기 뜯겨져서 물에 놓는다면 물고기가 별장으로 써도 될 만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혹 줄로 쓴다면 가능할 정도로 변했다.
“이 그물은 생선 잡는 거지, 돼지 잡으라고 만든 게 아니다.”
“…….”
침묵을 고수 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부루를 본 진천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부루.”
“예.”
“이 걸레를 그물로 다시 고칠 때까지 부루의 부대는 생선 금지다.”
“헉!”
진천의 명에 부루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먹는 음식을 가지고 제재 하는 것이었다. 결국 진천은 적당이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을 뒤로 한 채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는 화전민 촌으로 발걸음을 향해갔다.
밀리언은 자신의 마을을 포위한 채로 미동도 안 하는 군대를 보고 있었다. 그나마 오크들과 싸울 때에는 무기라도 휘둘렀던 장정들은 이제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에게 절망으로 다가오던 오크들을 밥 한 끼 먹을 시간에 반은 죽이고 반은 사로잡아 버리는 괴력을 발휘한 부대에게 어찌 대항할 의지가 있을까.
“후우.”
“미, 밀리언!”
“저들이 공격 하면 방법이…… 없어. 게다가 저 사람들…… 복장도 모습도 처음 본다.”
담담한 밀리언의 음성에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확인하듯이 되물었다.
“그럼 하이안의 토벌대가 아니란 말이야?”
“하이안에 저런 부대가 있었다면 제국에 눌리지도 않았겠지.”
“그런!”
밀리언의 설명에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자신들을 포위한 대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
“뭐, 뭐지!”
대열이 갈라지면서 고진천이 천천히 애마 강쇠를 몰아 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드러내고 있는 강쇠의 마갑과 진천의 마갑은 육중함을 더해 주고 있었고, 강쇠의 투구에 달린 세 개의 뿔과 진천의 투구에 달린 뿔들이 마치 전신이나 마신을 연상케 했다.
꿀꺽.
누군가의 입에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이, 이쪽으로 온다!”
“밀리언, 어쩌지!”
진천과 그를 호위 하듯이 나오는 육중한 기마대의 위용에 얼어붙은 청년들은 밀리언만을 바라보았다.
“누가 이곳의 최고지휘자인가!”
옆에 있던 웅삼의 유창한 대륙어가 나오자 청년들이 일제히 밀리언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 밀리언이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대답을 했다.
“접니다. 제가 이곳의 지휘자입니다!”
“음.”
밀리언의 대답은 공손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누가 배짱을 부리겠는가.
진천이 웅삼을 뒤로 하고 강쇠를 몰아 걸어나갔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위험하다 붙잡지 않았다. 진천이 목책 아래까지 다가오자 밀리언은 숨 막힐 듯한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투구 사이로 밀려오는 기세를 밀리언이 받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이름.”
“미, 밀리언 세일러입니다.”
“음.”
다각 다각 다각.
밀리언의 대답에 진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쇠를 천천히 몰며 여기저기 부서진 방책을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방책 위에서 두려운 눈을 한 채로 고개만 내밀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스쳐보았다.
“밀리언.”
천천히 나온 진천의 음성에 밀리언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마, 말씀하십시오.”
“이곳을 접수하러 왔다.”
“……!”
마치 빌려준 거 받는다는 듯이 툭 내뱉은 말이었지만, 화전민들은 올 것이 왔다는 듯이 허둥대기 시작했다. 밀리언은 떨리는 듯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는 힘이 없으니 마음만 먹으면 접수를 하던지 뭘 하던지 쉽겠지요. 하지만 대체 당신들은 어느 나라의 부대입니까!”
“밀리언!”
“그, 그렇게 말하면…….”
“…….”
밀리언의 말에 사람들이 놀라 허둥댔지만 그는 사람들의 말림에도 진천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당한 듯하던 그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고, 등 뒤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가우리.”
“……?”
“우리들의 제국이다.”
“우우오오오오오오오오!”
히히히힝!
진천의 말에 화답하듯 전 병사들이 자신의 무기를 허공에 들어 올리며 묘한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웅장함에 방책 안의 사람들은 더욱 왜소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밀리언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베론! 호크!”
사냥꾼들끼리는 자주 교류가 있었던 탓에 용병이지만 사냥도 겸했던 밀리언으로서는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거기에 이들과는 다른 피부색이어서 더욱 쉽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소리에 묻혀 밀리언의 외침이 전달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지금껏 하루하루 지쳐 살아오던 모습과는 달랐다. 생기가 돌고 있었다.
고진천은 밀리언의 눈이 흔들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일부러 신병들을 앞으로 배치한 의도가 먹혀들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듯이 입을 열었다.
“나를 따르면 싸울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결국 우리를 노예로 쓰는 다른 자들과 다를 바가 없잖습니까!”
필사적인 밀리언의 반문이 튀어나왔다. 그는 자유가 좋았던 것이다. 용병으로서 살아오며 남은 것은 죽어가던 전우와 귀족과 나라에 대한 불신뿐이었다. 그렇기에 밀리언은 필사적이었다.
“다르다.”
진천의 입에서 나직하지만 힘 있는 말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 밀리언의 눈을 보며 확고한 의지를 전달했다.
“너희는 전장에서 살아갈지라도 나머지 아이들과 가족은 평화와 자유를 얻을 것이다. 자! 선택하라. 여기서 죽어 가겠느냐 아니면 자유를 얻겠느냐!”
“…….”
겁에 질리고 갈등에 빠진 사람들의 얼굴을 본 진천이 피식 웃으며 외쳤다.
“우리를 따르지 않더라도 너희를 치지 않겠다. 잘 선택 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진천은 등을 돌려 다시 진영으로 향했다. 그 뒤로 길게 휘가람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주변 경계를 소홀히 말고 야영을 준비하라!”
“하!”
병사들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야영을 위해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방책 안의 사람들은 그 모습마저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며 방책에서 떠날지를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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