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30
강철의 열제 430화
“거기에 신성제국 황제는 시간을 끌기 위해 백성들에게 몽둥이 하나만 쥐어 주어 전쟁터로 내보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인물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구려. 우리 보급선을 끊어 내기 위해 이만의 병력을 던진 것도 그렇고, 저번 팔란시아 평원 전투에서 승리한 우리의 뒤를 잡고 늘어진 부대에 노예병이나 무지렁이들의 비중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말이오.”
전쟁 이전부터 알려진 밀리오르 황제의 과감함을 넘어선 성격이 이번에 여실히 드러남으로써 그 부분까지 변수로 잡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순히 과감하거나 잔혹하거나 하는 범주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저라도 남부나 북부가 시달린다 하더라도 모든 병력을 이곳으로 집중을 할 겁니다. 그런데 4국동맹이 단순 견제를 떠나 트리폴리아 요새까지 깊숙이 치고 들어와 주니 급해질 만 합니다.”
“충분히 일리 있지. 사실 4국 동맹이 아니었다면, 트리폴리아 요새로 간 병력은 이곳으로 충원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니 말일세. 거기에 상륙 병력을 막고 있는 병력들 또한 이곳으로 지원 왔을 것이고 말이야.”
쇼오 공작이 동조를 하며 나섰다.
그의 생각도 밀리엄 후작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생각을 맞추며 총력전을 펼칠 시기를 조절하고 있을 때 밖에서 급한 발소리가 울려 왔다.
“급보이옵니다!”
“무슨 일인가?”
급한 소식이라며 달려 들어온 이는 일반 전령이 아닌 통신마법사였다. 통신용 수정구까지 챙겨 들어온 모습에 쇼오 공작과 밀리엄 후작은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신성제국 북부 발데아르 부족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엇인가 포착이 된 것인가?”
신성제국 북부 야만족 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발데아르 부족에서 연락이 올 내용이라면 몇 가지 없었다.
그것은 바로 병력의 이동이었다.
“슬레지안 제국의 명을 받아 북부에서의 활동을 높이는 도중 은밀히 빠져나가는 병력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몇 적병을 잡아 고문한 결과, 신성제국의 북부군단이 이곳으로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북부군단이!”
놀란 음성은 마법사에게 질문을 던졌던 쇼오 공작이 아닌 밀리엄 후작에게서 나왔다.
“그 정황이 언제쯤 포착이 된 것인가!”
다급해 보이기까지 한 쇼오 공작의 질문에 마법사가 재빨리 대답을 이어 나갔다.
“전날에 최초 포착을 했사옵고, 연락 오기 바로 전에 대규모로 모이는 병력을 정찰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하옵니다.”
“지금 바로 발데아르 부족으로 통신을 넣도록 하게!”
쇼오 공작의 말에 마법사는 미리 준비해 온 수정구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빠르게 주문을 외워 갔다.
지금 이 순간 쇼오 공작과 밀리엄 후작의 머릿속에는 대결전을 알리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막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케니클 후작을 중심으로 모인 블라미르와 샤이완, 콰이어 공작의 눈앞에는 굵직한 깃발들이 놓인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지도부 모두가 지도에 시선을 두고 있을 때 루키아 후작은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한쪽에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케니클 후작이 제국연합으로 향하고 있던 모습의 깃발 하나를 들어 옆으로 옮겼다.
“음. 진로를 바꾸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의외로군요.”
“으음, 사실 여러 곳에서 들쑤신다면,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힘이 분산이 되지만, 확실히 의외야.”
“크흠. 우리 입장에서는 제라르라는 전력이 빠지는 것이 편하긴 하겠지요.”
케니클이 옮긴 깃발은 바로 제라르가 이끌고 있는 부대였다. 그와 관련해 샤이완 공작과 콰이어 공작이 연이어 말꼬리를 이었다.
이리저리 생각을 해 보아도 제라르의 병력이 방향을 틀 이유가 크게 없는 것이다.
“장기전을 생각한다는 것인데…….”
“흐음.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긴 하군요.”
제라르의 병력을 지금까지 잘 싸워 주고 있는 4국 동맹에게 붙여 양동 작전을 펼치며 장기전으로 간다는 모양이 제일 설득력이 있었다.
“이것들이 남의 집 안까지 들어와서 장기전을 꾸민다고?”
성미 급한 콰이어 공작이 눈썹을 확 치켜 올리며 언성을 높였다. 두 제국의 힘이면 장기적인 전쟁을 위한 보급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안정적인 보급이 이루어졌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보급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항상 전쟁에서 보급에 대한 공격과 수비가 전장에서의 전투 이상으로 철저한 법이다.
특히나 적의 땅 안까지 들어온 공격자 측은 보급이 수월하지가 않다. 개도 자기 집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는데 하물며 인간이라고 안 그러겠는가?
“그렇게 화낼 만한 것도 아닐세. 사실 외형적인 부분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대륙의 전 국가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형편 아닌가.”
“응?”
“크흣. 정말 재미있는 모양이군요.”
아메리 연방제국을 필두로 슬레지안 해상제국, 그리고 가우리, 로셀린, 말린, 하이안 왕국 거기에 신성제국 북부에 있는 수많은 야만인 부족들까지 더한다면 그야말로 대륙의 공적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단지 재미있고 어이없다는 모습만을 보이고 있었다.
“어차피 제국연합이 무너지면 나머지는 꼬리를 뺄 것이 분명하니 신경 써봐야 머리만 아픕니다. 하하하.”
“뭐 우리로서도 4국 동맹이 저리 치고 올라올 줄은 몰랐으니, 제국연합 측에서도 한껏 고무되었을 것이야. 거기에 북로셀린이 무너진 것과 가우리…… 흠, 원정 실패로 남부 쪽의 공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니 우리의 거의 모든 정예 병력이 이곳에 와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
케니클 후작의 웃음 섞인 한마디에 샤이완 공작이 말을 받다가, 가우리 원정의 실패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살짝 말을 흩트리며 옆에 잠자코 있는 루키아 후작을 슬쩍 바라보았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루키아는 그가 한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듯이 지도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응?’
샤이완 공작은 그의 시선이 어딘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보는 방향은 자신들과 같은 제국연합이 아닌 4국 동맹이 있는 곳이었다.
‘하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겠지.’
군단이 괴멸당하는 수모를 겪은 데다 죽을 고비까지 넘겼는데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전 이만 시간이 되어 나가 보겠습니다.”
“크흠, 그러게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루키아 후작과 시선이 마주쳐 버린 샤이완 공작이 약간 멋쩍은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그럼에도 루키아 후작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지휘막사를 나섰다.
“가끔이지만, 루키아 후작의 기척이, 아니 존재 자체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응?”
케니클 후작의 말에 콰이어 공작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무슨 의미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말을 꺼냈던 케니클 후작이 멋쩍은 듯이 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렸다.
“아니 뭐, 하도 말이 없으셔서 그런가 봅니다. 예전 분위기와 많이 달라지긴 했지 않습니까.”
“핫핫! 난 또 뭐라고, 뭐 이전에도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 않은가!”
멋쩍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케니클 후작에게 콰이어 공작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려 주며 말을 받았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블라미르만이 루키아가 나간 방향을 지켜보았다.
저벅저벅.
막사를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루키아 후작에게서 나는 소리라곤 오직 작은 돌가루에 부스러지는 발자국 소리가 전부였다. 그런 루키아의 모습은 묘하게 위화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의 그런 모습에 기사들마저 그의 곁을 어려워할 정도였다.
“오셨습니까.”
루키아의 걸음이 멈춘 곳에는 날래 보이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출정 준비를 마치고, 긴장된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키아는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는 기사를 말없이 지나치며 시종이 들고 있는 투구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기사와 병사들은 그의 행동이 익숙한 듯이 모두 말에 오르며 루키아 후작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갔다.
투구를 쓰고 말에 오른 루키아가 말에 올라 천천히 진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어두움이 깔리는 대지를 향해 루키아는 그렇게 기사들과 병사들을 이끌고 나섰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몇몇 기사들은 잠시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피비린내가 진동하겠군.”
루키아가 도착한 그날부터,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해 오던 일.
그것은 적들의 피로 자신을 담금질하는 것이었다.
제국의 손꼽히는 검호가 적을, 병사와 기사를 막론하고 베러 직접 나가는 것이다.
아무도 이 일행들을 정찰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사냥꾼들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 * *
그리모를 비롯한 마법사들은 여전히 차도가 없었다. 그저 사지가 뒤틀린 채로 침을 흘리며 애처로운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묵묵히 바라만 보며 무엇인가를 옮기고 있던 마법사들에게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준비됐으면 그만 나가도록 하여라.”
“예, 탑주님.”
대륙 3현자의 수장이자 제국 마탑의 탑주인 뮤 베이니어였다.
마침 마법사들이 준비를 끝마쳤었는지 뮤에게 극도의 경의를 표하고는 천천히 방문을 빠져나갔다.
마탑주인 뮤의 수련실이자 실험실인 마탑 최상층의 이곳에는 오로지 그와 폐인이 된 마법전단 마법사들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모야. 참으로 안타깝구나.”
“끄으어어어.”
허리를 숙여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그리모의 눈가를 닦아 주는 뮤의 얼굴에는 무력감이 서려 있었다.
“방도가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어떠한 방법으로 너희를 이런 함정에 빠트렸는지조차 모르겠구나.”
“흐으으으.”
뮤의 말에 그리모는 더욱 흐느꼈다.
그동안 버텨오며 일말의 기대를 가져 보았던 그로서는 사형 선고와 같은 말이었다. 그리모의 눈물이 강력한 전염성을 가졌는지 뒤의 마법전단 소속 마법사들마저 눈물과 콧물을 흘려내었다.
모두가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꿈틀거리며 눈물을 흘려 낼 때 뮤가 그리모의 앞에 앉아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모야. 트리폴리아 요새의 성주는 도저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더구나. 그마저도 지금은 대답을 해 줄 입과 혀가 없어져 버렸으니 애석할 따름이고…….”
트리폴 백작은 이들과 달리 비참했다.
온몸의 힘줄은 물론이고 산 채로 포를 떠지게 되는 최후를 맞이했다. 적국의 병사에게 사로잡혀 고문을 당하는 것이 아닌, 아군에게 비참한 고문을 당하는 최후를 말이다.
물론 그 혼자뿐 아니라 수도에 있던 일족들 역시 그의 눈앞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그럼에도 쓸만한 것은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그것이 지금 뮤의 마음을 더욱 짓누르는 것이었다.
“정말로 리셀이 대법사의 경지에 오른 것이었느냐.”
적어도 그가 대법사는 되어야 이런 결과들이 조금이나마 설명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대답은 없었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그리모의 눈빛은 뮤로서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뮤의 독백은 계속되었다.
“허허허, 지금에 와서 상상도 하지 못할 이가 되돌아 왔다니…… 그리모야, 리셀이 그날의 일을 궁금해 하지 않더냐?”
“으어어!”
“이야기를 한 것이냐?”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리모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시선을 돌리려 애쓰는 모습에 한 가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리셀의 스승이 그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것을 준비했던 것을 말했나 보구나…….”
다정다감한 음성이 계속 흘렀지만, 그리모는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힘겹게 시선을 조금씩 움직여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모의 처절한 모습에 뮤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오움 살라 디 크레이 움 타하…….”
마법을 발동하기 위한 진언이 나직하게 울려 퍼져 나가자 그리모는 더 이상의 버둥거림을 멈추고 절망에 찬 눈빛을 뮤에게 보내었다. 하지만 천천히 마법을 시전해 가는 뮤의 음성에는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다.
아니 오랫동안 준비라도 한 듯이 빠르게 이어져 나갔다.
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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