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36
강철의 열제 436화
견제가 아닌 지금처럼 전면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그토록 큰 전력을 단지 통신 장악을 위해 빼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즉 무엇인가 노림수가 있다는 의미였다.
제국연합의 본진 이외에 타격을 입어선 안 되는 부분이 어디인가?
바로 보급품이다.
그런데 지금 타격을 받은 곳은 보급대가 아닌 예비대에 가까운 곳이었다. 예비대는 본진과 보급대의 사이에서 언제나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면서 지난 전투에서 지친 병사들이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교대된 병력이었다.
“보급대를 확인하라!”
밀리엄 후작의 음성에 긴박함이 묻어나왔다.
예비대를 먼저 치고 보급대를 들이친다면 충분히 이유 있는 그림이 된다.
혹은 보급대에도 동시에 들이쳤다면?
그렇다면 지금 신성제국 진영이 마음먹고 수비를 하는 것에 충분한 이유가 생긴다.
“이미 확인했습니다!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 만전을 기하라는 연락을 해 놓았습니다.”
밀리엄 후작의 뒤로 다가온 참모 하나가 이미 조치를 취했는지 걱정을 덜어 주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급보이옵니다! 보급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수가 확인되지 않는 병력 다수가 관측되었다 합니다!”
“뭣!”
숨을 고르기도 전에 연달아 보고가 들려오자 밀리엄 후작의 얼굴이 눈에 뜨이게 경직되었다.
‘예비대와 보급대를 동시에 친다?’
전면전이라 하지만 지금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병력은 양쪽 합쳐서 20만가량이다. 나머지는 순차적으로 교대를 위한 병력들로 대기하는 것이다.
“놈들은 시간을 끄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약점인 보급을 공략하는 것이 분명하오!”
지금까지 전체적인 작전 진행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쇼오 공작이 이전과는 다르게 음성에 힘을 실었다. 쇼오 공작이 아무리 해상 전투를 맡은 입장으로 따라왔다지만, 이러한 판세조차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밀리엄 후작이 좀 더 세세한 면이 있고 동맹의 특성상 지휘부가 나뉘지 않도록 배려를 했기에 물러나 있었다.
그렇기에 쇼오 공작은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죄송합니다! 아직은 여력이 있습니다만, 처음 교전 시작 이후 난전으로 접어들어 확실히…….]“이, 이런!”
밀리엄 후작의 추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끝까지 이루어지지 못했다.
수정구의 영상이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빛을 잃었다. 통신이 꺼져 버린 것이다.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몇 번이고 연결을 시도했던 마법사가 고개를 숙이며 착잡한 음성을 내뱉었다.
“통신 장악인가?”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끄응. 어찌할 생각이오?”
쇼오 공작이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로 질문을 던지자, 밀리엄 후작은 신중한 표정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전장을 바라보았다.
길게 늘어선 신성제국 보병들의 방진이 언제든지 들어와 보라는 듯 오만해 보인다. 그리고 거미 새끼들처럼 대지를 창칼로 뒤덮고 달리는 제국연합의 병사들.
“지원 병력을 보내야겠습니다.”
“역시…….”
심사숙고 끝에 밀리엄 후작의 입이 열렸고 쇼오 공작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마법을 장악할 정도의 마법 전력과 십대 강자 중의 하나인 용병왕 블라미르가 있는 상황이라면 그 뒤를 받치는 병력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또, 진영 자체가 무너진 상황이라면 지원병이 간다 해도 늦었다.
거기에 지금 정황에서 그들이 예비대를 치고 그냥 병력을 빼는 결과는 없다고 봐야 한다. 예비대를 무너트린 블라미르가 이끄는 신성제국 병력은 반드시 보급대를 치리라.
“에드먼드 백작에게 휘하의 병력과 보충대로 편성된 병력 총 오만을 이끌고 보급대로 이동하라 이르라. 당장!”
“알겠습니다!”
후작의 추상같은 명령에 전령이 크게 대답하고 명령을 전달하는 사령관 기를 받아 달렸다.
“예비대는 어찌합니까?”
참모 하나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밀리엄 후작은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짧게 대답했다.
“보급대가 더 중요하다.”
“알겠습니다.”
그 한마디로 예비대는 지금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보급대를 지원해야 할 예비대가 난전 중이니 본진에서 상당수의 병력이 대신 그 자리를 메워 주어야 했다.
이전에 2만여 병력을 소모시키면서까지 보급선에 타격을 주었던 신성제국이었다. 얼마나 더한 병력을 쏟아부을지 모르는 것이다.
예비대를 치는 데에도 통신 장악을 펼치고 급습한 신성제국이지 않은가?
그런 데에는 필히 큰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중심에는 보급대라는 제국연합의 약점이 놓여 있었다.
밀리엄 후작은 명령을 내리면서도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쇼오 공작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의 전장 상황이 신성제국의 의도대로 끌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끌지 않기 위해 전면전을 걸었는데 적들은 철저한 수비로 일관하며 보급을 노린다.
신성제국 입장에서는 제국연합의 보급대를 공략하지 못해도 신경을 분산시킬 수 있으니 별문제는 없다.
수비만 철저하다면 말이다.
스르릉.
밀리엄 후작이 자신의 소드를 뽑아 들고 바라보았다.
햇빛에 반사되는 차가운 은빛이 마치 보석과 같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가는 도구치고는 너무 화려한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공작님과 제가 각각 좌군과 우군을 맡아서 출전했었는데 이번에는 좀 병력 운용을 달리해야할 듯 싶습니다. 함께 움직이며 기회를 보아 적들의 대열을 무너뜨리는 게 나을 듯 합니다.”
“좋소. 놈들이 마스터의 힘을 믿고 우리의 뒤를 쳤듯이, 우리도 그 힘을 보여 줘야지. 운이 좋다면 홀로 돌아다니는 적 사령관도 잡기 쉬울 것이고 말이오.”
쇼오 공작 역시 자신의 칼집을 한 손으로 감아쥐며 서늘한 음성을 흘렸다.
제국연합의 본진에서 5만에 달하는 대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동시에 뿔 고동 소리가 전장을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 * *
요란한 전장의 상황과는 다르게 팔란시아 평원 한쪽의 작은 숲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적막함을 떠나 위화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분명 숲이 존재하는 그곳에 나지막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작 각하, 제국연합의 머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시작이란 말이지.”
한기가 도는 음성이지만 묘하게 들떠 보이는 음색이었다. 칼날 같은 한기를 뿜어내는 루키아 후작의 음성이었다.
그와 동시에 숲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빛이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은 마치 사막에서 볼 수 있다는 신기루와 같은 모습을 만들어 내었다.
잠시 후 일렁임 끝에 나타난 것은 숲에 빼곡하게 들어선 신성제국의 병사들이었다.
“후우.”
그 숲의 중심에는 삼현자 중 일인인 물의 미케인 베이니어가 들어 올렸던 두 팔을 천천히 내리며 땀을 훔치고 있었다. 힘겨운 모습의 미케인 대법사 주변에는 마법사들이 탈진해 쓰러져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무슨, 이제부터는 자네들이 고생할 것인데.”
참모가 다가와 미케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그가 손을 휘휘 저으며 오히려 그를 걱정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오늘의 승리는 대법사님들의 공으로 돌려질 것입니다.”
“하하하, 얼굴에 금칠을 하는구먼.”
“그럼 전 이만. 나머지는 대법사님과 마법사들을 호위해서 안전하게 복귀하도록 하라!”
“예!”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변에서 대기하던 기사단과 중장보병들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숲이 인간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 * *
“크, 큰일이오!”
제국연합의 두 마스터가 말을 몰아 본진의 병력을 이끌고 나간 뒤 나머지 병력을 지휘하던 연방제국의 클로져 백작이 창백한 얼굴의 서먼 대법사를 맞이하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 적이…….”
일개 마법사도 아닌 연방제국 유일의 대법사가 이렇게 놀란 모습으로 나타나 내뱉은 첫마디가 적이라는 단어였다. 클로져 백작의 얼굴에 황급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적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약 오만에 달하는 적이 아군 진영의 옆으로 갑자기 나타나 달려오고 있소이다!”
“그게 갑자기 무슨…….”
클로져 백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5만이라는 병력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단 말인가?
달랑 수십이나 수백을 숨기는 것도 어려운 판에 5만이 어디에 있었다고 갑자기 나타나겠는가?
“적진에 미케인 대법사가 있는 것이 분명하네!”
“그게 지금 상황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이곳은 수계마법의 대가인 그가 힘을 발휘할 만한 지형이 아니지 않습니까!”
클로져 백작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대현자라 불리는 뮤 대법사와 분명 물의 미케인, 화염의 탈로스라 불리는 두 현자의 존재는 대륙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아니 모르는 것이 더 이상했다.
평소라면 클로져 백작의 무뢰한 말투에 크게 화를 낼만한 상황이었지만, 서먼 대법사는 절망 어린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들이 나온 곳이 팔란시아 평원 한 자락에 있는 숲이란 말일세!”
“그곳은 오만이라는 병력이 숨을 수 없는 곳입니다. 숨긴다 해도 일만은커녕 오륙천이 숨는다면 많이 숨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곳을 감시하는 망루가 있어 그 정도 병력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 못할 리가 없습니다!”
상식이 벗어난 상황에서 클로져 백작의 목소리는 줄어들 줄을 모르고 있었다.
“물의 미케인 대법사의 또 다른 장기가 바로 수분을 이용한 빛의 마법일세.”
“빛의…….”
“대규모 환상 마법일세.”
서먼 대법사의 말에 클로져 백작의 창백한 시선이 전장을 향했다. 멀리서 만들어지는 먼지구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국연합을 향한 치명적인 비수였다.
공기 중의 수분과 빛을 이용한 환상 마법은 여러모로 쉬운 것은 아니다. 거기다가 5만이라는 병력을 숨길 수 있는 환상 마법은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미케인 대법사 역시 5만이라는 병력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작지만 이미 숲이라는 조건을 갖춘 기본적인 지형이 있었기에 지금의 방법이 가능했다.
이런 사실을 서먼 대법사에게서 보고받은 후의 밀리엄 후작은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신성제국 진영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기사단은 선두로 나서도록 하라!”
철벽과 같았다.
거북이처럼 웅크린 방패의 벽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제국연합 병사들의 모습은 자신이 보더라도 안쓰러웠다. 마치 깨지지도 않는 바위에 대고 달걀을 연신 던져 대는 느낌이랄까?
“벌써부터 기사단이라니 좀 빠르지 않은가?”
쇼오 공작이 걱정스런 음성을 내뱉었다.
“클로져 백작만을 믿기에는 지금 상황이 어렵지 않습니까.”
“후우.”
밀리엄 후작의 착잡한 말에 쇼오 공작이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렸다. 누런 먼지구름이 확연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바로 신성제국의 숨겨 두었던 병력일 것이다.
거기에서 시선을 더 후방으로 가져갔다.
그곳에는 길게 늘어선 병력이 황급하게 흙먼지가 날리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병력의 대열이 엉성한 것이 쇼오 공작의 시선에 걱정이 어리게 만든다. 하지만 그만큼 허를 찔린 상황이고 시간적으로 다급하다는 반증이다.
“서먼 대법사도 합류하기로 되어 있으니 믿고 뚫는 것입니다.”
“뚫어야지 당연히…….”
뒷말을 흐리는 쇼오 공작의 눈길은 여전히 흙먼지를 향하고 있었다.
* * *
지금껏 담담하던 고진천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숲이 변하고 그 안에서 느닷없이 수만의 병력이 튀어나온 상황은 그로서도 의외였기 때문이다.
“미케인이 환상을 만들어 내었군요.”
진천의 놀람과는 달리 말을 뱉는 리셀의 음성은 차분하기만 했다.
“저런 것도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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