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37
강철의 열제 437화
진천의 음성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저런 상황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원하는 모든 곳에서 매복을 한다?
매복이라는 것의 효과를 생각한다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지옥과 같을 것이다. 하물며 객관적인 전력에도 앞서지 못하는 4국 동맹 입장이라면 정말 힘겨워질 수밖에 없다.
“저도 저렇게까지 큰 환상마법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저 경우는 역시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봐야 합니다. 적지만, 일정 규모의 숲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라 봐야 합니다. 게다가 환상은 환상입니다.”
“그 말은?”
리셀의 설명에 진천이 눈일 빛내었다.
“정찰을 꼼꼼히 실시했다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겁니다.”
“흐으음.”
리셀의 말에 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상일 뿐이지 그 안으로 들어선다거나 가까이 가면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라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저곳에 병력이 숨는다 해도 일만 미만의 병력일 것이고 그 정도라면 굳이 대비를 안 해도 될 것이었을 겁니다.”
리셀의 추가적인 설명에 진천은 찜찜했던 마음을 털어 버릴 수 있었다. 평소대로 꼼꼼한 정찰만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사실 정찰이 꼼꼼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루키아 후작이었다. 직접 정찰을 나서며 보이는 적 정찰대들을 도살했기에 제국연합의 정찰 활동이 알게 모르게 위축되었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지금 진천의 얼굴에는 조금 전의 놀람이 사라져 있었다.
그때 전장으로 향했던 그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이거 재미있어지는데”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먼지구름을 바라보는 진천의 눈동자가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해지기 시작했다.
* * *
“디엔 남작! 선두 기사단을 이끌고 적들의 선봉을 저지하라!”
“예!”
놀람은 한순간이고 판단은 찰나였다.
클로져 백작은 마법을 이용해 매복해 있던 신성제국의 병력을 저지하기 위해 곧바로 예비대를 이끌고 달렸다.
시간상으로 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가 이끄는 병력의 대열은 보기에 엉성할 정도로 길게 늘어져 버렸다. 하지만 대열을 맞추며 이동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클로져 백작의 명령에 디엔 남작이 기사단을 이끌고 달리는 동안 클로져 백작이 뒤쳐진 병력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뛰듯이 달리던 걸음을 속보 정도로 줄인 병사들이 숨을 고르는 동시에 지휘관의 명령에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부 충원 병력을 제외하고는 다들 전투를 두어 번씩 해 보았던 병력이어서인지, 지휘관들의 명령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전투들에서 나타난 생존의 경험 때문인 것이다.
살아남는 법을 배운 병력이야말로 정예 아니던가?
콰아앙!
“격돌! 선두 기사단 격돌 시작!”
전황을 알리는 병사의 외침이 클로져 백작의 귓가로 울려왔다. 귓가로 진행 상황을 듣던 그는 선두 대열이 얼추 갖추어지자 또다시 이동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후열이 아직도 동네 꼬마 콧물처럼 늘어져 있었지만, 그것까지 다 챙길 여유는 없었다.
“아군 기사단 반전!”
“전군, 구보 이동하라!”
클로져 백작의 명령에 병사들이 조금이나마 골랐던 숨을 다시 몰아쉬며 걸음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자신의 주위를 지나치는 것과 동시에 말 머리를 돌린 클로져 백작의 시선에 신성제국군의 선봉을 저지하러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디엔 남작과 기사단이 들어왔다.
“추격당하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뭐야 이건!”
병사의 외침과 동시에 클로져 백작의 입에서는 짧은 욕설이 튀어나왔다. 당당히 달려 나갔던 기사단과 기마대가 미친 듯이 말을 몰아 쫓겨 오고 있었다.
이미 뒤는 신성제국 기사단에 잡혔는지 달려오는 도중에도 공격당해 무너져 내리는 대열이 확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다이안 남작, 병력을 맡도록. 방패 기사단과 예비 기마대는 나를 따르라!”
상황을 파악하는 동시에 명령이 나왔다.
고함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푸른 방패를 상징으로 하는 깃발이 앞으로 나섰고, 그 뒤로 일단의 기마들이 몰려들었다.
“아군을 구원하라!”
클로져 백작의 말이 튕기듯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고, 그 뒤를 육중한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단이 뒤따랐다.
신성제국군을 저지하기 위해 먼저 병력을 이끌고 달려 나갔던 디엔 남작은 이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처량한 꼴로 도주해 오고 있었다.
팔 한 짝은 어디다 두었는지, 한 팔로만 말고삐를 잡고 달리는 모습이 위태롭기만 해 보였고, 잘린 팔 사이로 흘러내린 피가 많았는지 얼굴은 창백하기만 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이빨이 쉴 새 없이 부닥치는 것이 마치 한밤에 귀신이라도 본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아악!”
“히익, 살려 줘!”
처절한 외침들이 뒤쪽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기사들의 체면은 어디로 다 버렸는지 무력한 약자들의 비명뿐이었다.
“아군을 구원하라!”
디엔 남작의 귓가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흔들리는 시선을 외침이 터져 나온 방향으로 고정했다. 그곳에는 도주하는 그와 제국연합의 기사들을 구하러 달려오는 클로져 백작과 방패 기사단이 보였다.
딱딱딱딱!
그것을 본 디엔 남작의 동공이 급격하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이빨은 더욱 미친 듯이 부딪혔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데 공포에 미친 이빨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디엔 남작!”
“오…….”
클로져 백작이 선두에서 말을 달려오며 그를 외쳐 불렀다. 그와 동시에 힘겹게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시선에 자신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는지, 클로져 백작이 속도를 더욱 높이기 시작했다.
까득!
디엔 남작의 턱이 강하게 물리며 이빨 조각이 부스러져 나갔다. 떨림을 강제로 억제하기 위한 필사적인 행동이었다.
너무 강하게 물었음인가?
잇새로 핏물이 부서진 이빨과 함께 새어나왔다.
“오, 오지 마! 루키아가 왔다!”
필사적으로 짜내어 외친 음성.
이어 등줄기를 가르는 차가운 한기.
갈라진 몸뚱이에서 뿜어진 뜨거운 열기.
그것이 디엔 남작이 마지막으로 느낀 것의 전부였다.
좌우로 나뉘어 스러지는 그의 몸뚱이 사이로 붉은색의 차가운 운무를 만들어 낸 악마가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그림 같았다.
처참함을 담은 디엔 남작의 전신을 그린 그림을 누군가가 양옆으로 찢어 버린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우성 소리와 힘없이 한마디를 외치고 거친 땅바닥에 시신조차 온전치 못한 상태로 무너져 내린 디엔 남작의 모습은 현실이었다.
그 사이로 나타난 붉은 갑주의 사내.
냉혈의 검호라 불리는 대륙의 십인 중 일인.
벨로 폰 루키아였다.
움찔.
아끼는 수하의 죽음에 분노해야 함이 맞았다. 하지만 몸은 정직했다.
끼히히힝! 히히힝!
전쟁으로 단련된 말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 대었다. 인간보다도 더 본능에 충실한 것이 짐승들 아니던가?
클로져 백작은 디엔 남작의 유언과도 같은 외침과 자신의 본능을 무시하며 명령을 던졌다.
“아군을 구원하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라!”
이미 여기서 말 머리를 돌릴 수 없다. 그러면 도망쳐 오는 아군과 엉켜 버리게 되고 그리되면 맹수 앞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 버리는 꼴이 된다.
“적 선두는 루키아 후작으로 판명된다! 절대로 정면 대결을 하지 마라!”
이것이 최선이었다.
클로져 백작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그 누가 달려들까?
잠시 움츠렸던 대열이 다시 힘차게 달려 나갔다.
“에드몬드 단장과 웨인 부단장은 나와 함께 루키아 후작을 견제한다.”
“예,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클로져 백작의 말에 두 기사가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을 하며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비록 초인이라 불리는 마스터는 아니지만, 검으로는 적수가 거의 없는 그들이었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견제라면?
‘가능하겠지.’
클로져 백작은 스스로 세뇌시키며 루키아 후작을 향해 달렸다.
콰두두두두!
거침없는 루키아의 질주에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예상조차 벗어난 상황이었다. 이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예상 밖이었고, 또 이 별동대를 이끌고 있는 이가 루키아였다는 것도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상 못한 것은 바로 최선두를 달리는 이가 바로 루키아라는 점이었다.
대륙의 십인이라 불리며 마스터라는 지고한 존재의 초인. 그 존재만으로도 전쟁 양상에 큰 효과를 주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물론 최근 들어 그 초인 중 하나가 죽음을 당하고 커다란 패배를 당한 사건이 있었지만, 아무도 초인의 강함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초인은 초인으로 막는 법.
초인의 죽음에는 그에 상응하는 강함을 가진 초인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제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전장의 최선두에 나서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초인은 곧 총사령관으로서 전장을 누비기 때문이다.
총사령관이 마치 돌격 대장처럼 나서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가우리의 경우 연휘가람이라는 존재가 있어 그것이 가능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역시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일임에 분명했다.
그것이 제국연합의 디엔 남작과 기사들의 패닉을 불러왔다. 단지 스쳐 지났을 뿐인데 단단한 갑주와 무구로 무장이 된 기사들이 썩은 나뭇가지 부러지듯이 잘려지고 터지며 튕겨져 나갔다.
그들의 잘 정련된 무기들은 거짓처럼 동강 나 버렸고, 방패는 그 가진바 임무를 발휘하지 못하고 반 토막이 나 버렸다.
연약한 피부를 대신해 주던 갑주도 그 단단함을 자랑하지 못한 채 어이없이 잘려졌다.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기사 열이 토막 나 말과 함께 전장 땅바닥으로 처박히고 나서야 그들이 막아서려 했던 존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더워진 열기가 순간 싸늘히 식는 느낌.
냉혈의 검호가 불러오는 특유의 전장 분위기였다. 그것을 알았을 때 디엔 남작의 팔은 이미 루키아의 일격을 막지 못하고 허공을 날았다.
단지 루키아만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초인임을 제외하고서라도 그의 직위는 후작이면서 일개 군단을 책임지던 위치였다. 당연히 그를 따르는 기사단의 무력 역시 최강임은 당연하다. 그런 그들의 앞을 급히 달려 나온 일개 영지 기사들이 막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 이후는 도륙이었다.
철저한 도륙.
제국연합의 본진을 노렸음이 분명한 돌진이었지만, 그들을 저지하러 나온 기마들을 만나고 나서는 그 목표가 단순한 살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살육에 충실했다.
“좋군.”
루키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서렸다.
양 볼에 난 번개 모양의 상처가 미소를 따라 움찔거렸다. 우루가 선물해 준 상처는 마법사의 포션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대아메리 연방제국의 클로져 비건 백작이오!”
“대아메리 연방제국 푸른 방패 기사단 단장 에드몬드 잭 남작이오!”
“푸른 방패 기사단 부단장 웨인…… 헉!”
제국연합의 클로져 백작과 푸른 방패 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이 차례로 무기를 뽑아 들며 예를 보였지만, 그것은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카캉!
“크윽!”
아무렇게나 휘둘러진 루키아의 검격을 웨인 부단장이 급히 방패를 들어 막았다.
웨인 부단장은 대충 뿌린 검격 한 번에 고철이 되어 버린 방패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귀족의 예를 나누려 했던 클로져 백작이 분노하여 외쳤다. 하지만 루키아 후작은 시선조차 그들에게 주지 않은 채 소드를 잡은 손목을 풀 듯 이리저리 돌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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