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38
강철의 열제 438화
떠들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후 허공에 몇 번의 칼질을 해 보던 루키아의 시선이 천천히 그들로 향했다.
“이……!”
계속해서 무어라 말하던 클로져 백작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더 이상의 말을 잊었다. 마치 사신이 그 거대한 낫으로 영혼을 훑는 느낌이었다.
영혼까지 느껴지는 차가운 한기.
“이제 적당해.”
“으음.”
무엇이 적당하다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그들을 향해 초인의 칼날이 겨누어지게 된다는 것.
“모두 조심들 하게.”
클로져 백작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일격을 받았던 부단장과 단장은 자신의 무기를 고쳐 쥐었다.
“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만족할 수 있을까?”
차가운 음성 속에 느껴지는 담담함.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느낌마저 주었다. 지금까지 그가 주던 광폭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순간 루키아의 눈빛이 빛났다.
“피를 보면 알겠지.”
찰나 사라졌던 광폭함이 자리를 되찾는 것과 동시에 루키아의 신형이 빛살이 되어 쏘아졌다.
제157장 완성되어 가는 전략 그러나……
“급보이옵니다!”
신성제국의 방어에 철저히 막혀 전혀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 날아온 급보라면 당연히 안 좋은 이야기가 분명했다. 병력을 지휘하는 밀리엄 후작에게 병사가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예비대를 격파한 병력이 본진의 뒤를 들이치기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본진을…….”
밀리엄 후작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예상했던 그림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고민하는 밀리엄 후작에게 일선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러 직접 나섰던 쇼오 공작이 되돌아왔다. 병사들의 후미를 가르고 급하게 달려오던 전령의 깃발을 보았던 것이다.
“본진에 적 병력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답니다.”
“본진이라니? 그럼 적들이 노리는 것이 장기전이 아니란 이야기요!”
변화된 사실 하나만으로도 적들의 의도를 눈치 챈 쇼오 공작이었다.
“아무래도 난전으로 유도해서 병력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계획을 적들이 간파한 모양입니다.”
“으음.”
“아무래도 우리가 선두에 나서야겠습니다.”
밀리엄 후작의 말에 쇼오 공작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초인이 포함된 병력이라 해도 이미 일전을 겪었고, 또 본진의 병력이라면 충분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병영을 세우며 난입에 대한 방비는 기본적인 사항이었고, 초인을 잡지는 못하겠지만, 그가 데려온 병력은 살아서 나가기 힘이 들 것이다.
초인을 상대로는 철저히 시간을 끌며 뒤따라온 병력만을 철저히 상대하는 것은 기본적인 전술 중 하나였다.
문제는 적의 의도가 시간을 끄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었다. 환상마법을 이용한 매복 병력도 그렇고 지금 전황 상 병력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성제국이었다.
적의 방어에 막혀 이렇게 아우성 댈수록 상황이 불리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안 그래도 좀이 쑤시던 차였다네.”
쇼오 공작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 짓자 어렵게 말을 꺼내었던 밀리엄 후작의 얼굴이 밝아졌다.
“신성제국 놈들이 병력을 나눈 사실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요.”
쇼오 공작과 밀리엄 후작, 제국연합의 두 초인의 칼날이 신성제국을 향해 뽑혔다.
* * *
더운 여름날 밤, 걸어 둔 횃불이나 등불 사이를 밤새 맴도는 벌레들을 기억하는가?
아침까지 불을 향해 달려들다 또는 맴돌다 지쳐 하나둘씩 생을 마감하는 벌레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빗자루로 쓸어서 모아 놓은 것처럼 쌓여 있기 마련이다.
흔히 부나방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횃불을 향해 기사라 불리는 부나방들이 달려들었다.
털썩.
“다음은?”
쩍 벌어진 흉갑 사이로 붉은 핏물이 울컥인다.
그런 참상을 만들어 놓고도 루키아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 없는 표정으로 담담한 음성을 내뱉었다.
“개, 개 같은.”
“다음은?”
만신창이가 된 클로져 백작의 외침에도 루키아 후작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돌리며 다음 희생물을 불렀다. 그런 그의 부름에 아무도 응하지 못했다. 분노보다는 본능이 나서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과 함께 나섰지만, 그들의 능력으로는 시간을 끄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제국연합의 기사들을 다른 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욕심쟁이처럼 홀로 도륙해 낸 루키아에게 더 이상 달려드는 이가 없자, 지켜만 보던 신성제국의 기사가 다가왔다.
“본진으로 가셔야 합니다.”
수뇌부가 처참하게 휩쓸린 상황에서 대열조차 정리 안 된 병사들은 전력이 될 수 없었다. 그 탓인지 지휘관들을 잃은 제국연합의 병력은 이미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런가?”
“용병왕 블라미르 님께서 적 본진에 돌입을 하셨다고 합니다.”
블라미르가 적 본진에 돌입을 시작하였다면 이쪽에서는 예정했던 대로 공세를 벌이는 제국연합의 후미를 들이쳐야 한다. 그래야 블라미르의 난입이 더욱 효과적이면서 안전하게 된다.
“가지.”
“이자는…….”
말을 돌리려던 루키아의 귓가로 조심스런 음성이 이어져 왔다. 기사가 가리킨 곳에는 만신창이의 클로져 백작이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루키아는 팔을 휘둘렀다.
“크륵!”
클로져 백작은 더 이상 아무런 욕설을 내뱉을 수 없었다.
무너져 내리는 그의 신형에는 시선 하나 안 준 루키아는 자신의 애검을 검집에 넣으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적장의 저항이 심했더군.”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클로져 백작은 포로가 아닌 전투 중 사망한 것이 되었다.
명령을 내릴 생각이 없는지 먼저 말을 달려 나가는 루키아 후작의 뒤로 기사들의 명령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빠르게 이동한다!”
이리저리 흩어지는 제국연합의 저지 병력을 무시한 신성제국의 5만 병력은 거의 피해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여전히 힘 싸움에 지지부진하고 있는 제국연합의 등판이었다.
* * *
“뭣! 클로져 백작님께서?”
“그렇습니다! 적 별동부대에 루키아 후작의 존재가 확인이 되어 그를 막으려 나서셨다가…….”
먼지투성이의 기사의 보고를 받는 제국연합의 니콜슨 자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시간조차 끌어 주지 못하고 수만의 병력이 와해된 사실은 지금으로선 최악이었다.
물론 루키아까지 전장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정말 최악 중의 최악이다.
“통신마법사는 이 사실을 밀리엄 후작님께 알리도록 하고, 필 남작 준비된 예비대는 있는가!”
“그게, 당장 준비된 병력은 일만 정도가 전부입니다. 블라미르가 난입을 해 온 덕에 이미 일단의 병력이 그리 이동했습니다. 거기에 클로져 백작님이 끌고 나가신 병력도 적지 않았던 터라…….”
참모인 필 남작의 난감한 대답에 니콜슨 자작은 전장을 둘러보았다.
창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한 본진 상황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고 시간이 지난다면 보급대에 있던 병력이 일부 회군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피해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결전을 나선 병력이었다. 병력이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후미에 공격을 받으면 그것은 치명적이다. 길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기마대는?”
“예비로 빠져 있는 기사 백여 명과 견습기사를 포함한 기마 병력이 약 삼천이 됩니다.”
“준비시키게.”
“병력은 누가 이끕니까?”
이미 쓸 만한 전장 지휘관은 보급대에 지원을 나가고, 후방에 난입한 블라미르의 병력을 막으러 나섰으며, 루키아 후작을 막다가 전사했다.
“내가 간다.”
“자작님!”
니콜슨 자작의 말에 필 남작과 주변의 기사들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만류했다. 그들의 시선은 그의 왼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까지 대각선으로 동여매어진 붕대로 향해 있었다.
“이깟 부상은 문제도 아니다.”
안광이 형형한 니콜슨 자작은 허리를 한껏 펴며 문제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기골이 장대하여 다른 기사들보다 훨씬 큰 그의 덩치가 이럴 때에는 아군에게 약간이나마 안심을 가져다주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저는 자작님의 말을 끌고 오겠습니다.”
“음.”
필 남작이 바삐 움직이고 시종이 말을 가지러 달려 나가자, 니콜슨 자작은 갑주를 챙겨 입으러 막사로 향했다.
욱신!
“크윽.”
가슴 어름을 가로지르는 상처가 욱신거리자 니콜슨 자작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마법사의 치료마법을 받았지만, 생체 조직이 완전히 망가진 탓에 회복이 더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상처를 만든 것은 십대 검호 중 일인인 케니클 후작이었다.
수하들이 걱정한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이런 큰 상처를 입고 말을 달린다면 대번에 상처가 덧날 것이기 때문이다.
“신성제국 놈들!”
니콜슨 자작은 자신의 상처에는 안중도 없다는 듯 허리를 펴고서 다시 막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신성제국에 대한 전의가 상처의 아픔을 가려 준 것이다.
“자작님!”
니콜슨 자작의 막사 앞으로 말을 끌고 온 시종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높여 그를 불렀다.
“니콜슨 자작님! 말 끌고 왔습니다요!”
전장의 소란스러움 탓인가?
시종의 부름에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허락 없이 귀족의 막사 안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자살행위를 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다시금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자작님 말이 준비되었…….”
펄럭.
다시 이어진 시종의 부름이 끝나기 전에 막사 입구의 천이 크게 들리며 갈색빛이 감도는 갑주를 착용한 니콜슨 자작이 나타났다.
“…….”
“나, 나오셨습니까!”
그간의 격전으로 갑주는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생채기들이 더욱 위압감을 주었고, 다른 이들보다 건장한 체격이었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주눅이 들게 만들었다.
거기에 투구를 쓴 것도 모자라 안면 가리개까지 완전 내리니 일개 시종으로서는 그 위압감을 감당해 낼 리가 없었다. 갈색빛으로 무장한 그의 안면이 천천히 시종을 향했다.
그 표정이 어떠한지 안면 가리개 안의 얼굴을 뚫어 볼 수 없는 시종으로서는 잔뜩 긴장한 채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그런 시종의 앞으로 니콜슨 자작이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스윽.
“여, 여기 있습니다.”
긴장했다 하나 그가 손을 내민 행동을 눈치채지 못할 시종이 아니었다.
시종은 말없이 손을 내미는 니콜슨 자작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고삐를 건네었다.
“끼히히히힝!”
“아, 아니 이놈이!”
고삐가 니콜슨 자작에게 넘어간 순간 갑자기 말이 길게 울음을 던지며 요동쳤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시종이었다.
말의 관리는 그의 임무 아니던가?
“워, 워. 지, 진정해라!”
당황한 시종이 진땀을 흘리며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려 노력하였지만, 말은 오히려 더욱 미친 듯이 울어 대었다.
그 순간 말고삐가 팽팽히 당겨졌다.
뻐어억!
“히히힝!”
“헉!”
강렬한 격타음에 이어진 말의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 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