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4
강철의 열제 44화
“일단 모입시다.”
밀리언의 목소리가 불안에 잠긴 사람들을 일깨웠다. 구수한 음식냄새를 풍기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우리 군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다들 복잡했다. 그중에서도 자신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가우리의 화전민출신 신병들을 보면서 마음이 동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국가라는 단체에 불신이 뿌리깊이 박힌 대다수 사람들은 그 모습마저도 자신들을 속이기 위해 연극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죠?”
“우리가 안 따라 간다 해도 정말 공격하지 않을까요?”
“아니, 그것보다 가우리라는 나라가 있었나?”
“모두 일단은 조용히 해 봅시다.”
모이자마자 떠들던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밀리언이 자신이 정리한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가우리라는 나라는 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전쟁터를 많이 다니고 용병 생활을 하면서 대륙을 전전했지만 가우리라는 곳은 들어 본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의 외모 역시 처음 보는 모습들입니다.”
“저 북방지역 사람들이 머리가 검고 피부가 누렇다고 들었는데요?”
“맞아!”
밀리언의 말에 상인생활을 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밀리언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북방지역 출신 용병들은 많이 보았지만, 전혀 다릅니다. 북방인들의 눈동자는 검푸른 색에 가깝지만 저들은 일단 검은 갈색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저들의 장비들 역시 처음 보는 형태이며 말 또한 북방은 물론 대륙의 말과는 다릅니다. 아까 전투를 보았지만 저런 마갑을 말의 전신에 씌우는 행동을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네, 게다가 그 말들의 괴력 역시…….”
순간 말이 오크들을 밟아 뭉개버리는 모습이 떠오른 사람들은 오싹함을 느꼈다. 빠져드는 의혹에 한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대체 저 사람들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기사들이 전투를 수행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도 보았지만, 그들과는 비교를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저렇게 많은 수의 기사단을 운용하는 나라는 제국 이외에는 없으니까요.”
“그럼 설마…….”
“제국은 아닙니다.”
“그럼 어디지?”
밀리언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수긍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이 여기까지 와서 저럴 이유는 없었다. 막말로 하이안 왕국만 닦달해도 되는 일 아닌가? 이들이 아무리 모른다 해도 그 정도는 하이안에 살았던 사람들이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혹시…… 마계?”
“헉!”
“마족!”
“그럴 리가!”
누군가의 말이 흘러나오자 갑자기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물론 이들이 마계의 인물을 본 적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누군가 무심코 던진 발언은 분위기를 어둠 속으로 몰고 나갔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대는 사람들을 보던 밀리언이 한숨을 내쉬고는 사람들을 안심시켜주듯이 그들의 대답을 부정했다.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저 많은 수의 마족들이면 세계정복을 하지 화전민 정복을 하겠습니까?”
“큼.”
“하긴.”
밀리언의 퉁명스러운 말에 말을 꺼냈든 사람이나 동조했든 사람들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도 그들의 무력이라면 이런 귀찮은 일 정도는 안 해도 된다는 것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저들의 조건인데, 왜 저런 조건을 걸었는지 그게…….”
“흐으음.”
“후우우우.”
밀리언의 침묵에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에 밀리언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의논을 하고자 사람들을 모았으나, 모두들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눈알만 굴리고 있으니 이렇게 모인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하긴 말해봐야 무슨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을 탓하기에는 자신도 마땅한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밀리언, 아까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던데…….”
“흐음, 사냥 시 임시 숙소를 이용할 때 자주 만나던 친구들이었죠.”
“저들의 말이 진짜일까?”
“흐으음.”
이들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무력을 몰랐으면 모를까, 눈앞에서 지켜본 상황에서 자신들을 흡수하기 위해 연극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밀리언의 눈에 비추어진 환호하던 사람들 속에서의 베론과 호크의 미소는 진짜였다.
“혹시 모르니까, 만나게 해달라면…….”
“에이 그게 될까?”
“말이 돼야지.”
“저…….”
웃기는 상상을 했다고 피식 웃어버린 사람들에게 경계를 맡고 있던 청년이 달려와 입을 열었다.
“뭔가?”
“베론이라는 분과 호크란 분이 와서 밀리언 아저씨를 뵙게 해 달라는데요?”
“…….”
순간 사람들이 말을 잊었다.
“저…… 어쩔까요?”
“데려와.”
“예.”
밀리언이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이 뒤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밝은 표정의 베론과 호크가 걸어왔다.
“밀리언!”
“베론, 호크!”
“이 사람아! 늦지 않아 다행이야!”
세 사람은 만나자 서로 얼싸안고 반가움을 표했다. 그렇게 기쁨을 나누었던 그들은 곧 서로의 안위를 살폈다.
“밀리언, 몸은 괜찮은가?”
“나야 걱정 없다네.”
“그럼 된 거야!”
서로 인사를 나눈 밀리언은 곧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의문을 풀기 위해 질문을 했다.
“그런데 호크 자네는 베론과 같이 있는가? 아니 그것보다도 저 병사들은 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절대 하이안 왕국의 군대라고는 볼 수 없는데.”
“아.”
밀리언의 질문에 두 사람의 얼굴이 약간 침울해 졌다. 그 모습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렸다. 그러는 가운데 베론의 입이 열렸다.
“우리들 마을은 이미 사라졌다네.”
“헉!”
“역시!”
“그렇다면 우리 마을은…….”
베론의 말에 사람들은 순간 소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자 베론이 자신의 말로 좀 오해가 생겼다는 것을 느끼고 다급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은 아니요. 오히려 구함을 받은 거지요.”
“베론, 그게 무슨 의미인가?”
“일단 조용히 해 주시오.”
밀리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소란스러움도 가라앉고 베론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 되었다. 그들의 이목에 부담을 느꼈는지 뒤통수를 긁으며 베론이 웃음을 보였다.
“하하, 거 일단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앉아서 이야기를 하지.”
“이런, 경황이 없어서. 일단 앉게나.”
“흐읍!”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는데 호크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놀란 밀리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자네 부상이라도 당한 것인가!”
“아…… 아니 그게.”
“키킥.”
엉덩이를 감싸 쥐고 엉거주춤한 호크는 밀리언의 과도한 걱정이 부담이 되었고, 호크 엉덩이의 비밀을 알고 있는 베론은 소리죽여 웃었다.
“사실은…….”
베론은 자신들의 자구책으로 끌어왔던 용병들의 배신 이야기부터, 호크의 마을에 들이닥쳤던 알빈 남작의 이야기까지 쭈욱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가 따라간다면, 안전은…….”
“맞아!”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희망적인 말을 내뱉자 순간 베론의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는 여태까지 화기애애하던 분위기와는 달리 조금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어나갔다.
“그런 생각을 하다간 노예가 될 뿐입니다.”
“노, 노예!”
“노예라니!”
베론이 뱉어낸 단어는 밝아지던 사람들의 얼굴에 다시 그늘을 드리웠다. 놀라기는 밀리언도 마찬가지였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베론에게 입을 열었다.
“노예라니, 무슨 말인가?”
“후우.”
베론이 한숨을 쉬는 가운데 호크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신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일세. 우리 마을 사람들 중 일곱 가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노예로써 생활 한다네. 물론 노예라 해도 일이 좀 많아진 거 외에는 편할지도 모르지만, 분명 노예라네.”
“아니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네.”
“그건…….”
밀리언의 질문에 베론이 눈을 마주치며 대답해 주었다.
“적어도 가우리에서는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도 있다네. 바로 칼을 들어야 한다네.”
“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이기기 위해 뭉쳐 군대가 생기고 나라가 있는 거지. 결국 그 구성요인은 나! 나부터 권리를 누리기 위해 먼저 지키자는 거지.”
“…….”
“그게 칼을 들어야만 하는 이유일세.”
베론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국가라는 것과 칼을 드는 것에 대한 이유 등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나라에서 칼을 쥐여주면 들어야 했고, 싸우라 하면 싸워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에 의미를 둔 적이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체 아까부터 가우리라 하시는데 그게 뭡니까?”
어디선가 가우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베론이 가슴을 쭈욱 펴면서 입을 열었다.
“내게 칼을 쥐여준 곳이며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나라이지.”
“그게…… 대체 어디 있는 나라이기에…….”
“바로 이곳 레간쟈 산맥 중앙호수에 세워진 나라일세.”
“…….”
“중앙 호수라면?”
베론의 뜬금없지만 당당한 말투에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의 천국인 이곳에 나라가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그 말을 하는 베론의 말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밀리언은 베론이 말한 칼을 쥔 이유로 인해 심경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우리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퍼어억~!
“꾸이이이이익!”
“이 돼지새끼가! 입 떼, 이 자식아!”
퍽퍽퍽퍽!
“꾸익 꾸익 꾸익 꾸이이익!”
“거기 입대잖아! 어서 떼어내!”
한참 몽둥이를 두드린 병사의 앞에는 거의 초주검이 된 오크가 쓰러져 있었다.
“제길.”
“부장님, 또 입니까?”
“후우, 이 돼지새끼들 눈을 못 떼게 만드네.”
다른 병사의 말에 부여기율은 몽둥이를 든 채 숨을 내쉬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퍽퍽퍽!
“꾸이이익!”
“거참.”
다른 쪽에서도 몽둥이질 소리와 오크 멱따는 소리가 밤 공기를 뚫고 울려나왔다.
이들이 오크들을 두들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크들을 한쪽에 몰아 놓고 나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을지우루의 궁수대에 화살을 맞은 오크들이 죽은 듯이 늘어져 있자, 다른 오크들이 늘어져 있던 오크를 잡아먹어 버린 것이었다.
그 당시 지나가던 기율이 보았을 때에는 설마 동족을 잡아먹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분명 음식을 주지 않았는데도 한쪽에서 오크들이 무언가를 먹자 혹시나 해서 다가갔던 것이었다. 그때 본 것이 머리통을 제외하고 거의 발라먹고 뼈만 남은 오크였다.
오크들은 죽은 동족마저 철저히 식량으로 삼는데, 이런 그들의 습성을 알 리도 없고 알 수도 없었던 가우리 군이었다. 게다가 잡아먹은 오크들은 단지 정신만 못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가우리 군은 그런 만행보다 노동력의 축소를 우려해 감시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오크들은 죽은 듯 쓰러진 오크들의 팔다리를 베어 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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