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43
강철의 열제 443화
장창이 긴 이유는 그 길이를 최대한 이용해서 자신은 안전하고 적은 위험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팔 짧은 이와 팔 긴 이가 동시에 주먹을 내지른다 생각하면 간단하지 않은가?
짧은 자의 숙명은 멍 자국으로 결말이 이루어진다.
그런 간단한 이치를 가지고 탄생한 장창이었지만, 휘둘러질 때에는 또 다른 용도로 변한다.
한 방에 많은 목숨을 수확하는 저승사자의 낫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전후좌우, 종횡무진.
“핫!”
패랙! 팩!
짧은 기합성과 동시에 한 손으로 들고 고정하기도 힘든 장창이 양손에서 휘둘러졌다.
보이지도 않고 궤적과 공기 찢어지는 소리만이 울렸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참상이 벌어졌다.
우둑! 뻐억! 와지끈! 등등 세상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파열음과 동시에 신성제국 병사들이 좌로 우로 날아다니며 비명을 질러 대었다.
“끄아악!”
“히익. 도, 도망 가!”
심지어는 창대에 맞은 것이 분명한데 눈앞의 동료 목 서너 개가 줄줄이 뜯겨 날아오르는 장면 등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이 계속 이어져 나갔다.
“자작님을 따르라!”
“제국연합을 위하여!”
적에겐 지옥이겠지만, 아군에게는 더없이 힘이 되는 장면이었다.
로드비안 남작이 소드를 번쩍 들어 올리며 외치자 뒤따르던 기사들이 우렁찬 함성과 함께 호응해 나갔다. 그들의 선두에는 수십만이라는 대군을 가르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사내가 존재하고 있었다.
“니콜슨 자작 만세!”
새로운 영웅을 칭송하는 외침이 널리 퍼져 갔다.
* * *
“내 살다 살다…….”
지휘막사 한쪽에 물에 젖은 솜처럼 푹 늘어진 고윈의 입에서는 인생 다 산 노인네처럼 알아듣기 어려운 푸념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고조 따라갔어야 했는데 말이디.”
을지우루는 무언가 걱정이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연신 짜증을 내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마법사 서열 2위인 카이로스는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게 몸이 아직 정상이 아니었기에…….”
“기래 누가 뭐라 했간? 내레 암 말 안 했어야!”
“…….”
언성을 슬쩍 높여 가며 한 번 더 잡아먹듯이 노려보는 우루의 눈빛에 카이로스는 더 이상 아무 변명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뭐, 기다리는 수밖에.”
연휘가람에게서 마음 편한 소리가 흘러나오자, 모두들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을 오물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무언가 허무한 감정이 흐르는 가운데 한쪽에 있던 계웅삼이 투덜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거참 생각 좀 하시지.”
“기러는 네놈은 생각 있어서 달랑 오십 명 끌고 공성한다고 설쳤던 거이네?”
“그래서 성공했잖습니까.”
“고조 주둥아리 자꾸 놀리면 화살로 확 꿰갔어.”
우루의 한마디에 말문을 열었던 웅삼은 얼굴을 구기며 말문을 닫았다. 지금 대들면 피밖에 안 본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웅!
카이로스의 앞에 놓인 통신 수정구가 빛을 발하자 모두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지금 열제께선 어디쯤 계십니까?”
항상 침착함을 지키던 휘가람마저 급한 모습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안에선 리셀의 간략한 상황 보고가 쏟아졌다.
[제국연합.]“…….”
[그리고 신성제국들이 어우러져 있는 곳에 있다네.]“……헉!”
고개를 돌린 채로 모두가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그렇게 아주 잠시간 아무도 말을 못 이어 가다가 고윈의 허탈한 음성을 시작으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양반이 기어이!”
“우라질. 제국연합하고 신성제국이 어우러지면 칼부림 장소밖에 더 있습니까!”
줄줄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외침에 리셀이 한숨을 푹 쉬어 내고는 보고를 이어 갔다.
[그게 전황이 일방적으로 꼬여 가는 것이 심상치 않다며 직접 살피신다면서…….]“후우. 그래서 뭐라 하셨답니까.”
웅삼이 말을 받으며 뜸을 들이는 리셀의 대답을 독촉했고 사방에서는 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려왔다.
[……열제께서 내려가시면서 남기신 말씀이 ‘거대 군단 둘 다 조지는 데에는 진흙탕 싸움이 최고.’라고 하셨다네. 기왕이면 균형도 좀 맞춰 주고.]“조, 조지다니?”
“그런 말 있습니다. 작살 낸다 비슷한…….”
“킁! 열제께서 무슨 저울입니까! 균형을 잡게!”
단어의 의미를 못 알아들은 고윈을 위해 짧게 설명을 해 준 웅삼이 투덜거리는 삼두표를 무시하고 모두를 대신하여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전장이라지만, 외곽이나 뭐 그런 위험성 낮은 지역에 계시겠지요?”
웅삼의 질문을 받은 리셀은 모두의 눈길을 받으면서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허, 허허허. 나름 귀족 부상자를 골랐건만…….]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웃음으로 때우는 리셀이었다.
* * *
“니콜슨 자작 만세!”
“우와아아아!”
제국연합의 3천여 병력은 니콜슨 자작을 연호하며 그가 연 피의 길을 따라 달렸다.
그 모습을 보면 마치 제국연합이 신성제국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적을 보인 니콜슨 자작은 살짝 투구 가리개를 들어 올리며 구시렁거렸다.
“답답하군.”
정작 연호를 받는 니콜슨 자작은 다 귀찮다는 듯이 투구 가리개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만끽할 뿐이었다.
한낮에 계속 투구를 뒤집어쓰고 거기에 안면 가리개까지 철저하게 내리고 있었으니 답답할 만했다.
잠시 틈을 내어 주변을 살핀 니콜슨 자작의 시선이 한곳으로 다다랐다.
“빌어먹을! 네놈의 정체가 뭐냐!”
“놈이라.”
꿈틀.
니콜슨 자작의 근육과 신경이 움찔거렸다.
아까부터 찍어 놓은 놈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앙앙거리며 짖고 까부는 모습에 신경이 더더욱 거슬린 것이다.
“닥쳐라! 대연방제국의 니콜슨 자작님이시다!”
언제 왔는지 로드비안 남작이 호기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니콜슨 자작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참모라지만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것이 마치 영웅 놀이에 빠진 어린애 같지 않은가?
멋쩍음에 니콜슨 자작이 헛기침을 흘렸다.
“크흠.”
“그럴 리 없다! 얼마 전에 중상을 입은 자가 어찌 저런 무위를 보인다는 것인가!”
“그, 그건!”
신성제국의 유안 자작의 날카로운 지적은 로드비안 남작으로 하여금 흥분되었던 마음에 놓치고 있던 사실을 기억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옆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깨달음을 얻었지.”
“그, 그게!”
순간 유안 자작은 할 말을 잃었다.
깨달았다는데?
무어라 말하겠는가?
“네놈 투구를 벗어서 증명하라!”
유안 남작의 입에서 악에 받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니콜슨 자작의 신형이 말 위에서 사라졌다.
으적!
사라졌던 니콜슨 자작의 신형이 다시 나타난 것은 바로 유안 자작의 정면 위 허공이었다.
나타나자마자 어색한 파열음이 울렸다.
동시에 붉은 피에 섞인 허연 이빨들이 눈송이처럼 휘날렸다.
“아가리로 싸우나?”
“끄어어어!”
니콜슨 자작의 몸은 유안 자작이 타고 있던 말 위로 안착했고, 그의 강력한 발길질에 안면을 몰수당한 유안 자작은 흰자위를 드러내며 힘없이 땅으로 처박혔다.
우두둑!
동시에 기형적으로 꺾어지는 유안 자작의 머리.
전장에 또 하나의 원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짧은 시간에 그것도 지휘관급의 귀족들의 대화 도중 일어난 참사에 적도 아군도 아무런 말을 못하고 있었다.
니콜슨 자작이 오만한 모습으로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궁금하면 직접 벗겨 보든가. 이 투구.”
톡톡톡.
자신의 투구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도발의 음성을 울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이 울려왔다.
“우하하하! 그 증명 내가 해 주지!”
“우와아아아!”
호탕한 웃음과 함께 나타난 사나이의 뒤로 신성제국 병사들의 기운찬 함성이 함께 울려 퍼져 왔다.
귀청을 뒤흔드는 함성이었지만, 니콜슨 자작은 여유를 잃지 않고 호탕한 외침이 나온 방향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해 보든지.”
우와아아아!
방진을 무너트리고 침투한 제국연합 측에서 무언가 심령을 흔드는 함성이 울려 나오자 콰이어 공작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돌아갔다.
전장을 오래 굴러 본 이들은 안다.
함성에도 질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울려 퍼진 함성은 정말로 짜릿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단순히 사기를 올리고자 울리는 것과는 먼, 상상 그 이상의 결과를 보았을 때의 함성에 가까웠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탄성이 섞인 그런 순순한 함성. 이 함성이 아군 쪽이라면 적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졌겠지만, 방향으로 보아 아닌 듯싶었다.
“뭔가가 있긴 한 건가?”
아까 제라르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등의 말이 오가던 방향이었다. 사실 좀 아까도 자신을 이끄는 느낌의 포효를 들었었다.
그때에도 망설였다.
콰이어 공작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열심히 몰았는데도 밀리엄 후작과 쇼오 공작이 만나 샤이완 공작과 케니클 후작을 맞아 버티고 있었다. 자신이 그곳까지 뚫고 당도한다면 이 전쟁은 끝이 나게 된다.
문제는 지금의 함성. 저 알 수 없는 이물질과 같은 저 함성이 신경을 거슬리고 있는 것이다.
“쩝, 뭐 보고만 오도록 하지.”
아쉬움은 남지만 결정은 빨랐다. 어차피 저들 네 명의 싸움은 쉽게 끝날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의 변수를 줄이는 것이 맞는 것이다. 갑자기 튀어나와 위험 요소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 아닌가?
“호위기사단만 나와 함께한다.”
“예!”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20여 기의 기사단을 이끌고 함성의 진원지로 말을 이동했다. 바둑판처럼 나열된 병사들 사이를 달리던 그의 눈에 사람과 사람 머리통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들어왔다.
양손에 든 장창을 마치 가벼운 나무 작대기 다루듯이 휘두르는 갈색 갑주의 사내.
대충 휘두른 듯 보이는 장창이 부러지며 달려들던 기사의 허리도 부러져 나갔다. 창대가 부러졌음에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맹공.
그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병사들과 끽소리 못하고 나자빠지는 신성제국의 기사들이 눈에 새겨져 오기 시작했다.
“네놈 투구를 벗어서 증명하라!”
이쪽 방면의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유안 자작의 외침이 들려왔다.
동시에 이어지는 장면.
말에서 뛰어올라, 걷어차고 타인의 자리를 빼앗아 자기 것으로 하는 장면이 눈앞에서 그림처럼 벌어졌다.
“허!”
그 주변의 호위 기사들이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다. 오히려 상관이 죽음을 당했는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콰이어 공작은 자신의 판단에 감사했다.
“우하하하! 그 증명 내가 해 주지!”
자신도 모르게 행복함을 비추었다.
갑자기 나타난 콰이어 공작의 등장에 그동안 억눌려 있던 신성제국 병사들이 해방의 함성을 질렀고 콰이어 공작은 그 함성을 즐겼다.
눈앞에 있는 갈색 갑주의 사내가 살짝 턱 끝을 들어 올린 채로 천천히 콰이어 공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해 보든지.”
“우하! 우하하! 와아하하하하!”
콰이어 공작이 세상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렸고, 그 웃음 속에 제국연합 진영에서 술렁임이 시작되었다.
“콰이어 공작이다!”
“북의 콰이어!”
지금까지 기세가 등등했던 모습에서 순식간에 술렁거림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주로 기사들로 구성이 된 덕인지 술렁거림은 있으나 병사들처럼 혼돈에 빠져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함정을 파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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