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48
강철의 열제 448화
콰이어 공작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얼굴이 뭉개져 있던 상황이라지만, 자신이 했던 말을 치욕스럽게 되돌려 받았던 것을 어찌 잊을 수 있는가?
샤이완 공작과 케니클 후작은 콰이어 공작의 치욕에 물든 표정으로 미루어 단지 모욕을 당했다는 점만 짐작할 뿐이었다. 다만 자신들을 앞에 두고 태평스러운 표정으로 콰이어 공작을 모욕하는 모습에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럼에도 콰이어 공작의 명예를 위해 침묵해 주었다. 그렇게 참을성 있는 그들에게 니콜슨 자작이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약속하지. 죽이진 않겠다.”
제161장 개판, 깽판, 난장판, 아수라장
“후방에 적군이다. 막아라!”
“현 위치를 절대 사수하라!”
냉혈의 검호도 뜨겁게 달아오른 사기 앞에서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군대는 사기를 먹고 사는 집단이라고 하지 않은가?
야금야금 뚫린 신성제국의 방벽으로 제국연합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계속 밀고 들어갔다.
거기에 조금 전에 콰이어 공작이 당했다는 함성 소리가 제국연합 병사들에게 기세를 심어 주었고, 반면에 신성제국 병사들에게는 불안감을 주었다.
“더 이상 우회가 어려울 듯싶습니다.”
루키아 후작을 보좌하는 기사가 주변을 메운 제국연합 병사들의 눈길을 보며 난감한 듯한 음성으로 현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렇군.”
루키아 후작도 자신의 기사와 의견이 별 차이가 없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5천여 병력이 아무리 강군이라지만, 지금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그들을 이끄는 이가 루키아 후작이었던 덕에 그나마 지휘 체계가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루키아의 무력에 대한 믿음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대도 자신들이 전쟁을 승리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인지 조금 전까지 교전하던 병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 격돌을 했던 병사들이나 이후 적진을 파고들며 보았던 병사들은 자신들의 무력에 크게 놀라거나 허둥거렸었다. 하지만 최전방에서 싸우던 병사들에게 이들은 침입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파고들고 있는 약점을 메우려 발버둥 치러 온 인물들로 보일 뿐이었다.
당연히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다른 것이다.
전투에서 지는 병사는 마음에서 이미 패배를 하는 병사들인데, 이들의 마음은 이미 승리한 자들의 것이었다.
이긴 싸움에서 적들은 사냥감으로 보일 뿐이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제국연합의 병사들의 눈빛을 보던 루키아 후작의 얼굴이 비틀렸다. 그리고 그 비틀림 속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큭큭큭큭.”
저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니 저렇게 기세가 등등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아수라장에서 누가 누구인지 알겠는가?
깃발이나 자신을 알아볼 만한 안목이 있는 귀족들이 충분하다면 모를까…….
아쉽게도 이곳엔 그를 알아볼 안목을 가진 귀족은 없고 그저 목이 터져라 독려하고 있는 기사들과 준귀족들만 보였다.
그때 신성제국의 본진 안쪽에서 빛의 일렁임이 크게 번졌다. 그 방향이라면 아까 고립되었던 제국연합의 수뇌부들이 있는 방향일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기세가 좋던 제국연합의 병력들 사이에 술렁임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딱 좋군. 그러면 저 너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가 볼까?”
사기가 넘치던 제국연합 병사들의 눈빛에는 궁금함과 혼란, 그리고 불안감이 스치기 시작했다.
그 사이를 루키아가 냉기를 철철 흘리며 뛰어들었다.
“돌파한다!”
“우와아아!”
루키아의 뒤로 5천여 병력이 함성을 지르며 제국연합의 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 * *
자신감의 근거는 실력에서 온다.
“목숨만은 살려 준다?”
니콜슨 자작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샤이완 공작이었다. 어이없는 이야기였지만, 그에 앞서 콰이어 공작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지금껏 어이없이 당한 콰이어 공작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도발까지 듣게 된 이상 그를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콰이어 공작을 향한 샤이완 공작의 시선은 ‘어찌 했기에 이렇게 우리들까지 얕보이게 만들었는가?’라고 따지는 듯했다. 하지만 샤이완 공작의 표정은 의혹으로 바뀌었다.
평소 친분으로 보아 이쯤 되면 멋쩍게 웃음이라도 터트리며 자신이 싼 똥은 자기가 치우겠다는 둥의 소리를 입에 담으며 나섰어야 할 그다.
그런 그가 자신의 무기를 단단히 그러쥐고 심호흡을 하며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왜?
상대의 도발에 의해 나빠졌던 기분은 의혹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그 열쇠를 가진 콰이어 공작은 그 어떤 때보다도 신중하게 변해 있었다.
눈앞의 저자.
오연한 눈빛으로 이 시대의 초인들을 내려다보는 저자.
욱신.
‘아프다!’
뭉개진 안면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니콜슨 자작을 향한 콰이어 공작의 상념을 방해했다.
숨을 쉴 때마다 무너져 내린 콧잔등이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콰이어 공작은 아픔을 표하거나 마법사를 찾아 부상을 치료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눈앞의 니콜슨 자작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콰이어가…….’
정확히는 그가 들고 있는 무기를 말이다.
까드득!
팔뚝에 핏줄이 도드라지며 소드를 움켜쥔 콰이어 공작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맨손의 상대에게 당한 것이란 말인가.’
그저 당했다고 생각했었다.
공격을 제대로 따라잡지도 못했고, 자신이 날린 회심의 일격은 그대로 봉쇄당했었다. 그러면서도 상상도 못했다. 적이 무장 하나 없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초인의 경지에 들은 자신이 적이 무기를 들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는가?
‘나뿐 아니다!’
콰이어 공작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옆의 샤이완 공작과 케니클 후작에게로 옮겨졌다. 그들도 그가 무기를 넘겨받는 장면을 보고, 그가 여태껏 무기를 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습이었다.
으드득!
콰이어 공작의 이빨이 잘게 부스러져 갔다.
“큭!”
이를 악물었던 콰이어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날아간 이빨 주변의 이들도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빨을 갈아댔으니 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찰나지만 아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순식간에 당하는 상황에서 투구 사이로 보이는 무심한 눈길. 자신 같은 강자를 이겨서 그 승리에 취한 것이 아닌 그저 무심한 눈이었다.
처음부터 패배를 염두해 두지 않았단 의미.
그럴 정도의 강자라는 의미였다.
절대로 어제 오늘 경지에 오른 애송이의 눈빛이 아닌 것이다.
케니클 후작이 중상을 입혔다지만, 이미 그런 사실은 그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니 사실이 아닐 것이라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상대는 무기의 유무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압박을 주는 강자였다.
콰이어 공작이 이빨을 갈다가 찡그렸던 얼굴을 피며 신중해진 모습을 보일 때 니콜슨 자작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 투구 사이로 나직한 음성이 울려 나왔다.
“좀 사람 보는 눈이 생겼나? 그럼 다른 놈들은 어떨까.”
그 음성은 곧 강자의 여유였다.
그리고 한마디의 여유 뒤에 그 강자가 움직였다.
‘빌어먹을!’
속으로 욕설을 날리며 콰이어 공작이 외쳤다.
“온다! 조심해!”
케니클 후작이 한숨을 쉬었다.
‘망신이겠군.’
샤이완 공작의 시선이 콰이어 공작에게로 옮겨 감을 느낀 케니클 후작이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샤이완 공작의 표정에는 콰이어 공작을 탓하는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샤이완 공작의 시선을 따라 옮긴 그의 눈동자에는 콰이어 공작의 긴장한 모습이 들어왔다.
꼭 기사에게 사사받는 견습 기사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뭐지? 망신을 당하거나, 질책을 받는 이의 눈빛이 아니다!’
콰이어 공작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 케니클 후작이 다시 샤이완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도 자신처럼 의아한 눈빛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귓가로 나지막한 음성이 울려왔다.
“좀 사람 보는 눈이 생겼나? 그럼 다른 놈들은 어떨까.”
여유 있는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한없이 기분 나쁜 내용이었다.
케니클 후작의 불쾌함을 담은 시선이 음성의 주인공인 제국연합의 니콜슨 자작을 향했다.
‘불쾌한 애송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자신의 수하들을 도륙하던 자였다. 해서 직접 손을 썼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나타난 것만 해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는데 나타난 것도 모자라,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이상하게 꼬아 놓은 것 아닌가?
이 모든 전략을 만들어 낸 케니클 후작으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콰이어 공작의 외침이 동시에 들려왔다.
“온다! 조심해!”
굳이 콰이어 공작의 외침이 아니었어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니콜슨 자작이라 불린 자의 신형이 급격히 확대되어 오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뭐, 뭐야!”
절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스터에게 거리는 무용하다.
즉, 거리의 제약이 없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니콜슨 자작이 바로 눈앞까지 확대경으로 본 것처럼 커져 왔다. 단지 신형이 확대되어 온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달려오는 니콜슨 자작의 손에 들린 롱소드는 그 순간에도 땅을 향하고 있었지만, 케니클 후작이 느끼는 기분은 이미 수십 번의 칼질을 당한 느낌이었다.
카캉! 카카칵!
느낌뿐이 아니었을까?
갑옷이 비명을 질러 왔다. 그리고 투구 사이로 드러난 얼굴 곳곳에 실금 같은 상처들이 생겨나며 피가 맺혀 갔다.
“흐아아아아!”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칼질을 당했든 안 당했든 케니클 후작이 자랑하는 쾌검이 섬전처럼 쏘아졌다.
그리고 허공을 갈랐다.
시선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세상의 모든 물체에게서 잔상이 만들어졌다. 그 찰나의 순간 샤이완 공작의 미세 근육이 맹렬하게 움찔거렸다.
샤이완 공작의 시선을 가득 채우며 다가오는 그것.
태양마저 반으로 가르며 날아든 것은 바로 니콜슨 자작의 롱소드였다.
시선은 그 공격을 잡았으되, 그것을 막아야 할 검을 쥔 팔은 아직 내려져 있었다.
눈썹 끝을 타고 튕겨 나간 땀방울이 허공을 날았다.
그 탓인가?
그 작은 땀방울 안에 비추어진 니콜슨 자작이 더욱 크게 보였다.
“으아아아아아!”
다가오는 죽음의 손길을 바라보며 샤이완 공작은 일평생 자신을 지켜 주었던 신체를 움직였다.
‘나를 지켜라!’
승리만을 요구했던 신체였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가오는 칼날을 막을 그 힘이면 족했다. 그리고 그의 몸은 주인의 바람을 버리지 않았다.
콰아앙!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귀가 먹먹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그 어떤 순간보다 빠르게 움직인 그의 소드가 절체절명의 위협으로부터 그를 지켜 낸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진 못했다.
“우욱!”
니콜슨 자작의 검격을 막아 낸 샤이완 공작은 충격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쳐 갔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그가 물러서며 딛었던 땅이 퍽퍽 하고 파여 있었다.
“흐으음.”
“네, 네놈!”
막힌 게 아쉬워서인가?
핏물로 범벅이 된 갈색 투구 안에선 니콜슨 자작의 미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행동에 샤이완 공작은 발끈했지만 그 이상의 표현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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