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49
강철의 열제 449화
축축하게 느껴지는 등.
그 등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 아니 작은 물줄기.
거기에 무리하게 움직인 탓인지 양팔의 근육이 미친 듯이 떨리고 거칠어진 호흡에 양 어깨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마치 심장이 양팔에 달린 듯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움찔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느닷없는 경우가…….’
분명 케니클 후작을 향해 쏘아져 갔었다.
콰이어 공작의 놀란 음성이 아니었어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마치 마법사의 블링크를 보듯 쏘아져 나간 니콜슨 자작에게 놀란 것이 역력한 케니클 후작이 소드를 휘두를 땐, 그는 이미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없었다.
대신 샤이완, 그의 머리 위로 그의 롱소드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케니클 후작을 치는 척하면서 샤이완 공작을 쳐 간 것인데, 그 스스로 그 모든 동선을 지켜보면서 이런 기본적인 공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놀란 눈을 하고 있는 그를 향해 니콜슨 자작이 다시 한 번 롱소드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머리, 옆구리, 목을 향해 날아드는 칼날.
쾅! 쾅! 쾅!
니콜슨 자작이 휘둘러 대는 롱소드에는 형식도 예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나 검공 샤이완을!’
검은 단지 살상의 목적만이 담겨져 날아왔다.
거칠기로 유명한 블라미르나 콰이어 공작은 차라리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의 거칠음이었다.
맹수 같았다.
“흐야아아!”
처음 일격의 충격을 해소하지 못했던 샤이완 공작이 계속 밀려나며 니콜슨 자작의 공격을 받아 낼 때 요란한 함성과 함께 콰이어 공작이 끼어들었다.
카아앙!
그리고 찰나의 전투를 마감하고 양쪽으로 떨어졌다.
샤이완 공작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수십 합을 싸운 것과 같았다.
뚜욱, 뚝.
“후욱! 훅!”
몇 합뿐이었지만 호흡을 빼앗긴 탓에 샤이완 공작의 숨이 약간 거칠어졌다. 결투에 끼어들었다며, 이 치욕을 어찌할 것이냐 콰이어 공작을 타박해야 했지만 그럴 여력도 없었다.
그저 숨을 돌릴 뿐이다.
차갑게 식어 버린 땀방울을 털어 내며 샤이완 공작은 이 어이없는 경험을 만들어 준 니콜슨 자작을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최초의 격돌 후 정적이 흘렀다.
웅성웅성.
단지 굉음이 몇 번 울렸다. 병사들은 그저 무언가 휙휙 지나다닌 잔상과 귀청을 뒤흔드는 굉음만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것만 알았다. 아니 일반 기사들조차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웅성거림만 높아져 갈 때 그 상황을 어렵게나마 보았던, 뚜렷하지는 않지만 분명 볼 수 있었던 안목의 소유자들에게서 첫 탄성이 나왔다.
“이야아아아!”
첫 함성의 주인공은 바로 로드비안 남작이었다.
찢어져라 크게 벌린 그의 입에서는 마음속에서부터 울컥하고 튀어나온 짜릿한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함성은 물결이 되어 제국연합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실드에 갇힌 쇼오 공작과 밀리엄 후작도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기세에 눌려 허공에 칼질을 한 케니클 후작은 자신의 앞에 커다랗게 파여 있는 땅바닥을 보며 망연자실해 있었다.
“이게 대체…….”
또옥. 또옥.
자신의 볼에 흐르는 피를 닦을 여유도 없었다.
단지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 볼 뿐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아니었다.’
그 엄청난 공격이 사실은 속임수였다.
처음부터 샤이완 공작을 노리고 들어온 허수였던 것이다. 니콜슨 자작이라는 자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척하다가, 땅을 박차며 방향을 직각으로 틀어 샤이완 공작을 공격한 것이었다.
자신의 갑옷을 두드리고 볼을 찢어 놓은 것은 그가 땅을 박차며 구덩이를 만들을 때 튀어 오른 작은 돌 부스러기들인 것이다.
허탈해진 마음에 케니클 후작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샤이완 공작을 바라보았다.
‘이런 거짓말 같은 경우가…….’
케니클 후작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쇳소리와 함께 비참하게 밀리는 샤이완 공작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흐야아아!”
콰앙!
그 거칠게 이어지던 공격을 콰이어 공작이 가세함으로써 가까스로 막아 낼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마스터들의 허탈한 마음을 뒤흔드는 함성이 울려왔다.
아니 함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적국의 두 마스터를 함정으로 이끌고도 첫 격돌에서 속수무책으로 휘둘린 그들을 향해 제국연합 병사들이 내지르는 조롱이었다.
니콜슨 자작은 단 한 번의 격돌로 신성제국의 마스터 세 명에게 개망신을 준 것이다.
* * *
제국연합의 물결을 뚫고 나가는 루키아 후작의 돌진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가 베고자 하면 베였다.
단단한 방패도 수천 번의 담금질로 만들어 낸 칼과 갑옷도 힘없이 갈라져 나갔다. 그러나 달려드는 병사들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 그가 파고들 때 술렁이던 것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기세가 들불이 바람을 받아 거세게 타올랐다. 그러자 겁이라는 것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루키아 후작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막겠는가?
냉혈의 검호답게 그는 제국연합 병사들의 주검으로 길을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5천여 병력은 그가 아니었다.
작은 물고기 떼가 미끼로 드리워진 커다란 지렁이 꼬리를 잘라 먹듯 조금씩, 조금씩 소멸되어 갔다. 처진 자는 짓밟혔고, 늘어진 대열은 옆으로 치고 들어온 기사들에 의하여 고립되어 죽어 갔다.
그럼에도 루키아 후작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주변에는 그의 친위기사단만이 남아 용맹스럽게 무기를 휘두를 뿐이었다. 그의 뇌리에는 처음부터 이끄는 병사들의 안위 따위는 염두에 없었다.
질 이유가 없는 전쟁이었고, 지금쯤이면 제국연합 병사들이 연인과 부모를 부르짖으며 살육을 당해야할 시점이었다. 그것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얼굴 주변으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양 볼에 번개 모양으로 난 상처가 욱신거려 왔다.
“크윽!”
눈자위가 붉게 변했다.
기분 나쁜 욱신거림이었다.
두 눈을 뜨고 꾸는 악몽이었다. 화풀이 하듯 길을 막는 적병을 갈가리 찢어 죽이던 그가 전진을 멈추었다. 그를 향해 달려드는 제국연합의 병사들은 그의 친위기사단이 재빨리 둘러싸며 하나둘씩 죽여 나갔다.
루키아의 고개가 해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하늘로 향했다. 정오를 넘어 오후를 향하는 하늘이었지만, 여전히 눈이 부셨다.
그 하늘에서 루키아 후작은 기분 나쁜 점 하나를 보았다.
사람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새가 아닌 사람이라면 그 종류는 하나뿐이다.
“마법사인가.”
마법사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순 마법사라면 루키아의 시선을 잡아끌지 못한다. 일반 마법사는 저렇게 높은 곳까지 날아오르지 못한다.
마스터가 아니고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저 높이까지 오르기 어려운 것이다.
일반 마법사가 아닌 대법사급의 마법사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럼 왜 떠 있을까?
저 정도라면 마법으로 지상을 공격하기도 어려운 높이였다. 즉 순수 정찰을 위해 떠 있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대법사 정도 되는 이가 순수하게 전장 상황을 살피기 위해 저 높은 곳에 떠 있다?
이 아수라장에서?
당장 마법 전력이 달리는 제국연합의 대법사는 본진을 방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
그렇다면 신성제국?
더더욱 아니다.
왜냐면 그들은 함정의 완성을 위해 샤이완 공작의 부대와 함께하고 있었고, 그 함정이 지금 발동 중이라는 소식이 뿔 고동 소리와 연기를 타고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설마!”
남은 것은 하나였다.
트리폴리아 요새에서 그 존재가 확인됐다는 가우리의 대법사.
“가우…… 리?”
잘게 경련하는 루키아 후작의 입술에서 꿈에도 잊지 못할 이름이 튀어나왔다.
치욕적인 기억을 남겨 준 존재가 지키던 이름.
양 볼에 새겨진 그 이름.
가우리.
“크아아아아!”
마성에 물든 루키아 후작의 괴성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 * *
리셀은 먼 거리였지만 분노와 살기로 뭉쳐진 원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느끼기 이전에 이미 바라보고 있었다.
물가에 어린아이를 내놓은 심정이었기에 전황을 더 세세히 살피는 그의 눈이 무모할 정도로 제국연합의 대열을 가로지르는 무리를 못 볼 리가 없었다.
대마법사의 예리한 눈에 울부짖는 이가 들어왔다.
크아아아!
짐승의 울음.
누가 들어도 움찔할 만하건만, 리셀의 얼굴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했다.
그 주변의 마나가 들끓어 갔다.
분노가 치솟았다.
그가 모를 리 있는가?
루키아라는 존재를…….
마법의 길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의 삶을 가르쳤던 두 제자 중 하나를 못 보게 만든 이유 중 하나를 말이다. 그것이 정당한 대결이었다면 이렇게 분하지도 않을 것이다.
후우우. 후우웅, 후우우우웅!
그쯤 생각이 미치자, 그의 주변을 타고 돌던 마나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세상이 어두워졌다.
세상이 어두워지자 눈앞에 새기어졌던 루키아의 얼굴도 어둠에 가려졌다.
주변에 들끓던 마나의 폭풍도 잠잠해지고,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거리는 미풍이 되었다.
지금은 분노할 때가 아니었다.
밑에서 괴성을 지르는 루키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그에겐 루키아에게 시선을 뺐길 시간이 없었다.
“허어 어찌하시려고 일을 내셨는지.”
태산 같은 걱정을 담은 음성이 옆에 없는 고진천을 향해 흘러갔다.
* * *
공격은 또다시 니콜슨 자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까와는 달리 롱소드를 든 손을 늘어트리고 마치 왜 끼어들었느냐고 따지듯이 콰이어 공작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무기를 든 손을 휘두르면 그 끝에 상대의 목이 걸릴 거리까지 좁혀졌지만, 무방비로 롱소드를 늘어뜨리고 걷는 니콜슨 자작이나 경계 동작을 버리지 않는 콰이어 공작이나 아무런 공격이 없었다.
우뚝.
니콜슨 자작이 멈추어 섰다.
“싸움은 쫄면 지는 거다.”
적갈색 투구 안에서 가르치는 듯한 음성이 들려오자, 콰이어 공작과 그 한 발 옆에 떨어져 있던 샤이완 공작의 얼굴이 붉어졌다.
빠득!
분기가 솟은 둘을 향해 니콜슨 자작이 웃음기 섞인 음성을 흘렸다.
“또 간다. 막아 봐.”
큐웅!
공기가 갈라지는 소음이 아니었다.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였다. 공기가 터져 나가며 니콜슨 자작의 롱소드가 아래에서 위로 들렸다.
동시에 콰이어 공작이 뒤로 물러섰다.
조금만 늦었어도 콰이어는 앞으로의 자손 생산 활동을 멈출 뻔했다.
일반 기사들도 낭심을 공격하는 짓을 하지 않는데 거물급의 대결에서 서슴지 않고 이러한 만행을 저지르는 니콜슨 자작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못했다. 이미 두 명의 마스터를 가두는 순간부터 이들 세 명은 상대를 비난할 자격을 잃은 것이다.
또 그것을 떠나 그런 행동을 하는 니콜슨 자작이 너무도 당연한 듯 당당했기에 무의미한 것이다.
콰이어 공작이 뒤로 물러서는 것을 따라 들어온 것은 니콜슨 자작의 발길질이었다.
정면으로 발바닥이 들어왔다. 그것을 쉽게 맞아 줄 콰이어 공작이 아니었다. 그의 소드의 검면이 방패가 되어 주었다.
콰앙!
타격이 목적이 아니었다.
단순 밀어 차기였지만, 이미 뒤로 물러서던 콰이어 공작이었기에 너무도 쉽게 튕겨 나갔다. 아니 너무 쉽게 튕기는 것이 콰이어 공작이 밀어 치는 발길질을 이용해 몸을 살짝 띄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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