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50
강철의 열제 450화
버티다 밀려 나가서 또다시 공격을 당하느니, 적당히 뒤로 빠지며 자세를 추스르려 함이었다. 그러나 니콜슨 자작의 공격은 샤이완 공작을 향해 돌려졌다. 콰이어 공작의 검면을 발로 차 내었던 발의 방향이 샤이완 공작을 향해 딛어지면서 그의 롱소드가 따라 움직였다.
횡으로 베어지는 그의 롱소드는 샤이완 공작의 허리를 양분할 듯이 날아들었다. 느닷없었지만 단순한 공격이기에 샤이완 공작은 아까와는 달리 충분히 막아설 수 있었다.
촤앙!
이번엔 밀리지도 않았다. 반격을 위해 샤이완 공작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니콜슨 자작의 신형이 또다시 콰이어 공작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케니클 후작의 동공이 커지고 있었다.
니콜슨 자작은 콰이어 공작을 공격해 가다가도 한두 번씩 샤이완 공작에게 검을 날리며 호흡을 완전히 빼앗고 있었다.
“검격이 단순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일부러 단순하게 함으로써 속도와 위력을 높였다.
검식이 휘황찬란하다면 적을 속이기 쉽겠지만, 아무래도 위력과 시간 면에서 손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니콜슨 자작은 검을 처음 배우는 이들이나 할 정도의 단순한 공격을 함으로써 두 명의 호흡을 다 빼앗아 버렸다.
한마디로 단순했기에 두 명을 쉽게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의미는 절대 둘 중 한 명이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니콜슨 자작은 자신이 전투 중에 중상을 안겨 되돌려 보내었던 그와 동일인이 아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네놈은 니콜슨 자작이 아니야! 대체 넌 누구냐!”
니콜슨 자작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을 외치는 케니클 후작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니콜슨 자작이 롱소드로 투구를 통통 두들기며 말했다.
“실력으로 확인하라니까?”
“으아아아아!”
결정은 내려졌고, 짙은 살기를 담은 외침과 함께 케니클 후작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약속이라도 했는지 샤이완 공작 역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 세 명이 한 명을 노리고 합공을 하는 대륙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대륙에서 최강이라는 이들 세 명이 단 한 명을 지금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콰콰콰콰콰!
니콜슨 자작이 자신을 향한 두 명의 검은 흘리고 한 명의 검은 맞부딪혀 갔다.
단순 결투가 아니었다.
전장의 교본이 펼쳐지고 있었다.
난전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오러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초인들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아니 사실은 초인의 상징인 오러를 마음껏 쓰지 못할 정도의 난전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마스터의 입장에서 단지 오러라면 기운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뽑아낼 수 있지만, 완연한 검의 형상을 만들어 내려면 커다란 집중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려면 자신만의 호흡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럴 시간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마스터들의 전투에서 볼 수 있는 오러 소드는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오러만이 비추어지는 것이 다였다.
빠른 공격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만들어 내는 방어.
동시에 이루어지는 반격.
힘을 강하게 뽑아서 공격 할라치면 다른 마스터를 방패삼아 몸을 돌리거나 그가 피하면 아군의 마스터를 공격하는 경우가 생기도록 움직여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소드를 만들어 뿌리지 못하게 만드는 교묘함.
그 사이사이에서 콰이어 공작과 샤이완 공작이 미약하게나마 오러를 두르고 공기를 태웠다. 그들의 검이 니콜슨 자작의 허리와 다리를 노리고 양옆에서 좁혀져 왔다.
그 뒤를 노리듯 케니클 후작이 니콜슨 자작의 다음 동작을 노리고 있었다. 어디든 피하는 방향으로 케니클 후작의 쾌검이 날아들 것이다.
“웃차!”
니콜슨 자작은 이 상황에서 공격을 선택했다. 틈을 노리는 케니클 후작을 향한 과감한 공격이었다.
단순히 롱소드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며 몸통으로 부딪혀 간 것이다.
“제길!”
자신을 향해 대쉬하듯 달려드는 니콜슨 자작을 향해 케니클 후작이 빠르게 무기를 휘둘렀지만, 그의 날렵한 소드가 채 휘둘러지기도 전에 니콜슨 자작의 손에 손목을 붙잡히며 봉쇄당했다.
이어서 밀려들어 오는 어깨치기.
파악! 퍼어엉!
강하게 한 발을 구르며 어깨로 케니클 후작의 가슴을 강타했다. 손목이 잡힌 케니클 후작은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충격을 받으며 기어이 피를 뿜어내었다.
“흐이야!”
케니클 후작이 엉켜 있는 상황이었지만, 콰이어 공작은 기합을 터트리며 과감한 공격을 택했다.
드러난 등줄기를 향해 그의 묵직한 소드가 빠르게 찔러져 갔다. 마치 케니클 후작과 함께 꿰어 버려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런!”
순간 샤이완 공작이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과감한 것은 좋지만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걱정을 알아들었는지 공격의 대상이었던 니콜슨 자작의 등판이 움직였다.
제자리에서 빠르게 맴도는 니콜슨 자작의 입에서 짧은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흐야!”
누가 들어도 힘을 쓰는 소리인 줄 알만한 외침. 단순히 몸을 빠르게 맴도는데 이런 기합이 필요할까?
그 이유는 콰이어 공작의 소드의 목적지가 제자리에서 맴돌아 버린 니콜슨 자작의 등판에서 심장으로 변할 때 나왔다.
“피, 피하게!”
“어억!”
콰콰쾅! 와장창!
둔탁한 굉음을 동반하고 오러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방패고 창이고 칼이고 모두 무시하며 잘라 내 버리는 무시무시한 강자가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처박혀 버렸다.
니콜슨 자작이 어깨로 몸통을 가격하기 전에 케니클 후작의 손목을 붙잡았었고 그는 그것을 붙잡은 상태 그대로 맴돌며 콰이어 공작에게 던져 버린 것이다.
니콜슨 자작의 몸통 공격에 충격을 받은 케니클 후작은 손목이 잡힌 채로 몸이 들려 콰이어 공작에게로 날아가 버리는 수모까지 당했다.
둘이 엉켜서 자빠진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릴 때 홀로 남은 샤이완 공작을 향해 니콜슨 자작의 검이 휘둘러졌다.
캉!
검은 오른쪽 어깨를 향해 내리쳐졌다. 검사의 생명을 가져가겠다는 노골적인 표현이었다.
카캉!
또다시 내려쳐졌다.
이번에도 오른쪽 어깨였다.
“놈!”
들린 소드를 향해 순간 샤이완 공작의 소드에서 백광이 작렬했다. 순간 모든 힘을 뽑아내듯 오러 소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어는 이 순간의 힘을 모으기 위함이었다.
샤이완 공작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백광이 일렁이는 자신의 오러 소드를 향해 날아오는 롱소드에는 오러 소드는 커녕 기본적인 오러 조차 둘러지지 않고 있었다.
치욕스러운 기억을 여기서 마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샤이완 공작의 오러 소드가 내리쳐지는 니콜슨 자작의 롱소드와 맞부딪혔다.
쩡!
“이, 이건 대체 뭐야!”
경악에 찬 샤이완 공작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백광의 오러 소드가 막혔다.
오러 소드는 같은 오러 소드 아니면 양질의 오러가 뭉쳐진 무기로만 막을 수 있다는 공식이 깔끔하게 무시된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백광이 일렁이는 오러 소드와 기본적인 오러 조차 두르지 않아 보이던 롱소드.
누가 봐도 힘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오러 소드가 평범한 검에게 막혔다?
놀람으로 한껏 치켜떠진 샤이완 공작의 동공에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오러 소드와 니콜슨 자작의 롱소드가 맞닿은 부분이 비추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맞닿은 줄 알았던 두 소드들의 사이가 한껏 벌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타오르는 오러가 니콜슨 자작의 롱소드에 닿지도 않았는데,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거대한 힘이 멈추어진 그 간격에서 샤이완 공작은 늦게나마 무형의 일렁거림을 볼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샤이완 공작의 입에서 허탈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색의 오러라니…….”
* * *
걱정스러웠던 리셀의 눈에 안도감이 돌기 시작했다. 단단했던 신성제국의 대열이 제국연합의 본진과 완전 뒤섞이며 본격적인 난전으로 접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국연합의 주 전력으로 보이는 무리가 신성제국의 진영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 안에서 미미하지만 거대한 마나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제국연합의 대법사일 것이다. 그라면 적 대법사를 이겨 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적들의 함정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슬슬 빠져나오셔야 할 터인데.”
전장의 판도를 미묘하게 틀어 버린 것을 떠나, 멋지게 역사를 장식할 전략이 어우러졌던 전장을 똥통으로 밀어 넣은 고진천의 행위에 리셀은 체념을 하며 그가 되돌아오길 빌고 있었다.
그때 그의 감각에 또 다른 마나의 소용돌이가 느껴졌다.
두 개의 힘이 변하고 하나의 힘이 증폭되었다.
“이런!”
리셀의 동공이 커졌다.
그 힘이 움직인 곳은 지금 제국연합과 신성제국의 사령관들이 자웅을 겨루고 있는 그곳이었다.
“안 돼!”
리셀의 신형이 하늘에서 전장을 향해 빠르게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 * *
“이럴 수는 없어!”
백광이 일렁이던 샤이완 공작의 애검의 상단부가 빠르게 빛을 잃어 갔다.
콰지직!
애검이 비명을 질렀다.
타앙!
백광은 사라지고 샤이완 공작의 검은 반 토막이 났다. 그 사이에 겨우 일어선 콰이어 공작과 케니클 후작이 그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필살의 일격이 와해되고 검이 반 토막 난 지금, 무방비가 된 샤이완 공작의 어깨를 향해 무형의 오러 소드가 다가왔다.
“빌어먹을. 어깨 하나는 떼 가려 했건만.”
니콜슨 자작의 갈색 투구 안에서 투덜거림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샤이완 공작의 어깨까지 다가왔던 무형의 오러 소드를 거두어졌다.
치욕적인 일을 당한 샤이완 공작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니 이 자리의 마스터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뮤 베이니어라는 대륙 최고의 마법사가 지금 마스터들의 전투에 끼어든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뮤 베이니어의 양손에 냉기와 푸른 전하가 뭉쳐져 작렬하고 있었다. 전쟁에선 마지막에 서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다. 그렇게 위안을 하며 샤이완 공작은 빠르게 몸을 튕겼다.
그리고 멀어지는 샤이완 공작의 동공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쩡!
지금까지 마스터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 내었던 그 어떤 전투의 소음보다 작은 소음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때보다 충격적이었다.
신성제국군도.
제국연합군도.
모두가 이 작은 소리에 침묵했다.
그 소리가 난 곳에서는 푸른 뇌기에 휩싸인 얼음 덩어리가 허공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 흩어지는 허공 사이로 붉은 피가 뿌려졌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점점이 흩어지는 그저 적은 양의 피였다. 그러나 그 피가 뿌려지는 순간 시간이 멈추어지기라도 한 듯했다.
털썩.
이어서 순백의 로브를 입고 하얀 수염을 풍성하게 기른 뮤 베이니어가 천천히 뒤로 몸을 뉘이며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순백의 로브와 순백의 수염은 콰이어 공작처럼 뭉개진 코에서 흘러나온 피로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흐려져 가는 뮤 베이니어의 기억 속에 마지막으로 새겨진 것은 갈색의 투구였다.
툭, 데구르르르.
그의 기억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심하게 찌그러진 갈색 투구가 뒤늦게 떨어져 그의 머리 옆에 떨어져 굴렀다.
정적은 이 투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투구의 주인이 만들어 낸 것이다.
활짝 펼쳐진 손바닥.
그리고 한 손을 앞으로 쭉 뻗은 모습은 투구를 집어 던진 이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길고 긴 전투 속에서도 부서져 계속 쓰고 있다던 투구를 벗어서 집어 던진 것이다.
“검은색?”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단어.
방금 전까지 환호하던 로드비안 남작의 표정은 마치 꿈이 깨어진 사내아이와 같았다.
휘이잉.
어디선가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그 바람을 따라 짙은 어둠을 간직한 흑발이 휘날렸다.
니콜슨 자작이라 알던 갈색 갑주의 사내는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하고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침묵하는 사이 사내는 뻗었던 팔을 거두어들이고는 팔짱을 끼었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잔뜩 미간을 찌푸린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며 아쉽다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걸려 버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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