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55
강철의 열제 455화
“오늘부로 전쟁을 마무리하려고 루키아나 블라미르를 나누어 타격하러 보낸 것 같은데, 이거 어쩌나…….”
“음.”
묘한 공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진천의 말은 이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제국연합에게 루키아가 후위를 막아설지 모르니 이곳을 빠져나가서 본진까지 침투한 블라미르라도 건지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신성제국에게는 블라미르를 잃지 않으려면, 꽁수를 부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보라는 말이었다.
“기사단은 들어라!”
샤이완 공작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공작님!”
케니클 후작이 샤이완 공작을 급하게 불렀다.
그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부름에도 샤이완 공작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는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전 기사단은 눈앞의 적들을 봉쇄하여 말살하라!”
“우와아아아!”
샤이완 공작의 명령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신성제국의 기사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스터들 간의 화려한 접전은 여기서 끝이라는 이야기였다.
동시에 밀리엄 후작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일차 저지선까지 물러나라!”
신성제국은 기사들을 불러들임으로써 전체적인 병력의 조율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대신 이곳의 수뇌부를 잡는 일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아무리 정병이라 해도 그들을 지탱하는 기사단들이 빠져나가면 허술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반드시 제국연합의 수뇌부를 잡겠다는 의미였다.
반면에 제국연합 수뇌부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곳을 빠져나가 블라미르라도 처단하는 것이 이들에게 남은 선택권이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신성제국의 기사들이 밀려왔다. 숫제 병사들의 수보다도 기사들의 수가 더 많아 보이기까지 했다.
“좋은 선택.”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상황을 보며 진천은 나직하게 웃음 지었다. 그의 표정을 본 케니클 후작의 굳어진 표정에 균열이 생겼다.
“설마?”
무언가 그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
“크큭.”
진천의 악동 같은 웃음에 케니클 후작의 표정에 생긴 균열은 완전히 깨어졌다.
“네놈 정말로 할 생각인 것이냐!”
의미 모를 질문이 케니클 후작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답변을 해 줄 진천은 이미 등을 돌려 달아나고 있었다.
“빠져나가게 해선 안 돼!”
콰이어 공작의 발악적인 외침이 아수라장 위를 흔들었다.
* * *
악착같이 밀려오던 제국연합 병사들의 벽을 뚫고 신성제국 진영으로 들어선 루키아 후작은 전장의 흐름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케니클이 실패를 했나 보군…….”
짜임새 있던 방진이 흔들리며 점차 혼전으로 양상이 변해 가고 있었다. 케니클 후작이 철저하게 짜 놓았던 작전이 완전 와해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작전이 틀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장 적 본진을 휘젓고 있는 블라미르부터 위험해질 것이다.
아무리 정예 병력이고 그 무력이 뛰어나다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전방에서 약속된 아군의 호응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열심히 휘저어 가던 병사들과 용병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불안감이 극대화된다면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리되면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곧 전열의 붕괴로 되돌아온다.
적 본진에서 전열이 붕괴된다는 것은 자멸을 뜻한다. 병사들의 자멸 뒤에 남는 것은 지휘관 사냥이다.
결국 블라미르가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키아 후작은 그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자신을 부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가우리…….”
가우리라는 이름을 읊조리는 루키아의 모습은 맹목적이기까지 했다. 그런 그의 눈동자가 한 지점을 향하고 있었다.
신성제국의 기사를 상징하는 은빛 갑주가 한 지점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루키아 후작님, 저건…….”
루키아를 보조하며 제국연합 병력을 관통했던 기사 중 하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도 루키아 후작과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실패지.”
“그렇다 해도 너무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군의 피해가 커질지도 모릅니다.”
최소한의 지휘관을 제외하고 일선 기사들까지 한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10만이 넘어가는 군단을 통제하려면 엄청난 기사들이 필요한데 그들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전황은 난전으로 변해 버린다.
거기에 마스터들의 도주를 막기 위해 기사들을 한자리로 모은다는 것인데, 이것은 제국연합의 마스터 전력을 신성제국의 마스터 전력이 감당할 수 없을 때 혹은 더 이상 시간 여유가 없을 때나 준비되었던 방법이었다.
“블라미르 님의 병력에 문제라도…….”
뒤쪽에서 초조한 음색이 들려왔다.
적어도 샤이완 공작과 콰이어 공작, 그리고 케니클 공작에 대현자들까지 모인 전력으로 적 마스터 두 명을 막아 내지 못한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기에 블라미르를 걱정하는 것이다.
“이쪽 방향으로 몰고 오고 있습니다!”
기사 하나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그가 굳이 가리키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확연한 움직임이었다.
신성제국 기사들이 몰려가는 방향이 자신들이 있는 방향과 비슷해졌다.
그러면서 점차 가까워져 왔다.
이 움직임은 적 마스터 중 하나가 이쪽 방향으로 탈주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콰앙!
“응?”
“저, 저건?”
그때 요란한 소음과 동시에 은빛 갑주를 입은 기사 하나가 허공에 붕 떴다가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모두가 목격할 수 있었다.
그때 무언가가 은빛 물결 위로 솟구쳐 올랐다.
“밀리엄 후작인가?”
“아니야!”
“그럼 쇼오…….”
상체를 드러낸 남자가 10여 미르를 솟구쳐 올랐다.
구릿빛 피부와 단단한 근육질을 가진 사내가 하늘을 유영하듯 날아오른 것이다.
“가, 가우리?”
하늘에 느릿하게 떠오른 사내의 피부와 머릿결은 기사들로 하여금 한 단어를 떠올리게 하였다.
“떠, 떨어진다!”
누군가의 외침.
동시에 정점에 달했던 이의 신형이 쏜살같이 바닥을 향했다. 동시에 울려 퍼지는 굉음.
쿠아앙!
“웃!”
거리상으로 떨어진 이곳까지도 느껴지는 진동음. 동시에 아군임이 분명한 은빛 갑주의 기사들이 피를 뿌리며 사방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순간 길이 열렸다.
그 열린 길은 루키아 후작을 향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만들어 낸 괴력의 사내와 루키아의 눈길이 마주쳤다. 마치 일부러 열어 준 듯 만들어진 길을 향해 루키아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후, 후작님!”
저벅저벅.
한 발짝, 두 발짝.
세 발짝 째부터는 달리기 시작했다.
터엉!
그 뒤로 그가 집어 던진 검집이 바닥에 부딪히며 튕겨져 나갔다. 루키아는 지금까지 자신을 홀려 왔던 이를 향해 달려 나갔다.
쿠쿠쿠쿠쿠쿠!
“우오오오오!”
루키아가 달리는 곳에는 개간된 땅처럼 바닥이 부서져 나갔다. 그리고 짐승의 울부짖음이 그 뒤를 따라 퍼져 나갔다.
제164장 퇴장하는 자는 아름답다?
“으음.”
“히익!”
“괴, 괴물이다!”
질주하는 고진천의 앞길을 막아서던 기사들조차 힘없이 튕겨 나가는 마당에 병사들은 무슨 힘이 있겠는가?
자신들이 막아서서 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대놓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것을 말려야 할 기사들도 질린 얼굴로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고,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동료들을 살피기에 바빴다.
그러는 와중에 루키아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니 주변에서 그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키아 후작님이시다!”
“우와아아!”
병사들의 외침 소리에 멈추어 선 진천이 루키아를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루키아…….”
투기를 뿜어내며 달려오는 루키아의 모습을 본 진천의 표정에는 분노보단 묘한 고민이 떠올라 있었다.
우둑.
고개를 왼쪽으로 확 꺾자 두둑 하는 소리가 울렸다.
“죽일까?”
왼쪽으로 삐딱하게 고개를 꺾은 채로 자신의 고민거릴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러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목을 확 꺾었다.
두두둑!
오른쪽으로 목을 꺾은 채로 또 한 마디.
“살릴까.”
그 상태로 천천히 고개를 오른쪽에서 아래로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하면서 원을 그리며 맴돌렸다. 누가 보아도 굳어진 목 근육을 푸는 모습이었다.
“죽여? 살려…….”
그 사이로 수많은 고민이 교차되었다.
뚝.
목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미 루키아는 한 걸음 앞으로 달려와 살기와 투기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싸늘한 냉기를 사방으로 뿌리고 있었다.
“일단 받아 보고!”
순간 고민에 빠져 있던 진천의 목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른한 음성을 남기고 루키아를 향해 튕겨 나갔다.
콰릉!
그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파이며 진천이 루키아를 향해 쏘아졌다. 동시에 늘어트리고 있던 롱소드가 루키아를 향해 달려갔다.
마주 달려오는 이를 향해 루키아의 검격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상대도 그의 검격을 마주쳐 왔다.
챠우우웅!
둘이 마주침과 동시에 쇳소리가 진동했다.
‘힘에서 밀린다!’
루키아의 양 볼이 꿈틀거렸다.
분명 최선을 다한 공격이었는데 오히려 한 수 밀렸다. 절대로 방심은 아니었다. 루키아가 고개를 들어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흰자가 희번덕이는 그 한가운데에 찍힌 흑갈색의 눈동자. 양쪽 입꼬리는 위로 치솟은 것이 마치 웃음 같지만 절대로 웃음이 아닌 표정.
그것은 살육을 즐기는 악마의 표정.
“겨우 이건가?”
으득!
악마가 음울한 음성을 뱉었다.
루키아는 대답 대신 이를 갈았다.
카가가각!
마주 댄 소드는 계속 밀리며 루키아 쪽으로 다가왔다. 힘으로 그를 찍어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태로 악귀의 형상을 한 사내가 천천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작게, 오직 루키아만이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속삭였다.
“네 목. 바라는 이가 너무 많다.”
“빌어먹을 종자들! 내 가우리의 씨를 말려 주지. 계집부터 애새끼 하나까지 다 창자를 뒤집어 주겠다.”
진천의 나직하면서도 음울한 음성에, 루키아가 이를 갈며 대꾸했다. 하지만 진천은 그의 살기 어린 다짐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해서 고민을 좀 했지. 그 목. 내가 거두어도 되는가 하고 말이야.”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가우리의 종자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둘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전혀 연결이 되고 있지 않았다. 진천을 향해 쏘아붙이는 루키아의 눈의 흰자위의 실핏줄들이 툭툭 터져 나갔다.
붉게 변하는 눈동자.
그런 루키아를 바라보던 진천의 표정이 점차 평소대로 되돌아왔다.
루키아는 악귀처럼 변했고, 악귀처럼 변했던 진천은 다시 고요를 찾았다.
“그런데 슬프게도 가치 없군.”
“나를 평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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